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3화 (3/128)

1장 - 성좌에게 스팸날리는 그놈

당황은 잠시였고 눈앞의 여신은 신좌답게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일단 진정하신 것 같은데. 이제 일 이야기 좀 하죠.”

“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건데, 신좌씩이나 되시면서 대체 왜 명성이 모자란 겁니까?”

그리고 나온 이야기는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내용이었다.

‘이딴 놈들이 신이어도 괜찮은 거냐?’

그저 ‘따서 갚으면 된다’를 당연하다는 듯이 시전한 도박러를 보는 내 눈동자는 쉴 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네.”

“예?”

“너 지금 헤르메스나 토드, 라크슈미 아줌마를 보는 눈빛을 하고 있잖아. 넌 대체 신을 뭐로 보는 거야?”

푼수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애써 참았다.

“난 그 정도로 도박에 미치진 않았다고. 원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끌어 쓰는 건 도박이 아니라 투자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이렇게 신용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

“실례지만 언급하신 세 분은···.”

“그 신좌들은 도박의 신 속성이 있지. 애초에 그쪽으로 타고나서 감이 좋다 보니 승률도 높은 편이고. 애초에 걔들은 그래도 돼. 그걸 아니까 다른 신들은 알아서 한도 내에서 자제하는 거고.”

하지만 그러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본론이군요. 어쩌다가 이리되신 겁니까?”

그러자 여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게···. 이자 감당 가능한 선까지만 빌리긴 했는데. 대출 신청이 기각됐지 뭐야?”

“······감당 가능했던 것 맞습니까?”

“아니! 지금도 수습은 된다고! 아빠한테 걸릴 각오하고 적금 깨거나 청약 해지하고 물건 처분하면 다 갚을 수 있단 말이야!”

그제야 이게 뭔 상황인지 감이 잡혔다. 그러니까 애초에 나에게까지 기회가 온 건, 쓰면 반드시 걸리는 공동명의, 혹은 묶인 재산을 처분해서 걸리는 일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본래 건전한 자산관리는 안정적인 캐쉬카우를 늘려가면서 여유자금으로 투자를 굴리는 게 정석이라는 건 아시겠군요.”

“그렇긴 한데, 요새 누가 그렇게 해. 그런 식으로 해선 평생 성좌 순위 밑바닥 못 벗어난다고.”

“그건 자신만의 사업 아이템 없거나 그런 사업아이템을 굴리는 사람에게 투자할 안목이 없이 그저 가진 돈만 굴리는 경우죠.”

“하? 그러면 넌 그런 사업아이템이 있다는 거야?”

그래도 신좌라 그런지 척하면 척 이쪽 의도를 알아먹으니 편하긴 하다.

“아시다시피 전 인간입니다. 신좌 분들과 달리 현장에서 뛸 예정이고 시장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죠.”

“그렇긴 하겠네. 그래서 네 사업 아이템이 뭔데?”

“그 전에 성좌 분들께서 어떤 식으로 사업하시는지부터 알고 싶은데요. 제가 명성을 드리면 어쩌실 생각이었습니까?”

그러자 여신은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가챠 돌려야지.”

“네? 가챠요?”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달랐다. 서로 그 분위기를 파악한 탓인지 침묵이 흘렀다.

각성자가 성좌와 계약을 맺는 걸 생각하던 나는 그저 싹수가 보이는 유망주를 발견하고 접촉해서 계약하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갸차라는 말이 나온 거다.

“뭡니까 그건.”

“어. 음···. 뽑기?”

“의미라면 저도 압니다. 제 질문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닐 텐데요.”

“이런 거?”

커다란 홀로그램 같은 창이 떠오르고 여신은 그걸 바닥에다 복사해 넣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그러니까 모 애니에서 보던 소환진이랑 똑같은 게 있었다.

“다른 걸로 커스텀도 가능한데. 난 이게 좋더라고!”

“가챠의 별아 돌아라?”

“어! 아는구나? 그거지!”

“이거 하면 뭐가 나옵니까?”

“그건 직접 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

푼수인 척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분위기 잡아서 날 호구 잡으려는 게 아예 멍청하진 않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도 제가 상황을 다 파악하기 전에 15만 이상의 돈을 빌려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마저도 계약서 작성하셔야 빌려드리고요.”

여신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이건 뭐에 쓰는 거고 한번 돌리는 데 명성 점수 얼마가 들어가는 겁니까?”

“아직 계약자가 없거나, 각성 직후인 인간을 매칭시켜주는 거지! 10 연차에 2만 5천 명성! 그리고 B급 유망주 하나 확정이야!”

그 말에서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이런 게 시스템으로 제공되는 거라면, 성좌들이 직접 인간 유망주를 찾으러 다니는 게 아니었군요.”

“당연히 명성 딸리면 그런 짓도 가능은 한데, 너무 시간이랑 노력이 많이 들어가잖아. 좀 쓸만하다 싶어서 기껏 계약하려고 해봐야 다른 신들이랑 이미 계약했거나 이 시스템으로 매칭된 애들이 널리고 널렸어.”

분명히 엄청 편리하긴 해 보이는데, 딱 봐도 대놓고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여기서 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봤다.

‘이런 구조라면 아마도···.’

내 생각이 어떻든, 이런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신기했는지 눈앞의 여신님은 신이 나서 수다를 떠는 중이다.

“그 외에는 C급, D급인데 가끔 터지는 애들이 있긴 해도 그건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해. 무엇보다 그냥 유망주를 찾는 건 오롯이 성좌 안목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스템으로 확인되는 녀석들은 무작위로 고유 특성이나 성향 같은 걸 하나는 무료로 개방해주거든.”

저런 정보를 공개해준다면 확실히 큰 이점이 있다. 거기에 2.5만당 B급 하나와 매칭이다.

그 계약서는 이 기억 상으로면 나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영웅이 벌어들이는 위업의 25%를 성좌가 받아간다고 되어있었다.

1회차의 내 잠재력은 고작 B 등급이었다.

그런 내가 성좌에 받은 건 거의 없음에도 죽을 때까지 이룬 업적이 1천만이다.

‘25%면 250만. 계약만 되면 투자 수익이 100배다. 오래 버틴 내가 좀 특이한 경우였다고 해도 회수율 2배, 3배 정도는 우습겠지. 거기에 딱 한 명만 나온다는 보장도 없어.’

B급 하나만 계약해서 잘 키우더라도 오래지 않아 본전은 뽑을 수 있겠지.

“물론, 제대로 키울 작정이면 명성 대거 투자해서 성향이나 특성 같은 거 최대한 개방하긴 하는데, 그건 비용이 꽤 많이 들거든!”

“알아서 매칭을 시켜주는데다 처음에 공짜로 정보를 하나 열어준다. 명성을 쓰는 만큼의 장점은 있군요.”

“응. 그래서 다들 이걸 쓰는 거야.”

하지만 이러면 다들 모이는 명성 가지고 계속 돌리면서 좋은 유망주만 하염없이 기다릴 확률이 높다.

신이든 인간이든 이렇게 클릭 한번에 그런 노가다를 줄여준다면, 기왕이면 고등급 유망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그런 특급을 키우고 싶은 게 당연한 거다.

그리고 그게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맹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있다면 이미 쓸만한 유망주는 고위 성좌나 신좌들에게 다 선점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딱히 그렇진 않아. 일단, 이 매칭 시스템은 임시계약을 하는 거야. 그 기간에는 다른 성좌들이 건들지만 못하는 거고. 인간 세상에 있었다면 아마 너도 계약 여부는 누구 몫인지 알 건데?”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연히 계약 여부는 인간이 정하게 되어 있었고 이는 잘 알려졌었다.

“물론, 네 걱정도 맞아. 진짜 제대로 된 특급 유망주면 여러 신좌, 성좌들이 즐겨찾기 해두고 틈날 때마다 꼬시기는 하지. 경쟁이 심하긴 해. 내가 지난번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걔는 A급이었는데···.”

수다가 길어지려는 조짐에 일단 끊었다.

“일단, 됐습니다.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어? 어. 말해.”

“그래서 성좌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 유망주를 키웁니까?”

“아이템을 주지? 적성 확인한 다음에 키우고 싶은 빌드 공략 보고 모자란 특성 달아주고?”

“정성 들여서 계속 이것저것 참견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거 지원하면서 키우는 건 고등급 잠재력을 가진 인간들뿐이고요?”

“어. 구린 애들을 굳이 키울 필요가 있나?”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을 건데요?”

“아니 신들도 신경을 쓸 수 있는 거엔 한계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다 하나하나 키우고 앉아있어. 저등급은 대충 초반에 템 몇 개 던져주고 특성 싼 거 달아주고 놔두는 거지.”

뜻하지 않게 각성자 간에 벌어지는 차별의 이유, 그리고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라 몹시 착잡해졌다.

“그러다가 정렬해서 전투력 순위 상위권에 즐찾 안 한 녀석이 커서 있으면 그때부터 신경 쓰는 거고?”

“잘 아네. 원래 살아남는 놈이 강한 거야.”

뭔가 어느 신화 느낌이 드는 발언이다. 나는 왠지 이 여신의 출신을 알 것만 같았다.

어쨌건 착잡한 건 착잡한 거고 이 여신이 하는 육성 게임에 대한 나의 감상은 몹시 간결했다.

‘이건 사업이 아니잖냐.’

이건 그냥 가내수공업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신이나 성좌들도 다 비슷합니까?”

“그렇지? 가끔 운명의 계약자를 자기가 직접 찾겠다고 설치는 특이한 애들이 있긴 한데, 있는 시스템을 안 쓸 이유는 또 뭐야?”

“그쪽 말고요. 낮은 잠재력을 가진 각성자를 키우는 성좌가 없냐는 말입니다.”

“그야 있기야 한데, 그건 그 좀 빈곤하신 분들이나 그렇지. 다들 명성 모이면 버려두고 더 좋은 녀석을 키우는 건 당연한 것 아냐?”

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당연히 각성자 사회에서 살아온 나도 그 정도는 우리 사회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알려주지 않고 자기만 하는 신좌나 성좌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건 경쟁자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 사이 눈앞의 신좌도 이제 좀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슬슬 이 신좌에게 내 매력을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선. 저하고 투자 계약을 맺어서 얻는 이점을 말씀드리죠. 먼저, 성좌들께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어지간하면 각성자의 인성 파악이 가능합니다. 현실에서 사람 풀어서 조사 돌리면 되니까요.”

“아! 그렇겠네? 넌 현실에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네. 우선 성향 하나를 안 보고도 여는 셈이죠. 더불어 성좌가 없는 각성자를 조사해서 성향이 맞는 적합한 성좌 분들께 추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명성 포인트를 아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고등급은 아닐 거잖아.”

바로 맹점을 찌르고 들어오긴 했지만, 그리 타격은 없다.

“성좌분들께서 하시고 계신 사업에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사람은 모이면 힘을 냅니다. 예전처럼 왕이 다 해 먹는 시대는 끝났죠.”

“그···런가?”

물론, 극 후기의 결사대 수준까지 가면서 인프라 다 망가지면 신들 생각처럼 [고등급 = 권력]이 되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직전인 대전쟁 때까지만 가더라도 ‘병력’의 역할을 하는 일반 각성자들이 영웅을 잘 따르는지 아닌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과거로 따지더라도 마찬가집니다. 왕에게도 병력은 있어야 하니까요.”

“아, 그러네!”

그저 발상의 전환이다. 머리가 나쁜 신좌는 아닌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니 편하다.

“네. 바로 알아차려 주시니 편하군요. 굳이 왕이라 불릴 정도 인물, 그런 영웅의 카리스마가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성좌의 휘하라는 이익으로 뭉쳐버리는 겁니다. 그게 하위 잠재력을 다수 키워서 얻는 가장 큰 이득입니다.”

“나중 가면 자잘한 명성들이 모이는 것도 클 거고?”

“그렇죠.”

“하지만 결국 그 관리가 귀찮다는 문제가 있잖아.”

“그래서 제가 있죠.”

말 그대로다. 그래서 내가 있었다.

“저 혼자서는 알력다툼에 무너질 테니 다른 성좌 분들이나 신좌 분들도 이 그룹에 끌어들여야겠지만, 적어도 저하고 초기에 인연을 쌓으신 분은···.”

“그만큼 이득을 얻는다는 거구나? 꽤 재밌네. 일리는 있어.”

“거기에 제 각성자 직업도 심상치 않긴 하잖습니까. 별의 투자자라는 직업.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여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특별함을 인정했다.

“어. 숨겨진 직군인 것 같네. 사실 정신 차리자마자 하고 싶었던 게 너랑 계약 맺는 거였는데, 계약 자체가 안 들어가. 네 말대로 성좌 취급 받는 모양이야.”

“어쩌시겠습니까?”

“음···.”

여신은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두 개 내밀었다.

“200만 정도 투자를 받고 싶어. 구체적인 지분은 유망주 정한 뒤에 결정하고 싶고. 당연히 네 컨설팅을 받는다는 전제야. 그러면 중요한 건 계약이랑 투자 대상을 정하는 건데, 정식 계약을 맺기 전에 그쪽 안목을 한번 보고 싶네.”

“어떤 식입니까?”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애들 중에서 한 명을 정하자. 그리고 걔 문제점 확인하고 어떤 식으로 키울지 정리하는 거야. 어때?”

“사업 설명회 느낌이군요.”

익숙한 맛이다. 정보국장, 정찰대장에게 브리핑할 때 생각이 난다.

“성좌가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당연히 점수 들어가는 것 빼고는 다 쓰게 해줄게.”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보고 살펴봐야지 어떤 유망주에 투자할지 결정할 수 있겠죠.”

“그럼 결정이네. 너, 이름이? 언제까지 너라거나 인간이라거나 부를 순 없잖아?”

“김유성입니다. 여신님은 뭐라 불러 드리면 될까요?”

“나는 법률의 신 포르세티. 부친은 발드르. 북구 신화의 정점인 오딘의 손녀지.”

“···제가 북구 신화를 잘 아는 건 아닌데, 발드르 신의 자녀는 남자 아니었습니까?”

“잘못 알려진 거야. 저쪽 법의 신인 유스티티아가 여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전혀 알 수 없는데요?

내 입에선 바로 참지 못한 개드립이 튀어 나갔고,

“그럼 혹시 아서왕은···.”

뭔 말인지 알았는지 포르세티는 피식 비웃었다.

“그건 실화가 아니잖아?”

“그···렇죠? 하하.”

“거짓된 이야기도 진실로 믿는 이가 많다면 성좌로 등극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확한 대상 하나가 지정되지 않으면 누구도 그 이야기로 성좌가 될 수가 없어.”

그리고 쪽팔려 하는 나에게 깔끔하게 쐐기를 박아 넣었다.

“애초에 인간이 신의 성별을 어떻게 정확히 알고 말하겠어. 난 아빠가 싸고 돌아서 결혼도 안 한데다 내 성별을 말해준 적도 없는데. 다 자기들이 대충 외모 보고 짐작한 거겠지. 내가 좀 늠름해 보이긴 하잖니.”

여전히 늠름하기보단 푼수에 친구 없는 히키코모리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분위기가 풀리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이 신좌에게 내 능력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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