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U
어느 날 아침, 미래의 기억이 몰려들었다. 진짜로 뜬금없었다.
잠자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데굴데굴 구르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해본 적 없는 것들이 기억이랍시고 들어있다.
그 기억 상으론 내 1회차는 인류결사대의 정찰대원이었다.
“아니. 나 애초에 왜 회귀한 건지부터 모르겠는데.”
애초에 이게 회귀가 맞긴 한 건가?
가장 문제가 된 건 회귀하게 된 장면부터였다. 기억에 없었다.
“그게 기억에 있어야 회귀인지 아닌지 확신을 하지.”
그렇다 보니 이게 예지인지 아니면 회귀인지조차 명확하지가 않았다.
깨어난 뒤 많은 것을 생각해봤다. 하지만 어느 하나 이렇다 할만한 것이 없었다.
“말해봐야 미친놈 취급받을 거고? 진짜 예지인 거 증명해봐야 끌려가기밖에 더하겠냐고.”
그렇다고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난 평범한 일반인 1이었다.
그나마 각성의 전조가 있다고 해서 막 각성자 교육과정에 등록하고 온 것이 엊그제다.
“뭐. 별 기대는 없긴 했는데···.”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개쩌는 재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재능은 있고 그걸로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산다는 거니까 좋아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래 봐야 인류가 멸망해버리면 뭔 소용이냐. 그건 그렇고. 그나마 이게 예지보다는 회귀 쪽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증거는 업적 포인트였다. 슬쩍 외쳐봤더란다.
‘거 누구나 하는 그거 있잖냐.’
각성한 것도 아닌데 (임시)붙은 상태창이 열리길래 깜짝 놀랐는데, 아직 각성 안 했다고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은 업적란 말곤 없었다.
“업적 기능으로 재능을 살 수 있는 거였지.”
그런데 있으면 뭐하나. 기껏해야 원래 있던 거에 재능 조금 추가하고 또 구르다 죽을 것이다.
회귀했으니 기연 다 ‘독식’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사람마다 [재능 한계]라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재능 한계 수치 안에서만 그 재능을 더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눈앞을 딱 가로막고 있다.
‘뭐, 과거랑 달리 난 최적 효율로 빌드를 짜 올릴 수 있을 테니 저번 회차보다는 낫긴 하겠지.’
그런데 이 문제의 업적 창은 나만 쓰는 것이 아니고 그 수많은 재능충들도 다 이걸 사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다 꼬라박고 터져나간 게 인류결사대다. 재능한계는 다들 100% 채웠다는 거지.
?? : 그래서요? 유성! 우리가 이제 이 업적포인트로 뭘 할 수 있죠?
나 : 음. 그딴 건 없다. 친구. 팝콘이나 가져와라.
이게 딱 지금 내 심정이었다. 이번에도 결사대에 합류할 때쯤엔 팝콘만 뜯을 각이다.
그래도 전생에 정찰대원이었으니 이번 생에는 정찰대장쯤 하려나?
“그래도 뭐, 저번 인생보다는 낫긴 하겠네. 쉽게 얻을만한 쓸만한 장비가 뭐가 있더라?”
별 기대는 안 했다. 재능의 폭거와 성좌의 편애라는 건 쉬이 극복할만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내겐 회귀를 기반으로 아가리를 털 두뇌도, 남의 기연을 대신 차지할 충분한 능력과 정보도 없었다.
소설에서는 남이 얻은 기연 어디에 있었더라 하면서 쉽게 얻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비범한 거지. 얻는 과정에서 뭐가 있을 줄 알고 거길 기어들어가.”
평범한 사람은 그런데 못 기어들어간다.
난 그저 일반적인 회귀자가 알만한 사실, 그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 그러면 이번에도 내 인생. 별것 없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짱박혀서 업적포인트 상점 아이 쇼핑이나 할 때 보였던 것이 업적 포인트 ‘환전’이었다.
동시에 떠오른 건 결사대 정보부에서 정보를 다루면서 알게 되었던 수많은 별의 비사들이었다.
“···명성 환전? 그러고 보니 지난 회차에선 왜 이런 걸 못 봤지. 이거 2회차 특전인가?”
명성 점수. 입싼 성좌들에서 나온 정보였다면서 결사대에게 모인 정보를 정리하던 도중에 선배급 정찰대원과 정찰대장이 하는 대화로 흘려듣듯이 알게 된 것이다.
성좌, 그리고 그 위의 신좌들이 각성자와 계약을 맺고 후원을 하는 이유는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본인의 영향력을 세상에 떨치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역사의 기록이나 계약한 각성자의 활동이 명성/신앙 포인트로 전환되고 이 명성 포인트로 성좌는 재능이나 능력, 버프 따위를 자기 각성자에게 걸어준다.
갑자기 뜬금없이 각성자 업적 창에 성좌들의 재화인 ‘명성 환전’이라는 품목이 뜬 것이다.
“뭐지. 이거 뭔가 돈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어차피 이번 회차에 뭔가 될 거라는 기대치는 없었다.
애초에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그냥 죽긴 싫으니 또 회귀할 수 있길 소망해볼 뿐이었다.
돈냄새가 풍긴다고 말했지만, 사실 다른 거 없었다. 그냥 ‘재밌을 것처럼 보였다’가 내 본심이었을 거다.
“자! 명성 코인 가즈아!”
말은 거창하게 말했지만, 조심스럽게 100포인트만 전환해봤다.
그리고 기적처럼 제3의 길이 펼쳐졌다.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업적 점수 사용으로 숨겨진 직군을 선택 가능합니다.]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특수 점수 획득으로 숨겨진 직군을 선택 가능합니다.]
[해당 직군 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용사
2. 예언자
3. 강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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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술가
말 그대로 처음 듣는 온갖 독특한 직업의 향연이었다.
13. 독자
그 와중에는 뭐에 써먹는지 모르겠는 이런 이상한 직업도 있었고
17. 사채업자
딱 봐도 포인트 가지고 장난칠 것 같은 직업도 있었다.
그런 히든 클래스로 가득한 20개의 직업란을 쭉 읽어내려가던 도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이거였다.
20. 별의투자자
딱 마지막에 위치하기도 했고 왜인지 눈에 딱 들어오는 놈이기도 했다.
“그리고 딱 봐도 ‘별’붙은 거 봐. 수상하잖아.”
‘성좌 = 별’이다. 직업에 별이 붙은 것 치고 구린 직업이 없었다.
‘이건 걸어볼 만한 도박이다.’
어차피 잘못된다고 해도 전생에 얻었던 직업의 특성군 그대로 얻고 장비 갖추면 얼추 흉내는 가능했다.
그런 생각이 ‘못 먹어도 고’를 외치게 했다.
“실화냐?”
성좌 인터페이스가 열렸다.
헌터 직업군은 예상했던 대로 별의 투자자.
잠시 인터페이스를 살피던 나는 뭘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모든 업적포인트는 그날 바로 명성 점수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