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게이트에 진입한지 3초도 지나지 않아 날아든 불꽃 먼저 피했다.
‘안 변했네.’
임펫, 흔히 소악마라 부르는 놈들로 어지간한 게임에선 잡몹으로 나오지만, 게이트가 열린 후의 게이트 괴물 도감상에는 C급으로 분류가 되었다.
단순 전투력만으로는 D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놈들이지만, 물리력이 아닌 속성 원거리 공격을 한다는 부분, 말 못하는 괴물치곤 높은 지능까지 인정받아 높은 등급을 받았다.
‘다른 괴물과 조합되면 귀찮아지는 타입이지.’
입구 근처에는 그런 임펫이 세 마리가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당겨 놓았던 활시위를 놓으며 방심하던 하나를 맞혀 떨어뜨렸을 때, 이민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임펫들은 화살의 정확도에서 오는 위협과 수적 불리함까지 기민하게 알아챘는지 양방향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약아빠진 게 특징. 하지만 지난번과는 다르지. 안 놓친다.’
첫 회차에도 이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 이민호를 중심으로 진짜 어떻게 급하게 들어가긴 들어갔었다.
‘원래 진입 후, 5분 정도는 전투가 없는 게 정상이야. 기껏해봐야 잡몹이 몇 마리나 있지. 입구는 그런데 형성되니까.’
하지만 그때는 10분 정도가 간신히 남았을 때 들어갔고 정신도 없었다.
거기에 약아빠진 임펫이 금방 도망가 동료를 불러온 탓에 파티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습격에 와해 되면서 각자도생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형. 위험하니까 단독 행동은···어?”
마저 다시 활 시위를 튕겨 남은 임펫 두 마리까지 잡은 걸 봤는지 막 따라 들어오던 최서린까지 두 사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둘, 뒷사람 들어오게 비켜줘.”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내 태도에 두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동쪽에 쓰러진 놈 확인사살할 겸 정찰 좀 할게. 최서린. 통제 부탁한다.”
“어? 나?”
최서린은 손가락을 자기를 가리키며 정말 자기가 맞냐는 질문을 던져왔지만, 지금 분위기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신참인 내가 파티를 주도하는 웃긴 상황이다.
“근처에 임펫이 더 있을 수 있어. 확인사살은 가능한 원거리가 해결하게 하고 파티원들은 입구에 진 치고 움직이지 않도록 부탁할게.”
“저기. 나보다는 그래도 듬직한 민호가 낫지 않을까?”
어떻게든 책임을 벗고 싶은 모양인데 안 된다.
“네가 여기서 최고 유망주니까. 여기 영향력 있는 사람 중에선 가장 중립적이기도 하고 민호가 말하게 되면 곧 들어올 정영하랑 갈등 생길 수 있어.”
“이런 씹, 이건 또 뭐야! 사우나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영하가 들어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현기증이 올라오는지 갑작스럽게 휘청거렸다.
최서린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거, 더우니까 술기운 올라오나 보네. 알았어. 그 말이 맞아. 내가 해야겠네.”
그렇게 뒤에서 파티원들이 게이트에 진입하며 들리는 소음을 배경음 삼아 나는 동쪽 방향에 쓰러진 임펫을 발로 차올려 잡아채고 단검으로 멱을 따버렸다.
우측 언덕, 이곳이 근처에서 시야를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지형이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이 먼 거리에서도 명확히 식별될 정도인 거대 괴수 하나가 보였다.
‘이것도 변한 건 없나. 사실 차라리 이건 좀 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한데.’
소형 괴수였다면 상대는 힘들었겠지만 실패했을 때의 위험이 작아지긴 한다.
이 던전의 보스는 랩터 데몬이다. 현 시대 기준의 B급 게이트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지능형 보스몹으로 인간으로 따지면 대략 13세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전위가 쓰는 제압형 기술들을 억지로 무시하고 서포터나 메인 딜러를 먼저 노릴만한 지능이 있다는 소리지.’
몸 길이는 28미터, 높이는 14미터의 공룡형 괴수로 전위들이 거대화 같은 체급 증가 스킬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C급 전위 이하의 수준에서는 방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안에서 저놈에게 어그로가 끌리는 순간, 방어전이고 뭐고 당장 밖으로 빠져나가야만 한다.
그나마 놈의 커서 식별이 쉽고 대충 쏴도 다 맞는다는 것이 가장 위안이었다.
‘조금 있다 올 유지혜가 긴장해서 실수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거지.’
나는 돌아오자마자 확인한 것부터 이야기했다.
“필드 보스에 거대 괴수형?!”
다급한 목소리가 이중에서는 나름 선배들이라 할 수 있는 스카우트나 지도 강사들에게서 튀어나왔다.
“지금은 절벽 아래쪽에 있어서 저희와 만날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여기 선배님들께서 걱정하시는 대로 이건 밖으로 나가면 말 그대로 대참사죠.”
“가뜩이나 이거 공격성이 짙은 악마형 몬스터를 뱉어내는 게이트인데.”
“거기에 지형도 화산지대지. 시민들이 숨거나 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겠어.”
“침식 일어나면 지형 형성되면서 마그마도 나올 거고 화염계통 괴물들 천지니 가장 위험한 게 도심에서의 폭발이다. 시간 지나면서 이 지역 전체가 유독가스에 휩싸이는 건 일도 아니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말해주니 편하다.
그 말대로 대피소 같은 건 절대 믿으면 안 되고 이건 무조건 주변 소거해야만 했다.
“솔직히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나마 중규모라 다행인 건가? 이게 대형 게이트면 상상하기도 싫네.”
“그 전에 우리 목숨이나 걱정하자고. 난 저렇게 체급 높은 놈들이 싫어. 엇, 하는 순간 치여서 죽는다고.”
중규모면 안쪽을 하나도 청소 못 했다는 가정하에 브레이크로 나오는 괴물은 2천 남짓.
‘원래라면 그렇게까지 피해가 확산할 정도는 아니었어.’
주변에 있을 딜러, 서포터들이 비상사태 선포되면 지원을 와서 괴물들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보통 이런 대참사는 인적 드문 곳에서 A급 특대형에서 S급 소형 이상의 게이트가 전혀 대비 없이 브레이크 날 때에, 그 지도자급 보스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휴전선 이북에 형성된 언데드 월드다.
S급 소형의 보스 아크리치를 눈치채지 못하면서 생긴 마경이었다.
북한을 멸망시켜 버렸고 지금도 그쪽은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는 족족 리치의 권속이 되고 있었다.
고작 B급 게이트의 사상자가 이리 커진 것에는 도심이라는 지형특성과 더불어 화염계통, 그리고 공격적인 악마계 몬스터였다는 시너지가 일어난 게 컸을 것이다.
“우선, 선배님 중 한 분이 나가셔서 사무관에게 정찰 결과부터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긴급 뉴스 안 내보냈더라도 이것까지 듣고는 안 내보낼 수 없겠죠.”
“하필 선거철이라 그걸 부정하기가 힘든 게 슬프네.”
예전 사태를 생각하면 주변에만 대피령 같은 걸 발령했을 건데, 이건 여기 지역 전체를 소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방 전력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하고 밖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지만 관리국에서도 지원을 파견할 거고 각 길드에 협회의 협조 요청도 빨라질 것이다.
“그것도 있고 하필 부산에 S급 특대형 게이트가 열렸잖아. 길드 주전력이 거기 다 매달려 있는데. 하, 이거 제대로 된 전력이 시간 맞춰서 올 수는 있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선배들 틈에 껴서 자연스럽게 베테랑인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파티의 레이드 진형 배치는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여기 모인 면면이 이 정도조차 못할 인재들은 아니었고 최서린의 지휘 하에 게이트 입구를 세 방향에서 둘러싸며 대기하는 형태가 잡혔다.
이걸로 어느 정도는 버텨볼 만한 상태가 됐다.
“그쪽은 술은 좀 깼습니까?”
“씹, 속 쓰려 죽겠네. 내 상태를 봐라. 깨겠냐고.”
정영하는 저쪽에 토하고 나서 좀 상태가 괜찮아졌는지 더는 비틀거리진 않았다.
“쉴 시간이 대략 3분 정도는 남았으니까, 급한 볼일이나 유서라도 쓸 거 있으면 미리 써놔요. 슬슬 처음에 잡은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는 거 알고 정찰대 여럿이랑 분대 하나쯤 올 겁니다.”
“유서는 시바, 아까부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리고 다음은 웨이브가 몰려올 겁니다. 원래는 웨이브 못 오게 정찰병들을 원거리 직군이 잘라가면서 전진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원거리도 다 여기에 잡혀 있으니 정보 전달이 되는 대로 다 몰려오겠죠.”
“지금 겁주는 거냐? 하나밖에 없는 전문 탱커를 격려해줘도 모자랄 판에···.”
“네. 겁주는 겁니다. 겁먹을 거 있으면 지금 다 겁먹고 가야 합니다. 그때부터는 쉴 틈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 웨이브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당신이 겁먹어서 굳는 순간, 당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죽습니다.”
그때처럼 남은 시간도 없고 초반부터 꼬이면 살 기회라도 있지만, 웨이브 터지면서 포위당한 상태면 도망칠 방법은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것 하나뿐이다.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말은 안 하지만, 내가 별로 재능이 없는 건 나도 알아. 가뜩이나 몸은 맘대로 안 움직이고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프다고.”
“정영하씨. 온 힘을 다했으면 된 겁니다. 저기 민호는 다 구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그게 안 되는 건 당신도 나도 다 알아요. 우린 욕 먹기 싫어서 싸우는 겁니다.”
쓰린 속과 두통에 거무죽죽하게 죽어있던 정영하는 그 사실이 위안이 됐는지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구려졌다.
“그리고 난 당신은 못 믿어도 당신이 입고 있는 장비는 믿고 있어요. 당신 실수는 나랑, 지도강사랑, 저기 특급 유망주인 최서린씨가 어떻게든 커버를 칠 겁니다. 당신은 그 장비 믿고 좀 실수하더라도 넋 놓지만 않으면 됩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정영하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보다 돈이 더 믿음직스럽다니 엿 같은데.”
“긴장은 좀 풀린 모양이네. 3개월 내내 자랑했던 것처럼 돈 많은 게 정영하 씨의 아이덴티티 아닙니까? 칭찬한 겁니다. 당신이 입고 온 그 아이템 아니었으면, 웨이브를 이렇게 내부에서 버텨본다는 생각도 못 해요.”
“하, 너 어린 새끼 하는 말이 얄미워서 내가 이건 완벽하게 막아봐야겠다.”
나는 피식 웃고 이번에는 이민호에게 다가갔다.
“민호. 이건 이 웨이브는 전위 서브인 네가 잘해야 해.”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영하가 뇌절 치면 무조건 빈자리 지원해야 하고 최서린이 마음껏 딜 넣을 수 있게 중앙에 새는 것도 커버 쳐야 해. 그러려면 넌 앞뿐만 아니라 뒤도 계속 봐야 된다.”
“알겠습니다.”
나는 레벨빨로 서브 탱커를 맡아줄 지도강사와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여기 있는 팀원들의 역할을 전부 다 지정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여기 남은 전문 스카우트분들은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니, 중앙 지휘부에 자리를 잡고 예비대 역할과 현장 지휘를 같이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 한번 잘 막아보자.”
“저기 오는군요.”
서쪽에서 괴성이 들린다.
바위 옆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불길에 휩싸인 늑대 수십 마리, 그리고 불개미다.
그 위쪽에선 임펫들도 수십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늑대가 일정 거리에 도달하자 속도를 늦추며 자세를 낮추는 걸 보자마자, 나는 마력을 실어서 크게 외쳤다.
[개미 보지 말고 늑대에 집중해! 그쪽이 먼저다!]
몰려드는 개미 위로 늑대가 뛰어오른다.
내 말에 늑대의 궤적을 예상하며 미리 조준하고 있던 궁수들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정영하를 중심으로 전위가 육중한 자신들의 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어 기술명을 외친다.
[멀티 샷]
[천둥군주]
각종 기술 명이 외쳐지며 시끄러운 가운데 뒤늦게 마법을 완성한 최서린이 낭랑하게 기술명을 외쳤다.
[빙폭-원형꽃!]
우리 진형을 중심으로 가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얼음층 수백 개가 지면에서 솟아오른다.
점프해 들어오던 화염 늑대 다섯 마리가 꿰뚫려 즉사했다.
순식간에 형성된 얼음의 울타리 덕분에 전위들은 지척까지 다가왔던 개미의 위협에서 벗어나서 안에 고립된 늑대들의 어그로를 끌 시간을 벌었다.
자신이 해낸 일에 의기양양해 할 만도 한데, 최서린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나도 그쪽을 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쳤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너. 스킬명···.”
뭔가 했더니 그걸 봤나?
“그냥 하니까 되는 겁니다.”
몹시 재수 없다는 떫은 표정으로 노려보는데 해줄 말이 전혀 없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려면 나처럼 회귀해야 한다.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집중하죠.”
그랬다. 지금 여기서 오직 나만 활성 기술명을 외치지 않았다.
활성형 기술을 시전을 할 때, 마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부터 시작해서 육체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까지.
그런 건 배우고 난 뒤에야 오랜 관찰과 노력으로 숙달하게 되는 거다.
'기술을 구매하고 난 후에는 그 기술에 한에선 발동 방식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고 포인트나 스킬 습득으로 인한 캐릭터의 잠재 소모를 돌려주지는 않지.'
지금 2회차인 나. 그런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
그건 기술이 나가는 방식을 기술을 익혀 배우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내 잠재 한계가 B급이라고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과는 경우가 많이 달랐다.
난 기존의 레인저 빌드를 탄다면 액티브 스킬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