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41화 (341/341)

해가 지는 제국 (5)

“왜 우리 아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반년 동안 알려주지도 않는 거냐! 정부는 해명하라!”

“““해명하라! 해명하라!”””

“지중해 함대가 전멸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전사자들에게 일언반구조차 없는가!”

“““해명하라! 해명하라!”””

대영제국 국민들이 요즈음 공감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나라 꼴이 영 아니올시다-라는 거였다.

정부는 ‘프랑스군이 무적? 그거 다 그짓말임.’, ‘동맹군은 승리하고 있음.’ 이라고 검열과 프로파간다를 전개했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의 귀를 아예 틀어막을 수 있겠는가.

“포츠머스에 상이군인이 엄청 늘어났다는데?”

“어머머, 정말로?”

암암리에 정부가 숨기는 전황이 속닥속닥 빨래터에서, 시장에서, 골목에서 퍼져나갔고 정부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프랑스 새끼들이 또 이겼다며?”

“이러다 정말 나라 망하는 거 아냐?”

“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자유주의자들이 뭐 그렇게 죽일 놈이냐?!”

차라리 이대로 계속 질 바에는 지금 평화협상에 나서는 편이 낫지 않을까-하는 여론이 조금씩 올라오는 지금.

커다란 승전보가 터지며 모든 걸 쓰나미처럼 덮어버렸다.

“신임 총사령관 웰즐리 장군이 프랑스군을 대파했습니다!”

“지금껏 적수가 없었던 프랑스군을, 우리 대영제국 레드코트가 멈춰 세웠습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 대영제국이 앞으로 따올 무수한 승리의 시작일 뿐입니다!”

“웰즐리 장군이 물리친 프랑스 육군 제 7사단은 여태껏 신성로마제국과 6번 싸워 6번 이긴 정예부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조차 우리 브리튼의 아들들을 물리칠 순 없었습니다!”

남부 독일 방면으로 파도처럼 들이닥치던 프랑스군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영국군에 의해 국경까지 밀려났고 적 장성 한 명은 아예 목숨을 잃었단다.

“개구리 새끼들 마! 별거 없네!”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건 죄가 아니다. 그들의 죄목은 대영제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슬렀다는 거지!”

“웰즐리 그는 신이야!!”

듣도 보도 못했던 식민지 파견군 출신의 장성이 순식간에 구국의 영웅으로 에스컬레이트 되고 온 브리튼 제도의 성당과 교회는 승리 감사 예배를 올렸다.

염전 여론은 승전보에 저 멀리 날아가고, 가족의 전사 통지서를 보고 부르짖는 부모들은 승리에 도취된 군중에 의해 희끄무레하게 사라졌다.

“웰즐리가 정말 큰 일을 해냈군.”

“기회가 왔습니다. 여론이 잠잠해진 지금이야말로 국내에서 염전 사상을 가진 자들을 솎아내야 합니다.”

“그도 그렇군. 만일 패전보라도 들려오면 잠깐 들뜬 분위기는 반발 때문에 더 엉망이 될 거요.”

웨스터민스터와 수상은 대대적으로 방첩대와 경찰을 풀어 여론을 다독였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웰즐리를 더 높여줍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지금 동맹군에는 누구나 기꺼이 믿을 수 있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제 대영제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희망인 아서 웰즐리가 건재한 한 쓰러지지 않으리라.

만일 그마저 쓰러진다면... 그건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프랑스 공화국, 베르사유.

국민방위대 총사령부.

- 딸깍.

“······.”

“······.”

- 딸깍.

“······.”

“······.”

전쟁의 방에 있는 사람만 해도 열이 훨씬 넘어가건만, 펜을 조물조물거리는 소리 외에는 방 안에 그 어떤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이 휩싸인 분위기를 환기시킨 건 결국 펜을 조물거리던 한 사람.

- 딱.

그가 펜을 탁자 위에 딱-소리 나게 올려놓자, 침묵하던 이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니 뭐, 다들 왜 이렇게 바짝 쫄아있어요? 내가 누구 잡아 먹는다고 한 것도 아닌데. 하하하.”

거짓말.

입은 웃고 있지만 그의 미간은 30년 동안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형태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 누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 좀 해줄 사람?”

“······.”

“허허. 참.”

누가 봐도 극대노한 통령과 말을 섞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해드리지요.”

“아 좋죠.”

결국 총대를 맨 건 수도방위사령관 라파예트 원수. 애초에 혁명동지인 그 외에 누가 감히 입을 열 수 있겠나.

“···마르몽 장군은 현장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지만 그 판단에 근거는 확실했습니다. 최소한 저, 라파예트가 생각했을 때 아무 이유도 없이 병사들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린 건 아닙니다.”

“좋아요. 잘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원수의 해명을 들은 통령은 펜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르몽 장군을 파리로 불러들이세요.”

“각, 각하.”

“아아,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그의 신변이나 명예에 해코지를 할 의도는 아닙니다.

나 또한 육사를 나왔고, 라파예트 원수님의 설명도 들어서 마르몽 장군이 이적행위를 하거나 똥별짓으로 병사들을 사지로 몰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7사단이 소멸했다고 했지요?

통령이 덧붙였다.

“예, 각하.”

“리옹에 7사단 신병훈련소를 설치하고, 마르몽 장군에게 7사단을 재편하라고 하세요. 재편이 끝나면 그에게 새로 신편 되는 사단들을 추가해 새 군단을 만들어 맡기겠습니다.”

요컨대, 자신이 잃은 부대를 다시 자기 손으로 재건하며 패배를 곱씹고 투쟁심을 불태우라는 것.

혹시나 마르몽 장군에게 가혹한 형벌이 부과될까 노심초사하던 이들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지금 패배한 남독일 전선군의 분위기를 환기하려면 보직 이동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르몽 장군이 맡고 있는 남부 독일 전선 사령관은 앙투안 드제 중장으로 교체하지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다들 풀 죽지 말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다운되어 있으면 국민들은 누굴 믿고 단잠을 청하겠습니까.”

““시정하겠습니다!””

장교들이 있는 힘껏 내지르는 소리에 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패는 용납하지만 헛짓거리하다가, 쫄아서 병신짓 하는 건 용납 못합니다. 이상 전달 끝.”

***

“웰즐리라.”

나는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거, 연이란 게 있긴 있나 봐.”

하필 많고 많은 인간 중에 나랑 그렇게 얽혔던 웰즐리의 동생이라니. 이러면 내가 공화국의 적이 출세할 수 있게 로열 로드를 깔아준 건가?

아니지.

오히려 친불파로 몰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산간벽지에서 식민지 반란군이나 때려잡던 걸 수도.

시발. 히스토리 채널에서 다큐 좀 많이 볼 걸.

원 역사를 조또 모르니까 내가 얼마나 세계선을 비틀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간 선에선 나 때문에 인류가 너무 빨리 발전해서 2023년에 온 빙하가 녹아버리고 세상이 <투모로우>처럼 멸망해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재산을 얼마 정도 처분하면 그 영화에 나오는 방주에 탈 수 있지?

됐다. 일단은 부족한 머리로 고민해봤자 알 수도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하자.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친불파를 키운답시고 돈을 대준 웰즐리 가문의 둘째가 내 등짝에 칼을 박아넣었다는 것.

개새끼. 어쩐지 갑자기 네덜란드에 깔짝거리더라. 구라핑도 참 찰지게 찍어?

어떡한다? 저 새끼 계좌에 이삭의 민족이 입금해준 거래내역을 쏵 뽑아서 유리병에 넣고 영불 해협 너머로 띄워 보낸 뒤 심어 넣은 간첩들로 ‘프랑스 돈으로 호의호식한 샤이 매국노’ -라고 선동해버려?

아니면 아서의 형인 리처드 웰즐리의 아내가 프랑스인이라는 걸 빵빵 터트려서 실각시켜?

쓰읍.

어느 쪽이든 지금 이순신 대접을 받는 저쪽에게 약발이 그렇게 좋진 않을 거 같다.

기껏해야 ‘아이고 우리 장군님 옷에 겨가 좀 묻으셨네 허허’ 하고 말지 않을까.

그러면 역시 웰즐리가 아니라 대영제국 그 자체를 노려야겠다.

원래 손자병법에도 잘 모르겠으면 영국을 공격하라고 하지 않았나.

“탈레랑 장관.”

“예, 통령.”

“우리 신대륙에 사는 친구들은 잘 지낸답니까?”

“아주 잘 살다마다요.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돈을 억수로 벌어놨더군요.”

“크헤헤. 좋습니다.”

어디 야바위질로 한번 겨뤄보자고.

아 물론 내 야바위질은 진짜야.

***

1815년 3월.

대서양 공해.

“저기 있다!”

“좋았어! 성조기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수병이 되게 해주세요.”

“아-아- 반복한다. 귀함은 현재 대영제국 왕립 해군이 경계하는 수역에 들어왔다. 순순히 무장을 해제하고 아측의 지휘에 따르라.”

왕립 해군의 지중해 함대가 사라지면서, 안 그래도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던 왕립 해군은 이제 정말 여유 따윈 없었다.

아, 프랑스 놈들이 영불 해협을 건너서 백만 대군을 드랍하면 게임이 터진다니까?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은 50명을 잡았다! 내일은 100명을 잡을 것이다!”

미국 국적 상선을 털어 선원들을 강제 자원입대시키는 것.

독립한 지 겨우 40년밖에 안 됐고, 아직 영어가 우리가 아는 미국식, 영국식 영어로 분화되지도 않은 지금.

미국인 선원들은 영국 해군성이 군침을 흘리는 달달한 인적자원이었다.

“좌현 견시보고!”

“뭔데.”

“1000야드에 성조기를 단 군함입니다!”

“미해군? 그 좆밥 새끼들이 갑자기 왜.”

“아무래도 이번에 잡은 신병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쯧. 대충 겁줘서 쫓아내 버려.”

평소에도 미해군 함선들이 상선 주위를 맴돌며 호위하긴 했지만, 미해군은 아직 네덜란드 해군보다도 약한 군사조직.

아마도 겁을 좀 주면 지레 꼬리를 말고 도망가리라.

그러나.

“아- 아- 반복한다. 여긴 미합중국 해군 USS 컨스티튜션이다. 지금 당장 강제 억류하고 있는 미합중국 시민을 해방하고 해적행위를 중단하라. 그대들에겐 명예도 없는가?”

“우린 대영제국 왕립 해군 소속 HMS 글레이저다. 현재 함에 타고 있는 전원은 대영제국 신민이며 귀측은 지금 고귀한 왕립 해군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

답변을 들은 미해군 함장의 얼굴에 핏줄이 우수수 돋아났다.

“야 이 씨-발 맞짱 깔 새끼들아! 양심이 뒤졌냐?”

“뭐, 뭐?”

“라이미 새끼들 아니랄까 봐,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 구라질이야?! 당장 우리 시민들을 풀어주란 말이다! 우리가 쌍안경 너머로 니들 해적질을 똑똑히 봤으니까 작작하란 말이다!”

“이 좆같은 반역자 새끼들이 어딜 감히 신성한 대영제국의 군인을 모욕해!”

USS 컨스티튜션은 더 이상 정신병자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포문을 열었다.

*

컬럼비아, 워싱턴 D.C.

“미합중국이 1776년 독립을 선언한 이래, 지금과 같이 미국 시민권자의 재산과 자유, 그리고 신체가 경각에 달했던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대영제국과 전쟁을 하시겠단 겁니까?”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안전과 주권, 행복,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문명사회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데,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본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은 미합중국 상원 및 하원 그리고 군부에게 현 시간부로 대영제국과의 전쟁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미쳤군! 우리가 영국을 어떻게 이기겠다고!”

“걱정마시오. 프랑스 공화국이 우리의 편이니.”

대영제국에게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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