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3화 (13/128)

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시동어를 외치자마자 자연스럽게 행동이 강제된다.

주문을 시전중임을 알리듯이 시야가 고글이라도 쓴 것처럼 붉은빛으로 물든다.

시스템의 인도를 따라 오른손을 심장에 가져간다.

마력은 호스에서 빠져나오는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특별한 형태를 갖춰나갔다.

그리고 마력은 오른손을 타고 달려오는 다른 방향의 마력과 대응했다.

‘오른손은 껍질, 심장은 소용돌이.’

손바닥 위에 검은색 포탄 같은 구체가 자리 잡았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아직 몸은 시스템의 통제를 따르고 있다.

그 노도와 같은 마력의 움직임을 힘겹게 제어하며 다음 행동을 취했다.

유려하게 움직인 왼손이 구체를 아래서 압박하고 뒤집은 오른손과 함께 위아래로 짓누르자 구체의 형태는 납작한 디스크 형태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되돌아가려는 압력이 약해지며 안정화되는 그 순간, 시야 외곽으로 시전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듯 백광이 번쩍였다.

“가! 없애버려!”

마찰하듯 밀어낸 원판이 목표를 향해 깔리는 마력의 레일을 따라 달려나간다.

* * *

유지혜가 날려 보낸 원판이 마치 숨죽인 고양이의 기습처럼 고요하게 개미들의 한복판으로 떨어져 내린다.

일찍이 먼저 도착해서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 기념비적인 첫 데뷔를 직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오직 나와, 그녀의 성좌인 포르세티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재능을 알아보고 투자한 이가 그 첫 성과를 보이는 순간, 그걸 보는 건 꽤나 특별한 기분이었다.

딱히 존재감이 없던, 그래서 이 나라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그런 소녀의 한 걸음이지만, 앞으로는 모두가 그 발걸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내부의 움직임에는 강하지만, 외부의 충격에는 약하게 설계된 겉의 마력장은 지면에 부딪히는 순간 찢겨나간다.

그 안에 잠자고 있었던 마력의 폭풍은 수천 발의 칼날이 되어 반경 십수 미터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오? 뭐야?”

“누구지?”

앞쪽 건물 옥상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원거리 직군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격에 수십 마리는 쓸어버린 것 같은데. 이거 B급 브레이크라고 하지 않았었나?”

“저거 지옥 불개미 B급 맞아. 어디 법사계 랭커라도 와있나? 이 정도 위력을 막 쏘는 거면 거의 A급 아니냐?”

“뭐, 확실한 건 아니잖아. 쿨 최대한 돌리려고 열리는 타이밍 맞춰서 필살기급 기술이라도 날렸나 보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최전방에 진을 치고 있던 인원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몬스터가 접근하기 전 잠깐의 여유 시간에 마법이 날아온 방향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캐논을 거치는 매직 클래스 특유의 일반 술사를 월등히 뛰어넘는 압도적인 사거리와 암살자처럼 날아든 작은 구체였던 탓에 누구도 그게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알아차리질 못했다.

‘어차피 다들 곧 알게 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은 휩쓸린 놈들이 대부분 다 죽었고 일반 개체는 스쳐 맞더라도 두 발 이상을 버틸 리가 없는 위력이라 어그로가 튀질 않았지만, 몬스터의 감각과 시야는 각성자보다도 예민하다.

네임드 정도면 여파를 두 번만 겪어도 위치를 바로 파악할 것이고 특히 보스급 정도 되면 여파에 한 번만 맞아도 위치를 바로 알아차릴 거다.

[진짜 장난이 아니네. 지금도 위력만 보면 B급에서 A급 사이 정도? 이 정도면 굳이 그런 괴상한 직군 안 가도 되는 것 아냐?]

[위협수준은 직군, 그리고 거리랑 위력, 제어기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알고 계시죠?]

[그거야 알지.]

먼 거리에서 공격받을수록, 데미지가 강할수록, 군중 제어기가 포함되어있을수록 공격에서 발생하는 위협 수준이 커진다.

예외가 있다면 몬스터의 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높으면 서포팅 직군 류를 대개 최우선 공격한다는 한가지뿐.

[얘는 사거리가 미쳐서 위협수준이 엄청나게 높은데, 기동성이랑 내구가 형편없죠.]

저격수는 궁사 특성을 거치기 때문에 공격 중에 거북이가 되긴 하지만, 공격을 멈추면 회피, 이동능력이라도 뛰어나서 수틀리면 도주라도 하는데 얘는 그것조차도 안 된다.

[즉, 혼자 싸우면 그걸 거리랑 위력으로 접근하기도 전에 녹여야 하는 타입입니다. 지금은 캐논 거치면서 거리는 확보했는데, 위력 확보 안 하면 망캐됩니다.]

[음.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저거 보니까 뭔가 아깝네.]

뭐, 나도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일 것이다.

나쁜 건 아니다. 키우는 계약자에 애정이 생겼다는 거니까.

당연히 뭔가 더 해주고 싶고 잘 키우고 싶겠지.

하지만 투자자이자 컨설턴트로서 나는 여신의 헛짓거리를 냉정하게 차단했다.

[어중간하게 균형 잡는다고 이상한 직군 타면 서포터 수준의 1순위 어그로 주제에 회피도, 딜링도 안 되는 짐 덩어리가 됩니다.]

지금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는지 다재다능하게 써먹고 싶어서 빌드에 소금 좀 치시고 싶은 것 같은데, 이 빌드는 무조건 디스트로이어로 전직해야만 한다.

[아직 B급 수준이니까 이 정도 힘을 발휘하지 A급 일반 개체만 되어도 지금 상태로는 못해도 다섯 번은 버팁니다. 목표는 기술 한 방에 A급 일반개체 잡고 2~3번에 S급 일반 개체 정도를 녹여버리는 수준이죠. 얘는 그거 하기엔 C급이라서 잠재력이 빠듯해요.]

[알겠어. 알겠다고! 나도 남들 다 부러워하는 계약자 가지고 싶어서 투정 좀 부려봤어. 그런데 넌 나랑 메시지나 보내고 있는 걸 보니까 여유로운 모양이다?]

[그거야 여기서 저기까진 사거리가 어림도 없지 않습니까.]

아직 내 쪽은 여유가 많았기에 포르세티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이나 때우는 중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건 캐논이나 캐노네이드 혹은 저격수 계통 직군을 거친 클래스만의 특권이고 일반적인 원거리들은 어림도 없다.

‘뭐, 네임드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나도 못 놀겠지만.’

안에서 못 본 비행형 네임드 개체 그거 나오면 이렇게 놀고 있을 순 없을 거다.

이쪽을 안 본다고 해도 잠깐 눈 깜빡할 사이에 사정권에 들어올 테니까.

그리고 대략 20여 분, 전방은 아직 잘 버티고 있었다. 이 정도 급이 되면 총기류는 거의 먹히지 않지만, 전차포나 폭격 정도가 되면 피해를 아예 안 입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침식 안정화가 되기 전에 브레이크 보스를 퇴거시키면 원상 복구되기 때문에 저 뒤쪽에선 게이트 위치로 있는 대로 포격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게이트 침공 초기 E급, F급 게이트는 아예 브레이크를 기다려서 군인들이 제압하고 각성자는 그 이상 게이트에 투입하는 게 교범이었을 정도다.

‘나도 군대 다녀왔으니까. 잘 알지.’

접근 허용하는 순간 갈가리 찢겨 나가서 그렇지 현대 화기 위력은 지능이 없다는 가정하에 현시점의 B급 이하, 후반 기준 C급의 일반 개체와는 충분히 싸울만하다는 게 최종적인 결론이다.

‘물론 핵폭탄쯤 되면 후반 B급들도 쓸어버리긴 하는데 그건 인간한테도 너무 손해니까.’

몬스터는 핵 터진 곳에도 보호막으로 방사능 씹고 잘만 사는데, 인간은 거기서 못 살게 되니 보급에 각성자를 써야 한다거나 기반시설이 다 박살 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긴다.

‘즉, 핵을 써버리면 오히려 수복이 더 어려워진다. 핵 자체를 쓰면 안 된다는 거지.’

이 시기에 말하는 S급, 아크 리치 같은 놈도 술법 계통 주제에 저 북쪽 나라에서 발악하듯 쓴 전술핵을 맨몸으로 버텨냈는데, 대침공에 S급 판정받았던 괴물들은 아예 격이 다르다.

아예 핵 자체를 허공에서 지워버릴 정도의 폭력적인 힘.

사실상 각 국가가 붕괴하기 전, 발악하듯 날린 그 수많은 핵폭탄은 그렇게 괴물이 막지 않은 인간의 생활권에만 피해를 주며 아무 의미 없이 사라졌다.

‘핵의 위력만 두고 보면 특급 각성자들의 필살기 이상으로 강하긴 한데. 관통이 하나도 없으니 뭐···.’

각성자는 능력치 당 일정 비율로 관통이 붙는다. 장비 옵션이나 특성 덕분에 추가되기도 하는데, 이게 각성자가 보호막 씹고 괴물들에게 쉽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이유다.

보호막이 남아있으면 관통으로 통과시키는 비율을 제외하면 기술의 위력이 약해졌다.

“슬슬 군인들 퇴각하네. 퇴각할 때 됐지. 대충 우리가 버틴 것까지 합쳐서 2시간 조금 넘게 버틴 건가.”

그래도 저 보호막을 가르거나 관통하며 공격해야 하는 건 각성자들도 마찬가지라서 저리 포격 마사지를 좀 해주면 공격이 더 잘 박힌다.

그게 주변 진형 공사를 돕게 하는 것과 더불어 브레이크 때마다 군인들을 부르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군인들이 퇴각한다는 건, 조금 있으면 최전방에서 더 틀어막는 게 안 된다는 뜻과 같았다.

‘2시간이면 슬슬 몬스터도 다 뱉어낼 때가 됐는데. 앞으로 전위가 올 때까지의 시간이 고비겠어.’

그리고 개미도 문제다. 여왕개미가 밖으로 나오면 분명 지면을 파고 들어가서 집 지으려고 할 텐데, 진짜 엄청나게 귀찮아질 거다.

‘일반 개체는 대충 천오백쯤 남았나? 우리 계약자님께선 아주 신이 났군.’

아직 네임드가 나오지 않아서인지 유지혜가 아주 맹활약 중이다. 아마 나 같아도 신이 날 거다.

안전한 곳에서 쿨마다 기술만 펑펑 날리는데 경험치랑 임무 기여도가 쑥쑥 오르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

한 차례 주변을 탐색해보니 이미 X튜버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그 광경을 포착했는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유지혜가 서 있는 난간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 유명 방송인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다 끝나고 이슈화가 조금이라도 될 것 같긴 하다.

“이제 나오네.”

가장 먼저 나온 건 지옥 늑대 네임드다.

그리고 그게 나오자마자 아슬아슬하던 게이트 좌측 방어선이 바로 무너졌다.

뚫린 공간으로 가장 먼저 임펫이 달렸고 늑대와 개미들이 뒤를 잇는다.

뚫린 방향 아군 전위들은 뒤도 보지 않고 도주중이고 다른 방향의 전위들도 조금씩 뒤로 빠지더니 가능한 질서정연하게 퇴각을 시도 중이다.

“이제야 우리도 할 일이 생기겠네.”

“자, 다들 이제 긴장하자고!”

저 앞쪽 건물에서 조용히 상황 지켜보던 아까 원거리 그룹도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제 몬스터들은 흩어질 거고 저 퇴각하고 있는 각 방향의 전위 그룹도 최대한 먼 곳까지 빠져서 몬스터를 퍼뜨린 다음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갈 거다.

앞쪽 원거리들도 전투를 시작했고 저 멀리 서울 동쪽 방면에선 최서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얼음 기둥이 솟아오르며 개미를 쪼개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야. 그런데 저거 왜 죄다 이쪽으로 오냐?”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앞쪽 고층 건물에서 나온 말대로 꽤 먼 장소였음에도 개미와 늑대, 그리고 임펫 무리의 거의 절반가량이 이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역시 이 시기에 아무도 안 가는 캐논이 프리딜을 그리해댔으니 어그로야 당연히 미쳤지.’

그리고 그때, 하늘을 찢으며 거대한 지옥 새 한 마리가 검은 불꽃이 일렁이는 제 날개를 흔들며 날아올랐다.

“저게 2번 네임드였나? 아니. 3번이겠군.”

안에서 죽인 임펫이 있었으니 아마 3번일 거다. 등장하자마자 진형이 무너진 좌측 방어선으로 달려들어 전사 몇 명을 잡아채고 하늘로 날아올라 떨궈 버린다.

‘일단 가장 선호하는 건 잡아채기 패턴. 그러면 근접전을 자주 시도한다는 거군. 지옥 새니까 숨결은 당연히 있을 거고.’

숨결 말고는 나도 뉴스나 토막 영상으로만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지금 파악해야 했다.

‘유지혜가 저걸 공격하면 아주 곤란한데.’

저 빌드와 비행체는 상성이 아주 안 좋다. 유지혜는 어지간하면 어그로를 끌지 않는 편이 좋다.

다행히 허공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슬쩍 뒤로 물러나 몸을 숨겼다.

[지금 지혜 움직임. 포르세티님 지시입니까?]

[어. 내가 한 거 맞아. 저거 딱 봐도 상성 안 좋잖아? 그래서 성좌 메시지 보냈지. 다른 녀석한테 어그로 끌릴 때까지는 자제하라고. 얘는 진짜 말은 잘 들어서 좋네.]

[뭐, 모범생 타입이니까요.]

[응. 다음에 큰 투자할 때는 성격도 좀 봐야겠어. 나중에 뽑기 좀 한 다음에 옆에서 보면서 조언 좀 해줘. 여왕개미는 우리 몫이 아닐 거고 늑대라도 끌어와야 하는 것 아냐? 나 얘한테 이 반지 꼭 주고 싶은데.]

[아뇨. 늑대는 됐습니다.]

그 사이 여왕개미도 밖으로 나오자마자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잠시 후, 게이트는 불길하게 일렁이며 보스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괜히 그것까지 오면 변수만 많아지죠. 다른 쪽에서 처리해주는 게 낫습니다.]

[그래. 뭐, 우린 메인디시를 먹는다 이거지?]

[스카우트에게 주목을 받는 문제도 있고 처리할 능력이 있는 쪽에서 상대해야 인류의 피해가 줄어드니까요.]

슬슬 이민호가 도착할 때가 됐다. 제시간에 못 맞추면 내가 직접 가려고 했으나 옥상 뒤쪽 문이 열리는 걸 보니 그럴 필요는 없을 모양이다.

[전위 하나 도착했을 겁니다. 이제 선빵 하나 큰 걸로 먹이면서 시작하죠.]

잠시 후, 계속 쏴대던 디스크 모양 구체가 이번에는 보스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안에서 유일하게 어그로를 먹어놨던 정영하에게 가려는지 막 건물을 부숴가며 일직선으로 움직이던 보스몹은 그것에 머리를 한 대 맞더니 고개를 이쪽으로 홱 돌렸다.

마력 칼날들에 얕은 생채기가 나서 피 칠갑을 한 데몬 랩터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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