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2화 (32/128)

4장 - 폭풍속으로

헌터 순위와는 별개로 영웅 순위라는 게 있다.

영웅 랭킹에 들어가려면 그쪽 협회에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데, 조건이 몹시 까다로워서 따로 길드에 들어가는 순간 이 협회 가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

장점이라면 국가 공권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빌런을 상대할 때 현장의 각국 관리국 요원들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사치만 안 부리면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가족들은 국가 요인급 경호를 받는다.

거기에 더해 세계 연합 산하 기관 소속으로서 영웅법을 적용 받으며, 불체포 및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다.

‘말은 그럴싸한데, 명예직이지.’

반대로 단점은 각 지역 영웅 협회의 지원 요청 같은 걸 거부할 수 없고 수배된 빌런이 등장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로 나서야만 한다.

보통은 각 지역 국가들의 헌터 관리국의 요직을 맡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 내 사건을 조사하는 이 쌍둥이 남매도 한국 영웅 13위, 14위로 둘 다 A급이다.

사건이 커지면서 처음 담당하던 부서보다도 더 윗선으로 올라갔는데, 그러다 보니 대중에게도 꽤 알려진 유명 영웅들이 조사를 맡는 중이다.

“조사는 이걸로 끝입니까?”

“뭐, 면식범 아니고? 용의자일 가능성도 없잖아. 사건 연계된 거 보면, 빌런 놈이 공격한 동기도 확실해 보이고 굳이 뭘 더 조사해야 하나?”

“어. 그냥 앞으로 협조 잘 부탁합니다. 그 정도겠네.”

이미 자료는 다 넘겨줬던 상태라 관리국의 조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가 될만한 여지가 있다면 빌런의 제압이 가능한 상황에서 하지 않고 사살한 부분인데, 일부러 죽였다는 증거가 있어도 형량이 크지 않은데 나는 처음이기까지 했다.

이런 경우, 고의성이 입증되어도 벌금형 정도다.

일반인은 기본적으로 게이트 입장 허가가 나지 않고 헌터는 게이트 안에서 적용받는 법이 일반인과 다르다.

그래서 ‘거리가 벌어지면서 붙잡을 자신이 없어서 사살했다.’라고 경위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났다.

“뭐야. 안 가? 따로 우리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진술이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자 코를 박고 서류를 작성하던 영웅 13위, 코드네임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 제 쪽은 아니고 저 밖의 친구들입니다.”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들어와~!”

“잠···. 야, 캔디! 민간인인 것 같은데, 여기 막 들이지 마라!”

벙거지모자를 쓰고 사탕을 문 남매 중 여동생 쪽, 코드네임 ‘캔디’가 통통 튀며 문으로 다가가서 취조실 문을 확 열어버린다.

문 앞에 서 있던 강휘성은 히어로의 잡아 끄는 손길에 몹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강휘성. 너였냐?”

“아. 뭐, 그렇습니다.”

뒤에 서 있던 최서린과 강소연도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 건은 위험하다. 빠지는 게 좋아.”

“어, 음···.”

“그래 봐야 C급이라며? 당신들이 나서면 금방 끝나는 것 아냐?”

강휘성이 말을 고르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최서린이 끼어들었다.

“이쪽은?”

“요새 유명했었는데, 얼굴 정도는 아시지 않습니까?”

박사의 노려보는 시선이 멈추질 않자, 강휘성이 쭈뼛대며 용건을 말했다.

“그게, 저희 누님들이 히어로 일에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 일은 애들 장···.”

“저엉~말?! 야호!”

“민간인은···.”

“히어로 지망생은 언제나 환영이야!”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박사는 양손에 두 유망주의 손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제 동생의 천진난만함에 골이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하아, 일단은 나가지.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 눈치가 보이니까.”

그 말대로 워낙 눈에 띄는 인원들이라 경찰들이건, 관리국 직원들이건 이목이 이쪽에 확 쏠리긴 했다.

“넌 스물여섯씩이나 먹고 아직도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네가 애냐?!”

“아니-이, 왜 화를 내고 그래! 다 생각이 있어서 한 거지! 딱 보니까 반가울 수도 있는 거고! 둘 다 예쁘잖아! 이런 얘들 들어오면 관리국 신입 지원도 늘고 얼마나 좋아!”

나오자마자 현실 남매싸움이 시작됐다.

“야, 김유성. 팝콘 없니?”

“있겠습니까?”

“뭐 간식거리라도 없어? 참 눈치 없네. 너 여자친구 없지?”

발끈해서 그게 뭔 상관이냐고 쏘아붙이려다가 말려드는 기분에 그냥 눈을 감았다.

“휘성. 남매. 재미없어.”

“휘성이는 간이 콩알만 해서 우리한테 못 덤비거든. 저런 남매 관계도 꽤 신선하고 재밌네.”

“아니. 누님들, 제 이미지도 좀 고려해주시죠?”

강소연이 툭 던진 말에 대한 해석은 옆의 최서린이 해주었고 강휘성은 살짝 발끈했다.

그 사이 쌍둥이의 남매싸움은 끝났는지 두 영웅은 우리가 앉은 벤치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그간 협조를 해와서인지 그가 말 거는 건 강휘성이다.

“강휘성. 내가 아까 어디까지 했지.”

“민간인 어쩌고 셨나? 아, 빠지라는 이유 말하고 계셨는데.”

“끼지 않는 게 좋은 것도 당연히 맞고 이번 범죄조직 놈들, 만만한 놈들이 아니야. 대체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A급 게이트를 3개나 브레이크 시켰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게이트가 한둘이 아니다.”

“A급이라면 어딥니까? 게이트 안에 있느라 좀 깜깜해서.”

“삼척, 울산, 서울에서 각각 하나씩. 그래서 A급 암살자가 셋 정도는 있는 게 아닌가 추정 중이다. 너희도 알겠지만, A급 암살자는 방심하고 있는 S급도 잡아. C급, D급이 낄 전투가 아니지. 심지어 넌 E급이잖나.”

“나야 밖에서 행동만 안 하면 되잖습니까. 어차피 탐정은 끝난 상황 찾아다니며 발품 팔고 머리 쓰는 게 일이고.”

강휘성은 슬쩍 뒤를 쳐다보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 누님들 한 번 정하면 쇠고집들이라. 놔두면 자기 힘으로 조사한다고 돌아다니다 비명횡사할 겁니다. 현우 형님. 사람 살린다 생각하고 저희 좀 껴주십쇼.”

“그러다 죽으면 내 책임이고?”

“이 조직들도 한곳에 전력을 다 집중하진 못하지 않을 텐데, 저희 누님들 그래도 C급은 되는데, 잡졸들 잡거나 잡일이라도 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하···. 넣어줄 순 있다. 그럴 순 있는데, 네가 책임지고 위험한데 못 가게 막아. 중간에 보고 적당히 위험하지 않은 건으로 몇 개 던져줄 테니까.”

“아 그게···.”

강휘성이 저 둘에게 먹힐 리 없다는 걸 아는지 말을 끌었지만, 박사는 타협은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원사격이 있었다.

“오빠, 그냥 끼워주는 게 어때? 영웅이 항상 자기보다 약한 놈이랑만 싸우나? 원래 히어로 꿈나무는 다 그렇게 크는 거지.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사람이 너무 없다고 씨부렁거린 건 언제의 누구더라?”

“그럼 네가 맡든지. 잘됐네! 넌 사고 쳐도 다들 그러려니 할 테니까!”

“네네. 못할 것 없죠? 우리 오라방의 출세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하지 뭐!”

“아. 좀! 야 김설아! 이게 그런 근성론을 말할 일이냐?”

“아니. 왜 본명을 부르고 그래 시방아! 히어로 본명은 일급 기밀인 거 모르냐!”

결국 이성적인 오빠 쪽이 패배했다. 이런 말싸움은 바로 못 이어가면 진 거다.

한숨을 크게 쉰 박사가 패배 선언을 했다.

“···그래. 내가 졌다. 맘대로 해라.”

“자, 됐네요. 그쪽들은 가서 허락한다고 말해줘요.”

“아, 넵.”

박수를 짝치곤 캔디가 폴짝 뛰면서 강휘성과 내 등을 슬쩍 떠민다.

그리고 살짝 떨어져서 따로 대화하는 모습이다.

석연치 않은 느낌에 나는 슬쩍 멀리서 그들 입술의 움직임을 주시했는데, 그 내용을 들으니 만만치 않다는 게 느껴진다.

[바보야? 이번에 우리 밑으로 들어온 그 신입이랑 같이 조 짜주면 되잖아. 활용을 그렇게 못 하겠어?]

[이민호? 걔를 이번 사건에 네 밑에 끌어와 편성하면 반발이 많지 않겠냐?]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리고 박사도 ‘어?’하는 표정이다.

캔디라는 저 히어로. 순진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얼굴인데, 속내는 아주 시커멓다.

[생각을 좀 해봐. 딱 좋은 핑계잖아? 난 바로 우리 팀으로 에이스 신입 데려올 기회라 생각했는데? 이번 빌런 조직 사건은 뭐, 좀 신경 쓰면 되는 거지!]

[아···. 처음부터 그걸 노렸구나?]

[참나, 우리 오라방. 머리가 나쁘면 입이 고생한다니까? 말했잖아. 걔는 내가 찍었다고.]

[다른 팀장들이 알면 내가 수작질 부렸다고 이를 갈며 지랄할 것 같은데.]

[본인이 말해놓고도 웃긴 소리인 건 알지? 국장님한테 결재 올려. 결재받으면 자기들이 뭐라고 할 건데?]

[음···.]

박사는 구미가 당기는 표정이었다.

[이제 구미가 당겨? 하여간 인재 욕심은!]

[그게 네가 할 말이냐? 뭐, 신입 에이스를 데려올 기회면 버리기 아깝긴 하지. 그런데 이거 다 사고가 나면 다 꽝인 건 알지?]

[알지. 그런데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넌 전력으로 지원이나 하세요.]

[그래. 알겠다. 네가 지금처럼 진지하게 굴면 믿어야지.]

[그럼 불만 없는 거다? 그리고 너도 봤을 거 아냐. 저기에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있는 남자.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꽤 재밌어 보여. 물밑에서 거대한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야. 바로 ‘진짜 히어로’가 맡아야만 하는 일이란 거지.]

마지막 대화를 읽어내기가 무섭게 캔디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고 그 웃지만 속은 전혀 웃지 않는 눈동자는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작은 입술을 달싹이면서 캔디, 김설아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쪽. 독순술을 할 줄 아네? 흔히 익히는 게 아닌데 좀 수상하단 말이지. 각성한 지 고작 몇 달. 지나치게 많은 걸 아는 것도 그래. 이 빌런 조직과도 얽히고 있지. 그러면서 요 몇 주간 알리바이도 확실하다?]

“네? 독순술이라뇨. 그냥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하려다가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두 히어로는 모두 독순술로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간부터 내 시선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우연이 지나치면 위화감이 느껴지거든.”

“하하···. 저는 그냥 히어로분들은 평소 무슨 대화를 하시는지 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내용은 모릅니다.”

일단 바로 발뺌부터 했다. 아직 내가 읽었다는 증거는 없다. 정보부 일을 했을 때의 습관 때문에 정보수집을 하려다가 지뢰를 밟은 느낌이다.

“뭐, 좋아. 일.단.은 믿어줄게. 하지만 우리 관리국은 아주 편집증적이거든. 앞으로 3급 감시 대상이 될 거라는 것만 알아둬.”

“행동, 신체 반응으로 보아 약 7% 정도 확률로 뭔가 숨기는 사람의 반응인데, 애매한 수치가 오히려 더 의심이 가는군. 감시할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겠지.”

이 망할 히어로들이. 속으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나는 두 손을 들며 항복의 표시를 했다.

“관리국 분들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전력으로 돕죠.”

“이 사건 중에 슬쩍 어디로 샐 생각 말고 증명하도록 해. 빌런 조직하곤 관계없다는 거.”

“그 말씀은···.”

“당신이 우리 신입 에이스를 정말 친구로 생각한다면, 온 힘을 다해서 돕겠지? 우리도 그 정도면 이번 사건 해결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그쪽을 관찰할 수 있겠지. 그럼 증명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이 정도면 애초에 날 표적으로 잡고 왔던 거다.

‘그냥 헤어졌더라도 따로 나를 찾아왔겠지.’

관리국 눈을 피할 곳은 10대 길드의 영역뿐이라더니, 이미 나에 관한 조사가 전부 끝난 것 같다.

의심을 산 부분은 짐작이 간다. 내가 포르세티의 도움을 받아 페이트의 습격을 피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정확한 방법이야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 내가 그 자리를 모종의 방법을 통해 비웠다는 걸 알게 된 거겠지.

‘공간이동 혹은 은신 가능 직군으로 의심 중인 건가?’

그러면서 전투는 활을 썼다. 그런 식으로 빌드를 꼬는 건 대개 빌런들이니 민감하게 구는 것도 이해는 간다. 세워둔 계획의 변경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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