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6화 (36/128)

4장 - 폭풍속으로

“여긴 교회. 거긴 시민단체 사무실. 이건 또 벙커만 지어놓고 방치되는 부유층 사유지고? 건드리기 귀찮은 장소만 골라서 자리를 잡았네.”

“그걸 다 외우고 다닙니까?”

“그 정돈 기본 아냐?”

내가 알고 있던 거미의 아지트 위치를 전부 지도에 찍어주자 바로 그곳이 어딘지가 딱딱 튀어나온다. 첫 만남부터 생긴 거랑은 다르게 논다.

하는 짓이나 전투 방식, 말만 보면 분명 막가파에 무력 집중형 같은데 반전 매력이 좀 있었다.

“네, 국장님! 성좌 쪽 정보라네요? 정보원은 나름 믿을만해요! 뭐,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그리 말해놓고 책임을 진 적이 있었나?]

“뭐, 그러면 자르시던가요!”

[알겠다.]

뚝 끊어졌다. 그녀는 곧장, 관리국장에게 내가 찍어줬던 좌표를 보냈다.

“이 양반이 뭐만 하면 안 된다더니 평소답지 않게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주네.”

“지금 그거, 자른다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좋아.”

“아니···.”

진짜 이 여자가 좋아하는 그놈의 템포를 못 따라가겠다.

“걱정 마. 저 인간은 나 못 잘라. 진짜 자르면 뭐, 휴가 길게 받은 셈 치지 뭐.”

잠시 생각하고서야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이 여자 히어로라서 관리국 직위에서 잘려도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다른 정보는? 이게 전부는 아닐 것 아냐.”

“뭐가 더 필요합니까?”

“얘 좀 봐라? 아까 그건 기약이 없었잖아. 설마 날로 먹을 셈이야?”

잠시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가 간신히 뭘 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금 이야기만으론 김설아가 유지혜나 앞으로 내가 설립할 길드를 지원하는 것에는 제한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조건이면 명백히 내가 크게 유리한 계약이다.

그녀는 이 계약이 단기적 도움으로 끝날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계약을 구체화하자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뭘 더 줄 수 있는지를 묻는 거군.’

지금 내가 집어준 아지트는 바로 습격해야 한다.

이 정보를 보고한 사람이 김설아니, 이 성과에 지분이 있긴 하지만, 결국 직접적인 공을 가져가는 건 이 정보를 받고 출동해 그 아지트들을 제압하고 정보를 가져오는 팀들의 몫이 클 것이다.

여기서 서로가 만족할만한 계약을 이어가려면, 내가 그녀가 직접 공을 세울만한 걸 줘야 한다는 소리였다.

“조직 이름은 블랙 스파이더. 팀장님은 지금으로부터는 대략 9년 전, 특급 잠재 판정을 받았던 창잡이를 기억하십니까?”

“어···? 이거 기억날 듯 말 듯한데. 아카데미 출신인가?”

“맞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용병으로 일하다가 7년 전, B급일 때 국외를 떠돌기 시작했죠. 아마 최근 행적은 묘연할 겁니다.”

“아. 기억난다. 여주희! 주희 선배 맞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조직의 보스라고? 좀 믿기질 않는데. 잠깐.”

뭔가 떠올린 모양이다.

“···그 선배 하니까 미국에서 열린 엘릭서 경매에 참가했다가 낙찰 실패했던 뉴스를 봤던 기억이 있네. B급 헌터가 가지고 있기엔 엄청난 금액이라 놀랐었는데. 아. 그러면 설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타란툴라라는 이름을 댈 겁니다.”

그녀도 타란툴라가 이번 사건에 굳이 나선 동기를 파악한 것 같다.

둘 다 아카데미 출신이니 김설아에겐 윗 기수 선배였겠지. 덕분에 그 보스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러면 네가 내게 알려주려는 건···.”

“확인해보시면 입원해 있던 그 가족들이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거나, 혹은 이미 옮겼을 겁니다.”

“아! 그래. 그렇겠네. 인질 겸해서 그 신병을 확보할 수 있어도 좋고 다 놓치더라도 그 보스가 그 선배일 확률을 높이는 데는 상당한 근거가 되겠어.”

그리 말하면서도 캔디는 몹시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도 대가가 불충분합니까?”

“아니. 충분해. 충분하고 넘치지. 그런데 뭔가 기분이 더럽긴 하네. 내 기억으로도 그 선배 정도면 엄청나게 잘 나가던 유망주였는데.”

그 개인 사연만 들어보면 안타까운 인물이다.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 끝에 개인으로는 집단의 자본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빌런 조직을 설립한 거니까.

하지만 남이 노력해서 얻은 물건을 빼앗는 것이 그것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게 누군가 보기에는 정의일 수도 있지만, 질서를 추구하는 사회에는 명백한 악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영달과 인류 생존을 추구하는 나의 정의에도 빌런들은 뭐가 어찌 되었건 악이었다.

“아실 겁니다. 보통은 그런 이유로 빌런이 되진 않는다는 걸요.”

“아. 위로라도 해주는 거야? 그냥 씁쓸한 정도야. 네 말대로 빌런 중 사연 없는 놈은 거의 없지. 그리고 대부분은 그 생각이 어느 한 쪽으로 뒤틀려 있고.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이 일 못해.”

맞는 말이다. 원래 괴물이라면 모를까 같은 사람을 공격한다는 건, 빌런이나 히어로나 관리국 대원이나 보통 정신력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뭐가 됐든 그런 건 신념이나 합리화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김설아를 향해 거미라는 조직을 구성하는 근간에 대해 말해주기로 했다.

“모든 것은 가장 합당한 자의 손아귀에. 그게 그들이 말하는 신념이고 동시에 거미라는 조직을 구성하는 근간입니다. 내부 조직원과 그 간부들은 그런 사연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 있죠.”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고?”

캔디의 말대로 거미 내부 조직은 각 조직원이 가진 한을 해결해주는 것 외에는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의 사연이 더 중하고 중하지 않고는 개인이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님에도 자신들의 인연이 닿는 사람만 챙긴다는 점에서 이미 이익집단이다.

그리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손아귀에 쥔 외부 조직들이 하는 짓이나, 내게 했던 것처럼 그들이 공격적 방어랍시고 하는 짓을 보면 애초에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 빌런들이 다 그렇지.”

저리 말하며 코웃음을 치는 모습을 보니 애초에 캔디의 정신 상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여자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인물이다.

“우리 선배님께서 그 엘릭서 놓치시고 아주 한이 사무치셨나 보네.”

“아무렇게나 조직의 신념을 바꿀 리는 없으니 애매할 때,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아는 거랑 모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겠네. 그 캐치프레이즈가 제대로 먹혔다면, 그 내부 조직 구성원들은 거의 사이비 종교 집단 상대하는 느낌이겠는데. 아주 끈질기겠어.”

“제 이야기는 여기까집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지금 들은 것도 국장님한테 보고해야지. 영환이 녀석이 차 끌고 오면, 너랑 나는 우선 그거 타고 본부로 복귀할 거고. 아, 이만큼 받았으니, 네 이야기 듣고 협조할 부분도 정해야 할 텐데···.”

김설아가 바라보는 곳에는 땅을 구른 채찍빌런을 잡아온 후속 차량이 있었다.

“저기 차가 오네. 그건 차차 이야기하자.”

멀쩡한 차는 한 대뿐이고 데려갈 빌런만 셋에 우리 인원도 다섯이나 됐기에 나머지는 차량 지원이 오면 복귀하기로 하고 이 과장, 빌런 보스, 김설아와 나까지 넷만 먼저 증거물을 가지고 복귀하기로 됐다.

모두 차량에 탑승하고 잠시 막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한 김설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국장이 널 좀 보자네.”

“제가 뭐 잘못한 일이라도?”

“뭐 잘못했니? 그냥 얼굴만 좀 보자는데? 내용은 그게 다야.”

관리국에 단 세 명만 존재하는 특급 능력자.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스무 명을 넘지 않는 S급 중 한 명이다.

조직 성향상 만나서 내게 뭔가 하지는 않겠지만, 회귀 전 실력을 갖췄어도 만나기 쉽지 않은 거물을 만나게 되자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관리국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김설아와 함께 관리국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고 우리 둘이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40대의 중년 남성. 그가 입은 관리국 간부들이 입는 제복 상의는 근육으로 터질 것만 같다.

거기에 단정하게 정리한 구티 스타일의 수염과 올백 머리, 굳게 닫힌 입과 직업상 인상 쓸 일이 많은 탓인지 잡힌 미간의 세로 주름은 위압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반갑군. 내가 관리국장 권혁준일세.”

“···김유성입니다.”

내가 살짝 쫄아서 뻐금대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김설아가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쫄지 마. 집에 들어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 티셔츠 입고 등짝에 딸 사랑 크게 박음질해 넣은 아저씨야.”

“어이···.”

그 매치가 안 되는 모습을 상상하자 조금 긴장이 풀린다.

그런데 한편으로 머릿속으로는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국장 아저씨. 유리가 괴리감에 어색해하거든요?”

“큼···. 그때 아카데미에 던져넣는 게 아니었는데.”

“덕분에 잘 쉬다 왔죠. 그래서 나랑 이 친구는 왜 보자고?”

김설아의 질문에 권혁준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 하나를 그녀에게 밀었다.

“네가 말한 조직 아지트. 바로 급습해서 증거 확보했다. 복사본이야.”

“호오? 웬일로 빠릿빠릿하게 구셨대? 그래서 뭐 나왔어요?”

“가면하고 조직원 명단, 조직과 관련된 타 조직하고 인명부까지 대부분 확보했다.”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 아냐?”

“캔디야. 이 사건 적당한 선에서 묻어야 할 것 같다.”

“뭐? 미쳤어요?”

뜻밖의 말에 나도 김설아도 표정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녀가 뭐라 항의하려는데, 권혁준이 그 솓뚜껑만한 손바락으로 책상을 때렸다.

“그 조직을 해체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 뭔데?”

“규모가 너무 크다. 언론 안 타게 사건 축소하는 게 좋아. 아니, 놈들의 손이 언론에 안 닿았을 리 없으니, 자폭하는 경우 대비해서 재계를 통해 압박해 찍어눌러야 한다.”

“아니. 뭐가 얼마나 되길래 그러는데! 좀 시원하게 말 좀 하죠?”

“먼저, 정치권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절반은 크고 작게 이 조직과 얽혀있고 의원 중 몇은 조직원이기까지 하다. 모조리 소탕하고 이 정치인들은 은퇴하고 조용히 살도록 협의할 거다.”

캔디의 입에서 물고 있던 사탕이 툭 떨어졌다. 바로 손으로 잡아챘지만, 그만큼 놀랬나 보다. 나도 이런 이른 시점에 그 정도라는 것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다 밝혀지면 여파가 크긴 하겠네. 국장 아저씨. 그래도 그럴수록 더 확실하게 도려내야 하는 것 아냐?”

“정치권만 그렇다면야 헌터랑 재계 쪽 손잡고 흔들면 되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그런데, 재계도 로텍을 제외하면 헌터 산업 전반에 걸쳐서 크고 작게 영향력이 안 닿은 데가 없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명단을 보면 주로 힘을 쏟은 건 정치와 재계쪽이지만, 10대 길드는 물론이고 각 지역 대표 길드는 단 하나도 가리지 않고 스파이가 있어.”

“어···. 그건 확실히 좀 문제겠는데.”

“그래. 협회던 10대 길드던 그런 범죄조직에 가담한 각성자를 받았다는 걸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을 거다. 각성자 인사, 면접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거니까.”

그녀가 당황한 것처럼 이건 중대 사항이었다. 협회가 기껏 잘 다져 놓은 우리나라 길드 이미지에 몹시 안 좋고 국제적인 위상도 떨어질 것이다.

축소하려는 게 이해가 간다.

아마도 밝히자고 하면 거의 강박증적으로 국민에게 자신들이 무해하다 강조하는 헌터 협회에서도 바로 발작할 것이다.

잠시 던져준 자료를 읽으며 침묵하던 김설아가 고개를 퍼뜩 들며 물었다.

“잠깐. 그럼 관리국은?”

“그야 네 생각대로지. 이 정도 규모인데 우리만 완전히 깨끗하길 비는 건 양심 없는 것 아니냐?”

“이런 씹···.”

“그래도 관리국은 가장 중요한 타격대는 깨끗하다. 정보국이 좀 심각했고 나머지도 그럭저럭 괜찮아.”

“그야 우리는 좀만 문제 있어도 거의 결벽증처럼 찍어내 버리잖아. 정보국이야 전산이나 기계 잘 다루는 인간은 귀하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하···.”

“그럼 저를 부른 이유는···.”

대화가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서 내가 운을 떼자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권혁준이 먼저 입을 뗐다.

“그쪽을 후원하는 게 어떤 성좌지?”

“아! 확실히 이런 여파를 전부 고려하고 건넨 정보라면 보통 성좌는 아니겠네요. 이거, 국가 하나의 판 전체를 흔드는 수잖아? 아. 그러네. 괜히 성좌들 이권 싸움 잘못 건드리면 골 아파지지.”

역시 국장이라는 김설아의 그 칭찬에도 권혁준은 내 답을 종용하며 담담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저 별들 사이에서 모든 사실이 다 밝혀져도 여파를 감당할 수 있는 분인가?”

이로 인해 성좌간에 큰 손해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한민국에 엄청난 난장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추궁이다.

요컨대, 어지간한 성좌들을 다 입 다물게 할 수 있는 이름값이 있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추궁에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잠시, 제 성좌 님과 논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10분 정도만 주시죠.”

“기다리지.”

나는 서둘러 포르세티에게 지금 상황을 정리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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