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태풍의 눈
“게이트 빌런 보는 건 헌터 생활 3년 했지만, 처음인데.”
빌런의 습격 때문에 하루를 통째로 휴식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파티원들은 제각기 소감을 내뱉었다.
“요새 빌런이 좀 늘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우리 게이트에도 올 줄은 몰랐네요.”
“뭐, 우리나라에 엘릭서가 발견됐다잖아요! 거대 길드도 정부도 다 거기 정신이 팔려있으니 어쩔 수 없죠!”
“거, 남부 대규모 게이트 클리어 되고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나는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환기할 겸, 박수를 한 번 치고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통으로 휴식하고 움직일 예정입니다. 내친김에 그간 모아온 물자, 운송 좀 하죠. 기사님들. 좀 귀찮으시더라도 혹시 모를 사고 대비하고 일 줄인다고 생각하시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공략 속도로 보아 전리품을 못 챙기는 일은 없겠지만, 공략 제한 시간을 못 맞춰서 게이트가 브레이크 되면 오직 생명체만 뱉어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미리 빼두는 것도 방법이다.
즉, 안에 두고 나온 물건은 전부 사라진다.
전리품 수거는 보통은 공략 다 끝나가는 시점에 하는 일이라 이럴 때 시키면 불만이 쌓일 수 있으니 당근도 제시했다.
“대신, 기사님들 포함해서 창고 갔다 오시는 분들은 밖에서 쉬고 돌아오셔도 됩니다. 호위는 서포터 중에서 한 분에 나머진 전위랑 딜러진에서 세 분 받겠습니다.”
어차피 미처 정리하지 못한 괴물이 있을 수 있기에 인원을 딸려 보내야 한다.
지원자가 많다. 각 조장과 시체를 검시 중인 강휘성을 제외한 전원이 손을 든다.
“휘성이도 보내야 하지 않겠어?”
“네. 그분은 저랑 서린씨 캠 들려서 따로 보낼 거라, 저 인원에는 미포함입니다. 기사님들도 인솔하실 보급대장님과 여기 남을 혜성 씨는 제외하고 갔다 오실 세 분 정하시면 됩니다.”
제비뽑기 끝에 전투조 네 명이 기지 밖으로 출발했고 회의하던 인원들도 다 각자 휴식을 위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최서린이 남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대화하고 싶은가 해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브리핑하기로 했다.
하기야, 험한 꼴 당할 뻔했으니 혼자 있기 무서울 순 있겠다.
대화 대상이 강소연이 아닌 나인 것은 좀 의외였지만, 방금 목숨 걸고 싸워준 동료에 대한 친밀감이라면 그리 이상할 건 없겠지.
“이제 독충, 흡혈나방, 버섯 괴물이 있는 늪지대 지역, 천산갑과 멧돼지 서식지가 있는 산 아래의 구릉지 지역 정도가 남았습니다.”
“어. 멧돼지 먼저 할 생각이지?”
“마지막 기지는 거기 지어야 하니까요.”
절벽 아래의 나머지는 대부분 늪지대라 전리품 저장할만한 곳은 거기뿐이다.
“아, 대충 정리는 다 된 것 같네. 나도 가서 좀 쉬어야겠네.”
“몸이 놀라셨을 거니 좀 주무시는 것도 좋겠죠.”
“···솔직히. 끔찍한 기분이었어.”
“정신 계통의 저항 특성을 알아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장 추천하는 건 가성비가 좋은 B등급의 불굴이지만, 서린씨 잠재력이라면 전투속행류나 정신 방어류를 따로 구매할 수도 있겠죠.”
최서린은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넌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음. 좋은 선생님께서 계셨죠.”
회귀자에게 미래의 자기 자신만큼 좋은 선생은 없겠지.
“아까 일로 자책하시거나 자존심 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뭐, 위로라도 해주는 거야?”
“그냥 객관적인 겁니다. 저런 제압류 기술은 암살자 빌드에서도 더러운 일을 전문으로 하는 놈들만 찍는 거라, 처음 겪으면 저항하기가 힘들죠.”
“그런 건 좀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기수 과정에서 왜 경험시켜주지 않느냐는 의문이지만, 그것도 이유는 있다.
“아카데미에선 가끔 범죄자와 거래해서 경험시켜주는 일이 있지만, 그것도 다 형량 거래로 해주는 거죠. 심지어 거절하는 빌런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같은 단기 과정까지 그런 거래로 경험시켜주기엔 아까운 거죠.”
물론, 뒤 구린 기업의 후계자쯤 되면 훈련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최서린은 그런 경우는 아닐 테니까.
“그 자식들도 밥줄이란 거네.”
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놈들도 대비된 놈이 많을수록 날로 먹기가 힘들어진다.
“참, 이 나라는 왜 그런 범죄자 새끼들 인권을 챙겨주는지 모르겠어?”
“구린 건 구린 것대로 써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어쨌든 한 번 겪어봤으니 다음엔 마력만 끌어올려도 충분히 저항할 수 있을 거라 알려주자 최서린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그래도 따로 연습 좀 해보고 싶은데.”
“빌런 친구라도 있는 것 아닌 이상 어려울 겁니다.”
“그러네. 암살자 빌드는 그걸 찍으면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는 거지?”
“그렇죠. 암살자 자체로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데, 직접 그런 기술까지 찍으면야···.”
물론, 찍었어도 제 입으로 찍었다고 말하진 않을 거다.
‘병신도 아니고.’
대놓고 제 입으로 밝히는 미친놈이 있기도 힘들겠지만, 밝혀도 관리국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될 테니까.
암살자는 심지어 절대적인 숫자도 적었다.
정찰조 역할은 파티에선 대부분 레인저가 할 수 있다. 심지어 레인저 역시 주변과 동화하거나 은폐하는 기술은 있다.
‘물론, 그거 다 고려해도 은신이 진짜 좋은 기술이긴 하지. 분명 그렇긴 한데···.’
가장 큰 문제가 암살자는 정찰대면서도 동시에 전위 직군이라는 거다.
그러면서도 전위 직군이 귀족이 될 수 있는 특유의 전방 유지력은 눈곱만큼도 없는, 그래서 귀족 취급받기는 글러 먹은 직업이다.
전위가 가진 죽기 딱 좋다는 직업적 단점만 가득한, 힘은 적당히 찍고 마는 민첩 중시의 직업.
‘자체 생존력은 높지만, 파티에선 선호되는 계열이 아니지.’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다 전멸한 파티에서 지만 살아 돌아오는 직군이 아무리 결백하다고 해도 어떤 취급 받을지는 뻔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 파티 모집에도 20명이나 되던 정찰조 모집 지원에 암살자는 둘 뿐이었다.
“거기에다 서린씨가 당한 그것도 군중제어류 기술이죠. 재능 수치를 많이 먹는 거로 압니다. 찍기 위한 특성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로 빌드도 꼬이겠죠.”
“그렇겠네. 어, 어쨌든 아까는 고마웠어. 생각해보니 감사 인사도 못 했네!”
대화 도중 갑자기 화제를 돌려버리는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뭐! 그 눈빛 뭔데? 나도 감사 인사 정도는 하거든?!”
“아니···.”
최서린은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빽 소리를 지르곤 후다닥 제 숙소로 뛰어가 버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강소연씨! 아깐 감사했습니다.”
성격 더러운 특급 아가씨가 뛰어들어간 문 위쪽에는 목재로 만든 그럴싸한 숙소 2층의 테라스 앞 테이블에 우아한 자세로 앉아 주스를 홀짝이고 있는 강소연이 있었다.
“아냐. 서린. 지켜줘. 내가 감사.”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나도 쉬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문득 포르세티와 나눴던 대화의 위화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명성이 10배?”
그런데 C급이 250만인 건 이미 포르세티와의 대화로 확실해진 사항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위업 포인트는 1천만에 불과했던 거지?
내 위화감은 여기서 느꼈던 게 틀림없다.
‘환전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그건 처음부터 1대 1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지금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한참 동안 고민해봐도 답 없는 되새김에 이 의문은 마음속에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계획 외의 시간이 남는 김에 상태창이나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 사이에 레벨이 올랐나.”
안혜성이 성장하면서 직업 레벨이 오른 것 같다.
별의 투자자의 첫 번째 직업 특성의 선택지가 개방되었다.
개방된 특성은 세 가지, 특성 명은 [십시일반/상부상조/투자정산]이다. 특성 창에 따로 기술을 제공하는 특성이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흔치 않은 건데···.’
직업 기술 창은 25레벨에 열리니, 낮은 레벨부터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특성으로 보인다.
나온 특성에 붙은 특급이라는 문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십시일반(S / 특성)]
- 소모 잠재 : 없음
- 투자 지분이 25% 이상인 계약자에 한정합니다.
- 계약 대상들의 가장 높은 능력치, 그 0.001%만큼 당신의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 적용 계약자(2/2) : 유지혜(마력), 안혜성(마력)
[상부상조(S / 기술 특성)]
- 액티브 시동어 : 입력
- 소모 잠재 : 없음
- 투자 지분이 35% 이상인 계약자에 한정합니다.
- 당신의 능력치를 계약 대상들의 능력치 중, 가장 높은 능력치. 그것이 해당하는 등급의 최소치에 고정합니다.
- 적용 계약자(1/1) : 유지혜(마력 : A)
- 지속시간 : 30m / 재사용 대기시간 : 24h
[투자정산(S / 특성)]
- 소모 잠재 : 없음
- 투자 지분이 45% 이상인 계약자에 한정합니다.
- 계약자의 가장 높은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더합니다.
- 지정 대상의 지분을 전부 소모합니다.
- 오직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적용 계약자(0/0) : 대상 없음
처음부터 특급 특성이라는 것보다도 특성에 소모 잠재가 없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방법으로도 올릴 수 없는 잠재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건 그것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럼 1번과 3번은 영구 능력치를 준다는 건데.’
십시일반은 내용은 단순했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나 보였다.
계약한 자들의 등급이 어떻든지 그 능력치 일부를 가져오는 것이다.
즉, 내가 별의 투자자로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는 뜻.
상부상조의 경우, 당장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현재 내겐 35% 이상의 지분은 유지혜 하나지만, 유지혜의 마력 수치가 벌써 A 등급에 육박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에도 내 마력 능력치가 A랭크 최소치에 고정된다는 거다.
투자정산은 몹시 단점이 커 보이지만, 그 ‘영구’라는 말이 위 특성의 단점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아, 그런가? 십시일반은 언뜻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함정이 있어.’
기본적으로 10만 명을 모아야 고작 한 명분의 능력치다. 심지어 투자 대상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그중 ‘각성자’가 대상인 거다.
저 등급이야 그만큼 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자본으로 계약할 수 있는 총량이나, 훗날의 멸망까지의 최대치가 얼마인지도 아직 알 수가 없다.
‘계약자가 죽어버리면?’
그 순간 저 능력치도 증발한다. 이건 내게 생각보다 많은 이점을 제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미래를 몰랐다면 닥치고 십시일반을 골랐겠지.’
두 번째인 상부상조는 가장 활용도가 높았다.
‘이거면 어떤 레이드라도 전투 한 번에 한정해선 최상위 랭커급 능력자다.’
자가 버프형 발동 기술이지만, 데리고 있는 계약자가 소수라도 언제든지 하루 30분 동안은 모든 능력치가 특급인 각성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 투자정산은 능력치 한가지에 한해 모든 각성자 중 최고가 될 수 있는 특성이다. 물론, 반대로 내 능력치 분배의 단점을 극복하는 것에 사용해도 된다.
다른 둘에 비해 최대치나 효과는 작지만, 대신 지분 소각을 제외하면 어떤 제한도 없고 능력치가 사라질 염려가 없다.
홀로서기를 원한다면 이걸 택하는 게 옳다.
‘숨겨진 직업인 값을 하는구나. 우선, 십시일반은 제외.’
첫 직업 특성이 보통 범용적이고 좋다는 걸 감안해도 확실히 좋다.
잠시 고민한 후, 나는 남은 둘 중 어떤 특성을 택할지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