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24화 (24/128)

3장 - 태풍의 눈

[···그래서 명성 좀 들어오셨습니까?]

[어. 이거 돌릴 정도는 들어왔지! 너도 받았을 것 아냐!]

슬프게도 난 게이트 공략 준비한다고 분배금 정산은 확인도 못 했다.

유지혜가 뜻밖에 주변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성장하고 있나 보다.

[그건 좀 더 진득하게 모으시죠.]

잔뜩 기대한 여신에게 찬물을 뿌리는 건 몹시 미안했으나, 난 바로 제동을 걸었다.

[아니 왜! 내가 그간 얼마나 참은 줄 알아?]

[아직 뽑기 돌릴 때가 아니라는 것 정돈 아시잖습니까.]

갑자기 포르세티가 만든 방으로 전송이 시작했다.

할 말이 있나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초대를 수락했다.

‘반발이 심한데.’

그간 가장 고대하던 장난감을 뺏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언제까지고 제 돈만 가지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저도 여신님도 큰 꿈이 있고 제대로 키우려면 지금처럼 빡빡한 예산으로 타협하는 게 아니라 목돈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으···.”

방문 너머에선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포르세티도 양심에는 문제가 없는 신격이고 기본적인 개념은 확실한 모범생 타입이라 그런지 내 말이 맞다는 건 이성적으론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뭐, 북구는 노르드 문화권이고 거기가 약탈이나 침략의 역사인 걸 생각하면 그쪽 신화권에 한탕주의가 내재 되어 있는 건 이상할 게 없긴 하지.’

이해는 하지만 그녀의 컨설턴트로서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덜컥 S급이라도 나오고 계약해버리면 지금 포르세티님과 제 자본으로는 제대로 키우기도 힘듭니다. 솔직히 A급도 살짝 버겁죠. 그게 얼마나 아까운 짓인진 아실 것 아닙니까.]

사실, 성좌들과 달리 각성자들은 검사기술이나 예측이 아무리 발전해도 A급이나 S급의 잠재를 별다른 관찰 없이 초기 등급만으로 확정으로 구분할 순 없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최서린이 아주 적합한 예시다.

초기 능력치 C+급 판정, 하지만 잠재는 A급 예상. 이번 사고에서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한 전투로 대부분의 능력치를 개방하고 특성의 효과가 예상되고 나서야 스카우트들에게 S급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어쨌건 포르세티도 신좌다. 그걸 호소하면 이름값 높은 성좌와 같은 선상에는 서겠지. 협상만 잘하면 S급 잠재라도 데려올 수는 있어. 하지만 관행이라는 게 있으니 A급이나 S급쯤 되면 큰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겠지.’

지금 성좌들은 계약하자마자 그 급에 맞는 장비를 던져주는 게 관행이다.

그러니 대비하자면 유보금은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S급 잠재력 같은 경우는 국외라도 내가 이름을 아는 각성자일 확률이 있다.

미래의 정보가 있으니만큼 개중에선 잘하면 설득이 가능한 인물이 있겠지.

“들어갑니다.”

포르세티도 이성으로는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는지 더 메시지를 보내진 않는다.

안에선 여전히 의미 모를 괴상한 소리만 내며 침묵 중이다.

방 안쪽은 아주 가관이었다.

이미 준비를 마쳤는지 익숙한 마법진 주변에는 의미 모를 피규어들이 산더미다.

“이건 또 뭔···.”

“제물. 부적.”

퉁명스러운 게 몹시 심통이 났나 보다.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무시하는데, 방을 산더미처럼 메운 물건들은 나로서도 상당한 압박이었다.

“이게 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물건들이긴 하다.

나는 인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 북구 신화의 신을 이름으로 삼은 캐릭터다.

서브컬처의 프라모델, 영화의 히어로, 애니메이션의 피규어까지.

특히, 지크프리트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많았다.

“분명 지크프리트 같은 녀석 나올 거야! 이번엔 틀림없어!”

“여신님. 솔직히 나이 잡수시고 좀 부끄럽지 않습니까?”

나이를 언급하자마자 인형 하나가 파공성을 내며 날아들었고 나는 슬쩍 고개를 꺾어 피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가챠야말로 신생 최대의 활력소! 성공적인 확차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

“확차라뇨. 다 확률놀음인데요. 이거 다 미신입니다.”

다시 한번 포르세티의 살기 가득한 째림이 나를 향했다.

“원래 제물을 바치는 건 잘되라고 바치는 게 아냐! 부정 타지 말라고 바치는 거다! 그리고 넌 부정 태우고 있어! 입 다물란 말이다! 가챠, 가챠! 가챠가챠가챠!”

뭐라고 말해도 들어먹을 기세가 아니다.

가챠를 아직도 돌릴 수 없다는 사실 탓인지 눈동자에 광기가 깃들었다.

“가챠를 돌려야 해! 돈다! 그래! 돌아! 가챠신이여! 나에게 힘을!”

거기까지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며 비명을 지르듯 외친 포르세티는 그제야 속의 울분을 다 풀었는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손을 튀겨 방을 가득 메운 장난감과 인형 따위를 싹 치운 그녀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이제 대화할 분위기가 됐나 싶어서 내가 입을 열었을 때, 갑자기 마법진이 빛을 내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음?”

손짓만으로는 치울 수 없는 것이라 남았나 보다.

“어?”

어이를 상실했다는 그 표정을 보니 포르세티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닌 모양. 이 되돌릴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에 난 아주 침착하게 분석해서 그 의문에 답했다.

“가챠, 돌아. 두 단어에 반응한 것 같은데요.”

“아! 아니! 잠깐만! 취소! 취소! 진짜 돌릴 생각 아니었다고! 그만 돌아아아-!”

그리고 가챠는 아주 훌륭하게 폭망했다.

“그래도 뭐, B급은 좀 지켜보죠.”

“이건 분배가 쓰레기잖아.”

나도 이번 녀석은 부정 못 하겠다.

한동안 엎드려서 알아듣지 못할 절규를 내뱉던 포르세티의 몸 주변에서 으스스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길래 그 원망이 나를 향하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지난번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지난 생과 그간 눈앞의 신좌를 지켜본 바론 새로운 계약을 싫어하는 성좌는 없을 거라는 게 내 소견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딱 맞아떨어져서 포르세티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홀로그램부터 띄웠다.

“트레이드 목록에 A급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B급 다섯이면 A급도 충분히 교환 가능할 텐데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제대로 된 B급 다섯보다 평범한 A급 가치가 더 크지!”

“다섯으로도 말입니까?”

“보통 등급당 벌어다 주는 명성은 열 배를 기준으로 잡아. 제대로 된 B급 열 명을 줘도 제대로 된 A급이면 바꿀까 말까 고민하는 게 정상이고.”

그 말에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계산이 이상한데.’

마냥 수긍하기엔 뭔가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뭐가 거슬리는지 확신이 안 간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난 펜을 놀려 해당 사항을 수첩에 적어두었다.

“뭐, 그래도 여기저기서 제시받은 건 많아. A급은 다 하자가 있고 B급은 괜찮은 물건은 많은데, 내 눈으론 특별함을 찾기 어렵더라.”

B급이라 해도 그중 최상위권 능력치라면 상관없으니 받아와 달라고 했었다.

‘기본 잠재 총량은 무시할 수는 없지.’

B급 다섯 주고받아오는 게 해당 등급 최상위 능력치보다 낮으면 그게 더 웃기는 일이다.

“영상 같은 거, 받을 순 없습니까?”

“당연히 능력치랑 개방한 특성 정보 정도만 보냈지. 원래 성좌 간 거래는 추가 명성을 지급하지 않는 한 그렇게 하는 거니까. 그래도 몇 명 정도만 딱 찍어준다면 어떻게든 따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난 잠시 고민하다가 태블릿을 꺼내 미리 정리해두었던 포르세티의 각성자 명단을 쭉 훑었다.

“이중 버릴 인원 명단 적어 보내겠습니다. 그거 넘겨주고 모든 각성자 자동 저장기록하고 일주일간 영상 요청해서 받아보죠.”

“뭐? 아니 그걸 왜 줘! 그런 밤톨만 한 명성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건, 네가 한 말이잖아?”

가챠하면서 25만을 증발시켜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삼켰다.

“보내는 건 D급 이하입니다. A급 혹은 B급 최상을 잘 키워서 벌 명성 생각하면 푼돈이죠. 어차피 지금 가챠로 뽑은 쓸모없는 인원들도 있잖습니까. 몇몇은 선심 쓰듯 임시계약 상태를 넘기는 걸로 해결해보죠..”

스포츠에서도 스카우트 리포트를 작성하려면 경기 정보가 필요한 법이다. 물론, 직접 발품을 파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간 낭비고 난 인프라라고 할만한 것이 아직 전혀 없다.

성좌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고 시스템상 현실에서 보이는 것만 가지고 스카우트해야 하는 게 이쪽 성좌 세계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그러다 보니 트레이드가 별로 활성화가 안 됐어. 이걸 잘 개척할 수만 있다면 아주 애매한 계약자들을 원석과 바꾸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진 않다.’

그리고 상대 성좌로선 팔기 전에 보유 계약자의 치부 혹은 약점이 될만한 정보를 직접 보여주는 일이다. 이 정도 대가마저 없다면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협상하셔서 자료 전부 넘겨받아 두시면 이번 게이트 문제 다 해결한 뒤에 올라와서 분석해보죠.”

앞으로도 상당한 명성 점수가 필요할 것이다.

‘지혜가 연말에 크게 터뜨리면 폭발적으로 들어오긴 하겠지만, 아직은 그 양이 많지 않다. 여신에게 자금 경색이 올 때마다 내가 투자금을 넣는 것도 현명한 건 아냐.’

내 자금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고 여신에게도 내가 자금을 넣어 해결하는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선 안 된다. 그런 건 건전한 관계가 아니다.

“음···. 그냥 네가 그중 몇 정도만 고르고 몇 명은 내가 잘 이야기하고 다른 나머지는 명성으로 구매하거나 하면 안 되나?”

포르세티는 살짝 못마땅한지 바로 허락의 말을 내뱉지 않았다.

“물론 그러셔도 됩니다. 키를 잡으신 건 여신님이시니까요. 다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선 제 조언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적이라고 하면?”

“특성과 능력치, 그리고 들려오는 소문 정도만 종합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또, 어지간하면 한국인 각성자를 뽑아야 할 겁니다. 솔직히 포르세티님은 할 수만 있다면 유럽 국적의 각성자를 가지는 게 좋습니다.”

“···그렇겠지. 인지도를 쌓기 가장 좋은 곳이니까. 좋아. 이번에도 네 판단, 믿어보겠어.”

당장 꾸준히 들어오던 자잘한 명성이 줄어드니 일견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이건 주력으로 키울 능력자를 정하는 일이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고 판단은 가능한 정확해야 했다.

“아, 너도 가챠나 한 번 돌려보고 갈래?”

그런 데 쓸 명성이 어딨느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포르세티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 명성으로 하자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한 번 돌려나 봐. 이자 나갈 거 빼고 짜투리 명성 딱 그 정도 남았어.나도 손 털어야하는데 이게 남아있으면 유혹이 오잖니.."

어차피 기왕 하는 거 최소한 한동안은 미련 싹 끊게 다 써버리게 하는 게 낫겠다. 포르세티가 띄운 홀로그램 창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런 양산형 뽑기게임 같은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10번은 25만인데, 한 번은 2만이군요.”

“대신 10연차는 B 등급을 확정으로 주잖아.”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눌러. 너도 성좌 취급받으니 내가 경고창에 확인만 누르면 그냥 돌아갈걸?”

포르세티의 말에 난 별 생각 없이 버튼을 툭 눌렀고 화면에서 소환 창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포르세티의 외마디 의문사와 함께 푸른색으로 돌던 소환 화면이 붉은색으로,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황금색도 지나 백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금손 오셨다!”

결과물을 본 포르세티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벌떡 일어나며 대성공한 단차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난 다른 의미에서 해당 인물을 주목했다.

저게 내가 아는 얼굴이 확실하다면 계약만 성공하면 실패할 수 없는 투자다.

‘최후의 결사대 8위.’

나온 인물의 카드 프로필은 나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훗날 독일의 자랑으로 성장하는 특급 각성자, 루카 슈나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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