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5화 (35/128)

4장 - 폭풍속으로

누군지 머릿속에 끄집어내기도 전에 창이 찔러 들어온다.

저게 노리는 게 나였다면 여기서 죽었다. 지금 수준으로 이 거리에서 잡아내기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그래도 감각에 잡히지조차 않는 그 속도는 상대가 누군지 근거를 더해줬다.

‘타란툴라.’

거미가 국가급 조직이 되고 대한민국에서 뿌리 뽑을 수 없게 되면서, 그 보스도 국제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내겐 다행이게도 인연이 전혀 닿지 않았기에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그리고 대전쟁 중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고 그렇게 서서히 잊힌 인물이었다.

그 탓에 인류 결사대의 정보부조차 이 조직의 보스가 무슨 능력이 있는지, 어떤 빌드를 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알려진 것은 여성. 각성 초기에는 꽤 주목받는 유망주였으며, 이후 가족의 질병 문제로 큰돈을 찾아 용병으로 국외를 떠돌았다. 주 무기로는 창을 들었다는 것까지.

강화 유리를 깨고 들어온 창은 김설아의 코앞에서 멈췄다.

“너. 최소 A급이네.”

타란툴라가 내지른 검은창의 목 부분을 붙잡은 그녀는 깨진 전면 유리 너머의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서로의 힘은 길항한다. 창은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반대로 밀려나지도 않았다.

대치한 이 둘은 전위 타입이고 최우선으로 근력을 찍었을 걸 고려하면 김설아의 추측은 실로 타당했다.

그러나 그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윽!”

창을 찔러 들어왔던 빌런의 두 손이 일순 뒤틀리자 마력을 먹은 창대가 순간적인 초진동을 일으킨다.

타인의 손을 거부하는 그 강렬한 반발에 김설아는 불리한 자세로 힘겹게 붙잡고 있던 창을 놓쳤다.

김설아도 놓치는 순간 몸을 낮추며 사선에서는 벗어났지만, 이건 명백한 위기다. 섬뜩한 마력이 뇌전처럼 창 끝에 모여든다.

막대에 꽂힌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워나가던 검은 마력구는 뭔가 대응하기도 전에 전방으로 폭발했다.

그 모든 것이 아까 우리가 차에서 빠져 나가려던 몇 초 되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뤄졌다.

아직 차 밖으로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나도, 공격의 대상일 캔디도 있는 대로 마력을 뿜으며 차 밖으로 몸을 굴리듯 날렸다.

77억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격의 종결은 아니다.

기운을 전방으로 폭사시키며 우측으로 그대로 그어버리는 마무리 동작에 차량은 그대로 절반이 찢겨 나갔다.

구르다가 땅을 박차며 멀리 빠져나가려는 김설아를 그 창에 서린 기운으로 쭉 추격해간다. 그리고 세상을 검은빛으로 갈라버리는 것 같은 위엄을 선보였다.

하지만 A급이라는 판정을 딱지치기로 딴 건 아닌지, 김설아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일자로 만들며 하체를 노리던 참격을 피했고 이어진 추격은 톤파를 꺼내 마력을 불어넣어 찍어 누르며 막아낸다.

그렇게 한 차례 격돌 후의 소강상태.

나는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전멸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김설아부터 노린 거다. 옆은 산이다. 사람도 없는 장소. 모두 죽이기만 하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하니까.

첫 공격을 마친 타란툴라의 창은, 검은 기운에 휘감긴 채 기존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길이가 되었다.

그 모습에 양손에 톤파를 든 우리 히어로의 표정이 몹시 안 좋다.

“히어로라면 감수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이럴 때마다 참 싫다니까.”

상대가 대놓고 무기의 이점을 살려 거리 유지를 하겠다는 의도를 보이자 짜증이 난 거다.

김설아는 격투가 빌드를 탄 각성자. 제대로 유효타를 넣으려면 상대 안쪽으로 파고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맞아? 함 묻자. 네가 이번 A급 브레이크 일으킨 빌런 중 하나?”

“······.”

전신 타이츠에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린 타란툴라는 창날을 땅끝을 스치듯 내리며 공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조금의 단서도 주지 않겠다는 듯, 아무런 답이 없었다.

“뭐, 나도 기대 안 했어. 놀아보자고.”

몇 차례 백 텀블링을 해 타란툴라와 살짝 거리를 벌린 그녀는 제자리에서 양다리에 힘을 줘가며 몇 번 허공에 통통 튀었다.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지 거미의 보스도 섣불리 추격해가진 않는다. 나 역시 보스와 가능한 거리를 벌렸다.

‘아까 같은 초근접 상황만 아니라면 아무리 A급이라도 대응할 수는 있다.’

전조를 읽고 미리 피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혼자라면 무리겠지만, 대신 대부분의 공격을 받아줄 히어로가 있으니 꾸준한 거리 유지만 가능하다면 이 전투, 도울 수 있겠다.

저 멀리 관리국 직원과 빌런들이 탄 차량 내부 인물 간의 전투는 명백히 이쪽이 우위다.

그쪽 빌런들이 미처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선공에 들어간 것이 주효했다.

내가 화살을 시위에 거는 순간, 아군 김설아의 모습도 내 감각을 벗어났다.

일순 시야에서 사라졌던 키 작은 트윈테일 히어로의 몸이 나타난 건 정확히 길어진 창끝의 코앞, 휘둘러진 창은 림보를 하듯 피했고 다리는 땅을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 아래서 무지막지한 진동이 터졌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건 물론이고 다리가 파고 들어간 곳 앞쪽으로 막대한 콘크리트 파편과 흙더미가 비산했다.

이런 대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타란툴라의 하체가 무너졌다.

그쪽에서 바로 반격하지 못하는 틈을 타, 김설아는 공중으로 떠오른 거대한 콘크리트 파편 따위를 걷어차 상대에게 날려 보냈다.

타란툴라는 마력이 잔뜩 실린 파편이 머리를 향하고 내 화살까지 뒤를 따르자 어쩔 수 없이 뒤로 피하면서 그 투척물을 쳐냈다.

동작의 틈을 타 히어로가 창의 사거리 안으로 따라붙는다. 그 후, 초고속으로 돌진해간 일격의 결과는 파편이 흩어지고 나서야 보였다.

“찌르게! 둘 것! 같냐!”

그 외침의 결과는 대치 상태.

보면, 위에서 찍어 누르려는 공격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였다.

추측하건대, 뛰어올라 거리를 확보하며 머리를 노리려던 찌르기가 통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괴력을 담아 올려치는 김설아의 일격. 창은 위로 크게 떠올랐다. 이번엔 역으로 상대 머리를 노리고 들어가는 톤파의 머리.

돌진하며 급가속 하는 상태가 아니라서인지, 내 눈에도 이제 그 초고속 전투의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보다 정확한 식별을 위해 눈에 마력을 집중해서 시력을 강화했다.

‘본다고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활 시위를 겨눈 채 전투에 집중한다. 기회를 노리려면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아군을 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타란툴라는 급히 창대를 돌리며 그 일격을 쳐냈지만, 창은 본디 거리를 유지하며 찌르기 위한 무기다.

틈을 주지 않고 두 팔의 톤파와 마력을 실은 발차기까지, 온몸을 활용한 공세에 창을 돌리면서도 타란툴라가 수십 걸음을 쭉 밀려나며 수세에 몰린다.

‘아깐 비슷한 것 같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힘은 아군이 우위다.’

그건 명백하다. 차 안쪽의 충분히 힘을 실을 수 없는 불리한 자세에서도, 찔러오던 창을 붙잡아서 멈춰버린 힘이었으니.

‘그렇다면, 속도는? 설마 동등하나? 아직 타란툴라도 그 악명만큼 강하진 않은가?’

저런 근접 상황에서 창수가 상황을 바꾸려면, 속도가 더 빠르던가 아니면 힘에서 우위를 잡아 교착상태를 만들고 창대로 튕겨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는 방법 뿐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수세를 푸는 방법은 그것뿐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속절 없이 밀린다면 살을 내주고 빠져나오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인데, 상대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은 채 계속 단 하나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며 물러날 뿐이다.

“하! 멍청하긴!”

나만 그리 느낀 건 아닌지 비웃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 캔디 역시 그걸 비웃는 듯한 외침을 냈다.

오른팔 찌르기에 이은 팔꿈치 공격. 올려치는 다리. 마력을 담아 밀어치는 철산고. 밀려 미끄러지는 상대를 따라 두 손으로 찔러간다.

“네깟 게! 날! 깔보냐?!”

연속 공격을 가하며 달려들 때마다 한마디씩 하며 상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제 벽까지는 고작 세 걸음 남짓.

공격을 받아낼 충분한 공간이 없으면 바로 치명상이다.

끝내 타란툴라의 몸이 벽에 닿는다. 김설아는 그런 상대를 제압하려는지 무장을 해제시키고자 올려치는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거기서 타란툴라는 받아치는 동작이 아닌, 무기를 놓았다. 마치 마지막 공격 방식을 완벽히 예상한듯한 행동.

“···뭐?”

창은 하늘로 빙글빙글 돌며 떠오르고 타란툴라는 벽을 차오른다.

캔디는 급히 따라붙으며 공격을 가하지만, 언제 품에서 튀어나왔는지 단검을 꺼내 든 타란툴라는 공중에서 물구나무선 자세로 그 어퍼컷과 올려 차기를 깔끔하게 막아냈다.

“읏!”

그리고 위에서 떨어지는 창을 잡아 그대로 찔러 들어갔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드는, 창. 그 막대한 힘이 실린 찌르기를 김설아가 어렵사리 쳐냈지만, 자세가 무너진 건 이번엔 그녀 쪽이다.

아크로바틱하게 허공에서 발레를 하듯 내려앉아 자세를 잡은 타란툴라의 창이 히어로가 다시 자세를 잡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쏘아지려고 한다.

카앙!

그러나 놔뒀다면 절호의 기회였을 그 역공의 기회는 그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들어간 내 화살을 튕겨내는 것으로 사라져버렸다.

“후우···.”

누가 봐도 명백한 위기였으니, 캔디가 내뱉는 안도의 한숨도 당연하다.

‘하지만 왜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나만 느낀 게 아닌 것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자세를 다시 잡으며 두 팔을 들어 올린 우리 영웅도 고개를 갸웃했다.

“너 이 자식. 뭐야? 니 왜 안 끝냈는데? 진짜 봐주냐? 생각해보니 기분 나쁘네 이거.”

방금은 내 공격에 타란툴라가 손해 입을 걸 각오했다면, 그녀가 치명상을 입었을 가능성은 최소 9할 이상이다. 그만큼 캔디의 자세가 안 좋았다.

물론, 내 화살이 경시할만한 공격은 아니다.

B급 시절, 필살기나 다름없었던 기술이다.

하지만 그 위력이 B급에 해당한다고 해도 빗겨 맞으면서 찔러 들어갈 수 있는 루트 정돈 충분했다.

“설마···.”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한 뭔가를 느꼈는지, 캔디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격 방식이 바뀌자마자, 타란툴라가 아까의 선전은 착각이었다는 듯 급격하게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불과 30초도 지나지 않아 무기가 거미의 손에서 벗어나고 승기를 잡았음에도 미간을 잔뜩 구긴 캔디의 주먹이 그 배를 파고 들어갔다.

“역시나네.”

그리고 이내 검은 연기처럼 타란툴라의 몸은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분신···.”

내 입에서도 그제야 그 정체가 내뱉어졌다.

“A급 브레이크가 셋이었지. 그게 전부 분신의 짓이라 치면 저런 분신이 최소 하나가 더. 거기에 본체까지···.”

내게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닌지 김설아는 구기던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러더니 이내 이를 갈았다.

“이거 나 혼자서는 안 되겠는데. 저거 본체가 왔으면 여기서 다 죽었어.”

“본인 능력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알아. 저딴 분신 기술은 들어본 적도 없긴 하지만, 설마 있더라도 빌드 페널티가 커야 하는데, 딱 봐도 그딴 건 없었잖아. 당연히 성좌의 성물, 유물 따위겠지.”

맞다. 그리고 그게 별의 투자자의 잠재력이 어떤 직업보다 강력한 이유기도 했다.

‘사업을 잘해나가다 보면 분명 명성 점수를 대가로 성물이나 유물을 빌릴 수도 있겠지.’

잘하면 장기 대여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하고 연관이 있는 성좌 자신의 계약자에게 유물을 내려주도록 설득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좌랑 달리 신좌는 자기 성물을 쓰는데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다.’

막판이 되어가자 자기 계약자에게 마구잡이로 유물을 내려줬던 일반 성좌들과 다르게 신좌의 성물들은 그리 많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면···.’

그런 상념은 김설아가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끝났다.

“그래도 그 화살은 아주 좋았어. 네 덕분에 살았네.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아니면 나도 죽을 텐데, 당연한 일이다.

“그런가? 어쨌든, 이 사건. 특급 각성자가 있어야겠네. 저기 자료가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리 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본체가 왔겠지.

혹여 크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

“이제 저놈들이 빼돌린 자료 들고 가서 분석해봐야지. 자, 그래서 관리국 일을 해본 소감은 어때? 이쪽 일도 하다 보면 꽤 재밌어.”

같이 싸우며 내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스카우트 제의를 해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단에 맞추기보단 이번 전투를 겪으며 생각한 것을 내뱉었다.

“제가 아는 게 조금 있습니다.”

“···그래? 역시. 너도 뭔가 있긴 있나 보네. 이렇게 막 드러난 조직에 대해 아는 것도 있고?”

분신의 정보가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미의 보스가 이번에 나를 보고 갔다. 그간 얽힌 걸 고려하면 따로 찾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대놓고 관리국과 거래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자. 관리국의 힘으로 거미를 어떻게든 한국에서 치워버리는 게 낫겠다.’

그리 결심은 했지만, 지금처럼 출처를 추궁해오면 사실 변명이 좀 궁했다.

“성좌들이 어떤 존재인지 아시잖습니까?”

그나마 만능인 성좌 핑계가 있어서 다행이다.

“성좌의 정보다? 믿는 건 둘째 치고 공짜는 아니라는 소리네. 그럼 네 성좌가 준다는 정보의 종류는?”

“놈들 아지트 위치를 압니다. 지금처럼 외부 조직이 아니라, 내부 조직의. 다만, 저 자료 안의 정보가 그것일지도 모르죠.”

“이거 때문에 아지트를 옮길지도 모른다는 소리네. 급히 습격해야 하니까 자료의 유통기한이 급한 상황이다?”

“그런 셈이죠. 그만큼 이게 관리국에는 귀한 정보가 아닐까요?”

“그럼 그 대가는?”

“곧 저희 성좌님이 길드 하나를 설립할 겁니다. 그 뒤를 봐주시죠.”

“너, 지금 히어로에게 청탁하는 거야?”

난 피식 웃었다. 그녀도 내 말이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돈 알 것이다.

“외압. 모두 막아 주시죠. 방해 없이 공정하게 성장할 수만 있다면, 나머진 이쪽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희 성좌님도 그 정도 준비는 되어있으니까요.”

내 제안에 대한 김설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 정도야 내가 밀어붙일 수 있어. 그리고 이런 특급에 준하는 놈을 가진 빌런 조직이라면, 쉴 틈 없이 밀어붙여야겠지. 좋아. 딜. 위치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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