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23화 (23/128)

3장 - 태풍의 눈

“그걸 어떻게···.”

“말씀하시면서도 스스로 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혜성의 임무 창에는 수행하지 않은 연계 임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저기, 혹시 성좌님께서 많이 화나신 겁니까? 그, 그건 그냥 형편이 안 좋아서 미뤄둔 겁니다.”

조금 겁을 먹었나 보다.

사실 안혜성은 그런 인물이었다.

분명 적당한 책임감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도덕적 책임감이지. 그저 평범한 사람 중 양심적인 것뿐이다.’

사랑과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자기 주관과 생각이 확고한 유지혜가 가진 성격적 책임감에는 절대 못 미친다.

그는 매일 마저 못해서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이유는 죽기가 두렵고 주변 사람이 다치는 게 두려울 뿐인 평범한 사람이다.

악몽 같은 삶을 버텨나가는 그의 정신력은 일견 강해 보이기도 하지만, 양심적인 사람이어서일 뿐이다.

심지를 잡고 굳건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떠밀리는 배 위에서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것. 그게 안혜성이 가진 정신력의 근원이다.

그의 정신력 수치는 높은 편이 아니다. 정신을 보호해 주는 특성도 없다.

각성자의 초기 능력치와 자연 특성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그의 약한 본심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혜성씨. 의미 없는 질문은 하지 맙시다. 우린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 아닙니까?”

성좌가 널 보고 있고 실망해서 지금보다 더 낭떠러지로 떠밀어버릴 수도 있다는 그런 압박을.

“우린 이 게이트 공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그러려면 저는 이 대화를 빨리 끝내고 가능한 넓은 범위를 정찰하고 와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포르세티님께 들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저는 가족의 치료비를 구하는 것만으로 벅찹니다. 각성자 대출 상환 압박이 들어오지 않게 그 이자까지 마련해야 합니다. 아무 보상도 없는, 그런 의미 모를 임무를 수행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겠죠. 저도 알고 오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 신경 쓰는 척 해봤자, 처음처럼 잡동사니 몇 개 던져주고 말겠지. 하는 생각도 있으시겠죠.”

“그건···.”

“이제 제대로 헌터 보급관으로 진로를 잡으려는데, 굳이 자신에게 성좌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실 테죠. 그래서 형편 좀 좋아지면 하겠다고 변명하듯 내뱉으시던 것이 한 주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형편, 좋아질 기미 보입니까?”

정곡을 찔렀는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눈앞에 그 성좌의 명령을 받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는데 긍정을 하기도 쉽지 않겠지.

“죄송합니다. 저는 성좌의 관심을 받을만한 인물이 못 됩니다. 이상한 특성 때문에 전투원으로선 실격이고요.”

“그건 이제 당신의 소관이 아니게 됐습니다. 저 하늘 위의 성좌가 그걸 모를 것 같습니까?”

물론,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나처럼 그럴 것이다. 당장 보상이 필요한 상황인데 성좌는 대가 없는 임무만 내밀면서 그저 그대로 실행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그건 내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이 남자의 믿음을 사려면 유지혜와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된다. 유지혜는 광신이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다. 그녀에겐 서서히 스며드는 신뢰 관계가 필요했던 거다.

반면, 안혜성에게 필요한 것은 광신적인 믿음이다. 그에게는 끝의 끝에 보상을 약속하고 임무를 줘봤자 그 마음속에는 항상 ‘이건 계약관계다’하는 생각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저 그간은 당신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당신과 계약한 그 성좌는 다릅니다.”

그래선 안 된다. 이미 자기 자신에게 깊은 불신을 가진 그에게는 그 생각조차 뛰어넘을 믿음의 대상이 필요했다.

‘요컨대, 안혜성의 믿음을 사는 데 필요한 건 나를 선택하신 위대한 신이다.’

그의 쪼그라든 자아를 찍어누르고 성좌를 믿는, 그래서 달라지는 자신에 대한 자아를 넣어줘야 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전···.”

“포르세티님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당신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안혜성은 침묵했다. 그리고 난 사이비 교주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이 묘한 기분을 참아가며 그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저를 보냈죠. 저는 분명 당신에게 솔직해져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누구의 말이겠습니까?”

“···이제 와 믿으라는 겁니까. 3년간 방치됐었고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은 다 떨어져 가고 수리조차 못 해 낡은 장비가 부끄러워 이젠 파티에 전투조로는 지원도 못 하죠.”

“성좌라 해도 모든 인간을 바라보진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을 보셨죠. 인생이 바뀔 겁니다.”

나는 품속에서 미리 넣어두었던 수표 한 장을 꺼냈다.

“한동안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파티가 전부 모이기 전까진 일에서 빼 드리죠. 그 임무의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시고 나면 이번 게이트, 듀얼로 참가시켜 드리겠습니다.”

안혜성은 수표를 받아들고 한 번, 그리고 이중 계약이라는 말에 다시 흠칫했다.

전투와 짐꾼 역할을 모두 맡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둔지에 있을 때는 짐꾼 업무도 해야 하긴 하지만, 전투조와 같은 돈을 받고 특별한 전리품이 생기면 그것도 나눠 받는다.

“제가 정말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선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래. 광신도야말로 버서커에 가장 잘 어울리지.

“가세요. 그래서 일부러 적정 짐꾼 인원보다 한 명을 더 받은 겁니다.”

내게 고개를 푹 숙여 보이곤 게이트 밖을 향해 달리는 안혜성의 눈에는 분명 이전의 흐릿한 공허함 대신 또렷한 열망이 있었다.

그를 보낸 뒤 이동 흔적을 지우는 장비와 탐사를 보조하는 도구들을 착용한 내 몸이 암살자들의 기술을 쓰는 것처럼 흐려지며 주변 식생의 색으로 동화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저번 생에 암살자 기술도 익혀보는 건데.’

레인저 계통의 시야와 기척을 죽이는 능력은 훌륭하지만, 자신을 은폐하는 능력은 암살자 직군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정찰 직군에 극단적으로 특화하기 위해, 전투 능력이 애매해지는 걸 감수하고 암살자와 궁사를 동시에 가는 부류도 있다.

‘직군 특성상 능력치 분배 문제는 생기지 않긴 하는데 재능 수치가 아깝지. 빌드가 꼬이게 되어 있어.’

정찰 중 발견한 괴물은 비정상적인 형태의 거미와 살무사, 독도마뱀, 그리고 몇몇 독충과 식인식물 정도가 잇었다.

질병을 만들만한 괴물로는 퍼피룸, 동굴 속에 보이던 흡혈박쥐, 필드에 날아다니는 거대한 흡혈나방 정도가 보인다.

‘하필 주력 필드 괴물에 검줄무늬 카멜레온이 있군.’

기습을 당하기 십상이라 몹시 귀찮은 종류의 괴물이다. 깊숙한 곳에는 천산갑류 괴물과 멧돼지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돈은 되겠어.’

문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네임드 몬스터가 어떤 놈인가인데, 어느 정도는 후보군을 추린 상태였다.

‘악어거나. 혹은 하늘이겠군. 수리류면 아주 귀찮아지는데.’

지능이 높은 앵무새류 괴조도 꽤 까다롭다.

반면, 희소식도 하나 있었으나 존재 여부를 확신하긴 어려워 일단 담아만 두었다.

성공적으로 정찰을 마친 내게 글자 너머로도 느껴지는, 포르세티의 폭소가 가득 담긴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재밌으셨습니까?]

[응. 간만에 신나게 웃었네. 유치한데 그래도 의외로 그런 게 그 아이한테는 적중이었던 모양이야?]

[남자란 건 누구나 다 그런 유치한 꿈 하나쯤은 가슴 한편에 담고 사는 거죠.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역전되는 그런 순간에 대한 로망 말입니다. 로또를 괜히 사겠습니까.]

멀리 찾을 것도 없다. 나 자신이 산증인이 아닌가?

[로망이라···. 확실히 존경심이 느껴지는 눈빛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느낌이 있긴 했어. 어쩌면 신앙도 잘하면 조금은 수급될 것 같고. 물론, 개미 코털보다도 양은 적겠지만.]

하지만 포르세티의 다음 메시지는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다만, 이런 방법을 쓸 거라면 나에게도 반드시 미리 이야기하도록.]

[문제 있는 행동입니까?]

[네가 한 건 신도 모집에 가까워. 신좌에게 있어선 아주 신중해야 할 작업이지. 특히 광신도라면 더더욱. 지나친 믿음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저런 놈이 실망해서 돌아서면 아주 악질이 되거든.]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확실하게 사과하고 가야 했다. 이런 부분은 몰랐더라도 애매하게 덮어두고 갔다가 나중에 문제가 된다면 용서되는 부분이 아니다.

[뭐, 괜찮아. 지금 내겐 나만의 신도랄 놈조차도 없으니까. 이리저리 잴 상황은 아니지. 아빠나 할아버지도 신도 늘리려고 여기저기 작업 치는 상황에 내가 찬밥 더운밥을 가려야겠어?]

메시지의 뒷말은 내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어조는 아니라 그에 답하진 않았다.

그리고 포르세티도 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닌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간 나눈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여신에겐 뭔가 아버지나 조부에 대한 동경심 비슷한 게 보였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어중간한 위치의 내가 그랬으니 틀림없겠지.

나랑 다른 점이라면, 타고난 재능에 막힌 내 첫 삶과 달리 포르세티도 신왕의 계보를 잇고 있어 가능성이 있다는 차이뿐이다.

[그러면 이제 뿌린 씨앗은 둘이네. 마지막은?]

[이진아는 주변에 휩쓸리는 타입에 기분파죠. 좋은 조건으로 계속 초대하면서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길 겁니다.]

이진아는 좋게 말해 활달하고 기분파, 분위기메이커 타입이다.

이런 걸 좋게 말하면 행복 전도사다.

반면, 나쁘게 말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성격이었다.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동질감으로 믿음을 살 수 있는 타입.’

다만, 그 믿음의 값어치가 몹시 싸다. 하지만 그녀도 유지혜나 안혜성과는 포르세티의 계약자라는 관계로 묶여있으니 그 값싼 믿음을 사는 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별 볼 일 없던 안혜성이 갑자기 달라지는데 그게 포르세티 덕분이다?

그리고 안혜성과 내 사이에 성좌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 덕분임을 슬쩍 그 앞에서 흘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쪽에 끼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이다.

‘간을 보더라도 유지혜까지 끌어들일 시점에선 게임은 끝이다.’

내가 엄선한 인물인 만큼 그 성격은 파악하고 있다.

그녀는 의외로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다. 거기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즉, 가질 수 없는 남의 것을 보면서 불만을 품는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이진아는 특유의 붙임성을 통해 친해지는 식으로 자기도 포르세티의 환심을 살 방법을 알아보려 할 것이다.

레이드 다니며 정말 위험한 상황만 아니면 파티장에게 사근사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만 봐도 조직문화에 몹시 순종적이고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안다.

관점에 따라선 정말 좋은 성격이다. 특히 윗사람들은 엄청나게 좋아하겠지.

‘한마디로 남을 해치는 성격이 아니지.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남을 돕고 그에 감사를 받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라 서포터라는 직군은 천직이야.’

아무리 생존이 걸리고 돈이 걸리고 이 헌터라는 직업이 일반적인 사람의 일보다는 극단적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어디까지나 적성이라는 건 존재했다.

[서포터가 천직, 굳이 큰 이점인가?]

[뭐, 사실 큰 차이는 나지 않겠죠. 재능 차이를 극복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누구든 목숨 걸고 하다 보면 숙련되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래도 적성에 맞는 인물이 창조적인 빌드나 잘 안 쓰던 기술의 장점도 찾아내는 거고, 나중에 아랫사람을 교육하는 상황이 되면 육성 능력도 뛰어난 법이다.

정통 서포터인 이진아는 후기 빌드를 써도 극적으로 등급에 비해 대단해지거나 하는 건 없다.

그녀를 택한 건, 포르세티의 계약자 군에 있었던 몇 안 되는, 심지어 한국인인 서포터였기 때문이다.

[뭐, 그게 일반적이겠지. 하지만 네가 말한 두 명을 생각하면 솔직히 좀 밍밍한 느낌이야.]

[익숙해지셔야죠. 앞으로도 그 둘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 컨설팅으로 기존 빌드를 최적화하는 것에 그칠 겁니다. 데리고 계시던 그 많은 인원 중에 고작 둘이었죠.]

앞선 둘이 좀 임팩트 있고 극단적인 경우일 뿐, 앞으로 새로 받을 인원들은 이진아 같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정 조건에선 빌드만으로 A등급, 좀 심한 유지혜는 S급에 준하는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니 포르세티의 실망감이 이해는 갔다. 눈이 높아진 거겠지. 하지만 여기서 더 높이는 것도 문제니까.

이진아는 가능한 최적화를 시킨다는 가정하에 지금은 B와 A등급 사이의 어딘가.

대전쟁 시기엔 B급 취급받는 서포터겠지.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나를 포함해 A급 딜러 셋에 B급 서포터 하나면, 중견급 길드의 수뇌부를 거의 절반쯤은 채운 거다. 최소한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다니진 않는다.

‘뭐, 우리가 모두 그런 풀포텐을 채울 만큼 성장하려면 갈 길은 멀겠지.’

아직 시간은 많다. 하나하나 수를 둬가다 보면 내가 그리는 포석도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진아는 좀 내버려둔다?]

[네. 이진아의 믿음은 쉽게 살 수 있는 만큼, 대신 계약으로 단단히 옭아매야 합니다.]

그래서 이진아는 당장은 애태우는 것, 그리고 차곡차곡 잘 쌓아가기만 하면 된다.

[포르세티의 계약자 유지혜가 운영하는 길드. 그 족쇄로 말이지?]

[예.]

[자, 그럼 기존 인원은 대충 다 해결했잖아?]

나도 대충 뭔 말이 나올지 짐작이 갔다.

[가챠의 시간인가!]

이 가챠 중독자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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