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7화 (37/128)

5장 - 길드 창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은 여신의 답신은 몹시 건조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밝혀도 문제가 없는 겁니까?]

[너. 중요한 걸 잊고 있나 보네. 너와 내가 계약으로 얽혀있긴 하지만, 시스템 상 공식적으론 그 계약은 ‘성좌’와의 계약이야. 그걸 인식하고 있었다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진 않았겠지.]

그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나는 여신과의 관계를 나도 모르게 계약자와 성좌간의 관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건 모든 각성자의 관계라는 게 그러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나 자신의 특별함을 스스로가 간과하고 있던 거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여신은 메시지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가장 먼저 물어봐야 했을 건, 내 이름을 이용해도 되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 아니야. 내 리스크에 대한 거래 조건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지. 이름없는 성좌씨.]

그 말대로 뉘앙스가 다르다. 지금 당장에라도 나는 그녀의 허락 없이도 해당 성좌가 포르세티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대신 맘대로 그랬다간 그간 쌓은 신뢰가 떨어지거나, 심하면 보복을 당하겠지.

이건 허락을 구해야 할 관계가 아니었다. 여신과 내 사이는 직원과 사장 수준의 관계인 일반적인 헌터들과 다르게 투자자와 사업가의 관계에 더 가깝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는 성좌와 헌터의 계약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나눈 성좌 대 성좌의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고꾸라진다면 포르세티님께도 좋을 건 없지 않습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가슴에서 나오는 말을 내뱉었다.

윈윈, 좋은 말이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먹히지 않겠다 직감했다.

[급한 건 알겠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렴. 너와의 계약으로 난 이미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지. 할아버지께 받은 게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대로 빚만 조금씩 갚아나가더라도 신용으로 추가 대출 정도는 충분해.]

그 말대로 분명히 동등하게 힘들던 상황이 아니라 이제 아쉬운 것은 내가 되었다.

물론, 내가 떠나는 것은 포르세티 입장에서도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 지분 회수를 위해 내가 너를 죽이려 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본 걸까?]

[제가 죽어 지분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그게 포르세티님에게 돌아갈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시스템에게 갈 확률이 높겠죠.]

[그래. 그것도 일리는 있겠네.]

지금 건 그냥 던져본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안 좋은 상황에서 여신이 토사구팽하려 든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뭘 원하십니까?]

잃을 게 더 많은 내 쪽에서 결국 먼저 항복 선언을 했다.

[방심하지 마.]

그러나 여신은 따로 뭔가를 요구하진 않았다.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움직여. 지금의 넌, 마치 외줄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 같거든. 그래. 급작스러운 변수 속에서 네가 상황을 좋게 만들어 간 것은 인정해.]

아직 여신은 내게 우호적이다. 그저 알려주려는 것이다.

[성좌들이 다 바보라서 조심스레 운용한다고 생각해? 네 아이디어는 훌륭했고 임기응변 치곤 상황을 좋게 만들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다간 언젠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성좌를 건드려 좌초하겠지.]

그리고 계약자도 아닌 날 여신이 구해줄 이유는 없다. 그래서 대가를 말한 것이다.

[아직 우리 사이가 그렇게 가깝진 않잖아?]

조금 다르지만, 얼마 전 비슷한 대화를 했었던 것 같다. 여신은 내 이번 대처를 탓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신이 나서만 준다면 분명 상황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도 난 포르세티의 시야에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여신을 그저 이용 대상으로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좌초하면서 끝나겠지만, 그 끝이 너에게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이미 내가 한 번 경고했을 텐데.]

그렇기에 여신은 이 협업에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고 이 위쪽 세계에는 내게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들이 많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건도 그래. 여기서 네가 멈춘다고 이름을 댈 수 없다고 하면, 저들이 가만히 있을까? 장담할 수 있니? 저 녀석들 등급 정도 되면 다 뒤에 있는 성좌들이 있어.]

그 말대로 여기서 손 떼고 묻어버린다고 해도 이 사건은 알음알음 퍼져 나갈 것이다.

[제 실수군요.]

[그래. 그간 내가 네 움직임에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은 건, 널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대체 왜 그렇게 서둘러?]

그렇지만 내가 회귀했다고 말하긴 쉽지 않은 일이지 않겠는가.

이걸 말하기엔 아직 여신을 믿을 수 없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은 인정했다. 저 성좌와 신들의 이야기에 대해 난 조금 더 알아야 한다.

[제 불찰입니다. 저희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

그리고 나는 이번 사고에 대해 여신에게 지급할만한 대가가 없다. 지금 내 수준에서 치를 수 있는 대가가 아니다.

[이번은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래야겠지. 나도 널 버릴 생각은 아니니까. 이번엔 나한테 빚진 거야. 그렇다고 내가 널 뭐라 다그치는 건 아니야.]

그리 말하면서 비로소 포르세티의 말투는 평소에 가깝게 누그러졌다.

[넌 분명 괜찮게 능력이 있지만, 어째서인지 큰 그림은 볼 줄 모르는 것 같아. 여태 네가 해준 일이 있으니 아직 웃으며 넘기지만, 날 너무 실망시키진 말았으면 해.]

속으로 헛웃음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방금 전에는 포르세티에게 배째라는 듯 어쩔 거냐고 물은 셈이다. 그런 배짱도 통하는 곳이 있고 안 통하는 곳이 있다.

[그래. 이제 내가 동업자의 위기를 해결해줘야 할 차례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말해도 돼. 대신 내 이름 팔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 이름 팔아. 이건 내 이름값 만으론 좀 부족하겠지. 아슬아슬해.]

[그 말씀은···.]

[우리 할아버지가 대단하긴 해. 어떻게 이런 상황으로 흘러갈 걸 예상하지?]

아마 지금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을 거다.

역시 오딘과 거래하게 한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포르세티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이번 건으로 분명히 주도권을 뺏기고 끌려갔을 거다.

[그쪽에서 지시하신 겁니까?]

[그래. 다 알고 계시더라. 네가 한 일부터 시작해서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 것인지. 전부 다 예상했어. 아니, 이건 여기저기서 들어온 작은 정보로 추론을 했다 해야 하나? 어쨌든, 미미르 샘의 지혜라는 게 보통은 아니네.]

생각보다 신들의 시야가 넓다. 하기야 한 신화의 주신급이다. 이 정도도 못 해줘서야 그 이름이 아깝겠지.

[내겐 그걸로 주도권을 쥐라고 하셨는데, 난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 정도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

[실망하시겠군요. 괜찮겠습니까?]

[그러시라지. 나는 법의 신. 내 법과 내 정의를 따라. 할아버지는 인간의 광기와 열정 외에는 믿지 않지만, 나한테까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난 너와 계약자에 필적하는 확실한 상호 신뢰 관계를 원해.]

그 말에 살짝 뜨끔했다. 난 그간 성좌를 수틀리면 갈아탈 수 있는 패 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게 겉으로 티가 났다는 거겠지.

[너에겐 내가 계약할 수 있는 그저 한 명의 성좌일 뿐이겠지? 내가 그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면, 네게 빚을 충분히 지워둬야 할 거야. 안 그래?]

[신세를 졌습니다. 그 답은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 드리죠.]

그리 답하자 만족을 표시하는 이모티콘을 담은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으로 여신과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돌아서자 답을 요구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저와 계약한 성좌는 포르세티입니다.”

“포르세티?”

“그게 누구야?”

“아, 북구의 신좌 발드르 신의 자녀를 말하는 거군. 맞나?”

국장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신좌라면 최소치는 만족하겠네만, 이름값은 충분치 않을 것 같은데.”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오딘의 이름을 사용해도 됩니다.”

수많은 신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최고신 중 하나의 이름이 나오자 국장실 내에 침묵이 흘렀다.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과 달리, 본격적으로 신들이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옛 고대 신앙들은 아직 주류 신앙까진 회복하지 못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신앙이 복원되었다.

대헌터시대에 있어 그 신화의 정점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선망의 대상이 된 상태다.

그래서 오딘이라는 이름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뭐야, 그럼 북유럽 신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거야?”

김설아는 그게 꽤 기대가 되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게 물었다.

보통 신화는 발현한 지역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지구 반대편까지 본격적으로 세력을 뻗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우리나라로선 나쁠 것이 없다. 인구가 많을수록, 그리고 주변에 맞부딪치는 신화가 많을수록 자국 각성자 풀이 넓어지는 법이다.

신화 하나가 추가 상륙하면 그만큼 국력이 강해진다는 의미다. 더욱이 다양한 신화가 부딪친다는 건, 빌드 다양성이 확보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함부로 여기서 내뱉어도 되는 사항도 아닐 거고요.”

“그 정도 신좌가 하는 일이라면 이 사건으로 각성자 사회에 지각 변동이 생겨도 큰 문제는 없겠어. 진행하지.”

캔디와 달리 권혁준은 아까부터 생각보다 놀란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 표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에서의 놀람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았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올 수가 1 ~ 6인 것처럼. 그중의 어떤 하나가 나왔다는 정도의 표정 변화였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나갔나. 내가 너무 날이 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한 의심이다. 그간 너무 머리를 굴리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너무 의심하는 게 버릇이 된 것 같다.

관리국장 역시 직접 그런 질문을 던질 정도의 인물이고 아마, 그럴만한 성좌의 명단 풀을 예상 정도는 하고 있던 거겠지.

“국장 아저씨. 그래서 앞으로 내가 이 녀석 도와주기로 했는데.”

“뭐, 청탁이라도 들어주기로 한 거냐?”

“아니. 날 뭐로 보는 거예요. 나 히어로라고. 히어로. 그냥 외압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정도야.”

“그 정도야 네 선에서 해결 가능한 일이잖나.”

“오면서 간단하게 얘기 들으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마침 4분기 막 시작 중이니 아카데미 단기 강사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차를 타고 오면서 새 길드 설립의 중추가 될 인물이 유지혜라는 건 이미 그녀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포르세티 신좌가 길드장으로 생각한 인물이 겨우 아카데미생이다? 그건 좀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나.”

“나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는데, 오딘이 관심을 뒀다는 이야기가 나온 걸 생각해보면 하위 길드 정도를 생각하는 것 아니겠어? 아니면 뭐, 천천히 키우려는 모양이지.”

권혁준이 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김설아가 쐐기를 박았다.

“어쨌든 무려 북구 신화 주신인 오딘의 이름이야. 얘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아주 모양새가 안 좋잖아?”

“순수하게 네 의견은 아닌 것 같다만.”

“뭐, 우리 성좌님의 의견도 내 의견이지 뭐.”

“그렇군. 우리가 이런 대화를 강요한 거나 다름없으니, 이쪽 성좌들에게 괜한 의심이나 피해가 안 가려면, 어느 정도 책임질 필요는 있겠어. 그래. 그러면 그쪽은 캔디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나?”

“챙겨주시면 나쁠 건 없죠.”

이건 나쁠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고작 3개월이라도 헌터 경력에 아카데미 강사 이력을 써놓을 수 있는 건, 앞으로의 헌터 생활에 있어서 몹시 훌륭한 경력이다.

‘최소한의 인성이나 실력은 증명되었다는 거니까.’

아카데미는 국회, 청와대 같은 최고 수준의 대 게이트 및 빌런 방호가 제공되는 장소였다. 혹시 모를 거미의 습격을 나 혼자 상대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장점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일부 등급 낮은 유망주나 다른 강사와 관계를 다질 수 있고 유지혜와 접근하기도 편한 데다 어쨌거나 스승이라는 입장이다. 고등급 유망주들에게 영향력을 퍼뜨리기에도 좋았다.

‘고위 성좌 수저를 잡은 녀석들은 언제나 이런 배려를 받아왔겠지.’

새삼 오딘 같은 고위 성좌가 가진 이름값의 강력함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 * *

“37번 지원자분, 면접 차례입니다. 들어오세요.”

며칠이 지난 뒤, 나는 관리국 추천서를 가지고 중앙 헌터 아카데미의 강사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사실 관리국 TO를 활용해 들어가는 거라 합격 여부는 면접에서 개판 쳐서 인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저 형식적인 일이다.

다만, 이걸로 어떤 과에 배치될지는 면접을 통해 결정될 사항이라 의미 없지는 않았다.

“관리국 TO로 관리국의 과장, 팀장급이나 영웅이 아닌 사람이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혹시 자세한 사정을 좀 들을 수 있습니까? 그냥 참고하려는 거니 민감한 사항이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접관 중앙에 앉은 인물은 중앙 아카데미의 교감인 은퇴 히어로 이정곤이다. 시작부터 좀 센 질문이었지만, 이에 대해선 미리 국장과 상의해둔 바 있었다.

“이번 거미 문양을 쓰는 조직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 중요 정보를 제공한 참고인으로서 신변 보호 차원에서 나름의 배려를 받았습니다.”

“아. 그런 의도라면 따로 인성 면에서는 더 확인할 건 없겠군요. 용감한 결정 하셨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의 안경 쓴 교수의 입이 열렸다.

“자료는 받아봤습니다. 지난 B급 브레이크 때의 자료는 꽤 인상 깊더군요. 그 정도면 종합적으로는 현역 C급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겠어요. 혹시 원하는 과가 있나요?”

“원거리 과정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쪽에 자리가 없다면 게이트 공략 계열이나, 파티 편성, 빌드 쪽도 괜찮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뱉자 잠시 면접관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간다.

“빌드 연구 쪽은 지원이 워낙 많은 과라 내드리기 어렵습니다. 파티 편성과 팀워크 쪽은 이미 자리가 다 찼죠.”

그럴 것이다. 빌드는 대개 한 번 손을 대면 성장하면서 쭉 도움을 받아야 하는 종류다.

강의하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능력만 인정되면 일종의 학파 취급으로 엄청난 인맥이 따라오는 일이기도 했다.

지원이 많은 건 당연하고 그런 걸 쉽게 임시 강사에게 맡길 리도 없다.

‘맡아봐야 파리 날릴 게 뻔하니까.’

말 나올 게 뻔하니 맡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남는 과가···.”

“종합 게이트 공략 강의나 원거리 기초 쪽은 자리를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김유성 씨는 어떤 쪽을 선호하나요?”

“원거리 기초 강의는 실전을 포함합니까?”

3개월은 짧은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뭔가 능력을 보여주려면 실습이 있는 과가 좋다.

“기초 과정에선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는 실전은 없습니다.”

“그러면 종합 게이트 공략 과목으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3개월간 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알기로 게이트 공략과의 경우, 상급생 과정을 맡으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실습을 나가는 것으로 안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몇 번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 내가 정하자마자 과목표를 건네받았다.

나는 당연히 졸업반과 5, 6년 차를 교육하는 상급 과정을 택했다.

“음···. 김유성씨. 이게 미안한 말이지만, 상급 과정은 조금 곤란합니다.”

“제 경력이 문제라면 권한을 조금 올려주시는 선에서 보조 강사도 괜찮습니다.”

“아카데미 졸업생도 아니면서 뜻밖에 잘 아는군요? 보조 강사라면 지금 경력으로도 가능하긴 한데, 문제는···.”

“관리국 TO를 받아서 온 강사를 멋대로 그렇게 취급할 순 없지. 그건 우리가 곤란해진다는 말이네.”

교감이 빠르게 정리하며 내게 다시 배턴을 넘겼다.

“저는 3개월 정도 지나 사건이 해결되면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감각과 최근 얻은 인연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내 말이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감한 사항이라서인지 면접관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이렇게 하세. 중견 교수를 잡아서 공동 강의로 번갈아 진행하고 실습 때는 둘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김유성헌터는 본인이 원한 사항이니 이 정도 배려하면 우리도 관리국에 할 말은 있겠지.”

“수업 부담이 절반이 되면서 경력도 챙기는 셈이니 김유성 헌터나, 남는 시간 활용해 경력 늘리려는 중견 교수나 서로 나쁠 게 없겠군요.”

“그 교수 이름값으로 수강생도 적당히 모을 수 있을 테죠. 걱정하던 부분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겠어요.”

어쩔 수 없이 날 채용해야 하는데, 과정을 하나 맡기엔 겉으로 드러난 등급이나 헌터로서도 신참 수준이라 이름값이 많이 떨어지는 탓에 걱정이었던 것 같다.

어지간하면 원래부터 인기 없는 강좌나 갓 과정에 들어온 어린 친구들이나 맡아주길 바랐던 모양. 낙하산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이후 며칠간 수업할 내용을 정리하고 아카데미에서 붙여준 중견 강사의 사정에 맞춰 강의 시간을 조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퀘스트를 줬다고는 하지만, 들어오지 못할까 살짝 조마조마했던 수강 신청 기간은 명단에 유지혜가 들어오면서 잘 지나갔다.

조금 돌아왔지만, 길드를 곧 창설하게 될 것이고 포르세티와 내 세력화도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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