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36화 (336/341)

지브롤터 공방전 (4)

하다못해 동접자 100따리 서비스 종료 직전인 게임에서도 레벨 1짜리 뉴비에게 매칭 상대로 레벨 99짜리 고인물을 붙여주진 않는다.

그랬다간 밸런스 좆같이 잡는 망겜소릴 듣고 게임도 그걸 만든 게임사도 펑 터져버릴 테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접자 수십억을 항시 유지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좆망겜 중의 좆망겜은 배짱장사가 따로 없었다.

고이다 못해 썩은 물, 아니. 석유가 되어버린 이들이 ‘1대1 투혼, 초보만^^’ 을 도배하는 퇴근 시간 이후의 마굴 배틀넷도 충분히 끔찍하건만, 현실은 스타처럼 관광 좀 탄다고 겨우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프랑스의 해군을, 운명을 짊어진 루카스 제독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투 넥, 투 커맨드 만들어서 싸우는 정석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이길 수 없으니 미쳤다고 치고 도박수, 날빌을 박는다.

아무리 개고인물 빠요엔이라 할지라도 투 넥 지었는데 4드론 저글링 러쉬 당하면 지지 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다행히도.

그의 도박수는 적중했다.

지브롤터 함대결전 개시 48분째.

“먼바다에서나 느그들 세상이지 여기도 느그들 세상 같냐?”

“다 죽여버려!!”

“무조건 밀어내!”

“개구리들이 넘어오면 다 죽는다아아!!”

“하부 갑판에서 상부 갑판으로 포 가져와!”

난전 그 자체.

어떻게 해서든 교두보를 놓고 백병전을 시도하는 프랑스군.

어떻게 해서든 교두보를 밀어 떨어뜨리고 거리를 벌리려는 영국군.

애초에 판을 깐 대로 유기적이고 질서정연한 조직력이 힘을 발휘하는 전장보다, 개개인의 무력과 용기, 투지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개판 일 분 전인 전장.

프랑스군은 널빤지는 기본이고, 돛 보강용 목재까지 끌고 와 배와 배 사이에 밀어 넣었다.

영국군은 개인화기는 기본이고, 하부 갑판에서 그 무거운 포를 끌고 올라와 기어코 포격을 갈기려 들었다.

수많은 프랑스군이 납탄에 맞아 바다로 떨어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그 모든 희생을 짊어지고 마침내 적함에 발을 디딘 이들은 자신들이 짊어진 희생만큼 적의 피 값을 두둑하게 청구했다.

결국 난전을 보다 못해 먼저 수를 쓴 건 당연히 영국.

“여긴 기함 HMS 로열 소버린이다. HMS 아킬레우스와 HMS 아가멤논, HMS 콜링우드는 현 시간부로 본함을 따라 적의 측면을 타격한다.”

“아킬레우스. 명령에 따라 이동하겠습니다.”

“아가멤논도 움직이겠습니다.”

“콜링우드 변침 완료. 기함과 100야드 유지하며 따르겠음.”

1급 전열함 한 척과 3급 전열함 세 척.

총 4척으로 구성된 별동대가 슬쩍 전장에서 발을 빼곤 뒤쪽으로 표표히 빠져나갔다.

프랑스 공화국 해군 기함, 르두터블의 선미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는 루카스 제독은 그 소함대를 포착하곤 입을 열었다.

“놈들의 우리 측후면을 노리는군.”

“예?”

“저 움직임을 보게. 우리 함대가 전부 저쪽 전열에 꼬라박은 후 기동력을 상실하면, 저 별동대가 우리의 후방으로 크게 빙글 돌아 적당히 거리를 벌린 후 꼼짝달싹 못하는 우리를 향해 원거리 포격전을 펼치겠다 이거지.”

그렇게 되면 공화국 함대는 무엇 하나 수도 쓰지 못한 채 벌집피자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우현 비상타, 040으로 변침한다. 함대 기함 르두터블이 선봉에 선다. 나머지에게도 전해. 현 시간부로 모든 증기선은 기함을 따라 우현으로 긴급변침 후 빙글 돌아오는 적 별동대를 잡아 죽인다.”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저 별동대가 우리 뒤를 잡는 순간, 적에게 들이받은 아군은 다 죽는다.”

양측 제독이 명령을 내리며 전투의 다음 그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시간 축을 대충 1000년쯤 휘감아, 번뜩이는 냉병기가 오고 가는 전장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이곳.

1급 전열함인 HMS 로열 소버린과 그 뒤를 따르는 세 척의 전열함은 충분히 본대와 멀어진 걸 확인하곤 배를 다시 우현으로 꺾었다.

“좋아 120도로 꺾은 후 유효사거리만큼 전진한다.”

“우현 전타! 120도!”

찰스 코튼 중장은 소매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이거면 됐다.

적장이 무슨 수를 썼는지 – 카리브해 원주민들이 쓴다는 악마의 부두술이라도 쓴 건가? - 개구리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악귀처럼 달라붙는 건 예상치 못했지만, 그래도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짬바가 어디 가겠는가?

일단 열 받아서 들이박긴 했으나 전투가 시작된 이후 코튼 중장은 감정을 억누르고 지극히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지휘를 맡았다.

이대로라면 코튼이 이끄는 별동대는 야들야들한 적의 아랫배와 뒤통수에 무자비하게 칼침을 박아버릴 수 있으리라.

“우현 견시보고!! 프랑스 분견함대입니다!”

“···쯧. 쉽게 쉽게 가고 싶은데, 하필 적장도 대국을 어느 정도 볼 줄 아는군.”

망원경 너머로 프랑스군 함대가 일부 쪼개져, 돌아오는 코튼의 별동대를 향해 키를 돌렸다.

“그렇다 한들 크게 변하는 건 없다.”

그는 망원경을 차르륵 접어 품 안에 넣으면서 읊조렸다.

적장이 선수를 치긴 했으나 그렇다고 파훼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한 수 잘 놨다고, 한 방 먹였다고 승패가 갈리면 체스에서 백을 누가 잡겠나?

“놈들은 또 백병전을 시도하겠지?”

“아무래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쉽다. 안 당해주면 된다.

“우리가 저쪽보다 더 높은 풍상에 있다. 이대로 바람을 안고 치고 빠지면서 기동력이 달리는 프랑스 분견대가 격침될 때까지 농락하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야.”

제깟 놈들이 아무리 궁리를 해봤자 아니겠나.

해전에서 가장 손쉬운 승리의 열쇠는 언제나 기동력이다.

이제 전장을 크게 돌아 풍상을 차지한 코튼의 별동대는 드디어 왕립 해군의 우월한 조함능력과 조직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놈들과 300야드 거리를 계속 유지한다. 살살 화를 돋워보지.”

“알겠습니다! 우현 포문 개방!”

“우편 포문 개방!”

그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매일 8시간씩 훈련해 몸에 완전히 익어버린 삭구이문이 실시되고 포문이 개방되자 육중한 대포가 그 아가리를 배 밖으로 내밀었다.

“거리 420야드!”

“420!”

“지금! 우현 전문 쏴!”

쿠쿠쿵---!!!

로열 소버린의 주변에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만들어지자, 수면이 마치 땅이 갈라지듯 파열(破裂)했다.

“명중탄 없음! 지근탄 세 발!”

“포각을 3도 올린다.”

“아이아이 써!”

딱 아슬아슬하게 사거리 안에 들어온 적을 상대로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로열 네이비의 우수한 함상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적은 천천히 조여오는 왕립 해군의 올가미에 목이 걸린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될-

“제독님! 적함이 접근합니다!”

“뭘 그리 질겁하나? 아까 말했던 대로 풍상을 타며 조금씩 빠진다.”

“그, 그게, 뭔가 이상합니다!”

“뭔데?”

“적함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뭐? 설마 명중시켰나?”

“아닙니다! 분명히 명중탄은 없고 지근탄뿐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이들이 의아해 할 때.

공화국 해군 기함, 르두터블.

“기관장. 현 상황은?”

“보고! 전 기관 정상 작동 중입니다!”

“바람을 좀 거스를 수 있겠나?”

“안 될 거 뭐 있겠습니까!? 전속으로 전진시키겠습니다!”

“좋아. 놈들에게 이제 제 놈들의 전성시대가 끝났다는 걸 보여주자고. 좌현 전타, 015도 변침 후 양현 전속 전진.”

검은 연기를 토해내는 세 척의 군함이 자연의 섭리 따위는 거스르고 부수며 잔잔한 지중해의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

인류가 처음으로 ‘배’라는 것을 고안하고 바다를 제 삶의 터전 중 하나로 삼고자 한 이래.

인류는 항상 바다와 투쟁했다.

거대한 자연의 흐름인 해류에 대항하기 위해 노를 만들었고.

무서운 폭풍우에 대항하기 위해 천문학과 항해법을 발전시키고.

수많은 뱃사람의 생목숨을 앗아간 괴혈병을 극복하기 위해 숱한 실험과 개선을 거쳐 배에 야채를 싣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은 바다를 이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제 기분에 따라 그런 인간을 제 놀잇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바다가 ‘아 오늘 기분 좀 꿀꿀한데?’ 하면서 바람을 갑자기 멈추면, 배는 어디 오고 가지도 못한 채 <무풍지대>라는 이름의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천천히 굶어 죽어 표류하는 유령선이 되었다.

바다가 ‘아 오늘 스트레스 좀 받네?’ 하면서 바람을 갑자기 불어넣으면, 배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태풍>이라는 이름의 자연의 힘 앞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러나 오늘.

인간은 실로 바다를 극복했다.

“프랑스 전열함, 거리 400! 점점 가까워집니다!”

“세상에.”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코튼 중장은 자기도 모른 세에 난간을 있는 힘껏 쥐어뜯으며 말했다.

연어처럼 바람을 거스르며 올라오는 세 척의 전열함.

그리고 그 전열함들이 토해내는 시꺼먼 연기.

아무리 정면이 아니라 사선으로 바람을 맞고 있다지만 프랑스 군함은 바람 따위, 자연 따위 제 알 바냐는 듯 위풍당당하게 물살을 헤치며 코튼에게 오고 있었다.

저러면 안 된다.

저래선 안 된다.

이건, 이건 사기다 씨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신화 속에 나오는 뱃사공 케이론이 모는 저승의 배보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표표히 다가오는 저 빌어먹을 공화국 군함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돛을 최대로! 속력을 최대한 붙여서 빠진다!”

“예, 예!!”

“개구리들이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정신 바짝 차려! 놈들이 이함하게 둘 순 없다!”

“전 포 사격 개시!!”

수십 발의 포탄이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 프랑스군 전열함의 함수를 타격했다.

“루카스 제독님! 함수에 적 포격이 쏟아집니다!”

“미리 준비해둔 보강재로 계속 덧대면서 나아간다.”

“알겠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단계, 엔드-게임이다.

신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인 통찰력 있는 명장이자 승리자가 되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신기술에 집착해 전쟁을 말아먹은 패배자이자 졸장으로 기록될 것인가.

공화국의 역사가, 전쟁의 향방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

르두터블의 곁에서 솟아오른 물기둥이 떨어지는 걸 피하기 위해 몸을 낮췄던 그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고 품속에서 호루라기를 꺼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전 장병, 백병전을 준비하라!!”

***

1814년 10월 말.

지브롤터.

쿠쿠쿵!!!

“열렸다! 열렸다! 드디어 저 빌어처먹을 요새 벽이 무너졌다!”

“대육군, 돌격 앞으로오오!”

“사, 사령관님! 개구리가 사방에서 물 밀 듯이 들어옵니다! 놈들의 공성포에 동쪽 성벽도 기능을 잃었습니다!”

“해군육전대 약진 앞으로!!”

“오늘 무조건 저 저주받을 지브롤터 모가지를 딴다!!”

“프랑스군이 함대를 이 앞까지 끌고 와 해군기지 근처의 포대를 전부 침묵시켰습니다! 적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항복... 하겠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 부디 우리 장병들에게 자비를 보여주시오.”

“잘 생각하셨소. 귀하의 염려대로, 우리 공화국은 명예롭게 싸운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소.”

“고맙소. 이건 항복의 의미로 건네는 것이니 부디 받아주시오.”

“흠.”

지브롤터 요새 사령관이 건네는 검을 받아든 나폴레옹은 그대로 몇 발자국 더 걸어가 다른 이에게 검을 내밀었다.

“제 생각에 이건 제독께서 받아야 할 선물 같군요.”

“요새에 깃발을 꽂은 건 육군이 한 거잖습니까.”

“제독의 엄호가 없었다면 깃발을 꽂기는커녕 깃발에 싸여 돌아갔겠지요.”

“···고맙습니다, 원수.”

한쪽 눈에 붕대를 칭칭 감은 장 에티엔 루카스 제독은 기꺼이 나폴레옹이 건네는 검을 받아들었다.

아주, 아주 멋진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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