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태풍의 눈
본대로 달린다. 해자, 작은 범위를 둘러치며 수레를 분리한 금속과 목재로 만든 전투진지, 그리고 그 안의 조잡한 감시탑이 나를 반겼다.
그 방벽 앞에는 주변에서 베어온 목재로 만든 말뚝이 빼곡히 박혀 있다.
통과할 수 있는 경로는 전위들이 일부로 비워둔 정면의 직선 통로 하나뿐. 진지 안으로 들어서자 두 서포터가 소진된 내 스태미너를 채워 넣었다.
이후, 전투가 시작된 시점부터 약 7분 정도가 지나자 관리국의 순찰대장이 슬슬 정리가 되어가는 우리 전투 진지 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순찰대장은 A급 각성자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빌런은 아직 주변에 있습니까?”
“쫓아냈습니다.”
“전투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난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절반 이상을 처리했다. 이 상태면 곧 도망칠 것이고 괜히 지금 전투에 끼어들게 해봤자 정산해주는 것만 귀찮아질 것이다.
순찰대장도 딱히 기대한 것은 아닌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대부분 C급 이상의 헌터로 구성된 저들에겐 어차피 푼돈이다.
그렇다고 도와주면 안 받아갈 건 아니겠지만, 저 사람들도 굳이 사냥꾼들과 얼굴 붉히고 싶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저희도 참고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대기하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개입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 공무원 취급을 받는 순찰대원들은 멀리서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대장이 우리 실력을 확인하고 문제없다고 한 거겠지.
다시 몇 분이 더 지나자 처음의 2할 정도가 남았다.
나머지 괴물들은 슬금슬금 도망가기 시작했다.
흩어져서 달아나는 괴물을 적당히 추격해 알뜰하게 전과를 올렸다.
이후 바로 전장 정리에 들어간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수확은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 된 것 같습니다.”
전리품을 갈무리하는 것도 일이다. 몇 시간 후면 해가 지고 예정된 사냥 시간이 종료되니 지금부터 정리해도 정시에 퇴근하려면 빠듯할 거다.
“끝나셨군요. 참고용 캠 영상 좀 부탁하겠습니다.”
전투 종료 후에 제출할 영상은 두 개면 충분했기에 놈에게 시선을 많이 뒀던 내 것과 민호의 것을 넘겼다.
즉석에서 장비를 통해 영상 내용을 확인한 순찰대장은 곧장 놈이 사라졌던 숲 속으로 달려갔으나, 곧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왔다.
“흔적이 없습니까?”
“도망친 흔적이야 있는데, 공격 성공하셨길래 핏자국을 기대했습니다만, 약품을 써서 모조리 증발시켜 버렸더군요. 이리 치밀하게 행동하는 건 대개 범죄조직이죠. 적발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신고하실 겁니까?”
나는 순찰대장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답했다.
“그 집단으로 추정되는 빌런 습격이 이게 처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따로 신고하기보단, 기존 담당하시던 집행부 쪽에 추가로 제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순찰대장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딱 봐도 귀찮아 보이는 사건이 자기 담당이 아니라서인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도 수사가 괜히 분리되는 것보다는 이쪽이 좋다.
같은 사건으로 취급하고 지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징후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배치될 것이다.
‘관리국도 끌어들일 수 있으면 나쁠 게 없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은 있었지만, 미래라는 게 장담할 수는 없다.
제출한 자료는 가져가서 복사한 뒤, 돌려받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관리국 순찰대는 그 대장의 인솔을 따라 왔을 때처럼 조용히 다시 멀어졌다.
짐꾼들은 내가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진지를 만들 때 사용했던 수레를 다시 조립한 뒤, 사체의 수거 작업에 들어갔다.
사냥도 끝났겠다, 그 옆에서 다른 헌터들도 주변에 널브러진 괴물 시체들을 함께 거둬들이는 중이다.
“민호 그리고 소연씨. 기사분들이 어떤 부위를 챙기는지 봐두시거나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 형. 저한테도 필요합니까?”
민호는 귀찮은지 자기는 어차피 관리국으로 갈 거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민호. 넌 나중에 헌터 범죄 수사할 때, 헌터들이 사냥하고 숨긴다거나 밀수할만한 품목이 뭔지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아···. 그것도 그러네요.”
국가에 일정 금액을 내고 들어갈 수 있게 지정한 게이트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개인 헌터들이 국가 게이트에서 수확한 물건의 1할은 국가 소유다.
미발견 식물이나 괴물처럼 국가 전략적 자산이 될만한 것들은 민간 및 국가 합작 법인, 국립 게이트 감정 평가원에서 결정 내린 가격으로 선매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게 그런 기관이다.
기업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는 그 보상이 짠 경우가 많았고 길드나 연구소에 팔아넘기기 위해서 은신 가능한 직군에 의뢰하는 범죄가 일어나곤 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각성자 범죄조직의 주 수익원 중 하나가 그런 필드, 게이트 물품의 밀수다.
이민호도 관리국에 들어가서 아까 만났던 순찰대 같은 데 들어가게 되면 그런 괴물들 시체의 흔적을 검사, 증거를 찾아서 정부부처와 합동 수사를 하거나 하는 일이 종종 생길 것이다.
“그리고 소연씨나 다른 헌터분들은 작게는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성장하셔서 파티장을 맡거나 길드에 들어가거나 하시면 호구 잡힌다거나 파티원들이 혹여 헛짓하는 거 막으려면 이것도 다 알아두셔야 하는 정보입니다.”
나는 그렇게 낮지만, 모두에게 들릴 수 있을 만한 크기로 두 사람에게 조언을 건넸다.
괴물이라는 게 딱 E급 필드에 E급만 있진 않다.
D급에 가도 E급이 상당하고 C급에 가도 아직 E급 괴물이 적지만 나온다.
헌터 역시 실력이 올라서 저급 괴물을 쉽게 잡을 수 있을 때, 그런 귀한 부위가 어딘지 알고 그걸 상하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수입이 꽤 크게 올라가는 편이다.
“보통 파티장을 직접 잡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긴 하지만, 반대로 팀을 직접 이끌지 않으면 잘 모르게 되는 정보기도 하죠. 헌터 세계가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어떤 헌터와 가면 수익이 더 많이 나온다. 확실히 파티 모집할 때 은근히 차이가 나긴 하겠네요.”
어느새 이진아가 내 옆에 서서 살포시 웃으며 끼어들었다. 시체를 다 옮기고 딴짓을 하던 파티원들도 어느새 슬쩍 일어나 내 옆에 붙는 모습이 보인다.
“좋은 생각입니다. 파티장 분께서 생각이 깊으시네요. 기사들 처지에서도 전투하시는 분들 수입이 잘 나와야 파티 분위기가 좋고 성과 보너스도 나오고 그러거든요.”
“좀 불량한 기사 중에는 이런 걸 잘 모르거나 신입 헌터와 사냥 가서 비싼 부위들 숨겨놓고 나중에 몰래 팔아먹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있죠. 혜성이 말대로 알아두셔서 나쁠 건 없습니다.”
일행 중 가장 베테랑 짐꾼인 이우석이 아직 그들의 전투 수레에 남은 아귀 사체 하나를 집어들어 해체하면서 설명에 들어갔다.
“이 아귀 같은 경우는 머리든 가죽이든 진짜 버릴 것이 없습니다.”
“네. 특히 턱뼈가 비싸죠.”
“파티장님 말대롭니다. 가능하면 머리를 부수기보단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공격해 주시는 것이 좋아요. 마력이 담긴 기술에 충격을 받으면 그 내구도가 엉망이 되거든요.”
아귀의 턱뼈 같은 경우는 격변 이전 현대 기술로 만들어내는 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했기에 기업이나 장인들이 싹 쓸어가는 품목 중 하나다.
“가죽은 상등품은 아니지만, 워낙 질겨서 그런 용도로 사가는 기업이 있으니 무난한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소화액도 죽이고 바로 처리해서 보존할 수만 있으면 비싸게 팔립니다.”
“아, 그걸 따로 처리해야 하나요?”
“처리하려면 특별 제작된 마력 주입기가 필요한데···.”
“저희는 아귀를 상대할 걸 생각하고 온 게 아니니 그걸 따로 준비할 순 없던 거죠.”
아귀의 소화액은 그 유사한 마력만 유지해준다는 가정하에 거의 녹이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물질이다. 다만, 죽으면 마력이 끊기면서 몇 분 내로 효력을 잃는다.
그리고 아귀의 위는 그런 소화액을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라 운반하는 데 써야 하긴 하는데, 오직 아귀 소화액 한정이라 연구 목적으로 학자들이 약간 구매하는 걸 빼면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은 헬라인데, 헬라의 사리는 화약 대용으로 쓸 수 있어서 딱 그것만 채취할 겁니다.”
그 외에도 이우석은 우리가 잡은 괴물들의 용처에 대해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물론, 나는 전혀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다 아는 내용이니까.’
나는 짐꾼들이 파티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열심히 사무관에게 제출할 서류를 작성했다. 그렇게 기념비적인 첫 사냥이 끝났다.
“72만원이라. 아직 정산된 건 아니지만, 가장 낮은 등급의 필드인데도 생각보다 돈이 되네요.”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돈이 안 되면 쓰겠냐.”
당일 수확을 마치고 같은 방향인 민호와 귀가하는 중이다.
집이 좀 먼 이들은 근처 숙박시설에서 잔다는 모양이다.
국가 몫을 제출하고 남은 물건은 창고에 보관해둔 상태다.
많은 물량을 한 번에 팔아야 도매상에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경매 붙이거나 하나하나 가게를 찾아다니며 팔거나 국가, 혹은 주변 길드에 팔아야 한다. 당연하지만 가격을 후려치기 때문에 전혀 추천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쨌든, 현 시세를 근거로 오늘 일당이 72만원이라는 결과를 산출해주자 민호는 꽤 놀라는 표정이다.
“E급 헌터도 억대 연봉인데요.”
“안 쉬고 하면 그렇긴 한데, 한 달 내내가 가능할 리 있겠냐. 우리는 자기 관리만 잘하면 한 주에 6일도 일하는 저 기사들이랑은 달라. 몸이 망가진다.”
그리고 장비가 비싼 만큼, 망가질 경우의 손해도 크고 정비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공치는 날도 있다.
“이것저것 다 떼고 위험부담 생각하면 저등급은 기사들이랑 버는 거에 큰 차이가 없어.”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자 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력을 다하는 그런 전투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건 저도 체감했어요. 저번 게이트 끝나고 3일 정도는 앓아누웠었죠.”
저런 것도 사실 경험이다. 마력만 썼을 뿐, 최대한 몸에 여유를 둬가며 움직인 나하곤 달리 신입 동기들은 전력을 다해 움직였을 거고 그래서 뻗은 거다.
물론, 민호야 전위인 것도 있었고 나도 다음 날부터 바로 움직였다곤 해도 근육통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회복 기간은 포르세티와 머리를 쓰는 노동을 했던 것이다.
“보통은 한 달에 보름 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쉬는 게 정석이야. 대규모 게이트에 몇 개월짜리 원정이라도 가는 날에는 그만큼 긴 휴식기를 가지지.”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좋은 스승이 있어서. 괜찮은 성좌를 만나기도 했고.”
내 답이 괜찮았는지 녀석의 의문은 바로 사그라졌다. 민호가 내 성좌가 누군지 물었지만, 난 그저 웃을 뿐 답해주진 않았다.
‘이 녀석은 많이들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끌어들일 수 있으면야 좋겠지만, 그 푼수 여신의 지금 자금 사정으로는 이 녀석을 제대로 키우기가 힘들다. 거기에 포르세티와의 첫 작품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다른 성좌의 이목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그보다 밤에 기습을 올 것 같은데.’
실패했다는 보고를 해서 다른 녀석이 기습을 오건, 페이트 본인이 열 받아서 날 잡으러 오든, 검은 거미라는 조직 특성상 끊임없이 괴롭히려 할 것이 뻔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괜히 주도권을 내준, 저쪽이 유리한 상황에서 싸워주고 싶진 않으니 아예 상대해주지 않기로 했다.
[포르세티님. 잠시 방 좀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응? 뭐라도 있어?]
[조용한 곳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그래? 어려울 건 없지.]
나를 그리 전송하는 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다행히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습을 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거미들이 엿 먹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리를 해뒀던 내 방은 또 다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