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4화 (14/128)

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그리고 보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도로의 차량이 납작해지고 팔을 휘두를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건물이 박살 난다.

‘유지혜의 시전 속도론 저게 도달하는 동안 절대 두 번의 공격을 할 수 없어.’

그렇다면 준비해야 하는 건 대인용 주문인 최후의 일격이다.

그리고 그게 B급 게이트 보스를 일격에 쓰러뜨리기엔 100% 위력이 부족할 것이다.

누군가 반드시 시선을 끌어줘야 하고 그 역할은 내가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집중하는 사이, 앞쪽에 있던 원거리 딜러들에게서 강력한 주문이나 공격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각자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준비했는지 그 먼 거리에서 쏴 날린 캐논의 공격이었음에도 위협 수준이 넘어간 것 같다.

“다 흩어져!”

앞쪽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C등급 정도는 되었는지, 그들의 필살기쯤 되는 기술이 들어가자 위협 수준이 저들 중 하나에 넘어간 것이다.

“···제법인데.”

보스는 긴 꼬리를 휘두르며 몸을 한 차례 돌린다.

그 움직임에 건물이 우수수 쓸려 나가며 도심 한복판에 널찍한 공터가 생겼다.

“어그로 확인하고! 다들 핑퐁 돌리면서 조금씩 게이트 방향으로! 이동해! 시간 한 번 더 벌어주자고!”

주변 건물 옥상으로 뛰어 흩어진 일곱 명이 보스의 위협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려가며 자신들 사이의 위협 수준을 측정한다.

보통은 딜러가 어그로 핑퐁을 할 일이 거의 없는데, 원거리 딜러가 저렇게 핑퐁을 할 정도면 그런 상황에 많이 처해봤다는 거다.

‘베테랑 팀? 원거리끼리 제법이야. 끝나고 소속이 있는지 한 번 접촉해봐야겠어.’

저들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보스는 ‘엇!’하는 사이에 다시 게이트 방향으로 상당히 멀어졌다.

하지만 데몬 랩터는 영리한 편이다. 분명, 위협적이었던 원거리의 사냥감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쉽게 유인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패턴!”

보스가 슬쩍 자세를 낮추고 다리를 굽히는 걸 나와 거의 동시에 봤는지 저쪽 원거리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마력을 실어 고함을 질렀다.

‘돌진인가? 아니면 점프?’

놈의 선택은 점프였다.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거대 랩터가 고작 몇 초에 수백 미터를 공중에서 주파했고 허공에서 휘두른 손톱이 공간을 찢어발긴다.

자신이 사냥꾼임을 증명하듯, 손톱이 휘둘러지고 난 후, 놈의 긴 손톱에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 명 당했나?’

죽은 건 아닌 것 같다. 워낙 광풍이 부는 탓에 정확히는 못 봤지만, 팔 같은 게 하나 날아가는 정도만 보였다.

‘그보다 슬슬 지혜의 기술이 준비될 때가 됐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 붉은빛 뇌전이 떨어지고 양손에 그 기운을 나누어 든 지혜의 손에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해 보이는 복잡한 마법진이 연성이 됐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수십 개의 마법진이 배치가 된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그 지름이 족히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마법진은 하늘에 그대로 그림이라도 된 것처럼 박혀 버린다.

그리고 지혜의 목소리가 그 광경에 절로 조용해진 하늘에 낭랑하게 울렸다.

“꿰뚫어라! [최후의 일격!]”

시동어를 외침과 동시에 지혜는 자신이 뿜어내는 마력의 압력을 못 이겨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허공에 날린다.

마법진의 중심으로 모든 마력이 빨려 들어간다. 허공에 그려진 거대한 진에 마력은 흡수되고 그 안쪽에서 백열하듯 새하얀 광선이 뿜어져 나갔다.

‘놈은?’

광선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막 큰 행동을 한 탓에 부하가 걸렸는지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보스의 모습이 보인다.

‘브레스.’

놈이 선택한 것은 제 자랑 중 하나인 숨결을 뿜어 그 광선을 빗겨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명백한 오산이다.

“멍청한 축생아. 저건 후기에도 A급 판정을 받는, 지금은 S급 판정 받는 기술이란 말이다.”

단일 기술을 하나도 익히지 않는, 그런 클래스가 유일하게 잠재 투자해서 익히는 단일 기술이다.

가중치가 높아서 레벨업 당 능력지 보정에 조정까지 일어나기 때문에 당분간은 못 익히게 하려고 했을 정도의 주문이었다.

순식간에 숨결을 밀어내고 밀려들어오는 강대한 힘에 랩터는 서둘러 호흡을 끊고 피하려 했으나, 간신히 제 코어를 향하는 일격에서 몸을 뒤트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 전역의 모두가 그 심상치 않은 마력을 주목하고 있었는지 전장에는 적들이 내뱉는 괴성 외에는 침묵이 흐른다.

일격에 B급 보스의 상체 절반이 날아간 건, 지금 수준 각성자들에겐 몹시 충격적이었을 거다.

‘저 정도면 잘 성장한 A급 주력기나 S급의 각성자의 일반기술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분명 그렇긴 한데···, 사실 그렇게까지 놀랄 것도 없어.’

처음 주문을 준비할 때부터 지혜가 저걸 발사할 때까지 캐스팅 시간만 거의 2분이다.

보통 주력기라 불릴 정도의 주문이 아무리 길어봐야 5 ~ 10초, 필살기라도 30초 이상의 캐스팅이 없는 걸 고려하면 ‘저런 걸 실전에서 쓰겠다고? 농담하냐?’고 말할 수준의 시간이다.

지금 쟤는 무방비한 상태로 2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제자리에 서서 주문만 외운 거다.

특성으로 제한까지 덕지덕지 바른데다 시전 도중에 사거리를 벗어나도 취소할 방법이 없고, 혹여 쐈는데 빗나가기라도 하면? 그저 환장할 기술이다.

여기에 디스트로이어 가면 장점은 더 극대화되고 단점도 덩달아 극대화된다.

‘지금은 시전 2분이지? 파괴자 전직하고 빌드 완성되면 [최후의 일격]쯤 되는 기술은 시전 시간만 5분은 가뿐히 넘어갈 거다. 쏘는 놈도 환장하고 맞는 놈도 환장하는 변태 같은 직군의 완성이지.’

그러니 지혜로선 저 기술이 약한 게 더 억울할 일이다.

어쨌든, 그런 기술을 얻어맞은 보스놈은 밀려든 고통이 한계를 넘었는지 순간적으로 동공의 초점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캬아아악!!]

놈은 속살이 드러난 상처를 향해 쏴 날리는 앞 건물 원딜들의 공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린 채 괴성을 지르며 지혜가 있는 건물을 향해 몸을 뒤틀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성이 완전히 나갔군.’

그걸 처 맞고도 전투 능력은 거의 그대로인 게 소름이긴 한데, 역시 B급은 B급인 모양이다.

“그래. 수고를 덜게 해주는구나.”

호재다. 내 위치는 애초부터 지혜를 엄호할 수 있는 위치였고 놈이 달려오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제 몸을 보호할 생각조차 없이 시야가 좁아진 채 달려오는 저런 정신 나간 모습은 원거리에겐 아주 쉬운 표적일 뿐이다.

‘솔직히 조금 아깝긴 한데. 인제 와서 계획까지 망치면서 스포트라이트 받을 이유도 없지. 마력 모자라서 어차피 킬 각도 안 나와.’

워낙 급소를 많이 내놔서 자리 잡고 입속으로 쏴 날리는 선 레이지가 끌리긴 했다.

하지만 내 마력 통은 한 시간을 넘도록 쭉 쉬었는데도 아직 절반을 못 넘겼고 이걸론 힘이 많이 모자라다.

‘뭐, 화려하게 여러 발 날릴 필요는 없겠지. 가볼까? 펄스-웨이브.’

괜히 여러 발 날려서 쓸데없는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다.

생각의 끝에 속으로 짧게 의미 없는 주문을 외우며 단 한 발에 모든 마력을 밀어 넣는다.

남아있는 거의 모든 마력이 빨려간 탓에 짙은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나만의 장점이긴 하네.’

남들은 기술에 들어가는 마력이 지혜가 방금 쓴 최후의 일격 같은 특수한 기술을 제외하면 대개 딱딱 정해져 있다.

하지만 난 시동어 없이 직접 기술을 발동시키기 때문에 알아서 기술의 위력 조절을 할 수도 있었다.

‘3, 2, 1···. 지금!’

한쪽 눈을 감으며 속으로 숫자를 센다.

화살은 푸른 기운을 담고 날아가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실질적인 피해는 없지만, 내 전 마력을 쏟아부은 공격에 놈은 그 거대한 동체로 반대편을 향해 넘어지고 굴러가며 건물을 짜부라뜨렸다.

“아, 아아. 꺄악! 안돼-!”

비명이 들려서 잠시 생각해보니 보스가 넘어진 장소가 아까 촬영하던 X튜버가 있던 자리였던 것 같다.

나는 혀를 차면서도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건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

그 사이 같은 마법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는지 허공에는 마법진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것도 이 빌드의 장점 중 하나지. 대개 각 전투 시간은 길어봐야 5분에서 10분이고 보스전이래도 30분을 넘진 않아. 각성자들이 익히는 기술들도 대개 그런 밸런스고.’

저 빌드는 시전 시간이 더럽게 긴 만큼, 재사용 대기시간은 시전을 하는 사이에 다시 돌아온다.

각종 디버프로 시전이 늘어지는 거지 쿨타임이 길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변수가 터졌다.

‘···이걸 바로 일어난다고?’

보스 놈이 그걸 처 맞고 넘어지고선, 1, 2초 만에 오뚝이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 거다.

“···작은 피해는 아니었을 텐데?”

이러면 내 생각과는 좀 많이 달라졌다.

내 계획은 B급 게이트 보스를 홀로 물리친 수준의 천재 소녀를 만들려고 한 건데, 양념만 신나게 하고 다른 놈이 막타를 치게 생겼다.

‘됐어. 일단은 쟤도 나도 일단은 살고 봐야지. 그럼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지?’

급히 시간을 확인했지만, 아직 올 거라던 전위가 도착하기까지는 거의 30분 이상 남았다.

난 보스가 비틀대다가 자세를 잡는 걸 보곤 반대편 건물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민호! 거기 걔 데리고 피해!”

하지만 내 눈에 보인 건 시전을 취소하고 빠지자는 이민호의 제안을 무시하고 캐스팅을 강행하는 우리 계약자의 모습이었다.

“거기! 피하라고! 저놈 저 거리면 3초 안에 네가 있는 자리 개박살 낸단 말이다!”

내 고함에도 유지혜는 고집스럽게 일어선 보스에게만 집중하며 시전을 이어간다.

보스는 다리를 굽히더니 살짝 비틀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점프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점프가 아니라서 시간을 조금 벌었지만, 그래도 지혜의 주문이 완성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젠장!”

처음 보는 소녀인데도 성격상 버리고 갈 수는 없었는지 이민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난간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한손검에 새하얀 기운이 깃들고 기운이 치솟으며 백색의 거대한 검이 만들어져 간다.

외형이 화려한 기술로 어떻게든 시선이라도 끌어보려는 거다.

나 역시 미친 듯이 보스의 드러난 속살을 향해 남은 화살을 있는 대로 쏴 날리며 견제를 했지만, 둘 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보스놈은 오직 유지혜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데몬 랩터의 거대한 입이 벌어지고 유지혜를 삼키려는 그 순간, 놈의 몸이 우뚝 멈춘다.

그저 맹목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적을 향해 달리고 있던 보스는 제 꼬리에 느껴진 묵직한 느낌을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야. 너 상대는 나잖냐. 쫓아오느라···.”

그건 거대화한 정영하가 이를 악물고 꼬리를 잡아 끌고 있는 모습이었다.

“개빡셌다고!”

거의 동시에 난간에서 뛰어오른 이민호의 거대한 검도 보스의 보호막 속, 머리를 후려쳤다.

“그래. 정영하. 지금 여기선 네가 최고다.”

이민호의 도움에 온 힘을 다해 꼬리를 끌어 메치는 정영하의 노력까지. 뒤늦게 보스는 힘을 줘서 정영하를 떨쳐냈지만, 다시 넘어지는 것까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괴물의 그 대단한 근성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또 오뚝이처럼 일어난다는 기적은 없다.

그사이 완성된 지혜의 주문이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려던 보스의 코어를 향해 발사되었고 하체와 분리된 보스의 상반신은 굉음을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든 걸 보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나도 뒤돌아 옥상 난간에 기대서 깊은 한숨을 쉬었는데, 그 사이에 포르세티의 메시지가 여럿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때? 이 여신님의 시야가!]

[···그게 포르세티님 지시였습니까?]

[어. 내가 도와줄 사람 있다고 침착하게 쏘라고 했지. 그 좀 밥맛이던 녀석. 이름이 정영하라고 했나? 지혜의 시야 너머에서 달려오고 있는 걸 봤거든. 걔도 근성 하나는 괜찮네. 성좌도 있고 내 타입은 아니긴 하지만.]

그 상황에 내가 메시지 볼 겨를도 없었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이건 포르세티의 판단이 좋았다.

[어쨌든 오면서 거대화 하길래 딱 잘 됐다 싶었어. 우리 지혜의 깔끔한 첫 데뷔를 위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 셈이지.]

포르세티의 말대로다. 이 정도면 괜찮은 데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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