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0화 (30/128)

3장 - 태풍의 눈

내가 선택한 건 상부상조였다. 이 특성이 가진 장점은 확고하다.

‘빠른 완성.’

그냥 보면 특급에 모두 효과가 엄청나게 좋아 보이지만, 이 세 가지 특성은 전부 성장형이고 활성화에 시간이 필요하다.

십시일반은 쓸만해 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기약이 없고 투자정산은 45%의 지분을 소각해야 하며, 동시에 내가 필요로 하는 능력치를 최고 수준으로 가진 계약자도 필요하다.

‘반면, 상부상조는 지분 35%인 계약자 일곱 명만 모으면 특성이 완성된다. 그만한 각성자가 내 주변에 일곱 명조차 남지 않았다는 건, 내 계획이 망했다는 거고 인류가 끝장날 상황이겠지.’

다른 두 가지 특성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쓸 생각은 없지만, 계획을 완벽하게 굴릴 수 있다면 십시일반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안정감과 빌드 활용성만 따지면 투자정산이 가장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개를 선택할 수는 없다.

단순한 논리다. 눈덩이를 굴리기 위해서다.

십시일반은 기약이 없고 투자정산은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포르세티에게 45% 지분을 받아내는 것도 일이고 한창 사업 확장해야 할 시기에 지분 소각 45%는 너무 크다.

‘초반에 그 정도면 직접 히터 틀고 눈덩이 뭉쳐놓은 것 녹이는 셈인데. 내가 그리 대단치 않은 놈이긴 해도 회귀자라면 가진 최대의 강점은 시간. 정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선 이 버프 기술 외엔 선택지가 없어.’

이거 익히고 당장 유지혜의 마력 능력치만 가져올 수 있더라도 지난번처럼 고작 화살 두 발 날리고 마력 고갈 나버리는 답 없는 상황은 없을 거다.

그리고 걱정되는 건 그것 말고도 있다. 당장 오늘 겪은 일만 해도 빨리 강해져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타란툴라가 언제 올 줄 알고.’

당장 시선이야 돌려뒀지만, 내 목을 빌런 조직의 보스 손아귀에 쥐여준 이 골 아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당연한 본능이다.

‘아직 그쪽도 A등급이지.’

그렇다면 B등급이었던 회귀 전 수준만 회복할 수 있더라도 싸움은 될 거다. 그런 보험적인 측면에서도 상부상조를 찍어야 하는 이유는 있었다.

그렇게 하루의 휴식 후, 게이트 공략이 재개되었다.

멧돼지와 천산갑 지역, 질병 숲 지역까지 쭉 정리하는 것에 일주일이 걸렸다.

“이렇게 고스펙 파티로 왔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네요.”

몹시 지쳐 보이는 이진아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아 투덜거렸다.

“이런 게이트는 처음이십니까?”

“평지 소형 게이트만 몇 번 갔죠. 그땐 필드랑 느낌 비슷했는데, 정글에 중형 게이트쯤 되니까 공략 시간도 길고 힘들긴 하네요.”

이 게이트의 예상 공략 제한 시간은 22일. 시간은 3주 정도로 잡혀 있지만, 원래 3일쯤 남으면 브레이크를 대비해 퇴각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E급끼리 왔다면 외곽부터 조금씩 끌어와 돌려 깎으며 야금야금 답답하게 공략해야 했을 질병 숲 지역이다. 괜히 정글 게이트가 기피되는 게 아니다.

“아마 최서린씨나, 강소연씨 없이 질병 지역에서 붙잡혀 있었으면 공략 제한 시간을 꼬박 다 채웠을 겁니다. 느린 편은 아니죠.”

이걸 고작 4일 만에 해결한 건, D+급 서포터의 해제 능력과 C+급 각성자의 화력 지원을 믿고 몇 번에 걸쳐서 몰이해 처리한 덕분이다.

“파티장님은 참 뭔가 많이 아시네요. 방송에 나오는 베테랑 같아.”

“체계 잡힌 길드에 들어가시게 되면 결국 종류별로 다 돌게 되실 겁니다. 길드엔 관심 없으십니까?”

이진아가 길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 잠재 평가가 D ~ C라고 하는데, 길드에 들어가 봐야 얼마나 올라갈까 싶고?”

“C등급 서포터면 아무리 망해도 지금 버시는 수입의 100배 정도는 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기까지 빨리 가려면 좋은 성좌를 만나든지, 아니면 좋은 길드를 만나야겠죠.”

이리 말하는 것도 이진아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래요? 그러면 우리 파티장님께서 길드 좀 추천해주실래요? 사실은 저, 다 퇴짜맞았거든요.”

“확실합니까? 본인이 그냥 간 보다가 나오신 게 아니라?”

“······.”

항상 강아지 상의 귀여운 얼굴로 웃던 이진아의 표정이 내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굳었다.

“제가 여태까지 봤던 진아씨 평소 성격, 전투 타입으로 보면 길드에선 아주 좋아했을 인재였을 텐데요. 본인도 마당발 타입이라 여기저기 정보도 들어왔을 테고. 아마 막 각성하고 기수 과정 끝났을 땐, 여기저기서 자기 하위팀에 오라고 스카우트 들어왔겠죠.”

“···그건 어떻게 아셨대. 막 관상 같은 걸로 그런 게 보이나요? 아니면 뒷조사?”

뒷조사한 적도, 포르세티를 통해 관찰하는 것으로도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건 그저 통찰의 영역이었다.

원래 이진아 같은 성격이 길드에선 활력소고 정치도 잘한다. 상사에게 밉보이지만 않으면 그 등급에선 에이스 취급 받을 인재다.

이런 인재가 만년 E급 개인 헌터로 놀고 있다?

‘지 스스로 걸어 나왔다. 그 외엔 나오는 경우의 수가 없지.’

돈도 급하지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으니 살면서 많은 걸 바라는 타입도 아니다.

그저 판단의 근거는 순간적인 흥미와 인연. 운명 따위.

그러니 꿈에서 깨면서 좀만 거슬리는 게 있어도 그냥 그만두고 나오는 거다.

“요새는 스카우트 제안은 없고 예전 있던 팀에서 가끔 연락이 오시죠? 돌아오라거나, 용병으로 오라거나.”

“와, 족집게시네요. 신기하다!”

“이진아씨. 여태 지나치셨던 곳엔 ‘운명’이 없었습니까?”

나는 이진아에게 작은 힌트 하나를 던졌다. 포르세티가 이진아가 내 파티에 들어올 때, 지원사격해준다고 그녀에게 준 임무 이름도 ‘운명’이었다.

“유성 씨는 까면 깔수록 신기한 분이네요. 갑자기 파티 영입한다고 뜬금없이 찾아오신 것도, 지금 그 말도. 사실은, 재미가 없어요. 그냥 미래가 보이잖아요?”

“그렇군요. 안전 구역에 집 사고 적당히 능력 있고 괜찮은 남자, 여자 만나서 결혼. 은퇴하거나 관리직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헌터 생활 지속하면서 혼자 화려하게 살다가 가는 삶. 일반적인 헌터의 삶이죠.”

“네. 그런 인생. 재미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게 뭔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지만, 그녀와 불장난을 칠 생각도 시간도 없다. 지금은 말 한마디만 남겨두면 된다.

“이진아씨에겐, 어쩌면 신생 길드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신생 길드요?”

“모험이 가득한 삶을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표정을 보니 그건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저게 이유가 없어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보니 꺼려져서라는 걸 안다.

이유, 그리고 자신만의 확신만 생기면 신생 길드라도 달려들 사람이고 지금 계속 뿌리는 이 씨앗은 오래지 않아 수확할 때가 올 것이다.

지금은 그저 생각할 시간을 주자.

마침, 저쪽에서 정예원이 급히 뛰어오는 걸 보니 뭔가 발견한 모양이다.

“파티장님. 찾았어요, 네임드!”

“악어입니까?”

“뱀장어? 그런 종류에요.”

“서펜트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 모습 드러낼 놈이 아닌데, 용케도 살아오셨군요.”

“아, 아뇨. 그게 사실 제가 발견한 게 아니라서···.”

그 시선을 따라가니 저 멀리 장비가 엉망이 된 안혜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전위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아···. 사기 특성.”

“돌아오시다가 제가 가장 먼저 만났어요. 기습당했는데, 특성 덕분에 안 죽었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물린 상태에서 먹힌 손으로 반격해서 서펜트의 목 안을 이리저리 찢어놓았다고 한다.

“안혜성씨. 습격당한 곳이 어디쯤입니까? 시간은요?”

“폭포 아래 호수 쪽은 아니었고 질병 숲 경계랑 늪이 만나는 지역이었습니다. 저희 몰이 도중 흘렸는지 퍼피룸이 보여서 정리하러 갔는데···.”

지도에 해당 위치를 표시하고 시간대를 적어놓았다.

보스전을 위해 작업할 지역이 정해진 것 같다.

“지금 이 시간대를 피해서 여기서 작업하죠.”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

“어차피 질병 숲 정리는 거의 다 끝났잖습니까. 여태까지 처리한 사체들의 추정 마력치랑 들어가기 전에 확인했던 마력 수치 대조해보면 딱 네임드 하나 정도 남았습니다.”

한마디로 강 속에는 추가적인 괴물이 없다는 거다.

나는 종이 하나를 꺼내서 계산 결과를 정리, 파티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길드면, 지휘부가 있어서 그쪽에서 다 알아서 계산해줘서 편한데,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막공이라 이런 부분이 좀 귀찮긴 하다.

그래도 각자 따로 계산해 보는지 보급조장까지 찾아가서 처리한 시체 수량을 물어보는 모습이 다들 뭔가 풋풋해 보이긴 했다.

“맞는 것 같네요.”

“예. 남은 건 늪의 네임드 하나뿐이라는 거죠. 이것만 잡으면 공략은 끝입니다.”

“피해서 작업하신다는 건, 말뚝 박으시려는 겁니까?”

베테랑 짐꾼인 보급조장이 수중전 경험이 있는지 먼저 내게 물어왔다.

서펜트 류의 영리해서 수중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주문계나 약물 따위의 도움을 받아 직접 물속에 들어가거나, 둑처럼 경로를 막아놓고 공격해서 어그로를 잡거나, 말뚝 박고 판자 고정해서 필드를 직접 조성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거나 한다.

첫 번째인 약물은 챙긴 적이 없는 데다가 배보다 배꼽이 클 거라 불가능하고 둑은 돌아 도망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말뚝 박고 판자로 그 주변 늪지대에 대규모로 필드를 만드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이것도 원거리가 적으면 어려운 방법이었다.

“물약은 없고 파티 구성에 지금 전위가 많아서 수중 괴물을 상대하기엔 조합이 안 좋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최서린은 그새 처음 느낌으로 돌아왔다.

“둑으로 막을 겁니다.”

“막고 공격해봐야 반대편으로 도망갈 텐데요.”

“반대편은 놈이 도착하는 순간에 얼릴 겁니다.”

미리 둑을 두 개 짓는 건 애초에 의미가 없다.

그냥 첫 번째에 마주치면 도망갈 테니까.

가두려면 일순간에 퇴로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잠깐의 틈에 무슨 수를 써도 서펜트가 몸으로 뚫을 수 없으면서 동시에 점프해서 달아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지형을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서린씨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죠.”

“할 수야 있는데, 그러면 난 한동안 전투 이탈인데? 메인 딜러 없이 가능하겠어?”

“저희 메인 딜러님 복귀하실 때까지 그 역할은 제가 합니다.”

내 말에 모두 잠깐 의문 어린 표정을 했으나 이내 내 말이 합당하다는 걸 깨닫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파티장님도 D급이었죠? 그걸 잊고 있었네.”

“레인저시긴 해도 등급 차이가 있으니까. 뭐···. 충분하겠네요?”

“네. 제가 E급 메인 딜러 역할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전위가 많으니 놈의 점프도 충분히 막겠죠.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부대장님 안 계셔도 잡을 수 있어야 정상이니까요.”

그리고 네임드전이 시작된 후, 30분간은 절대로 내가 지금의 최서린에게 밀리지는 않을 거다.

당장 35% 이상인 계약자가 지혜 하나뿐이라 마력 하나만 오르겠지만, 새로 얻은 기술을 시험해보기엔 딱 알맞은 시험대였다.

여기저기서 둑을 만들 재료를 가져오는데 하루, 그리고 서펜트가 충분히 지나갔을 시간을 기다려 파티원 전원이 둑 건설에 매달렸다.

늪지의 통로 하나를 가로지르며 반대편 땅과 이어지도록 지어진 그 벽 위에는 메인 탱커를 비롯한 전위 대부분이 섰다.

“후, 긴장되네. 이거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작업해야 하는 거지?”

“예. 서펜트도 경로를 바꿀 테니까요. 악어라면 위협 수준 잡아서 끌고 오면 되는 거라 상대적으로 쉬웠을 텐데, 서펜트라 어쩔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최서린의 옆에서 대기 중이다. 그녀가 큰 기술을 써서 서펜트를 두 벽 사이에 가두면, 나머지 전위들이 후방 벽에 가서 서고 서포터나 원거리들은 평지에서 전투를 하게 될 거다.

그렇게 숨어서 대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늪지 아래, 숨기기 힘들 크기의 검은 무엇인가와 크게 흔들리는 물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놈도 둑 위에 서 있는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지 흔들림이 잦아들고 기습하려는지 늪 깊숙이 숨어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최서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혹시 도망가는 거 아냐?”

“한 명 습격한 후에 결정할 겁니다. 희생 없으려면 전위장님이 잘해주셔야겠죠.”

내가 속으로 3부터 1까지 숫자를 다 세자마자, 수면 위로 서펜트가 솟아오르며 둑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지금!”

“얼어붙어 성벽이 되어라! [빙하길!]”

곧장 뛰어오르는 최서린의 두 손에는 시린 냉기가 가득하다. 그 두 손은 늪지에 파고들었고 전방으로 얼음길이 생기며 주변 전체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 짐꾼들이 전위들과 함께 통나무를 이어 붙여 만든 다리를 들고 달렸다.

그쪽에서 막을 전위들을 위해 발판을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모두! 멈추지 말고 다들 뒤쪽에 말뚝 박고 판자 깔아!”

서펜트가 목을 들어 뒤를 돌아보는 것을 바라보며 이우석 기사가 이를 악물곤 외쳤다.

늪지대인 만큼, 전위들이 막다가 튕겨 뒤로 날아갔을 때를 대비해서 여기저기 발판들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뱀의 상체. 거대 괴수류라 체급도 있고 지난번 임펫 퀸 같은 지휘 개체도 아니라 튼튼할테니 순식간에 끝내긴 어렵다.

‘뭐, 그래봐야 데몬랩터 보다는 훨씬 쉽겠지만.’

도망치는 것은 제대로 막았으니 5분 내로는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뱀 특유의 ‘쉿’ 위협하는 소리를 내는 뱀 대가리를 향해 나는 화살을 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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