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성좌에게 스팸날리는 그놈
우측에 지구 곳곳이 보이는 화면을 옆에 둔 소녀는 메시지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건 왜 자꾸 날아오는 거야! 필터링 기능은 또 왜 안 먹히냐고!”
그 명성 점수가 거의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성의 스팸질에 대한 성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대범하게 무시하는 성좌들이 있는가 하면, 기준이 현재 명성 보유액이라는 걸 눈치채고 인맥을 동원하거나 대출로 원인을 제거해버리는 성좌도 있었다.
거기에 시스템적으로 스팸 매크로에 대항해 자동차단 프로그램을 만들어내 팔아먹는 성좌가 있는가 하면, 시스템의 유일한 창구인 ‘문의사항’에 항의하는 글을 남기는 성좌도 있었다.
물론, 그 항의 글은 시스템적 ‘차단 기능’이 있다는 이유로 깔끔하게 무시 되었다.
그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몇몇 성좌들의 경우, 없는 살림에도 명성 점수를 써서라도 성좌코드 자체에 차단을 먹였으나, 슬프게도 지금 히스테릭한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겐 그 차단을 먹일만한 작은 명성 점수조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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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나 성좌는 통일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쓰던지 쓴 사람의 의미는 자동으로 해석된다.
“나 금수저라고! 그만햇!”
3일 전부터 온갖 기괴한 형태로 변형되며 계속 날아오는 저 메시지에 명성 대출 신청에 관한 승인이 날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포르세티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에 이르렀다.
게시판에는 가난한 성좌들을 위주로 이 스팸에 대한 불만이 나오곤 있긴 했는데,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이슈화하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빠한테 연락해서 해결해달라고 할까?”
몹시 강렬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치맛단을 잘근잘근 물어뜯던 포르세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의 부친은 그 유명한 북구 신화의 ‘발드르’였기에 사실 마음만 먹으면 부친에게 명성 점수 좀 보내 달라고 해서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야! 안돼! 이제야 독립했는데 그럴 순 없어!”
부친인 발드르는 딸에게 너무 끔찍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랬다.
독립도 어머니를 통해 간신히 허락받은 것으로, 부친이 그녀의 꼴을 알게 된다면 지금의 독립적이고 행복한 니트 생활은 바로 끝장날 것이다.
어쨌든 점잖은 신이나 성좌들끼리 유지되던 커뮤니티였다. 이들이 언제 이딴 스팸 폭탄을 받아봤겠는가?
포르세티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진저리를 쳤다.
“으, 로키 아저씨의 장난도 이것보단 나을 거야.”
신으로선 처음 겪어보는 좆간질에 문화충격을 느끼던 포르세티는 그새 또 날아온 메시지에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그녀가 기다리던 그것이다.
자동반사적으로 삭제로 향하던 손가락은 간신히 멈췄다.
[대출 심사 안내]
대출 승인이 거부되었습니다.
내부 심사 결과 고객님은 대출 심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모든 대출이 거절되었음을 알립니다.
- 사유 -
1. 신청하신 대부분의 대출은 ‘성좌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입니다. ‘신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2. 고객님의 재산 보유액은 제공되는 서비스인 ‘저소득자 대출’의 심사기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3. 신참자 대출은 성좌, 혹은 신좌가 된 지 500년 미만인 분들에게만 유효하며, 신청자께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그랬다. 그녀는 금수저였고 그녀와 부친 공동명의로 부친이 들어 놓은 금융 상품이라거나 신물, 성물 등 각종 지분들은 그녀를 저소득자로 구분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포르세티는 모니터를 집어던지며 발광했다.
“이···! 이···! 지랄하지 마! 아아악!”
이후, 가구들이 박살 나는 소리가 30분쯤 지나고 간신히 진정한 그녀가 의자에 기대앉으며 손가락을 튀기자 모든 물건이 원상복구 되었다.
“어떻게 하지.”
빚까지 내서 계약자에게 장비를 맞춰준 탓에 들어오는 명성 대부분은 이자로 전부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 투자 대상인 계약자는 깝죽거리다가 레이드 도중 훅 갔고 이제 그녀 밑에 있는 계약자는 재능이 그냥 그저 그런 녀석들뿐이다.
전형적인 따갚돼를 시전한 자의 최후였다.
애초에 그녀 자체가 이름이 잘 알려진 신이 아니었고 그나마 들어오는 명성은 대부분 부친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들어오는 미세한 수치가 전부다.
그나마 물려받은 재산으로 이자 수입을 받아오며 저축해서 이번에 펼쳐질 차원 간 전쟁만 기다렸는데, 결과는 이모양 이꼴이다.
포르세티의 시선은 그새 또 날아온 문제의 스팸 메시지로 향했다.
그녀도 저게 뭔지는 잘 알았다. 계약자들 구경하다보면 가끔 보게 되는 거다.
당연히 사기라 생각했고 스스로 교양있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딴 거에 절대 걸리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사기에 걸려드는거구나. 아···몰라. 정신만 바짝차리면 될 거야. 음. 그래. 엿되면 아빠가 해결해주겠지.”
여기 자조하면서도 메시지를 날려보는 신생이 있었다.
* * *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잘 구현되어 있었고 1인 1계정이라 이런 방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한 명 쯤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잘 이야기해서 어떻게 입소문을 내보자고 한 건데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올 줄은 몰랐다.
“또 차단 당했네. 날먹 좀 하려 했더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몇몇 성좌는 연락을 걸어 욕설부터 퍼부으려 했으나, 나도 몇 번 욕설을 담은 통화를 한 후로는 메시지로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한 경우만 연락을 이쪽에서 하는 것으로 결심한 참이었다.
재밌는 건 차단당한 쪽에서 차단자의 세 배의 명성 점수를 지불하면 차단을 풀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는 반드시 메시지 보내야 할 일이 있다면 점수로 차단 해제하고 또 차단당하기 전에 한 번은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겠지.”
지금까진 허탕이었다. 어쨌든 이것도 고객이 있어야지만 일을 할 것 아닌가?
물론, 진지하게 고민인 성좌와 연락만 닿는다면 성공할 자신은 있었다.
‘미래지식이라는 치트 가지고 이 정도도 못 하면 인생 접어야지.’
마침 매크로 기능이 있길래 코드 짜서 딱 한 놈만 걸리라고 무지성 스팸을 날리긴 했는데, 답변이 없는 걸 보니 슬슬 방법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측 하단에 편지지 모양 아이콘이 떠오르며 메시지가 왔다.
[저기요. 얼마나 빌릴 수 있어요?]
나는 바로 답신을 날렸다.
[단순 대출은 기본 5만에 15만까지 가능합니다.]
그러자 잠시 답이 없다가 불만을 가득 담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여요.]
“이상한데. 돈 급한 성좌한테 이게 작은 금액이 아닐건데?”
뭔가 촉이 왔다. 이거 이름값 있는 성좌다.
물론, 뭔가 이상한 감이 왔을 뿐. 이때의 나 역시 상대가 신좌일 가능성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서둘러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낸다. 이런건 임기응변이 생명이다.
[당연히 더 투자할 수 있죠. 조건만 맞다면요. 하지만 그런 메시지를 보내놓고 처음부터 많은 금액을 이야기하면 신뢰감이 없지 않을까요?]
[그건 아니까 다행이네요. 명성은 얼마나 가지고 있어요?]
명성 점수 여유는 충분했다. 무려 인류결사대에 있던 인간이 죽기 직전까지 쌓은 명성 점수다.
내가 말했던 장비나 특성 몇 개는 결사대에서도 최고 수준의 특성이나 장비를 말했다.
결전 이전 초중반일수록 그런 후반에나 가질 수 있을 특성 가격이 급등하는 걸 생각하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
[천만은 넘습니다.]
총 보유액은 딱 천만 명성이 조금 넘었다.
[어, 음. 그 정도면 꽤 있긴 하네.]
이게 ‘꽤’라고? 순간적으로 이 성좌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금액은 아닐 텐데요? 대출 하실 겁니까? 아닙니까. 그것만 말씀해주시죠.]
[그렇긴 한데. 아, 아니에요. 그 추가 대출 조건 맞는다는 건 어떻게 되요?]
[그건 계약자에 대한 지분투자에 그 계약자에 한해서 이쪽의 직접적인 컨설팅을 따른다는 조건입니다.]
그 메시지를 보내자 한참 동안 답신이 없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답신이 없어서 쫑인가 싶어 스팸이나 보내고 있는데, 그 성좌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처음 소액으로 하려고 한 것도 그렇고 방문해서 직접 컨설팅을 하는 거면, 사기는 아니겠네요. 처음에는 사기치려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이 좁은 지구 성좌 사회에서 어떻게 사기를 치겠어?]
[신좌 3-EX73-6692-2279님이 당신을 방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내 어안도 벙벙해졌다.
“아니. 신좌가 왜?”
그쪽은 자기들 신화권 가문끼리 아주 잘 주고 받는다. 솔직히 믿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신성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과거 신화가 컨텐츠로 소비되는 이런 시대에 절대 명성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그쯤되자 내 머리도 의심으로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에리스나 헬 같은 빌런 성향의 신인가? 이거 잘못 건드렸다가 엿먹는 거 아냐?’
[아니. 초대 안 받아요? 나 이거 장난친 거면 화날 것 같은데? 우리 아빠 아주 무섭거든요?]
‘아빠 찾는거면 뭐 오딘이나 제우스라도 되는거냐?’
나중에 알았지만, 오딘은 이 신좌 할아버지였다.
어쨌건 거절하기엔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고 모든 업적 점수를 명성으로 전환한 탓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던 나는 초대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자신은 없지만, 입 잘 털어보자.’
초대를 수락하자마자 몸이 빛에 휩싸여 어디론가 이동되었고 바로 앞에 생긴 문이 보인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살짝 펑키한 차림에 알록달록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여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신은 여신이라는 건지 인간의 인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다.
이성적 매력보다 먼저 경외심부터 드는 외모라는 게 뭔지는 진짜 난생 처음 알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에 넋을 잃은 건 이쪽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여신도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인간?”
도리어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쪽은 사업을 하러 온 거다.
“반갑습니다. 신좌이실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그래서 수락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악!”
나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침착하게 말했고 여신은 비명을 질렀다.
“너! 인간 주제에 신의 진체를 보고 왜 안 죽는데?! 명성 점수는 왜 가지고 있어?”
그 말에는 짐작 가는 것이 좀 있었다. 원래도 신좌가 신성을 소모해서 제 각성자에게 진체를 강림한다거나 하면 계약자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었다.
“그건 제 각성 직업명이 별의 투자자라 그런 모양이네요. 제게 성좌 인터페이스가 생긴 것으로 보아, 시스템에 의해 그런 부분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습니다.”
“에에?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건 또 뭔 병신 같은 소리냐고오!”
그리고 그게 어딘가 댕청한 기분파 신좌, 포르세티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