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태풍의 눈
이번에 배정된 게이트의 종류는 정글, 난이도는 [E급-상]으로 적정 전투 인원은 10인에서 15인으로 책정되었다.
현재는 각 파트장을 모아놓고 브리핑 중이다. 레이드 파티 수준의 완전 편제를 하게 되면 전위장, 정찰대장, 원거리조장, 지원조장과 보급대장이 나뉘게 된다.
“게이트 마력 측정에 따르면 보스는 없는 것으로 추정. 잘하면 네임드 개체 하나 정도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 인원은 저번 던전을 함께한 다섯에 최서린 그룹 셋을 합치면 탱커1, 전위2, 원거리3, 서포터2의 구성이다. 최서린이 부대장 겸 원거리 조장을 요구하기에 넘겨주었다.
유일한 C급 헌터라 요구하면 안 줄 수도 없다.
“역시 듣던 대로 전위 지원이 부족하네. 그래서 총인원은 몇 명으로 할 거야? 최소인 10인?”
그녀의 말대로 파티 구성을 올려놨음에도 전위 지원은 많지 않다.
“현재 조합을 생각하면 10인은 구멍이 많이 생깁니다. 진형은 3, 1, 5, 3, 1로 생각 중이고 11인에서 넉넉하게 13인까지 예상하는 중입니다.”
“그러면 11인이라고 할 때, 추가는 서브 탱커, 전위, 그리고 서포터 하나씩?”
11인 편제라면 정찰담당에서 1명, 후위 1명이 빠진다.
“그렇죠. 13인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전위를 하나 더하고 정찰조 인원 하나가 더 추가될 겁니다.”
“실력에 자신이 없나 봐? 본인 능력에 자신 있으면 정찰조는 한 명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최서린이 내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그녀가 트집을 잡는 부분은 괜히 내가 파티장인 걸 이용해 편하게 공략하고 싶은 게 아니냐는 말이다.
아마도 그녀가 원하는 건 더 빠른 공략, 혹은 수익을 더 내는 방법이겠지.
제시하려는 게 뭔지 예상은 간다.
“자신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13인 완전 편제 기준에서 정찰을 마지막에 추가하려는 거고요. 편제는 가능한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정석이 정석인 이유가 있으니까요.”
물론, 자신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능하면 게이트 공략의 완전 편제를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최서린도 정석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닌지 일단 고개는 끄덕인다.
“나도 뭔 말인진 알겠는데, 완전 편제는 좀 고리타분하지 않아? 그쪽도 공부 많이 한 걸로 보이는데 변형 편성 정도는 익혔을 것 아냐. 정찰조를 추가하기보단 2인 대포 체제가 낫지 않겠어?”
“신입이 주력이니 안전하게 가는 겁니다.”
게이트 공략을 할 때, 보통 한 팀당 두 명의 정찰 직군을 둔다. 길잡이의 판단은 파티를 몰살시킬 수 있고 틀린 판단의 가능성은 가능한 막아내기 위해서다.
31531 완전편제의 전방은 메인 탱커를 중심으로 전위 둘이 탱커의 양옆 사각을 보호하며, 서브 탱커는 메인의 바로 뒤에 대기하면서 비는 곳을 지원한다.
중앙에는 원거리 셋을 두고 양옆은 전위 둘이 보호. 단, 그중 원거리 둘은 대개 레인저인데 중앙을 지키는 메인 딜러의 옆에서 밖으로 빠져나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돌아오곤 했다.
단, 레인저 대신 암살자일 경우 진형 구성이 좀 바뀐다.
그리고 그 바로 뒷자리는 서포터의 자리다. 그들에게는 대개 자율권이 부여된다. 적에게 지성이 있으면 가장 많은 견제를 받는 직군이기에 각자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게이트가 열리던 극초기 지성 없는 놈들만 나오던 땐, 서포터들이 지금 원거리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차 대격변 후로는 대개 지능이 높은 보스가 거의 상수로 나오고 그게 아니더라도 게이트 당 네임드 중 교활한 놈들이 최소 하나 정도는 있다.
‘제대로 된 서포터의 생존능력은 각성자 직군 중 탱커 다음으로 높으니까. 자연스럽게 위치가 바뀌는 거지.’
마지막으로 최후미에도 전위 직군 하나를 둔다. 후위에서 기습을 당할 시, 원거리 옆의 전위가 후위로 지원하는 동안 시간을 벌게 되며, 대개 탱커 직군을 제외한 가장 단단한 전위가 최후미를 맡는 편이다.
이 경우, 서브탱커가 후위 전투의 메인을 맡게 된다. 애초에 후위를 기습당했다는 것 자체가 정찰 직군의 경계 실패기 때문에, 애초에 전술적으로도 있어선 안 될 일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편제에 관한 토론이 있었지만, 진형에 대한 논의는 결국 내 의도대로 됐다.
“정글은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게이트는 아닙니다. 길드들도 극지대를 입찰하면 했지, 어지간하면 입찰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렇겠지. 독이나 질병 때문에 귀찮기로 유명하잖아.”
난이도야 우리가 지난번에 겪었던 용암지대 따위의 극한지대가 어렵지만, 각종 저항 장비야 돈이나 대여로 해결할 수 있다.
각성자는 외계 질병에 대한 내성이 있고 기본적 마력 장막 덕분에 질병 대부분이 통하진 않지만, 전투 중에 장벽이 깨지거나 하면 예외 없다.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독과 질병 쪽으로 특화된 서포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자연스럽게 기피된다.
“하지만 저희에겐 소연씨도 있고 이 회의 자리에는 없지만, 진아씨도 있죠. 두 분 모두 이 파티에 있기엔 고스펙이니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게이트 안의 괴물은 초입부 평원 지역에 거대 늑대들이, 정글 초입부에는 뱀과 거미류 몬스터가 목격되었다는 참고사항이 적혀있었다.
다행히 이진아에게 독 해제와 관련한 기술이 있고 강소연에겐 질병 해제와 관련한 기술이 있다. 대개 E급 능력자가 쓰는 해제 기술이면 D급 일반 몬스터의 것까지는 해결할 수 있다.
“입장 허가는 이미 나왔습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가죠. 나머지는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오늘 사냥하는 물건은 당일 정산하겠습니다.”
짐꾼들은 이번엔 내가 따로 면접하지 않았고 저번에 쌓은 세 사람의 인맥에 의존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보급대장을 맡은 건 베테랑 이우석이다.
게이트 등급이 올라가고 게이트가 넓어질수록 고용해야 하는 짐꾼의 수가 많아지는데, 짐꾼들 사회에 별다른 끈이 없는 내가 하나하나 평판을 조사하고 면접해 고용하는 건 시간 낭비다.
대개 평판과 인물됨이 확실한 사람 주변에는 괜찮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추가 모집한 인원은 4명. 저번에 25만에 함께해줬던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원 35만에 계약했고 계약 조건은 게이트 공략 종료할 때까지다.
“그럼 들어가서 주변 정리하고 전초기지부터 만들겠습니다.”
E급이니까 지난번같이 정찰대 역할을 하는 적은 없을 것이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농담 없이 자동차만 한, 눈이 검게 변색이 된 늑대들이 우리를 반긴다.
“역시 시시하네.”
그리고 전위들이 잠깐 놈들의 돌진을 쳐내는 사이 나무 기둥 정도는 되어 보이는 얼음 화살 수십 개를 만들어 쏴 날린 최서린의 일제사격에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서린. 그럼 돈 안 돼.”
“···참나, 이런 게이트 돌면서 그런 것까지 고려하면서 해야 해?”
“그, 서린 누님.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좀···.”
난 쓴웃음을 지었다. 최서린 입장에서야 여긴 돈 벌러 온 게 아니라 실적을 쌓으려고 온 거다.
아니면 스트레스를 풀거나 경험치 쌓으러 온 거겠지.
다행히 옆에서 지적하는 저 두 사람은 상식인으로 보였다.
사립 탐정이라는 남자는 아까부터 날 힐끗거리는 게 할 말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안혜성이 아직 일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쪽과 먼저 대화하기로 했다.
“강휘성씨.”
“넵.”
“할 말씀 있으시면 하시죠.”
“사람 없는 쪽으로 가죠.”
파티에서 살짝 떨어진 우리는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상 봤습니다. 협조 요청해서 자료로 넘기신 캠 영상도 전부 확인했고요.”
“뭐 나온 게 있습니까?”
“일단 서울 조직이고 습격을 온 인물의 생활권은 서울 서부일 것으로 추정.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곳에 다녀갔을 확률이 높죠.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인천을 근거지로 하는 조직 아니겠습니까?”
“인천이라···.”
인천은 거기 범죄조직이 워낙 많아서 찍어본 거겠지.
그건 빗나갔지만, 거미의 초기 아지트가 서울 서쪽이라는 것은 맞췄다.
“그런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 가면 재질. 암토나이트로 만든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괴물은 인천 쪽에서만 기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잘은 안 보이지만, 은신 깨진 직후 모습을 최대한 확대하면 귀걸이 세공을 추정할 수 있는데, 새롬산업이라고 좀 영세한 공장에서 만든 장신구죠.”
“따라서 아지트는 서울 서부에 있다?”
“일단은요. 그리 추정하고 일반인 좀 고용해서 그 거미 문양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 범위를 좁혀가 봐야겠죠.”
나는 내가 겪은 두 번의 습격에 대해서 그에게 알려주었다.
“집안 가구들을 박살 내는 짓을 두 번이나? 음, 괴롭혀서 저항 의지를 꺾는 걸 좋아하는 놈들이군요.”
“집요하다는 건 느꼈습니다.”
“그럴 정도면 이미 겪어본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문양을 쓰면서 여태 관리국에 드러나진 않았죠. 즉, 각성자보단 신고를 쉽게 못 할 만한 일반인. 그나마도 어지간하면 잘 안 건드리는 조직.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빌런을 공격해서 확장하는 범죄집단.”
정확하다. 거미는 범죄집단들을 흡수해가며 자기는 수면 뒤에 몸을 숨기고 확장해나갔던 조직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야 할 건 최근에 와해가 된 범죄조직의 조직원이겠네요. 그런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습격이 왔다는 건, 좋은 정보였습니다.”
“일리가 있군요.”
“그 선을 타고 가다 보면 급히 습격을 시도하는 놈들이 나올 겁니다. 그때가 누님들하고 당신이 나서고 관리국의 지원을 받아야 할 때겠죠.”
“알겠습니다. 조사하다가 뭔가 나오면 알려주세요. 협조하겠습니다.”
“네. 그러죠. 아, 그리고 저희 누나 말인데···.”
그는 갑자기 강소연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휘성은 꽤 붙임성이 좋은 투머치토커였다. 나는 살짝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가 꽤 쓸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친분도 쌓을 겸, 그 이유 모를 홍보를 들어주었다.
“···참고하죠.”
대부분은 적당한 감탄사를 내뱉어주며 흘려들었지만, 개중 알레르기라든가 음식, 디저트 따위의 호불호에 관한 내용은 기억해뒀다. 보급품을 주문할 때, 이런 세세한 부분도 가능한 챙기는 것이 좋다.
“어딘가 나사 빠진 저희 누님들, 잘 좀 부탁합니다.”
강휘성은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곤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갔다.
“전투조 일곱 분께서는 조 나누셔서 전초기지를 지켜주시고 보급팀도 도축 마무리하시면 시간대별로 한 분씩 남아주세요. 저는 잠깐 정비 후에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자기 차례 아닐 땐, 근처에서 놀아도 되는 거죠?”
게이트에서 1시간 거리에 도시가 있었고 그 안쪽으론 괜찮은 유흥가가 있었기에 이진아는 지난번 친해진 인원들과 함께 놀러 갈 생각인 것 같다.
“시간만 지켜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예쓰!”
“그리고 안혜성 기사님! 정찰 나가야 합니다. 제 정비 좀 도와주시죠!”
“예! 알겠습니다. 잠시! 이것만 마치고 바로 갈게요!”
안혜성은 하던 일 마치고 미리 주문해서 보급팀에 넘겨줬던 정찰용 도구들을 전초기지의 창고나 널브러진 수레 여기저기서 찾아다 내게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갈 때쯤, 경계를 맡게 된 전투조와 보급조의 두 사람만 대기하면서 주변에 우리만 남았을 때,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혜성씨. 왜 성좌가 내리는 임무를 하나도 수행하지 않으십니까?”
내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