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8화 (38/128)

5장 - 길드 창설

공동 수업하게 된 교수는 임주성이라는 40대 중반의 전직 B급 헌터였는데, 어찌나 열정적인지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려는 통에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모른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 우호적인 태도와 열정에 면접을 본 지도교수들이 많이 배려해줬다는 건 확실하게 느꼈다.

“후배님도 곧 알게 되겠지만, 여기 아카데미 학생들은 격변 중기 이후의 일반 헌터 출신 교수들을 좀 깔보는 경향이 있지. 내가 특수반 과정을 맡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부분이 좀 있고.”

아카데미 과목의 수강 제한에 대해 알게 된 건 나도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처음이었는데, 권한은 총 넷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먼저 오직 최상위권 학생들만이 들을 수 있는 특별반 전용 강좌가 있다.

특별반 학생들은 이 강좌를 반드시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 강좌에는 드문드문만 보인다.

그건 이미 졸업만 앞둔 지혜가 상당한 능력을 보였음에도 특별반으로 넘어가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지금 넘어가면 특별반 강좌 학점 이수를 못 해서 1년을 꿇어야 하니까.’

다음은 헌터 아카데미 학생이라야지 들을 수 있는 강의다. 내가 이번에 가르치는 강의가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다음은 나도 잘 아는 외부 헌터까지 들을 수 있는 강좌, 마지막은 비각성 대학생이나, 일반인에게도 수업 청강이 개방되는 일반교양 강의가 있었다.

당연히 저 위를 바라보는 교수들이 가장 가르치기 원하는 건 저 특별반 전용 강좌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전 여기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터라···.”

“하긴 자네는 아직 한창 현역으로 뛸 시기니 이번만 잘 넘기면 되겠지. 다행인 건 지난번 B급 브레이크 사건 덕을 보긴 할 걸세. 그때 이름 알린 건 잘한 일이야. 아니었다면 제대로 자네 강의를 들어주지도 않았을 테지.”

그 말은 내 경력이나 현재 능력이 부족한 편이라 수업이 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로 능력 증명은 했다곤 해도 수업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이진 않겠어.’

사실 아카데미 졸업반쯤 되면 능력치만 보면 D급도 상당하고 심지어 특별반으로 가면 현재 능력 B급도 있다.

내 등급 보고 무시하는 녀석들이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때 사건 덕분에 그런 부류의 명성 최소치는 갖췄다는 의미다.

“공동 강의라고 하지만, 아마 학생들은 자네를 보조 강사 정도로 생각할 거야. 간혹 그런 티를 낼 수 있는데, 실망감을 드러낸다거나 하진 말아. 그런 빈틈을 주면 바로 잡아먹히니까. 요새 애들 영악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첫 수업은 계획한 대로 내가 먼저 들어갈 거고 최초 수업 계획과는 좀 다르게 갈 생각이야. 게이트 브레이크를 가장 먼저 다루려고 하네.”

“그거 혹시···.”

“자네 파티가 겪었던 그 게이트에 대처 과정을 가지고 강의하면 그 사건을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얼굴 정도는 익히게 할 수 있겠지. 어쨌든 실전을 경험한 비슷한 나이대 헌터 선배 아닌가? 친근함으로 다가가기엔 나쁘지 않을 거야.”

“그렇겠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침 그 유지혜 학생이 이 과정에도 지원했으니, 후배님만을 위해서 일부러 보여준다는 억지스러운 느낌은 없을 것 같네. 그럼 다음은 주의해야 할 인원인데.”

임 교수는 프로필 카드 몇 개를 노트북 위로 띄웠다.

“이 과정에 등록한 특별반 학생은 총 넷. 일반 과정치곤 좀 많은 편이지. 실습 때문도 있고 모종의 이유 때문인 것 같기도 하네.”

앳되긴 하지만 대부분 아는 얼굴이다.

개중 모르는 얼굴 하나도 누군지는 안다.

권유리, 캔디의 권유였는지, 아니면 국장의 지시였는지 국장의 딸이 이 과정에 신청했다.

“관리국장님 자제분이군요.”

“그렇지. 나도 어느 정도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네만, 관리국에서 자네를 신경 쓰는 모양이야. 권유리 후보생은 특급 수준의 경호를 받고 있으니, 게이트 실습 때 자네 신변 보호에 그 팀을 재활용하겠다는 거겠지.”

“주의해야 할 인원이 있습니까?”

“이한솔 후보생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신청한 거 같진 않아. 하지만 전체 순위 5위로 이 중에서는 가장 등수가 높지. 자네 쪽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가장 눈여겨봐야 할 학생이야.”

한국 같은 경우는 비율상 고등급 서포터와 궁사계 원거리를 많이 배출하는 편이다.

반면, 이한솔은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전위계 분배의 특급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유망주다. 그 온갖 설레발 때문에 기억 한편에 남아있었다.

‘각성 등급이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B급이었지.’

최소 특급이란 평가를 받던 유망주였지만, 안타깝게도 한참 활동을 했는데도 만족스럽게 크지를 못했다. 대전쟁 시기 초반에 사망했고 그때의 최종 등급은 ‘B+’로 끝.

‘가능하면 그쪽 성좌에 접근해 봐야겠는데.’

대체 어떤 성좌기에 저런 유망주를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날려 먹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한 명은 누구의 영입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정예진 후보생을 말하는 거라면 그렇겠지. 모범생이고 크게 신경을 쓸 만한 인원은 아니야.”

정예진은 10대 길드 중 8위, 북진 길드장의 손녀다.

‘아주 신이 났겠어. 유지혜 따라왔을 뿐인 것 같은데 특별반만 자신 외에 세 명이 더 있으니.’

마지막으로 인맥과 친밀도를 이용한 사전 구두 영입을 노려볼 수 있는 시기인데, 특별반 인원 셋에 유지혜까지 사적으로 친해질 기회다.

분명, 이 길드라면 유지혜를 최우선 영입대상으로 노릴만하다.

경기 북부를 연고로 하는 길드고 옛 북한지역의 수복과 이권을 노리는 이 길드로서는 유지혜가 보여주는 광역 퍼포먼스가 탐이 나겠지.

만약 길드를 따로 세우려는 게 아니었다면 나도 지혜에게는 북진을 추천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 학생은 순위는 크게 주목할만한 인원은 아닌데···. 난 가장 주의할 인물이라고 봐.”

“황정윤. 혹시 그 황씨입니까?”

“헌터 명가로 유명한 그 집안 말하는 거라면 맞네. 망나니라는 평가가 돌았지. 최근엔 유지혜 후보생과도 접점이 있는 모양이야. 조심스레 동기를 따진다면 여자 따라온 게 아닐까 생각 중이네.”

재벌가 망나니라, 포르세티가 보기만 해도 아주 눈을 빛냈을 인물이겠다. 여신이 유지혜로 즐긴 취미생활의 여파 같은데, 나올 게 나왔다는 느낌이다.

각성 등급은 D+급으로 무난하게 B급까지는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다. 특별반에 있는 것치곤 실습 성적이 일반 최상위보다 낮아서 작년 퇴출 위기였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마지막 보충수업에 통과는 했다는 결과.

‘그쪽 가문에서 손을 썼겠어.’

하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이쪽이 아니었다.

그저 특별반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임교수에게 맞춰줬을 뿐이다.

내가 주목했던 쓸만한 잠재 C급들 외에도 이 과정에 지원했던 후보생 중 굉장한 원석이 하나 남아있었다.

‘초능력자 신수빈. 이 녀석이 아직 아카데미 재학 중이었구나.’

마지막으로 기록되었던 등급은 A급이지만, 현실에선 특급 취급을 했던 한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빌드 개척자이자 대인전 스페셜리스트.

헌터 관련 벌어지는 온갖 개인전 대회를 휩쓸고 전 세계를 떠돌며 B ~ A급 소형이나 인간형 보스들을 홀로 박살 내는 방송을 해서 유명세를 탔던 시대의 풍운아다.

‘대전쟁 초기에 포위당해서 죽는 바람에 그 누구도, 회귀한 나조차 대체 어떻게 빌드 탔는지 모르는 인물이지.’

재학생 시절인 지금 능력은 종합 ‘E+’였고 능력치 분배가 몹시 괴상한 탓에 전혀 주목을 못 받고 있었다.

‘정신력만 특급에 나머지 모든 능력치가 쓰레기 수준. 성적은 이론 수석에 실습 0점. 그 탓에 하위권이고 졸업반인 지금은 빌드 연구소 쪽으로 진로 권유를 받는 중인데, 계속 거부.’

정신력이 특급이어도 감각이나 민첩 능력치 등이 따라주지 못하면 유일한 전투 루트인 서포터로 가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전투 직군을 지망 중이니 다들 계륵이라 여기는 거겠지.

‘그래. 이 녀석이 내가 이번 3개월간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녀석이다.’

아카데미 졸업 후, 혜성처럼 다시 등장하기 전까진 그 행적이 아주 묘연하다. 지금이 저평가를 받을 때 친분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연습도 하고 수업 내용도 고치고 하면서 첫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되었다.

“반갑습니다. 헌터 후보생 여러분. 앞으로 3개월간 종합 게이트 공략 상급반의 공동 수업을 맡게 된 강사, 김유성입니다.”

약간의 깔봄을 담은 시선이나, 무심함,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앞으로의 강의 진행 방향에 관해선 이전 두 번의 강의에서 임 교수님께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앞으로 총 36회의 과정 중 16회를 함께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하죠.”

나는 연단에 서서 한 차례 착석한 후보생들의 모습을 살폈다.

출석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오면 생체인식이 되는 방식이라 이미 들어온 인원과 결강한 인원은 연단에 설치된 모니터에 나열되어 있었으니까.

“분명, 여기 후보생들은 게이트 공략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선 그간의 초급, 중급 과정을 통해 배웠을 겁니다. 심지어 이미 실습을 몇 번 다녀온 인원도 있겠죠.”

나는 본격적으로 뭘 가르칠 것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론적인 부분은 지루하기만 할 겁니다. 거기에 베테랑 헌터 분들에게 교육 받아온 여러분보다 고작 몇 살 많고 몇 개월 빨랐던 제가 이야기해봐야 우습게만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처음 이 일을 받고 뭘 가르쳐야 할지 고민했지만, 어차피 내가 가르칠 것은 한정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내겐 파티장을 맡아 몇 번의 성공적인 공략을 했고 예상할 수 없던 브레이크에 훌륭하게 대처한 경험이 있죠. 게이트 공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티의 인간관계가 박살이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고 헌터를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난 뒤로 준비한 프로젝트를 띄웠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죠.”

첫 수업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베테랑들 처지에서 본다면 특별할 것은 없는 내용이라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이론화시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며 강의하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회귀 전의 기억 상으로도 내가 공략한 던전만 세자릿수가 넘는다. 머릿속에서 사례를 끄집어내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실제 상황을 경험이 아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준비해서 공략한다.

이런 식의 계획을 세웠다는 식으로 기존 공략 영상들과 일치하는 사례를 찾아다 증거로 제시하며 강의하는 방식을 취하니 술술 넘어간다.

“저기 강사님.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나고 자료를 정리하는데 누군가 내 옆에 섰다. 유지혜다.

“오랜만이네.”

“그런가? 그간 연락 한 번 없으시다가 깜짝 강사로 오실 줄 몰랐네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임무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수업 맡으신 두 분 중에선 강사님인 것 같네요. 유성 오빠가 포르세티 성좌님이랑 연관 있는 거. 맞죠?”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뭘 해야 하나요?”

“여신은 자기 길드를 만들길 원하시지.”

“그러면 우리 집에서 자금을 대면 되는 건가? 길드장은 강사님이 하시는 거고? 그럼 지분은 얼마나 주신데요?”

난 고개를 저었다.

“그 길드 주인은 너야. 굳이 길드를 만드는 이유도 너 때문이고.”

“네?”

“네가 여태 받은 임무로 아마 예상했을 텐데?”

“어. 그런데 저는···.”

포르세티에게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지금 상황은 잘 알고 있다. 유지혜는 이미 특정 길드와 관계가 있는 교수들을 통해 좋은 제안을 받아왔다.

거기에 특별반과도 얽히면서부터 그쪽과도 이해관계가 돌고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걸 선호하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지혜야. 넌 네 한계가 어디까지라 생각해?”

“저 그래도 잠재력은 종합 B급쯤 되지 않을까요?”

난 좀 잔인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진짜 현실을 말해주었다. 다 들은 지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제 잠재력은 실제론 형편없다는 말이네요. 분배 고려해서 특별한 빌드를 쓴 덕에 지금 유명세를 얻은 거고? 그리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허세. 네 인생은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거지.”

“그니까. 대놓고 한철 장사에 그 명성으로 길드 차리는 게 최선이라는 거네. 다른 길드 들어가면 결국 전부 들통이 난다는 거고?”

“네 빌드 특성상 쓰임이 한정적인데, 널 중심으로 보호해 줄 팀도 필요해. 그걸 알게 되면 큰 길드들에선 계륵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지. 안다면 북진에서나 네 쓸모를 생각해서 이적 오퍼를 넣을 것 같은데. 전성기 내내 북쪽 개척하면서 살 자신 있어?”

“아···.”

북진이 벌이가 나쁘진 않은데, 그쪽 동네 인프라가 좀 열악하다.

“그리고 내가 길드장을 맡기엔, 특별한 한방이 없고 대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쪽에서 움직여야 하거든.”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이거 빌드 후반부는 성좌님이 들고 있고.”

“아예 없진 않지. 네가 아주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부친 사업 이어받아서 사업가로 사는 방법이 있으니까.”

“그분과 그런 대화까지 하셨으면, 이미 다 아실 거면서 그러신다. 저 이제 그렇게 못 살아요.”

내가 달라진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유지혜도 마찬가지다. 첫 계약자라 그런 부분에 눈길이 갔는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지금의 내 삶과도 많이 닮았다.

“너무 걱정하진 마. 성좌님이랑 내가 최대한 도울 거니까.”

이후 지혜와 함께 길드의 연고지는 어디로 정할 건지, 길드명은 뭐로 하고 싶은지 등 길드 설립에 대한 제반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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