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1화 (11/128)

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주인을 잃은 불도마뱀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좋다.

가뜩이나 임펫 퀸을 태우고 지나간다고 개미들의 대열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 도마뱀이 불개미들 사이에서 날뛰어주면서 상대 진형이 완전히 엉키기 시작했다.

개미들끼리 이동에 병목현상이 벌어지니 전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갑자기 생긴 여유에 다들 나를 힐끗 바라보기에 뭘 한 것인지 답해주었다.

“임펫 지휘하는 네임드 하나 처리했습니다. 약한 놈이라 가능했던 겁니다. 게이트 규모를 생각했을 때, 네임드는 많아 봐야 4마리. 중립 네임드가 하나 있다는 가정하에 남은 숫자는 셋이겠네요. 문제 있습니까?”

다들 할 말은 아주 많은데, 전투 중이라 참겠다는 표정이다.

특히 스카우트들이 더 그랬다.

우리가 잠시 숨 돌리는 그 잠깐의 시간에 여왕개미가 빠른 결단을 내렸는지 개미들이 살라맨더를 물어 뜯기 시작했다.

‘역시 개미류 몬스터. 판단 정확하고 냉혹한 건 군체 특유의 특성이지. 가차 없어.’

살라만더가 전력에 보탬이 안된다고 판단하자마자 명령을 내린 거다.

현장에서 지휘할 필요가 있는 임펫과 달리 페로몬과 신호 전달 체계가 확실한 개미는 여왕이 나올 필요조차 없기 때문에 이런 포위 웨이브 상황에서는 죽일 방법도 없다.

‘우직하게 싸우는 수밖에. 그래도 임펫 움직임이 중구난방이 됐으니까 특별히 위험할 건 없다.’

개미나 늑대들도 나름의 전술은 구사하지만, 전부 지면에 발을 붙이고 움직이는 계통이다. 쓸 수 있는 전술에는 한계가 있다.

그 와중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리 약점을 찾던 지옥 늑대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늑대! 화살 날리는 방향! 숨결 온다! 정영하!!”

난 몸이 부풀어 오르는 그 광경을 누구보다도 먼저 포착하고 파티를 향해 외쳤다.

“간다, 가! 야, 근데 너 존댓말 캐릭터 아녔냐? 은근슬쩍 반말한다?”

“다 끝나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빨리!”

“오냐!”

다들 뛰어난 유망주들인데다 즉석에서 짠 거긴 해도, 전문 스카우트들의 훌륭한 판단력이 들어간 전투 진형, 거기에 체계적인 교대순환방식을 쓴 덕분인지 걱정되던 메인 탱커도 잘 버티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적당히 몸이 풀리면서 아이템 빨 하나는 제대로 받고 있는지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었다.

‘거봐. 할 수 있잖아?’

이쯤 되면 회귀 전 내 인생이 꼬였던 게 심히 억울할 지경이다.

그렇게 반복적 전투가 15분 가량 지나자 다들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게이트 공략도중 한 번에 벌어지는 전투는 보통 5분 남짓이다.

그리고 아주 길어봐야 7~8분이었다.

최대한 교대해가며 싸웠다고 해도 거진 15분을 연달아 전력을 다해 싸우는 건, 경험 좀 쌓았다는 기성 헌터들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달리기로 치면 전력 질주를 15분간 하고 있는 거지.’

다들 초인이니 경험이 좀 쌓이고 절박함이 있으면 불가능할 것도 없긴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그런 빡빡한 전투를 못해봤거나 해본 지 오래된 이들 뿐.

내가 최대한 커버한다고 하는데도 슬슬 최전방 움직임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마력 조절에 실패해서 탈진이 걸린 술사형 딜러들. 근육 경련이 온 전위들. 그걸 예비대로 땜하다 보니 처음처럼 잘 순환이 안 된 탓이다.

‘원래라면 어떻게든 계속 독려하면서 싸웠겠지만···.’

보스도 슬슬 올 테니 밖으로 빠져나가야겠다.

어차피 저 멀리 진동이 울리면 첫 조가 빠져나가기로 했었다.

“전위! 공간 조금씩 좁히면서 세 걸음 뒤로! 예정보다 조금 일찍 나가죠. 예비대인 스카우트분들부터 빠져나갑니다!”

최전방을 맡던 전사계통 각성자가 몇 걸음 물러나며 방어 진형을 좁히자 공간이 좁아진다. 방어는 조금 더 쉬워졌다.

“좀만 더 버텨줘라. 먼저 나간다!”

내 말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예비대가 내부 인원을 격려하는 말을 남기면서 급히 빠져나갔다.

대략 열댓 명 좀 넘게 빠져나가자 게이트가 회색빛으로 변할 듯 말듯 했다.

“여기까지만! 다들 정지!”

스카우트 선배들과 내가 추가로 빠져나가려는 새내기 하위 등급 각성자들을 제지했다.

“지금 빠져나간 거 열여섯이었지? 생각보다 허용 수치가 적은데. 미리 안 빠져나갔으면 큰일 났겠어.”

“그렇네요.”

남은 인원이 스물 여섯이니 정확하다. 들어온 총 인원이 42명이었는데, 이러면 좀 아슬아슬할 것 같다.

“낮은 등급인데 16명이면 이거 애초 계산대로 세 번 안으로 전부 빠져나갈 수가 있나?”

만약, 이게 회색빛으로 변하면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다시 활성화된다.

그런 이유를 설명하자 이번 기수 동기들은 새로운 걸 배웠다는 표정들, 아주 풋풋할 때다.

“아, 그래요?”

“처음 알았어요!”

보스가 정말 올라오고 있다면, 그 탓에 사망자가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밖에서 죽는 거야 상관없지만, 이 안에서 하나라도 죽으면 나중에 책임 논란 같은 게 날 수도 있어. 그걸로 무슨 나비 효과가 날지도 모르고.’

그게 큰 문제는 아니지만, 뒷맛이 찝찝해질 거다.

가장 좋은 건 사망자 없이 깔끔하게 해결하는 거다.

“그냥 나가게 뒀으면 몇 명은 더 빠져나갔겠지만, 나머지는 브레이크 때까지 갇히는 꼴이 되었을 거야.”

게이트 자체가 이차원에서의 침략 통로기 때문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수량 제한이 없고 자유롭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우리 쪽 차원의 힘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그나마 각성자가 탈출이 가능한 건, 우리 차원의 존재들이니 저항 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일 뿐.

만일, 타차원의 존재일 경우엔 보스급이라도 브레이크 없이는 엄청난 힘을 쓸 수 있는 고위 존재여야지만 통과할 수가 있다.

대략 2분 정도 만에 게이트가 다시 처음처럼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곧바로 2차 인원이 빠져나갔다.

‘2차는 14명인가. 이러면 충분히 되겠군.’

기성 헌터들은 지도 강사를 빼면 전부 다 빠져나갔고 최후방에 남은 인원은 재능이 가장 뛰어난 12명 뿐이다.

“이제 게이트가 회복되는 시간, 2분만 버티면 됩니다.”

“다 빠져나갈 수는 있는 거야?”

“회색으로 변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여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말 그대로 입구 코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내 자리를 중간으로 바꿨다.

전위가 넷, 중단 나 포함해서 넷, 후위는 최서린, 그리고 훗날 국가급 빌런이 되는 다른 한 명. 서포터 강민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서 지축을 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거 뭔 소리야? 어. 설마···.”

다들 감각이 바짝 올라와 있는지 전달을 받지 못한 인원들도 금방 그게 보스라는 걸 깨닫는 모습이다.

“보스겠죠.”

“요란 떨 거 없어! 어차피 나갈 때까지 거의 1분도 안 남았어. 정신 바짝 차려!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최서린의 외침에 다들 결연한 표정이 된다. 다들 여기까지 와서 죽을 순 없다는 거지.

그와는 별개로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분명히 은신한 그놈이 오고 있을 텐데.’

당연히 놈은 보스 시선을 우리에게 붙여 놓고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다.

“최서린씨. 처음에 썼던 그 기술, 다시 쓸 수 있습니까?”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데 쓰려는 거면, 딱히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펼치는 것 말고 좁은 범위에 해도 됩니다. 오히려 그쪽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늑대 화염 숨결에 맞춰서 써야 합니다.”

늑대 화염방사 대기시간은 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

“너, 뭘 하려고?”

나는 중단에서 빠져나와 슬쩍 그녀의 옆, 최후미에 붙으면서 작게 답했다.

“그 빌런. 잡아야죠.”

“그거랑 무슨 상관···아!”

“서린씨가 처음 썼을 때, 그 탓에 지면이 질척거렸죠. 안 놓칩니다. 저 믿어주시죠.”

얼음이 녹으면서 입구 근처의 지면 전체가 진흙탕이 됐었다.

그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은신 기술이 있어도 입구 바닥 전체가 진흙탕이 되면 피해서 가진 못한다.

‘은신만 풀면 된다. 은신만 풀면 못 나가고 여기서 죽을 가능성도 있고 빠져나가더라도 어차피 사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흔적은 반드시 남게 되어있어.’

은신 기술 특징상 재사용 대기시간이 무진장 길다.

‘특급쯤 되면 몇 시간 안에 돌아오는 것도 있지만, 이런 데 기어들어오는 놈이 그런 수준일 리는 없겠지.’

그 정도 능력이면 갓 각성자가 된 수준인 내 화살로는 힘들 거다.

[빙폭!]

그리고 잠시 후, 늑대의 화염 숨결에 맞춰 최서린의 기술이 뻗어 나갔다.

자욱한 수증기가 퍼지고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린 틈을 타 내 몸도 주변과 동화되며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두의 눈에 저 멀리 거대한 괴물 공룡이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리를 바라보더니 하늘로 길게 괴성을 지르곤 발아래 개미들을 밟아 죽이면서 그대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절벽을 기어올랐나?’

절벽 방향이라 괴물이 거의 없는 우측 진흙탕 바닥에 발자국이 하나 찍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오른손은 오늘 두 번째로 화살 통으로 향했다.

발걸음으로 상대 몸의 형태를 그리고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맘 같아서는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는 건 또 언론 같은 것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화살이 은신하고 달리던 빌런의 다리를 꿰뚫었다.

때 아닌 비명에 모두 동료가 당한 줄 알고 돌아봤으나, 그들의 시선에 보이는 건 분명 밖에 남았던 인간이다.

“우리가 널 구해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이 개새끼가!”

“누가 할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내뱉은 냉랭한 말. 정확히 그 타이밍에 맞춰서 게이트가 다시 활성화가 됐다.

놈은 다시 화살을 꺼내서 겨눈 내 견제에 거기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놈에게 고정한 채로 사선을 함께 달린 동료를 향해 외쳤다.

“활성화됐어. 빨리 밖으로 나가!”

느껴지는 진동과 아까 본 거리상이면 보스는 이제 거의 열 걸음 안팎이다.

가장 먼저 내 옆에 있던 최서린이 빠져나갔고 그 뒤를 이어서 뒷줄부터 하나하나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거 타이밍이···.’

하지만 이대로면 전위들이 보스에 휩쓸릴 거다. 빌런 놈에게 몸을 돌린 내가 보스 어그로를 끌어보고자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정영하가 내 뒷덜미를 잡아채 다시 뒤쪽으로 던졌다.

“너. 무슨 짓을···.”

“너는 무슨 시바라···. 내가 형이라고. 뒈지려는 거 아니니까. 잘 봐라.”

빌런 하나와 나, 그리고 정영하와 전위들이 남은 상황에서 보스가 정영하를 덮쳤다.

아니, 정확히는 덮치려고 했다.

그 순간, 정영하의 몸이 족히 열 배는 커지며 덩달아 같이 커진 제 장비로 보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거대화? 성좌가 보고 있었나···.’

자신감이 이해가 간다. 그에게 이런 기술이 있었던 적은 없으니 이 분투를 재밌게 본 성좌가 새로 달아준 거겠지.

“당장 나가! 이 멍청이들아!”

B급 레이드 보스의 돌진을 그대로 받아친 대가로 나자빠졌지만, 정영하가 번 시간만큼은 확실했다. 나머지 전위는 곧장 빠져나갔고 나도 입구 코앞까지 달렸다.

‘이거 내가 나가면 안 닫히려나? 상태가 위험한데.’

그 사이에 빌런 놈이 빠져나갔는지 게이트가 불안하게 깜빡이는 중이다.

이대로 내가 나가면 그가 갇힐 수도 있다. 위험하니 반드시 동시에 나가야만 했다.

그 사이 거대화를 푼 정영하도 몰려드는 괴물 떼거리를 피해 꽁지가 빠지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오는 개미와 늑대들에게 미친 듯이 화살을 날려 저지하는 몇 초가 정말이지 더럽게 길었다.

“새꺄, 진짜 땡큐다.”

“컥···!”

알아서 타이밍 맞춰서 나가려던 나는 뒤로 뛰려는 순간 내 목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순간적으로 막히는 숨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놈아!’

이 자식은 달려오던 그대로 내 목을 팔로 끌어안으며 게이트 밖으로 뛰쳐나갔고 메인 탱커급의 힘 캐릭터가 달려오며 부딪친 충격량은 그대로 내 몫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