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4화 (34/128)

4장 - 폭풍속으로

“너 뭐 하니?”

“아···.”

습관적으로 안전띠를 찾다가 멍청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조수석에 안전벨트 자체가 안 달려 있었다.

“자리 위 뚜껑부터. 창문 내리고. 거기 오른쪽 아래 보면 고글이랑 특수제작된 신발도 있을 텐데, 착용해. 관리국 차량 조수석은 전투하는 자리야.”

“본격적이군요.”

“차에 흠집이라도 함 내 볼래? 쉽지 않을걸? 대각성자전을 상정하고 주문 제작된 수제품이야. C급 이하의 평범한 기술은 몸으로 튕겨버리지. 거기에 이건 팀장급 이상만 타는 놈이라 그것보다 더하고.”

그녀는 차량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신이 난 표정이다.

“따로 조심할 것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유리는 얇게 B급 와이번 비늘로 코팅했는데, 그거 말곤 평범한 강화유리니까 방호력은 믿지 마. 그래도 그건 없어도 고글만 쓰면 지장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 조심해야 할 건 타이어야.”

“타이어도 창처럼 평범합니까?”

“아니. 당연히 게이트 물질이긴 한데, 고무랑 비슷한 재질인 건 죄다 등급이 낮거든. 높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찢어져서 터지는 건 쉬우니까. 노리면 최우선으로 막아야지.”

“그런데 이런 건 얼마나 합니까?”

전생엔 딱히 타고 다닐 일이 없었고 나중엔 인류가 망해버린 탓에 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몬스터 차량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가격은 궁금하긴 했다.

“이건 77억쯤? 어지간한 명품 차보다도 이게 더 비쌀걸. 아, 그리고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적이 큰 기술 날리는 것 같으면 경고해줘야 해.”

“명심하죠.”

“앞으로 5분이면 도착할 거야. 긴장하고 있어.”

“5분?”

차량 네비게이터에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어? 템포 잘 따라오라니까?”

쿠와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어를 올린 몬스터 차량이 굉음을 내며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심찮게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도시 안전 구역을 좀만 벗어나도 간혹 야생 괴물이 튀어나온다. 그런 세상에선 그나마 안전한 게 지하철. 그것도 아니라면 단단한 차체를 쓰며, 기본적인 체급이 있는 대중교통 쪽이다.

‘기사는 대부분 각성자를 쓰니까.’

도심 안전 구역 밖을 다니는 대중교통은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한다. 그리고 그런 운전기사의 채용 1순위는 은퇴한 각성자라 자잘한 사고 정도는 알아서 해결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차량을 운전하는 게 관리국 타격대라는 걸 잘 아는지 그 얼마 없는 버스나 차들도 홍해가 갈라지듯 알아서 피하는 중이다.

‘그건 그런데, 눈 깜빡할 사이에 저 멀리 있던 차량이 눈앞까지 다가오는 건···.’

심장에 몹시 안 좋은 광경인 것은 틀림없었다.

무슨 포뮬러 경주라도 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도로를 질주한 지 5분쯤 지나자 김설아가 기어를 조정하던 손으로 내 팔꿈치를 툭 쳤다.

“준비해. 곧 나올 거야.”

“저겁니까?”

원거리 특유의 좋은 눈과 감각에 저 멀리 지금 이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괴물 차에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달리는 차량과, 그 뒤를 바짝 쫓는 관리국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보이기 무섭게 김설아는 무전기를 켰다.

“상황은?”

[3팀장님이십니까? 보고드린 대로 앞에는 강서파 보스 최명식이고 지금 중요 자료로 추정되는 물건 들고 도주 중입니다. 경로를 보니 강원도 필드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영환. 지금 거기 누구누구 있어?”

[연수랑, 저. 그리고 이 과장님 계시고 운전대는 제가 잡고 있습니다.]

“뭐? 아니. 너흰 뭘 어떻게 작전을 한 거야? 왜 추격조에 원거리가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이 과장, 이 자식은 운전 연습 좀 하라니까. 또 대원한테 운전을 대신시키고 앉았냐?”

[하하···.]

“뭘 쪼개!”

앞서 설명했던 것도 그렇고 일반인들은 안전지대 밖에서 이리 레이싱 선수 수준으로 전력 운전할 일이 흔치 않다.

그러다 보니 레이싱이 능력 있는 각성자나 돈 많은 재벌의 고급 취미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이런 각성자 범죄자들도 그러다 보니 운전 실력이 보통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게···. 진압 도중에 후위에 기습당했습니다. 지금 팀에 중상자가 많습니다. 거기에 이 자식들 움직임에 속았어요. 저흰 이쪽이 부하들로 알아서!]

“됐다. 저 앞 나들목에서 합류하니까 끊어. 놓치지 않게 추격이나 똑바로 해.”

[죄송합니···!]

무전을 꺼버린 그녀는 앞주머니에 넣었던 막대사탕을 꺼내 물었다.

‘까득’하는 소리와 함께 끝 부분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사거리 닿겠어? 지금까지야 대부분 직진이라 괜찮았겠지만, 조금 있으면 연속 급커브 길이야. 저기 두 차량 간엔 실력 차가 나고 걔들이 놓치지 않으려면 방해가 필요해. ”

“닿을 것 같습니다. 해보죠.”

열린 뚜껑 위, 차체 위에 뛰어올라 자세를 잡는다. 특수 제작되었다는 신발은 뭐로 만들었는지 차량에 부드럽게 달라붙어 몸을 안정감 있게 고정해줬다.

그러면서도 앞쪽에 힘을 주면 바로 뒷발이 떨어진다.

내겐 저격 기술이 별로 없어서 가장 긴 기술도 유효 사거리가 아슬아슬 하지만, 단순히 위협 수준으로 견제하는 것이라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스팅레이.”

이번에도 익히지 않았던, 기술명을 일부러 외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의 성형을 거친 화살은 쐐기가 여럿 겹친 모양으로 변이한다.

뒷 쐐기를 폭발시키며 추진력을 얻어 날아가는 이 기묘한 화살은 빌런 조직 차량의 옆구리를 때렸다.

“좋아.”

마지막 하나를 제외한 모두를 추진체로 삼아서인지 위력은 형편없었지만, 이쪽의 존재를 눈치채게 하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직선으로 그저 쭉 달려가던 차량이 좌우로 움직이며 화살을 의식한 주행으로 바뀌었다. 뒤쪽을 달리던 관리국 차량이 따라붙는 걸 보자마자 그녀는 다시 무전기를 켰다.

“뭐해! 사리지 말고 몸으로 들이받아!”

[지금 그쪽에 저격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냥 원거리야! 겉만 요란했지 위력 형편없어! 놈들도 잠깐 타이어 때문에 뜨끔 한 거지, 곧 알아차릴 거야. 우리 따라잡게 커브 들어가기 전까지 최대한 속도 늦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도 조수석과 뒷문이 열리며 각성자 둘이 차량 위로 튀어 나온다. 뒤쪽에 타고 있던 건 서포터로 보이고 조수석은 전위다.

바로 옆까지 달라붙은 차량 위에선 상대를 떨어뜨리려는 혈전이 시작됐다.

이 과장이라는 인물이 휘두른 대검을 간신히 막아낸 암살자가 휘청이면서도 단검을 집어 던지지만, 보호막에 그대로 막힌다.

하지만 그 잠깐의 우세를 성과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아래쪽 창문이 열리며 복면을 쓴 여자가 휘두른 채찍이 이 과장의 팔목을 잡아 채고 그 상태로 상대 차량이 일부러 차체를 틀자 자세가 크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뒤늦게 다시 측면으로 따라붙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차량 아래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운전 실력이 밀리네. 저쪽이랑 달리 위랑 아래가 따로 놀잖아. 연습 좀 하라니까.”

그 뒤로도 두 차량 위의 격전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런 격전 덕분인지 나들목을 통과한 우리 차량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저들을 쫓게 되었다.

“이제 급커브 길이다. 일단 들어와. 그 신발도 무적은 아냐. 자칫 잘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수가 있으니 창문 열고 차량 안에 몸 고정하고 쏴.”

그리고 첫 커브를 돌자마자 확연히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속도를 크게 줄이며 커브를 돈 앞쪽 관리국 차량과 달리 빌런 쪽은 잠깐의 감속 후 부드럽게 코너를 돌아 빠른 가속을 해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다시 지붕 전투의 우세를 잡으려던 관리국 과장과 서포터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창문을 연 운전석의 빌런 보스가 주먹 감자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옆에서 다시 사탕 깨지는 소리와 아그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쭈? 해보자 이거지!”

잠시 후, 같은 지점에 돌입한 김설아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손과 발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차량은 앞선 빌런 차량이 돌았던 궤적을 똑같이 그리며 넘어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앞서 가던 관리국 차량을 지나치게 됐다.

“늬들 똑바로 안 해? 거기 둘! 당장 뛰어 넘어와!”

김설아는 창문을 열고 목을 그으면서 고함을 질렀고 차량 위로 다시 나온 두 사람은 이쪽으로 점프해 넘어왔다.

“견제 안 되면 저거 못 잡아. 승부처는 저기 네 번째 커브 보이지? 거기서 속력 안 줄이면 내 예상으론 차이는 대략 10m. 그 전에 미리 그걸 좁혀야 해.”

그녀가 가리킨 커브가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거의 360도에 가깝게 꺾이는 커브 길이다.

“저걸 속력을 안 줄이고?”

나는 바로 반문했다. 운전을 많이 해보지 않은 내 눈에도 지금 이 속도로 넘기엔 범상치 않은 커브 길이다.

“괜찮습니다.”

“팀장님 실력이면 충분할 겁니다.”

뒤에 탑승한 두 사람의 신뢰 가득한 말에 나도 ‘저게 가능해?’에서 좀 전향적인 상태가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조금 더 가면 필드가 나와. 괴물 나오기 시작하면 알지?”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 변수가 커져서 놓칠 확률이 커진다.

그리고 빌런들도 흩어져 도망칠 건 뻔하다.

“이제 사거리는 나오니까 견제는 될 겁니다.”

나는 다시 뚜껑을 열고 차량 위로 뛰어올랐다.

“괜찮겠어?”

제대로 자세를 잡고 쏘는 것과 몸만 빼 사격을 하는 건 위력도 사거리도 차이가 확연하다.

“실력. 보여 드리죠.”

미친 속도로 달리던 거대 괴수 위에서도 중심을 잡아내며 싸웠었다.

회귀 전의 내가 가능했다면, 지금 나도 불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 이게 오늘 본 모습 중에선 제일 나은데! 자, 그럼. 내가 꺅꺅대며 감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자세를 잡은 채 흘러가는 상황을 시뮬레이트 한다. 현재 두 차량 간의 거리는 정확히 커브 하나. 이쪽 커브를 지날 때, 저쪽도 커브를 지날 것이다.

노리는 것은 좌측 뒷바퀴. 속도를 줄이지 않는 급커브에 몸이 쏠리지만, 그에 맞춰 자세를 낮추고 좌측 차체를 붙잡으며 몸을 지탱한다. 쏠림이 멎는 순간 손을 떼며 다시 일어서 곧장 자세를 잡는다.

“선레이지.”

미리 예견한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 내 손끝에서 화살이 떠난다.

화살이 시위를 떠남과 동시에 내 화살의 궤적을 읽어냈는지 뒤 창문을 깨며 급히 튀어나온 아까의 조직원이 채찍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 조직원은 포탄이라도 맞은 듯 차체에 부딪혔다 튕겨 도로 바닥을 굴렀다.

상대 차량도 스쳐 폭발한 화살의 위력을 몸으로 받아내서인지 크게 흔들리며 밀려난 후, 속도가 많이 줄어드는 모습이 확연했다.

“좋아. 충분해! 영환! 따라오고 있지? 하나 차에서 튕겨 나갔다. 쉽게 정신 못 차릴 거니까 따라오다가 체포해!”

[넵!]

그걸로 끝이 아니다. 나는 반대편 커브 너머로 놈들이 사라지기 전, 화살을 연달아 속사했고 조금 전 화살의 환영이 남았는지 그걸 쳐내고 움직인다고 상대는 바로 가속해 커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상대 차량과 같은 길을 달리는 수준까지 따라왔다. 이제는 놈들도 투척 무기의 사정거리 안인지, 내게도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위에! 됐어! 들어와!”

“괜찮···.”

“자신감 있는 건 보기 좋은데, 다음 커브는 내가 걱정되니 안 되겠으니까 닥치고 와주세요.”

그러고 보니 아까 그녀가 추격을 장담하던 360도 커브길이 이제 코앞이다.

나도 이 히어로가 어떤 식으로 저길 통과할지는 예측이 안 됐기에 안으로 들어와 창을 열고 견제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문제의 구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빌련 놈들의 차량은 천천히 감속하기 시작하며, 우리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전혀 속력을 줄이지 않는 우리 쪽의 모습에 그쪽 차량 내부에서도 대화가 급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가시기 무섭게 김설아는 좌측으로 돌아야 하는 커브에서 절벽으로 뛰어드는 착각이 들 정도까지 우측으로 차를 크게 돌린 뒤, 원래 방향으로 틀어주며 드리프트를 걸었다.

차량은 관성을 받아 옆으로 쭉 미끄러지며 달려나갔지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일 없이 이 끔찍한 커브 길을 돌았다.

그렇게 커브를 돈 차량은 한발 늦게 빠져나가던 빌런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다 튀어 나가!”

운전석의 고함 소리에 뒷문이 열린다.

미리 이것만 준비하고 있었는지 두 사람이 빠르게 튀어 나갔고 앞 좌석의 우리 두 사람도 문을 연다.

그러나 그때, 우리 운전석 앞 차체 위에 가면을 쓰고 창을 든 여자 하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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