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폭풍속으로
내가 쏴 날린 화살은 서펜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브레이크 때와는 다르다. 네임드가 내게 집중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라서인지, 화살에 쉽게 반응을 해낸다.
“[별의 강화].”
전투를 시작하며 버프 시동어를 외웠다.
발동하자 시야 한 편에는 작고 투명하게 24시간의 기술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간다는 표시가 떠오른다.
체내의 마력이 급격히 불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지속 시간은 30분이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물에서 사는 뱀, 뱀장어 종류 괴수는 기동을 막으면 급격히 쉬워진다.
가끔 지능이 높아 약은 놈이면 물속에서 바위 따위를 꼬리로 끄집어내 던지기도 하는데, E급이면 그 정도 지능은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것에 꼬리 공격이 추가되고 도주 패턴도 생기며, 해일을 일으키기도 하고 수면 아래로 숨어 우리 공격의 위력을 감퇴시키기도 한다.
‘거기에 등급 올라가면, 비늘을 발사한다거나 고수압의 칼날을 날리고 번개 따위를 뿜는 놈도 나오지.’
‘패턴은 몸을 뻗어서 물기, 독액을 가지고 있다면 독을 뿌리는 게 전부지. 그래. 지금처럼.’
놈이 머리를 힘껏 당겼다가 튕기며 지면을 물어 뜯었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좁은 공간에 몸이 다 드러나 공격이 다 보이는 상황에서 저걸 맞아줄 정도로 정예원이나 내가 실력이 없진 않다.
반대편에서 뛰는 중인 정예원도 네임드전은 긴장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화살을 날리는 중이다.
[좌측 목 옆. 비늘 파괴. 탱커 집중! 전위 딜러진 해당 부위 공격 금지!]
내 지시에 인지했다는 고함이 양쪽 둑에서 터진다.
지금 당장은 우리를 해치우려는 모습이지만, 뱀류 괴수들은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기 위해 발악하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전위는 위협 수준을 미리 확보해 놔야 한다.
‘몇 번 막아 세워야 도망을 포기하지. 그래야 공략이 쉬워지고.’
끝까지 긴장하며 전위가 돌진과 탈출을 막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괴물이 알아서 포기하게 만들어야 공략이 쉽다.
전위장은 투척용 손도끼를 꺼내 들었고 서브는 꽤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쇠갈고리를 꺼내 들며 돌리는 중이다.
놈이 메인 탱커와 뭍의 딜러진을 보는 사이 위로 올라타려는 것 같다.
나도 본격적으로 몸통을 향해 마력 화살을 쏴 날리기 시작했다.
몸의 비늘이 깨지면서 괴물이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
그에 위협을 느꼈는지 첫 탈출 패턴이 나왔다.
몸을 돌돌 말아 둑에 머리를 부딪치는 행동, 그러나 우리 보급조가 설계를 잘했는지 몇 번의 돌진에도 건축물은 견고함을 뽐낼 뿐이다.
오히려 놈이 그것에 집중하는 사이, 비늘이 벗겨진 부위를 잡고 뱀의 동체에 올라탄 전위들이 여기저기 검을 찔러 넣는다.
‘자, 실패했으니 이제 도망이냐? 아니면 발악이냐?’
아직은 견딜만한지 뱀은 몸을 뒤틀며 양쪽 둑을 노려보고 있다.
이쪽 원거리가 뭔 짓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전위를 치운 뒤, 점프해서 도망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양쪽 전위! 탈출 패턴 대비!]
몸을 압축하듯 돌돌 만 뱀이 일순 하늘로 튀어 오른다.
그 택한 방향은 얼음벽 방면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전위들이 모두 가속하며 뛰어올라 군중 제어기를 퍼붓는다.
“캬아아악-!”
제가 뛰어올랐던 늪에 다시 처박힌 뱀이 목을 들어 올리며 괴성을 지르고 입을 쩍 벌리고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쾅! 둑 위의 전위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괴수의 빠른 속도에 미처 기술로 반응을 못 했는지, 전위 중 한 명이 붕 떠올라 뒤편 늪으로 날아갔다.
하필 말뚝이나 판자 따위가 없는 부분이다.
멀리 숨어있던 짐꾼들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조각배를 움직여 그 전위를 태우기 위해 노를 젓는다.
[1조! 어그로! 빨리!]
[쿨!]
2조의 위기에 내가 1조에 빠르게 제어기를 사용해 주길 요구했으나, 조금 전 사용한 기술들이 전부 대기시간이 도는지 1조의 전위장에겐 짧은 불가능의 답만 돌아왔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나머지 2조원들이 막아낼 수 있어야 훌륭한 파티겠지만, 난 그런 조금의 탈출 가능성도 원하지 않는다.
놈이 자세를 잡지 못하게 충격 화살부터 쏴 날렸다.
‘하, 무시하고 도망이라. 어지간히 얕보였나본데.’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모습에 방심하면 죽는다는 걸 알려주기로 했다. 화살을 뽑아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태양의 빛을 머금은 화살이 하늘을 갈랐다.
다시 튀어 오르려던 뱀의 몸통의 절반 정도를 날려버리며 시원한 바람구멍을 만들어주었다.
체급이 크다 보니 몸통의 완전 절단은 되지 않았지만, 서펜트의 전투 능력을 크게 앗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역시 A랭크 마력통. 여유가 있네.’
한 방 맞춰서 이제 기동력이건 몸 상태건 모두 망쳐 놨으니 다음번 화살도 맞추긴 쉬울 것이다. 게이트 공략의 끝이 보인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서펜트가 혀를 빼물며 쓰러지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사망자는커녕 전투 내내 크게 다친 사람도 없고 공략도 2주가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심지어 정글 게이트, 이 정도면 협회에 기록 제출하면 최고 점수를 받을 것이다.
“아직 완전히 끝은 아니니 긴장 유지해주시고요. 괴물 점검하고 전리품 운송 남았습니다. 보급조장님, 기사님들 인솔하셔서 수고 좀 해주시고 호위는 처음 짰던 조 순서로 하겠습니다. 그럼, 전투조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내 도움 없이 했네. 그런데 너, 뭔가 지난번보다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서린 씨는 가장 중요한 걸 하셨잖습니까. 제가 화살 죽어라 날려 봐야 저놈이 늪 속에 숨으면 지금처럼 쉽게 못 잡습니다.”
내 말에 최서린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하긴. 내가 다 하긴 했지. 그러면 이제 정리될 때까지는 쉬는 건가?”
“아뇨. 일찍 끝났으니 일이 조금 더 생겼습니다.”
“일?”
“보통은 공략 시간이 애매하면 여기서 끝나는 게 맞는데, 저희는 예정 시간보다 빨랐죠.”
공략 종료까지 정확히 13일이 걸렸으니 8일이나 빠르게 끝냈다. 그러니 서두르면 업체를 부를 수 있다.
최서린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 공략 완료 게이트를 경매 올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게이트 안쪽 일반 흙이라거나, 뭐 희귀 식생이나 이런 걸 취급하는 거구나?”
“그렇죠. 나무도 꽤 비쌉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저기가 정말로 다른 차원이라면 우리가 저쪽 차원의 자원을 약탈해오는 셈이죠. 저희가 공략 도중 놓친 게 있다면 권한 양도하는 이틀 후부터 게이트 종결 시점까진 그것도 다 게이트 구매한 사람들의 몫입니다.”
바위, 광물, 각종 식물부터 흙과 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공략 직후 기사들과 함께 부산물 수습하고 비싼 것은 따로 다 캔 후에 경매에 부치면 이런 쪽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권한을 사서 들어온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원 몇 명 붙여서 호위해주면 됩니다. 어차피 게이트 종결될 때까진 원칙상 저희도 번갈아 가며 여기 지켜야 하니까요. 부수입이 들어오면 다들 나쁠 게 없죠.”
낮은 E급 게이트였지만, 정글이라는 프리미엄 덕으로 꽤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입찰 경쟁은 정부와 기업 연구소가 붙었는데, 기업 연구소가 가져갔다.
공략 종결 후, 브레이크가 오기까지 1주일 동안에는 파티원들과 어울리며 친목을 다졌다.
“좋은 공략이었습니다!”
“게이트 분배받으면 다음에도 또 불러주세요.”
정산금을 분배해주자 파티원의 표정이 몹시 밝다.
최서린이나 강휘성도 정산서를 받자 살짝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원체 감정을 알기 힘든 강소연만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안휘성도 기사들과 뒤풀이를 좀 하고 오겠다며 잠시 떠나고, 오버스펙 그룹과 나만 남자 최서린이 슬쩍 공치사를 건네면서 먼저 운을 뗐다.
“내가 들은 E급 게이트 분배금보다 세 배는 많은데.”
“정글에 공략이 빨리 끝난 덕분에 운이 좋았죠.”
“운이라뇨. 고생하시는 것 다 봤는데. 그것도 다 능력이죠. 저도 몹시 인상 깊었습니다.”
“게이트. 꽤. 재밌어.”
다들 한마디씩 하고 침묵이 흘렀다.
“뭐, 여기 다들 남으신 건 그 빌런 조직 때문이시겠죠.”
“마침 관리국 쪽에서도 단서가 좀 나온 것 같습니다.”
한동안 태풍의 눈에 있던 것처럼 우리는 게이트 공략에 열중했지만, 그 3주 사이에 밖은 아주 난리가 났다.
강휘성은 바로 관리국 쪽 자료를 받아볼 수 있어서인지, 가장 먼저 정보를 얻어와서 그간 밖의 사건들을 알렸고 모든 설명을 들은 최서린의 감상은 깔끔했다.
“아주 개판이네.”
“누님. 이거 생각보다 저력이 있는 조직 같아요. 만만하게 보고 들어갔다간 크게 다칠지도 모릅니다.”
“음···.”
나로서도 현재 태풍이 불고 있는 외부 상황에는 꽤 놀랐다.
‘벌써 이 정도 저력이라고?’
거미가 음습하긴 했어도 모습을 드러냈을 땐, 확실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지금 해놓은 짓을 보면, 자신들은 이런 협잡도 잘한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 10대 길드 중 셋, 청해, 태백, 북진이 길드 간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거기에 거미가 해낸 일인진 모르겠지만, 금성과 명성은 엘릭서에서 아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 길드 전쟁이라는 이거, 뭐 도시에서 싸우거나 해? 나도 말로만 들어본 거라.”
“아닙니다.”
최서린이 나를 바라보며 묻기에 답을 했지만,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강휘성이 알아서 설명에 들어갔다.
“누님. 이건 필드나 게이트 내부에서 혹 마주쳤을 때,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거야.”
“그거 법에 안 걸려? 게이트나 필드에서 살인한 증거 나오면 원래부터 빌런 행이잖아.”
“이것도 전투 시작하기 전에 항복 의사 먼저 안 물어보고 살인멸구에 실패하면 빌런이 되는 건 마찬가지야. 알다시피 국가 관리되는 필드나 게이트 외의 다른 지역은···.”
“그거야 알긴 하지. 대격변기에 정해졌던 길드의 권리 존중하는 것 말하는 거잖아. 국가는 길드 간의 정당한 분쟁에는 절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엘릭서 숨은 던전 공략하려던 청해, 태백, 북진 얘들 공격대가 증발했는데, 유력한 용의자가 서로야. 말 많았는데 선전포고하는 걸로 마무리됐다고 하더라.”
“금성이랑 명성은 왜 손 뗐대?”
“그냥 손 뗀 건 아니고 10대 길드 회의에서 선언하면서 그 대가로 다른 여덟 길드에 공동관리 게이트 이권 몇 개 뜯어냈어. 여기 껴서 혹시 모를 손해 볼 위험 감수하느니, 자기들은 이참에 안정적으로 성장하겠다는 거지.”
딱 내가 추천한 길드들이라 그런지 그 대목에서 두 여자의 시선이 잠깐 내게 닿았다.
“그리고 창천이랑 일원이 연합했는데, 그쪽은 지금 엘릭서만 쫓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동시에 쫓고 있다는 중이야. 그리고 그게···.”
강휘성이 말을 끌자 나도 두 여자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그 빌런 조직이구나? 관리국에서 단서 나왔다는 게?”
“어. 창천이랑 관리국은 이게 우리나라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아. 겉으로 드러난 외부 조직들이 다 특별관리 대상들인데, 이게 고작 조직의 껍데기라니까. 솔직히 나도 꽤 놀랐어.”
그럴 것이다. 거미는 내버려 두면 관리국과 10대 길드의 지역 자경 조직을 상대하면서도 그런 거대 길드 중 하나를 몰락시킬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는 놈들이니까.
10대 길드라고 해도 잠재력이 S급인 인원이 많은 거지 현역 S급이 넘쳐나고 이런 건 아니다. 주력은 C급, B급이고 A급쯤 되면 간부, S급 몇 명 정도가 지도부다.
수많은 이유로 유망주들이 최대 등급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거나 나이가 들어 은퇴한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것이 보스는 A급에 10대 길드 주력급 숫자의 C급 인원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그 C급들의 잠재력이 대부분 A급, S급으로 여겨지는 조직.
내버려 두면 국가급 범죄조직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드러난 걸 확인했으면 지금 반드시 싹을 밟아 놔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예상했던 대로야.’
10대 길드가 기득권층이라 경직되어 있고 이익집단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정신 머리는 박힌 놈들이다.
‘저 감투를 딱지치기로 딴 건 아니지. 저들도 작은 타협으로 큰 걸 가져올 줄 아는 인간들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 대격변기의 혼란 상황 수습한 뒤에 일부 후진국들처럼 헌터 독재를 시도하지, 국민에게 권력을 다시 돌려주진 않았겠지.
‘협회는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국가수호자라는 명예를 비롯해서 온갖 유무형의 자산들을 얻었지.’
지금 대기업들이나 헌터계 기득권층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다 역전의 용사들이다.
나도 얻은 직업의 힘으로 이 헌터 사회를 내 손으로 끌고 가고자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절대 이들을 우습게 보고 있진 않았다.
“아, 그리고 그간 게이트 공략 중이라 보류됐었는데, 아마 형님한테는 곧 참고인 출석요구서 날아올 겁니다.”
출석요구서. 한동안 관리국에 시달릴 것 같다.
“잘됐네. 그러면 김유성 따라서 우리도 슬쩍 관리국 쪽으로 합류하면 되는 것 아냐?”
“누님, 이거 진짜 할 생각이야?”
“그럼 넌 내가 헛소리한 줄 알았니? 알잖아. 나 당하고 못 사는 거. 한 대 맞았으니 열 대 정도 때리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그리고 계획을 세우자면서 자꾸 내 의견을 묻는다.
이후로도 흘러가는 대화의 분위기를 보니 최서린은 날 이미 자신의 그룹에 넣은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유지혜 길드 창설시키고 인연 쌓아야 할 시기에 내겐 아무 의미도 없는 거미 잡는 일에 묶여있을 순 없지.’
이번 혼란을 일으킨 건, 고작 거미를 떼어낸다는 것만 생각하고 던진 행동은 아니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일 때 길드 창설을 해야 혼란기에 이것저것 해둘 수 있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견제를 덜 받는다.
슬슬 지혜에게도 혜성에게 했던 것과 비슷하게, 포르세티와의 연결성을 밝혀야 할 때가 됐다. 졸업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테니, 접근해서 컨설팅을 해줘야 한다.
그러니 이들에겐, 각자에게 맞을만한 기연 좀 얻어다 주고 저들끼리 빌런 잡는다고 날뛰게 하면서 나는 슬쩍 빠져나갈 생각이다.
‘뭐, 지금이야 저쪽도 내가 자신과 급이 비슷하다고 여기니까 이렇게 얽히는 거지···.’
원래 같이 움직이기에 급이 안 맞기 시작한다고 느끼면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