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계약자를 키우는 법
“당연하지만, 나도 어떻게 하는지는 옆에서 지켜볼 거야. 5할 이상의 지분을 허락할 생각도 없어.”
“사업 아이템 빼먹겠다고 대놓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정보를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니? 신들 사이에 정보가 얼마나 빠른데. 누가 갑자기 치고 올라가면 다 보여. 어차피 네 방법도 너만 할 수 있는 거 아니면 들통이 나게 되어있고.”
포르세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만의 특별함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방식으로 치고 나가 봐야, 성좌들도 바보가 아니니 어떻게든 조사하려 할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스타일을 따라 할 것이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최소한 저희가 동업하는 동안에는 그리 쉽게 쫓아올 수 없을 겁니다.”
이러면 약간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원래는 이 여신을 통해 기반을 잡고 그걸 바탕으로 독립해서 본격적인 사업을 하려 했는데, 마침 신좌인데다 유명한 신화와도 직접 얽힌 인물이니 제대로 동업자 관계가 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지분을 그보다 많이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시스템이 허락하는 최대 한계치가 말씀하신 것처럼 49%라서요.”
“별의 ‘투자자’라는 본분에 집중하라는 거네. 하긴, 그것도 일리가 있어. 시스템으로 보조받아서 성좌 취급을 받아도 인간 각성자가 진짜 성좌는 아니지.”
나도 그 부분은 인정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분은 얼마나 주실 생각입니까? 위대하신 포르세티 님의 공정함에 빌어보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긴. 원래라면 200만 명성이면 지분의 80%는 줘야 하겠네. 거의 끝까지 생존한다는 가정 하에 C급의 기대치는 250만이니까.”
역시 성좌들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B급이었고 B급의 결사대 수준 극 후반에 갈 때까지의 기대 점수가 1천만 정도였다.
“하지만 한도는 49%고 아직 네 실력에 대해선 미지수지. 네가 말한 정도로 클 거란 보장도 없고. 난 절반인 40%를 제시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시죠.”
“돈독 오른 것처럼 굴더니. 안 따지네?”
나는 짧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신님께서 속해있는 그 신화가 자기가 한 약속을 쉽게 어기는 쪽은 아니죠. 생각하시기에 합당한 점수였을 거로 생각합니다.”
“좋아. 그만한 신뢰가 있다면 나쁘지 않네. 너하고 이 사업, 괜찮은 시작이 될 것 같아.”
“이번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포르세티가 볼 수 있도록 화면 하나를 크게 띄워 보였다.
“포르세티님께선 여기 퀘스트란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더군요. 대부분 초반에 잠깐 아이템을 내려줄 때 쓰는 것이 전부고 이후로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당연하잖아. 과업을 내려주는 것만으로도 명성 점수가 소모되는데, 심지어 보상도 줘야 하지. 주는 보상과 쥐여 주는 정보의 급수에 따라 비용도 올라간다고. 과업, 신탁 같은 건 원래 써야 할 적기에만 사용하는 거야.”
“이 사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겁니다.”
“그게 대체 왜?”
“여기 제가 써놓은 걸 보시면 단순하게 간단한 지시를 내리는 정도로는 100 명성 정도면 충분하죠.”
물론, 이리 써봤자 전혀 뜬금없는 임무가 될 수 있으니, 창을 띄워두기만 하고 발송하지는 않았다.
성좌 인터페이스를 보면 진짜 별의별 게 다 있었다.
‘특정 지역의 게릴라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나, 필드 레이드 경보 따위를 명성 점수를 써서 구독만 하면 알 수가 있는 거냐.’
포르세티의 경우 얼마 전까지 스웨덴을 중심으로 활동했었는지 그쪽 구독을 하다가 끊은 흔적이 있었다.
던전 게이트의 드랍 테이블에다 던전 몬스터나 보스의 약점 같은 정보도 원하면 구매할 수 있다.
‘이러니 성좌들이 노력을 안 하지.’
그 외에도 수많은 정보가 있었고 그 모든 것이 명성 점수만 쓰면 확인할 수 있다.
잔머리 없이 그냥 우직하게 노력해 봐야 전혀 나오는 게 없는 거다.
차이가 없으니 그냥 편리한, 쥐여 주는 인터페이스를 관성적으로 쓰는 거다.
“그야 뭐, 어디로 가라? 그 정도 메시지야 별것 없으니까.”
“그간 제가 봐온 각성자와 성좌의 관계는 철저한 비즈니스였습니다. 어디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 테니 이곳으로 가라. 보상은 무엇이다. 대개 알려진 성좌들의 임무 방식은 이런 식이죠.”
“당연히 그렇지. 그게 쉽고 빠르니까.”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각성자와 성좌의 관계는 반드시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 그런 게 왜 필요한데? 명성이야 남아돌고 어차피 필요한 순간에만 딱 투자하면 간단한데.”
포르세티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성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어디서도 보상 없는 임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신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내 입에서 ‘믿음’의 과정이 뱉어지기 시작한다.
“왜 여기로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가면 나를 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게 나, 그러니까 그 각성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성좌는 어쨌든 날 챙겨주려고 임무를 내리는 것이다.”
“···과업을 계속 내려서 그걸 유도할 정도의 신뢰를 쌓는다?”
“예. 저 위에서 빛나는 특급의 각성자부터 보급을 맡은 F급의 보잘것없는 짐꾼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자기 성좌에 대한 그 광신적인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포르세티는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지 침묵했다.
“그래야 폰부터 킹까지. 체스말이 자기 자리를 멋대로 이탈하는 일을 막을 수 있죠. 모든 건 성좌의 의도 내에서 통제되어야만 합니다. 그걸 할 수 있어야 포르세티님. 당신이 다른 성좌들보다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장난 아니네. 난 그렇게까지 빡빡하게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이 중에서 유지혜를 최우선으로 꼽은 겁니다. 성장에 특화인 특성이라 적은 투자로도 가장 빨리 뜰 수 있고 양학에 특화된 덕에 특정 콘텐츠에서는 확실한 임팩트가 있죠.”
난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길드에 같은 성좌와 계약한 인원들을 밀어 넣을 생각인 거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길드라는 이름으로 계약자들이 한군데 묶이면···.”
“그 대장 한 명에게 과업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움직일 수 있다? 이건 예전 신화시대에 왕들이나 영웅에게만 신탁을 내리던 것과 다를 바가 없네.”
“그렇죠. 그런 방식으로 쓸데없는 낭비도 줄일 겁니다.”
포르세티에게 추천했던 네 명의 C급 유망주들은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나이가 어리고 길드를 창시하기 좋은 위치에 있으며, 사람을 이끄는 것에 특화할 수 있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B급 길드 3개가 궤도에 오르면 한 명의 A급, 운이 따라준다면 특급 능력자를 그들과 묶어서 합쳐줄 겁니다. 물론, 다음 순서는 국가를 움직이는 것이니 관리국도 꾸준하게 우리 사람을 채워놔야겠죠.”
“그래서 이 나라 인간들에 집중했구나. 넷 중 세 명이 한 나라 출신이길래 의아했더니.”
“제가 가장 알기 쉬운 나라니까요. 명성 점수가 궤도에 오르면 다른 나라로도 확장해야죠.”
“그러면 이유는 이해했고 이제 어떤 식으로 쟤한테 그 신뢰를 줄 건데?”
“유지혜는, 지금의 학생 시절이 지루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죠. 그것부터 채워줄 겁니다.”
저런 후기 양성과정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대부분의 어린 각성자들은 헌터로 각성하면 그때부터 온갖 고생을 겪어가며 체득해야 하는 그 자잘하면서도 필수적인 것들에 몹시 무지했다.
‘그리고 어디서 가르쳐주지도 않지.’
그래서 자기 잘 모르는 걸 대신해 줄, 심부름꾼을 찾기 위해서 각성자 매니지먼트나 길드를 찾게 되는 거다.
하지만 정작 나중에 커서 보면 엄청난 불공정 계약을 맺어서 매니지와 길드의 배만 불려줬거나, 아예 계약 시작부터 큰 사기를 당해 제대로 꽃펴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망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각성자가 한둘이 아니었지. 이 세계에 재능이 있는데도 그렇게 사라지거나, 하루살이 빌런이 되어버린 녀석들이 얼마나 많을까.’
유지혜 같은 경우에는 부모가 어지간하니 그 정도까진 안 가겠지만, 어쨌든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심정은 그 나이대라면 누구든 있다.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조금만 부추겨주더라도 잘 따를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가면 그게 신뢰가 되는 거지.’
가랑비 젖듯 익숙해지는 거. 그게 가장 무서운 거다.
“백번 말보다 한 번 보시는 게 낫겠죠. 지켜보시죠. 지금부터 시작할 테니까.”
* * *
유지혜는 요새 수업에 영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각성자 생활에 슬럼프가 온 것 같았다.
‘지루하네’
유지혜란 헌터 지망생을 서울의 길 가던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그게 누군데?’하고 답할 것이다.
범위를 좀 좁혀서 한국 중앙 헌터 아카데미에서 송출하는 X 튜브의 쇼 프로를 즐겨 보거나, 헌터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발매된 게임 중, 헌터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즐긴다면 ‘아 걔?’하고 아는 척 정도는 할 것이다.
사실, 지혜는 헌터라는 직업에 딱히 진심이지 않았다.
‘그냥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갈까?’
사춘기 때는 헌터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보면서 꿈을 키웠던 게 사실이지만, 막상 지역 학교에서 성적우수자로 중앙학교에 전학하고 나니 자신의 재능이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빨리 철이 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생 쓴맛을 일찍 느꼈다고 할 것이다.
이론 점수는 여전히 상위권이었지만, 결국 실기 점수는 재능으로 결정된다.
‘뭐, 길드에서는 두 가지를 따로 두고 적성에 맞게 채용한다고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결국 재능이다.
철들어서 체념하긴 했지만, 그녀도 치기 어린, 뽐내고 싶은 나이대의 소녀다.
쇼 프로그램이나 방송에 나오는 각성자처럼 잘나고 빛나고 싶은 건 당연했다.
‘정신 차리자. 유지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때려치울까 고민하긴 했지만, 사실 그럴 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물고 태어난 수저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어디서 오는지도 잘 알고 있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내 예상 최종 등급은 C급이 유력이라고 했었나. 빌드 잘 짜서 아주 잘 돼봐야 B급···.’
각성자 사회도 꽤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유망주의 잠재력을 측정하는 방법도 점점 정확해져 갔다.
그러니 아마 지혜의 등급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졸업반이기도 했고 부모님의 착하고 성실한 딸에 대한 기대감에다가 가업의 특성도 헌터 인맥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기까지 해놓고 이제 와 포기하는 것도 좀 자존심 상하지? 아빠 사업 돕고 나중에 물려받으려면 여기 친구들 많이 사귀어둬야지.’
그렇게 적당한 비슷한 급의 사업가와 정략적으로 결혼하거나 조금 잘난 정도의 각성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게 높은 확률로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삶일 것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같이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일어서면서 지혜는 오늘도 어제 같은 일상을 반복하기 위해 한 걸음 내디뎠다.
“부럽네···.”
“어. 지혜야. 방금 뭐라고 했어? 나 못 들어서!”
“아니야. 유라야. 별 것 아니었어.”
친구들에게 평소처럼 방긋 웃어 보이는 지혜의 시선은 조금 전까지 12 특별반의 배지를 달고 자신들만의 세상에 빠져 일반 반과는 괴리되어 있던 일단의 무리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혜의 인생은 갑자기 갱신되기 시작한 임무 창으로 인해 스펙타클하게 바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