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8화 (18/128)

3장 - 태풍의 눈

* * *

안혜성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어려운 삶을 살았다. 행복은 어린 시절, 빛바랜 앨범 속에만 있었다.

부친은 3차 대격변 시기 식물인간이 되었고 가족은 한순간에 중산층에서 빈민으로 떨어졌다.

지금이야 게이트 재난 지원금이라던가 소외계층 지원금이 나오지만, 그 당시 혼란기 때는 그것조차 없었다.

모친은 부친을 살리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당연히 돈을 모을 수 있을 리 없다.

그 후, 10여 년도 더 시간이 흐르고 부친의 치료가 마무리 되어가는 중이다.

대격변의 시대는 그들에게 가장을 앗아가는 불행을 선사했지만, 이 초능력 혁명은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그 치료법도 제공해주었다.

부친의 약물 치료가 필요 없어지면서 그들은 불법 판자촌을 떠날 수 있었다.

허물어져 가지만, 구석진 곳에 잘 숨겨져 있는 벙커형 반지하 주택, 북부 접경지대의 이런 위험한 집이라도 얻는 것엔 10년이 걸렸다.

불행은 행복해질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머니가 쓰러졌다. 말기 암이었다.

시대는 말기 암조차 완치할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큰 치료비를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여동생은 돌발 게이트에 휘말려 모친보다도 답이 안 나오는 불치병, 게이트 질병에 걸렸다.

“그렇게 게이트 위험 지역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말 참 안 듣더니···.”

그리고 동생이 그렇게 된 게 불쌍하다며 선심이라도 쓰듯, 세상은 그에게 각성을 선물해주었다.

그게 3년 전의 이야기. 그의 나이 22세가 되던 해였다. 흔하디 흔한 소설의 주인공 같은 성장배경을 지녔지만, 안혜성의 능력에는 하자가 있었다.

마치 죽지만 않게 해주겠다는 것처럼, 세상은 항상 그랬다. 하지만 모친이 그들 가족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혜성도 목숨을 걸어가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래도 아버지 재활만 마무리되면···.’

적어도 빚은 그만 늘어나지 않을까?

막 재활을 마쳐가는데 불 속성 효자 같은 말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일 두 개 정도만 어떻게든 해서 400 정도만 벌어다 주시면 어떻게든 현상 유지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안혜성은 그 낭떠러지 바로 옆 같은 아슬아슬한 삶을 어떻게든 버텨가며 아직은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안혜성 씨 맞습니까?”

“아, 네.”

“3일 뒤 휴전선 초입 필드 들어갈 예정입니다.”

옛 휴전선, 위험한 필드였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안전한 내륙 필드들은 대부분 주인이라 싶을만한 길드가 다 있었고 그 길드와 연관이 있거나 하다 못해 지역적 연고라도 있어야 한다.

아니면 텃세가 심해서 괴물 몰이를 당한다거나 퍽치기를 당한다거나 하는데, 어떤 수작도 다 막아낼 자신이 없다면 성장할 때까진 게이트나 다니는 것이 답이다.

“예. 그렇게 듣고 왔습니다.”

파티장이 신입이라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이쪽에도 다 도는 소문이 있다.

눈 앞의 남자는 이번 기수에서 꽤 유망하다는 모양이다.

“말씀하셨던 대로 도축도 가능하시고요?”

“물론이죠.”

“기본 7일 일정을 생각 중인데, 게이트 신청을 해둔 상태라 조기 종료될 수도 있습니다. 운반 비용은 일당 25만으로 칠 예정이고요.”

“일당이 조금 짜네요.”

“필드니까요.”

위험 부담을 이야기하는 거겠지만, 슬쩍 그런 핑계를 대며 헌터들이 짐꾼들에게 손해를 떠넘기는 건 흔한 일이다.

헌터 물류 협회가 명분을 쥐고 최소한의 억제력은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의 마찰은 항상 있어왔다.

대개 E급 필드, 게이트라면 물류비 일당은 30에서 35만이다.

헌터로선 조금 실격인 특성이 있지만, 혜성은 나름 나이에 비해선 임무 완료 횟수가 많은 중견급 짐꾼이니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뭐, 그러니 이 사람도 게이트 언급을 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상대에게서도 그 부분이 언급되었다.

“따로 사고가 없다면 안혜성님과 그대로 다음 게이트까지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러면 그때 수익은···.”

“이번에 낮춰서 가는 것도 있으니 그땐 40으로 올려드리죠. 그게 공정할 테니까요.”

안혜성은 그가 자연스럽게 내미는 계약서를 받아 꼼꼼하게 읽어봤다.

‘방금 것도 적혀 있네. 이미 생각하고 온 건가? 이 정도 조건이면 괜찮긴 한데.’

둘 다 한다는 가정 하에 30, 35나 다름없다. 애초에 계약서를 이렇게 뽑아왔던 거라면, 필드는 사고 치는 짐꾼을 거르기 위해서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계약하죠.”

“그러죠.”

돌아서서 나가던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걱정했던 것 치곤 깔끔하게 끝났네. 딱히 독소 조항도 없어.’

프로필이 임무 횟수가 없는 신입인데다 이쪽 사정을 잘 몰라서 후려치려는 것 아닌가 걱정하면서 왔다.

그런데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인하고 나니 중견급 헌터나 길드 소속 헌터와 계약하는 것처럼 몹시 합리적인 계약서였다.

그리고 약속한 3일 후, 안혜성은 생각보다 몹시 깔끔하게 구성된 파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이네.”

“예. 우석 아저씨. 만수 아저씨. 두 분 다 한 실력 하시니 사고가 터지진 않겠네요.”

“이번에 이 팀은 채집 시간 좀 많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필드나 게이트에서의 채집이나 채굴은 파티장의 허가가 있어야 할 수 있지만, 짐꾼들에게도 공평하게 분배가 돌아온다. 짭짤한 부수입인 편이다.

“그건 좀 더 두고 봐야겠죠.”

“쯧, 요새 헌터들은 다들 사냥에 미쳐서···.”

“채집이 안전하면서도 은근히 짭짤한 일인데. 요새 헌터들은 잘 모르더라고.”

그 외에 다른 두 사람도 실력이 가장 좋진 않지만, 보통 받아가는 금액에 비해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중견 짐꾼들이다.

최소한 이쪽에서 사고가 날 것 같지는 않다는 걸 확인하자 왠지 괜찮은 필드 사냥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 * *

한편, 파티 구성에 대해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 듯한 저쪽 짐꾼 팀과는 달리 나는 살짝 불편했다.

전날 짐꾼 면접을 끝내고 파티 모집글을 올렸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집을 마칠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이 여자가 대체 왜?’

파티 구성은 전위인 탱커 하나, 딜러 넷, 서폿 둘로 7인 파티였다.

가까운 필드를 나서기엔 넘치는 구성이다.

심지어 구성원 중에는 내 부탁을 받고 몸도 좀 풀 겸 해서 도와주러 온 이민호 그리고 힘겹게 모셔온 포르세티의 계약자, 서포터 이진아도 있었다.

원래 계획은 여기에 F급 서폿 하나를 더해서 친분을 쌓고 용병 생활 전에 거래 횟수도 채우고 기초 경력을 좀 쌓아두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D급 서포터, 강소연은 여기 있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E급인 이진아조차 직접 만나서 힘겹게 설득을 해야 했을 정도다.

D급 판정을 받은 나하고 이번에는 C급인 이민호까지 있다고 이야기하며, 건너건너 들었다며 앞으로 함께하고 싶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간신히 데려온 참이다.

서포터 계열은 제대로 된 분배라면 한 등급은 높은 던전을 다닌다. 저 이진아조차도 이 파티에는 엄연히 오버스펙이다.

어제 오버스펙 셋으로 7인 파티 구성을 올리자마자 E급 딜러 둘은 바로 채웠고 탱커도 30분을 채 기다리지 않고 채울 수 있었다.

그때 파티창에 신청을 넣은 게 강소연이다. 막 방에 들어와 있던 파티원들의 눈치 때문에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덕에 필드는 산책하는 기분이긴 한데.’

이런 E급 필드에서는 탱커 취급도 받을 수 있는 이민호도 있었고 데려온 탱커도 굳이 그럴 필요조차 없을 법한 무난한 인물이었다.

“파티장님. 탱커급 전위가 둘이나 되는데, 몰아서 잡는 건 어떻습니까?”

“전위장님 말씀도 좋은 제안이긴 한데, 저희 중 신입이 많으니 안전하게 가죠. 이런 파티는 쉽다고 기분 내다가 돌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다들 경력 쌓는 게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하지만 이렇게 여유가 있는 거, 그냥 다니면 좀 아쉽죠. 여기 기사분들도 각자 능력 있는 분들로 모셨으니 진행하면서 부수입을 좀 챙겨보죠.”

“아! 채집하시는구나?”

내 방침에 운송기사들 얼굴이 활짝 피었다.

팀을 둘로 나눈 뒤, 각각 짐꾼들 하나씩을 분배하고 주변에 마력토나 약초, 마력석 같은 자원을 찾아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나와 강소연도 쉴 겸 해서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정하기 위해 높은 지대를 찾았다.

버스기사 급인 등급도 등급이니 그녀나 이민호는 이 파티에선 좀 특별 대우해줄 필요가 있다.

“할 이야기 있으면 지금 하시죠.”

“나랑 서린이. 어디 가야 할 지. 예전 약속.”

“설마 여기까지 그걸 들으려고 온 겁니까?”

이미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무심하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에 난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다.

어차피 별것 아닌 정보, 알려주기로 했다.

“최선은 일원의 하위팀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차선은 명성입니다.”

“일원은 되는데. 왜 청해는?”

“일원의 유망주 육성 시스템이 가장 체계적이니까요. 업계 1위 창천은 제외. 거긴 유망주 방임주의인데다 모기업의 뒷배로 갈락티코를 하는 길드죠.”

창천은 유망주의 사다리가 없다시피 하다.

돈 많이 줘서 데려오긴 하는데 알아서 크라는 주의다.

“2위 청해는 내부 문제가 심각합니다. 얼핏 듣기로 그쪽은 길드가 찢어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현재 3위인 일원은 이 둘 재능 정도면 적당히 정치질을 하며 길드의 차세대 톱을 노려봐도 되고 적당히 간부진 수준에서 만족해도 나쁠 것이 없다.

계속 2위, 3위를 오가며 순위를 지킬 테니 안정감 있는 삶이 기다리겠지.

“명성?”

이 아가씨, 말이 참 짧으시다.

“명성은 왜 추천하냐고요?”

“응.”

“최서린씨가 길드장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라서. 도전적인 성격과 주류 길드원들 성향이 일치하고 그 회사 회장도 확장적인 스타일이라 잘 맞을 겁니다.”

거기에 명성은 꽤 투명하게 운영하는 상장회사라 A급까지만 올라도 사장, 그러니까 길드장은 최서린이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일찍이 자기 길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지.

강소연은 내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당신은 금성에 가는 게 좋을 겁니다.”

“···왜?”

“일원으로 가면 어중간한 잠재 평가 때문에 나중에나 발굴될 거고 명성은 당신 실력 키워줄 만한 급의 서포터가 없죠. 심지어 길드랑 성향조차 안 맞아 보이는군요.”

“내 성격. 그쪽. 어떻게 아는데?”

“그냥 보이는 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길드는 당신처럼 말 없고 혼자 노는 성격이면 자기 몫도 못 챙겨 먹습니다. 최서린씨가 언제까지 당신을 챙겨줄 수 있을까요?”

최서린, 그 여자는 거기서도 추종자를 몰고 다닐 성격으로 보이는데, 겉으로 보기엔 참 안 어울리는 여자끼리 잘도 친구가 됐다 싶었다.

“당신은 명성의 최서린씨에겐 정치적으로 짐이 될 것 같군요.”

빌런 강소연의 훗날 알려진 재능이나 능력치 등을 생각하면 금성의 길드장, 한국 최강의 서포터로 불리는 서이수에게 가는 게 가장 좋다.

‘금성이 한국 최고의 서포터 명가지. 강소연도 잘 클 거고.’

지금은 육성 중이라서 아직 큰 티는 안 나는데, 금성은 나중에 서포터 공급 하나 가지고 귀찮게 시비 거는 다른 길드 전부를 엿 먹일 수 있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

일원이 3위로 밀리는 게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내뱉자마자 싸해지는 분위기에 나는 괜히 오지랖을 부렸나 후회를 했다.

그 후로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괴물이 소거된 경계선을 한 차례 돌다가 어디로 갈지 결정을 마쳤다.

팀원을 부르려 돌아 서려는데, 저 멀리 흙먼지가 보였다.

‘몰이? 텃세인가.’

하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사냥터 텃세라기엔 조금 묘했다.

‘이상한데. 북쪽은 가뜩이나 헌터가 없는 상황인데.’

아직 해결이 안 된 남부 특급 게이트 사태로 헌터가 다수 빠져있고 얼마 전, 중구 사태 수습한다고 정부가 내린 소집령 때문에 한동안 전국 필드에 공백이 발생했다.

길드건, 개인 헌터들이건 자기 길드 영역과 내륙 필드의 괴물을 먼저 줄이는 중이다. 북쪽의 옛 휴전선 지대 필드는 자연스럽게 가장 후순위다.

‘거미들인 것 같은데. 저런 몰이를 쉽게 할 만한 놈이면 페이트인가.’

슬쩍 몇몇 C급 괴물들의 흔적도 보였다.

협회에 알려서 그 사건의 대상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니 한동안 조용하더니, 내가 필드를 나오자마자 수작을 부려보려는 것 같다.

‘놈들 성향상 나를 무조건 죽여야겠다. 그런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마 경고겠지.’

내가 힘겨워하며 피폐한 모습을 보이거나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치거나 하면 그만둘 거긴 한데, 나는 그렇게 당해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파티원들은 채집을 마치고 우리 둘 있는 곳으로 모이는 중이다. 등급이 등급이니 사냥이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기습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 한 번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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