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태풍의 눈
페이트가 이 안에서 날 노린다면 따로 정찰할 때를 노릴 것이다.
동시에 지형적으로 회피가 어렵거나 전투 중의 위험한 틈을 노리겠지.
그러는 사이 일행은 거미줄로 막힌 분지 입구를 괴물을 짜내 만든 기름과 아티팩트를 활용한 화염으로 태워서 치웠다.
“으엑.”
이진아의 심정이 모두를 대변했다.
마치 흰색 둥지처럼 작은 분지 전체가 거미줄밖에 보이지 않는다.
“먹잇감 잡아둔 건 없으려나?”
가끔 죽어있는 지성체의 시체 같은 게 발견된 적이 있다.
시체와 함께 있을 이세계의 장비. 최서린이 기대하는 건 그런 거겠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타차원 지성체도 만나게 될 것이다.
“천장. 두 마리. 뒤. 이동 중.”
강소연의 말에 중단에 있는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중 감각 능력치가 가장 높은 서포터인만큼,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경계해야 한다.
“독액! 서포터!”
녹색의 빗방울 같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크게 외쳤다.
거대한 원구형 보호막이 파티를 감싼다.
양이 많지 않은 독액은 보호막과 상쇄되며 사라졌다.
“귀찮게 구는군요.”
“거미줄이랑 나뭇잎 때문에 시야에 잘 안 잡히는데, 어쩔 거야?”
“그렇다면 시야를 확보해야겠죠. 놈들은 사냥꾼이니 구멍을 뚫으면 바로 저희 시야의 사각으로 움직일 겁니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바로 다섯 발의 마력시를 시위에 걸어 하늘로 쏴 올렸다.
“하나!”
구멍이 뚫리자마자 최서린의 낭랑한 외침이 퍼진다.
한 마리 처리했다는 뜻이다. 반면, 정예원은 놓친 것 같다.
‘E급이니 어쩔 수 없지.’
원래라면 여기서도 한참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예원의 기도 살려줄 겸, 이번에는 조금 신경을 써서 세 발의 화살을 날렸다.
“마무리!”
하지만 이번에도 눈치 없는 최서린이 한 방에 날려버렸다. 위에 거미줄이 남아있어서인지, 뭔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렸지만, 우리에게 시체 루팅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미는 처음이라 긴장되는데.”
“아! 휘성이 너, 각성하고 게이트는 거의 안 갔지?”
“그랬죠. 평야 게이트 몇 번 가본 게 전부라.”
강휘성은 내부를 한 차례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고 최서린은 혼자만 긴장감 없이 산책 나온 것 같은 모습이다. 사실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도 저런 모습을 보면 강심장은 강심장이다.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최서린 같은 게 좋긴 하지.’
뭐가 됐든 긴장으로 굳어있는 것보다는 낫다. 어쨌든, 조화롭지 못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일행의 사기를 위해 나는 거미의 패턴을 언급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놈들의 패턴은 단순하니까요. E급 거미류라 꼬리에서 거미줄을 뿜어 이동을 막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들 영상으로 거미 공략하는 것 정도는 봤을 테니 그 환영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걸 지워줘야 한다.
“다만, 붙잡히면 순식간에 거미줄에 포박될 수가 있으니 전위는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순서는 원거리에서 독액.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다가 잡아챌 수 있을 거리에서 도약합니다. 지금처럼!”
“방진! 온다!”
슬금슬금 포위하듯 움직이는 거미들의 모습에 전위장이 서둘러 크게 외쳤다. 원형으로 구성되는 방어진. 전위들이 앞을 막고 그 바로 뒤에 서포터, 가장 중심에 원거리 딜러들이 섰다.
“파티장!”
“대기!”
최서린이 빨리 지시를 내리라며 외쳤지만,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방진이 견고하게 갖춰질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방진이 확실하게 갖춰지고 첫 돌진을 튕겨내자 마자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입구 좌측, 들어온 좌 후방 벽면!”
“좌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위장이 크게 외쳤다.
전위들이 옆걸음으로 조금씩 돌며 자기 자리를 바꾼다.
돌격을 위한 진형을 갖추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거미들은 다시금 돌격했으나, 전위와 서포터의 기술로 잘 튕겨냈고 달라붙어 위협적인 몇 마리는 원거리들이 다리를 떼어낸다거나 머리를 쏴 떼어냈다.
“달려!”
메인 탱커가 내가 지시한 방향의 전면에 서자마자 그 호흡을 읽어내고 외쳤다.
전위장이 좌우의 전위와 함께 돌진류 기술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내 외침에도 파티원들은 반 박자 정도는 늦었지만, 다행히 그 속도를 잘 뒤쫓았다.
조금전, 해당 방향에서 돌격했다가 튕겨 나가 뒹굴던 거미들은 덤블링하듯 일어났지만, 이어진 전사들의 돌격을 피할 정도의 반응속도를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중갑의 묵직한 중량에 치인 거미들은, 트럭에 치인 환생자처럼 순식간에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뒤쪽은 괴물의 것이라 꽤 질긴 거미줄임에도 방패를 앞세운 메인 탱커의 돌격에는 전혀 버티질 못했다. 거미줄만 보이던 벽면에 바위 지형이 드러났다.
“반원진!”
전위장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빠르게 옆이 넓은 카이트 방패처럼 흩어진 전위들이 각자 자리를 지키고 방어 자세를 취한다.
“최서린씨. 놈들이 모이면···.”
“나도 알아.”
난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어?”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전위장이 의문을 표시했지만, 파티장이라서 제지하지는 않았다.
“몰아오죠.”
짧게 남기곤 활을 등에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단검을 꺼내 든다.
궁사도 레인저 계통은 거리를 허용할 때를 대비해 단검 정도는 들고 체술은 익힌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포위를 뚫고 접근하는 상황이니 화살은 어울리지 않았다.
‘길을 뚫을 때, 포위망이 한 줄이라면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건 고작 셋뿐이다.’
많아 보이지만, 그게 전부다. 그나마도 거리를 활용하면 차례로 처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점프해 달려드는 거미를 몸을 좌로 틀어 피하면서 한쪽 다리를 모조리 갈라버린다.
그리고 옆에서 이어 달려들려는 거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다리에 마력을 실어 급가속했다.
“키릭?”
점프하려다가 내 모습을 놓쳤는지 양옆의 거미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머뭇거린다. 나는 그 상태 그대로 팔을 마저 휘둘러 쥐고 있던 단검을 투척했다.
‘안 보였으면 죽어야지.’
머리에 꽂힌 단검에 우측 놈이 쓰러지고 나는 그 비워진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거미의 크기가 있었기에 그 우측 너머의 다른 거미는 날 포착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활을 들어 좌측에서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거미를 쏘아 날려버린 후, 포위망을 탈출했다. 뒤늦게 날 포착한 그 양옆 거미들이 뛰어보지만, E급 일반 괴물 따위가 내 발을 쫓을 수는 없다.
포위망을 벗어나자 약간 한산한 공간이 나타난다. 새끼로 보이는 작은 거미들이나 뒤늦게 몸을 움직이는 놈들이 있으나 몸을 운신하기에는 여유가 충분하다.
들고 있던 활에서 이 작은 분지 이곳저곳으로 화살이 뻗어 나가고 폭발을 일으킨다.
구석진 곳의 거미들도 자기 집이 폭발로 흔들리자 화가 났는지 거미줄을 늘어뜨리거나 직접 집을 타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곡예를 부리듯 독액과 점프를 피해 다니던 나는, 저 멀리 최서린의 기운이 최고점에 이를 때쯤, 빠르게 본대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달렸다.
“저 방향. 지원해줘!”
부대장인 최서린의 지시에 따라 전위 몇이 돌진해 내가 달려오는 방향을 뚫고 정예원도 그쪽으로 자신의 가장 강력한 기술을 쏴 날렸다.
“됐다. 가라, 서리의 보주.”
단검으로 거미 몇을 쳐내던 내 눈앞으로 시리디시린 푸른색 냉기를 담은 원형의 구체가 스쳐 지나갔다.
‘타이밍이 약간 빠른데.’
아주 잠깐 최서린에 대한 짜증이 치솟았으나 이내 삼켰다.
이제 막 각성자가 된 최서린이 뭘 알겠는가?
앞으로 길드 가서 쓴소리 좀 듣다 보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바글거리며 몰려오던 거미들 한가운데 구체는 떨어졌고 밀려오는 얼음 폭풍에 나는 붕 떠서 하늘을 날았다.
“어? 어어!”
날아가는 나를 받아보려는지 전위들이 손을 뻗어보지만, 턱도 없다.
원래 이런 건, 받아주려면 예상하고 준비해서 타이밍 맞춰 뛰어올라야 하고 그만한 예상과 실력이 되는 인물들이었으면 이런 개인 헌터 생활을 오래 하진 않는다.
나는 허공에서 바람의 기류를 타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분지의 벽면에 닿은 건 내 다리였다.
“타이밍이 조금 빠르군요.”
“알아. 처음 써보는 거라 기술 설명만 보고 대략 감만 잡은 거라서.”
“그랬군요. 남은 건 정리만 좀 하면 될 거 같습니다. 한 바퀴 쭉 돌죠.”
워낙 강력한 기술이라 천장 여기저기에도 구멍이 뻥 뚫렸다. 이후 던전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어두워지기 전에 퇴각한 후, 먼저 지어뒀던 진지에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분지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했고 자잘한 분지 상부의 거미들은 짐꾼들까지 모두 데려와서 벽면에 목책 사다리까지 만들어가며 분지 상부의 거미를 끌어와 정리하는 중이다.
“안혜성 씨. 소탕 작업은 어디까지 됐습니까?”
“이제 분지 최상부의 거미줄만 남았습니다.”
“음, 거미는 다 끌어다 정리했으니 그건 놔두세요. 박쥐들 막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보급품을 싣고 온 이우석 기사에게서도 보고가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확인했는데, 입구 공사도 마무리됐습니다!”
“더 가져올 것 남았습니까?”
“비축해놨던 장작이나 건설자재가 좀 남았습니다.”
“다시 가시는 길에 그쪽에 남은 파티원들과 복귀하세요. 첫 지점에는 목책과 망루만 남겨 놓고 철수하는 것으로 하죠.”
거기까지가 이틀, 이후 독사 지대야 거미에 비하면 아주 쉬웠고 동굴 박쥐도 밖에서 상대하지만 않으면 별것 아닌 놈들이라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글리고 4일째 되던 날, 우리는 절벽 위 내리막길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 세 번째 기지를 짓죠. 하천의 수질검사부터 해주시고 혹시 모르니 호위하실 전위분들을 데려가세요. 지휘부는 잠깐 회의 좀 하죠.”
절벽 아래가 보이는 위치에 바위를 깔아놓고 각 파트장이 털썩 주저앉았다.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조류형 네임드에게 기습당하기에 딱 좋은 위치입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즉사겠는데요.”
하늘을 나는 능력이라도 없는 한, 여기 중간보다 윗 지점에서 떨어지면 단단한 각성자의 신체라도 즉사를 면할 수 없다.
“너, 여기 통과해 갔었다며? 문제없는 것 아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혹시 모르니 기사분들께 도르래 제작을 맡기려 합니다. 완성되면 내려가는 동안 서린씨랑 저는 계속 경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그래야겠네.”
어차피 이런 지형이면 짐을 옮기기 위해서 절벽 상부에 복합 도르래를 만들어야만 한다. 직접 내려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아무래도 안전하다.
방어와 이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보단 이동은 도르래에 매달은 엘리베이터가 하고 방어만 신경 써도 되는 게 아무래도 편할 테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파티원들을 전부 내려보낼 동안 조류형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늪 쪽을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어 같은 건가?”
“어류 괴물일 수도 있죠. 어쨌든, 이제 저희도 내려가죠.”
엘리베이터가 올라온 걸 확인하고 최서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