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전투는 멀리서부터 천천히 수습됐다.
연달아 마법을 퍼부으며 마력을 전부 소진한 지혜나, 보조하다가 마찬가지로 마력을 다 써버린 나도 더 이상의 격렬한 전투는 무리였다.
안에서의 전투 여파에다가 전위에서 방어전을 치렀던 나머지 두 사람도 상태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지혜가 쉬다가 성좌 미션탓에 포인트를 좀 더 채워야 한다며 회복될 때마다 밖으로 마법을 날렸고 나머지 셋은 끌려오는 어그로에 조금 더 고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정영하는 의외로 그 고생에 투덜거리지 않았는데, 녀석도 이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되게 해준 최고 공훈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끝나가네요.”
“이제 거의 없는 건가?”
“네. 다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포인트는 다 채웠을 건데도 마지막으로 마법을 날리겠다고 난간 쪽으로 다가갔던 지혜가 마법은 날리지 않고 돌아온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보스를 처리한 넷이 방어전을 치르며 안면을 익힌 건 덤이었다.
연락처를 교환해뒀으니 앞으로 어렵지 않게 지혜에게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하고 민호는 딱히 지혜에게 접근하지 않았는데, 정영하가 지혜에게 꽤 큰 관심을 보였다.
“그쪽 생도 아가씨. 아까 내 제안 한 번 고민해봐. 우리 회사에서 제대로 띄워 줄 수 있어.”
뭔가 길거리 캐스팅 같은 제안이다. 살짝 사기꾼 같은 정영하의 말투와 더불어 누가 봐도 신뢰가 안 갈 것 같은 제안이었다.
“좋은 제안이긴 한데, 역시 나중에 계약서도 보고 부모님하고 논의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아요.”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똑 부러지는 그녀의 대답에 정영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그럼 강제성 없는 구두계약이라도 하는 게 어때? 그래도 우리 로텍이 구멍가게는 아닌데 말이지.”
역시나 정영하, 그 성격 어디 안 간다.
그 쓸데없이 질척대는 모습에 꼰대 기질 있는 차기 국장님은 참지 못했다.
“적당히 합시다. 저 소녀도 그쪽의 행실이 믿음이 안 가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아니, 이런 순수한 애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정보에 민감한데. 퍽도 그러겠네요.”
“아니. 그 애들이 커서 된 게 난데?”
지혜에게 있어서도 딱히 나쁜 관심은 아니었기에 난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얘도 사업가라는 거겠지.’
저 인연을 지혜가 잘 다루면 정영하가 그녀의 장비에 투자하고 광고해주거나 할 수도 있다.
정영하에겐 아직 좀 의문이 있지만, 로텍이라는 기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이다.
‘로텍 자체가 직접적인 헌터 길드 사업에는 선을 긋는 회사라, 추후 투자를 받으면 받았지 딱히 지혜의 앞길을 방해할 일도 없을 거고.’
로텍이라는 회사는 헌터 장비가 주력이고 추가로 게이트 부산물로 생산되는 제품을 취급한다.
그 특성상 자신만의 길드를 세우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길드들에 견제를 받게 되어있다.
쉽게 말해 그런 짓을 하면 매출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자기 장비를 경쟁사에 맡기고 싶어 하는 길드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로텍은 자신들이 장비를 팔아치우는 길드의 길드원 일부를 돈을 주고 고용해서 무력 팀을 구성한다.
그리고 타 길드의 은퇴한 중역 일부를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하면 로텍이라는 기업은 헌터 사회에서 일종의 중립지대가 되는 거지. 상위 길드들 입장에선 파견비라는 명목으로 쏠쏠한 돈을 꽂아주니 괜찮은 정기수익원이 되기도 하고.’
자기 무력을 가지고 싶은 건 권력자의 본능일 텐데, 그걸 참아낸 정현수 회장이 걸물은 걸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무력이 약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경호원이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있는 은퇴 각성자 십여 명만큼은 정말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서 뽑고 그들 무력을 전부 쏟아부으면 어지간한 B급 길드는 하루아침에 쓸어버릴 수 있다.
‘잡다한 길드는 그 힘이 무서워서 한탕주의를 할 수 없고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는 고위 길드들은 그 이득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거지.’
딱 그 정도 선에서 정현수 회장은 무력의 확보를 멈췄다.
헌터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 길드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거다.
“그보다 이번 걸로 내 대외적인 이미지도 좀 괜찮아지려나.”
“대내적인 이미지면 몰라도 대외적으로는 크게 이슈화되진 않을 겁니다.”
“뭐야! 왜? 이거 꽤 큰 사건이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고 정영하의 의문에는 옆에 있던 이민호가 답해주었다.
“정부도 헌터 협회도 도시 방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그것도 모자라서 반 일반인인 저희 같은 헌터 지망생을 앞세워서 수비했다는 걸 절대 밝히고 싶진 않을 테죠.”
“그래. 이 중 그거 씹고 입을 열 수 있을 만한 정영하씨에겐 아마도 로텍 회장님을 통해서 압력 들어오겠고.”
“아니. 정말로?”
“그 적절한 예시는 이미 저쪽에 보이는군요. 벌써 저쪽에서 군부대가 기자들 출입 막고 있죠?”
전자기기와 네트워크 신호의 경우, 브레이크로 게이트 침식이 일어나면 그 일대는 거의 먹통이 된다.
헌터 와치는 예외지만, 이건 게이트 자원으로 만든 것으로 국가에서 전략 물품으로 지정된 물건이다.
‘일반인은 발동도 못 시키고 각성자는 통제 안 따르면 순식간에 빌런 행이지.’
그래서 대개 기자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카메라 촬영을 했고 그걸 돌아가서 올리는 방식을 취하는데, 그런 건 군대 동원해서 검문만 해도 죄다 막아버릴 수 있다.
“이제 구조 활동 하면서 본격적으로 건물 수색 들어갈 텐데, 아마도 영상 같은 것 찍은 게 있다면 모조리 압수할 겁니다. 각성자도 조금 있으면 다 호출될 거고요.”
“아니. 다 본 사람들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전부 막아?”
“사람들 그냥 떠드는 걸 막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일정 범위에서 나가는 걸 막고 증빙자료가 될만한 영상이나 사진만 없애는 겁니다. 그럼 오래지 않아 조용해지죠. 사람들은 헌터의 삶에 대해선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아요.”
“궁수 오빠 말이 맞을 거예요. 그나마 신경 쓰는 기자들조차도 깊게 알려고 하진 않죠. 시간 지나면서 그냥 한 사건으로 여겨지고 조용해져요. 사람들은 헌터의 화려한 면에만 주목하거든요.”
이 중에서 대중의 관심만큼은 가장 오래 받아왔을, 중앙 헌터 아카데미 출신인 지혜의 말에는 정영하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거 재미없는 이야기네. 딱 우리 회장님 같은 소리야.”
“그쪽이 사회정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참, 너는 아까부터 왜 나한테 이렇게 틱틱대냐. 난 그냥 다 같이 개고생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영웅 소리는 들어야 싶었으니까 그랬지.”
“헌터 와치 확인하시죠.”
난 슬슬 말싸움으로 번지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집합명령입니다. 다들 이번 게이트 진압 공훈 인정이랑 정산금도 받아야 할 거고.”
사건이 종결되면서 내가 받은 정산금은 꽤 컸다. 보스 처치에 대한 공훈의 7%를 인정받았고 게이트 방어에 대한 지분도 인정받아서 보상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불려 가서 포르세티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지혜도 돈 좀 받았어. 기부하겠다네.”
“그 아이야 딱히 그 돈이 궁하진 않을 테니까요.”
물론 내게는 몹시 중요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점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모자란 장비는 돈으로 때워야 하니까.
‘이제 주식 투자로 돈을 불리느냐, 아니면 당장 내게 투자하느냐인데.’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장비를 구매하긴 해야 할 것 같다.
급하게 대출로 구매한 E급 활은 고작 그거 고위 기술 몇 발 쏴 날렸다고 활대에 금이 가버렸다.
“그런데 좀 아쉽네. 좀만 사건이 컸으면 통제 안 돼서 바로 주목받았을 텐데.”
우리가 나눈 대화대로 이 전투에 대한 것은 며칠간 이슈화가 됐지만,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혜가 괜찮은 데뷔를 한 건 사실이었지만, 전국적 인지도를 쌓지는 못했다.
주변의 각성자들을 통해 이런 유망주가 있더라 수준으로 알려졌고 그 자리에 있던 스카우트들이나 자료를 받은 헌터 협회, 그리고 자료를 건네받았을 아카데미에서 이목을 약간 끄는데 그쳤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이런 애매한 거로 그렇게 크게 주목받아봤자 아카데미에서 시기나 질투만 살 뿐이죠.”
정말이다. 지혜는 아카데미에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소집 명령을 받고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 공훈 덕분에 협회에서 표창도 받고 하면서 아카데미에서 약간 주목을 받았지만, 난 지혜의 포상이 그 정도에 그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사건 정도는 특별반에 있는 A급, S급 잠재력의 상위권 교육생들이라면 침착하게만 대응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운’으로 취급받기 마련이고 그런 운이 지나치면 질투를 부르는 법이다.
‘그런 거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을 해야 해.’
그런 시기 질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실력이 필요한 거다.
그래서 지혜의 데뷔가 완전해지는 시기는 포르세티도 그 시기를 알고 있을, 훗날 대사건으로 알려지는 동해안의 대규모 웨이브 때로 잡은 거다.
“암암리에 이런 유망주가 있다고 기대감을 고조시키다가 시간 지나면서 ‘증명’하면서 터뜨리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도 뭐, 이번 정산은 기대해볼 만할 것 같아. 나도 드디어 지갑 여유 좀 생길 거고? 그래서 말인데···.”
“포르세티님도 슬슬 다음 투자를 생각하시나 보네요.”
“우리 은근히 마음 잘 맞는 것 같지 않니? 척하면 척이네. 그래서. 다음은 그 셋 중에서 누구야?”
내 시선은 포르세티가 화면에 띄운 세 명의 프로필로 향했다.
“누가 나을 것 같습니까?”
“내 인상? 음···. 솔직히 모르겠는데, 얘는 애초에 왜 골랐는지 모르겠어. 능력치 너무 불균형하지 않아?”
여신이 선택한 건 한 30대를 좀 넘어 보이는 인물의 프로필이었다.
“그 사람은 좀 특별한 짐꾼입니다. 그래서 우선순위에서는 가장 뒤로 밀려있죠. 가능하면 지혜랑 연결해주려는 사람이라서.”
“짐꾼?”
“정확히는 길드 보급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인 시절 유사 경력이 있거든요. 사람 다루는 인망도 나름 있는 편이고. 능력치를 보시면 민첩 C, 마력 B에 나머지는 F ~ D급이라는 기괴한 분배가 보이실 겁니다.”
“어···. 그래서 난 암살자나 궁사 같은 거라도 시킬 줄 알았는데.”
“힘 잠재가 F라서 이 사람은 제대로 된 전투 직군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암살자를 하려고 해도 힘 분배가 D는 되어야 해요.”
이 외국인은 힘, 민첩, 기교, 마력, 정신력, 지구력, 감각이라는 일곱 기초 능력치 중에 전투 직군에 가장 중요한 힘 잠재가 쓰레기라 그쪽은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그나마 후반에 나오는 특별한 짐꾼들을 위한 빌드를 거치기에 좋도록 지구력이나마 D급이라 다행이었다.
어쨌든, 능력치나 장비라는 게 대개 기본 능력치를 퍼센트로 올려준다는 걸 생각을 한다면 이 사람의 잠재는 너무 불균형이 심했다.
“하지만 짐꾼도 물건 옮기려면 힘 능력치는 필요하잖아.”
“그건 F급으로도 레벨만 올리면 충분하잖습니까. 애초에 마력은 넘치니 서포터로 레벨 올린 다음에 공간 계통 직군 타면 됩니다.”
“그래도 짐꾼을 하려고 할까?”
“바보는 아닐 테니 주변 조언을 따른다면 서포터를 타겠죠. 그러니 능력 구린 서포터로 고생을 좀 더 시켜야죠.”
“고생한다? 아, 진짜 고생하긴 하겠네.”
“네. 서포터 직군에 필요한 정신, 기교, 감각 잠재가 다 쓰레기잖습니까. 아무리 수치 조정을 해보려 해도 뭘 벌어야 하죠.”
“저 등급에 저런 분배면 성좌가 붙지도 않겠네.”
저 인간은 포르세티와 아직 임시 계약 중이다. 조건을 후려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네. 굳이 정식 계약을 맺어줄 필요가 없죠. 당장은 즐겨찾기만 해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 좀 지난 후에 좀 분배 조정해서 계약하고 지혜를 소개할 생각이었죠.”
성좌 계약도 계약 과정에서 분배나 조건을 조정할 수가 있다.
서포터를 하더라도 버프력, 서포팅 능력을 올려주는 기여도가 병맛이 될 거라 직업 레벨이 안 올라갈 것이다.
당연히 특성 붙이는 건 꿈도 못 꾸고 파티도 몇 번 따라가고 나면 이후에는 불러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겠지.
‘이쪽을 아예 포기하거나 짐꾼이나 하려나.’
어떻게든 절박해서 경험치 조금이라도 먹어보려고 짐꾼도 좀 해보고 그래야지만 현실감이 생길 거고 그쯤이면 지혜도 길드를 세울 테니 그때 따로 연결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다음 투자는 나머지 둘 중에 누구야?”
“안혜성. 이 계약자를 생각 중입니다.”
“직군은?”
“포르세티 님이 좋아하실 근접 직군이죠. 이 사람은 좀 특이한 특성이 있거든요.”
안혜성은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직군을 탈 수 있는 그 특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