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35화 (335/341)

지브롤터 공방전 (3)

쾅!!

거대한 36파운드 포탄이 30센티 두께의 두터운 장갑을 뚫고 들어와 선체를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승조원들이 잠을 자던 선실이 박살나고, 심심풀이로 즐겨하던 체스판과 체스 말이, 애지중지하는 개인 소지품들이 먼지 더미 속에 파묻혔다.

대포가 포가에서 떨어져 나 뒹굴고, 삭구가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져 채찍처럼 사방을 때렸다.

나약한 인간의 육신을 수십 조각으로 쪼개버릴 수 있을 압도적인 폭력.

그러나 기욤 텔 호의 하부 그 어디에도 인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널빤지 놔!!”

“그물망 던져!!”

“개, 개구리 새끼들이 이함한다!”

고작해야 3미터쯤 되려나.

공화국 해군은 기다란 널빤지와 그물망을 던져 양쪽 함을 잇는 교두보를 놓았다.

“발사!! 개구리 놈들을 죽여버려!”

“널빤지 치워!”

“그물망에 추와 갈고리가 달려있어서 걷어내기가 힘듭니다!!”

영국 수병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장대란 장대는 다 가져온 뒤 있는 힘을 다해 널빤지를 밀어냈다.

“해적 놈들이 쏜다!”

“쏴라!! 놈들을 이삭의 민족 케첩으로 만들어버려!”

“캬학!!”

영국 수병들이 개인화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애초에 갑판 위에 있는 병력의 수, 화력의 양, 숙련도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 쿵!!

널빤지가 놓이고 드디어 교두보가 만들어졌다.

“돌격 앞으로!”

“계속 사격해! 건너가는 아군을 엄호해라!”

“저 배를 따지 못하면 우린 다 물고기 밥이다!”

전장의 흥분으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공화국 해군육전대가 총검을 쥐고 순식간에 교두보를 건너 속속이 영국 전열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이 개구리 새끼-”

- 탕!

되는 대로 머스킷을 쏘려 한 수병의 이마빡에 해군육전대가 발사한 권총탄이 박혔다.

“죽어어어어!!”

고함과 함께 내지른 어느 왕립 해군 소위의 검.

“이딴 걸 공격이라고 하나?”

검이 노린 대상인 해군육전대 중사는 코웃음을 치며 훤히 읽히는 검로의 한가운데 총검을 들이밀어 검을 튕겨내고 개머리판으로 턱을 돌려버렸다.

“힛햐!”

“해적 놈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리자!”

공화국 해군육전대.

다르게 말하면, 해병대.

말만 해군이지 실질적으로 육군이나 다름없는 이들은 장교들 또한 툴롱 해군사관학교보다 파리 중앙군사학교 출신이나 군사공학대학을 나온 쪽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리고 해전이 전통적인 영국의 나와바리라면 육상전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나와바리.

군함이라는 요새에 타, 바다라는 성벽을 두른 왕립 해군은 프랑스군에게 호환마마나 다름없었지만.

그 모든 게 의미 없어진 함상 백병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는 뒤바뀐 지 오래.

이제 프랑스군이 호환마마, 왕립 해군은 빠루 앞의 참피, 전기 파리채 앞의 하루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개새끼들 다 죽여!”

“다 엎어 씨발!”

“키아아아악!!”

“우, 우리 집이!”

곳곳에 추억과 정이 깃든 모함을 침략하는 포악한 개구리들.

안타깝게도 이들은 퍼렁별을 침략하러 온 나사 빠진 외계 개구리가 아니라, 지구 출신의 포악한 토종 개구리이기에 지구인들에게 보여줄 자비란 없었다.

위에서 일이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챈 하부 갑판 승조원들이 집히는 대로 공구나 작살 따위를 들고 올라왔지만.

- 탕!! 타탕!!

“컥!”

“아아악!”

“함장님의 원수를 갚자!!”

“어디 한번 니들도 죽어봐!!”

하부 갑판에서 상부 갑판으로 이동하자마자 그들을 맞이하는 건 납탄 세례와 디저트 대용으로 찔러주는 총검들이었다.

“나가지 마! 개구리들이 우릴 도살한다!!”

“해적 놈들이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하부 갑판에 숨은 거 같습니다.”

“수류탄 굴려 넣어!”

- 쾅!!

“아아아악!!”

두어 번 더 수류탄을 굴려 넣으니, 매캐한 화약 연기 너머로 두 손을 엉거주춤 든 채 영국 수병들이 퀭해진 눈과 힘없는 발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항,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그마안...”

“하부 갑판 제압 완료했습니다!”

“함장실로!! 놈들 함장을 사로잡고 검을 빼앗아야 끝난다!”

“와아아아--!! 해적 두목을 잡아라!!”

온몸에 땀과 피를 흠뻑 뒤집어쓴 인간병기들이 위압감 넘치는 군홧발 소리를 내며 선실 문을 발로 깠다.

“난 프랑스 공화국 해군 소속 기욤 텔 호의 부함장이오! 이 배의 함장은 지금 당장 무의미한 저항과 희생을 그만두고 항복하시오!”

“신성한 대영제국 폐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항복할 것 같으냐!”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네. 수류탄 뽑아!”

“잠, 잠깐! 배 안에서 수류탄을 터트렸다가 자칫 잘못해서 탄약고를 건드리면 유폭 나서 다 죽는다고!”

“우린 그딴 거 몰라!”

“이, 이런 상식도 없는 미친 새끼들! 항복! 항복하리다! 제발 수류탄은 그만 던지시오!”

3급 전열함 HMS 콘커러의 함장은 해군으로서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된 이 미친 개구리들과 함께 폭사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블러디 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개구리 놈들이 백병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나도 눈 두 짝 다 멀쩡히 있다고!”

“함장님, 포도탄을 쏠까요?”

“뭐? 아군이 저기 얽혀있는데 미쳤나!”

기욤 텔을 ㅁ자로 포위한 다른 왕립 해군 전열함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100미터 앞의 아군이 괴물 같은 개구리들에게 도륙당하는 걸 지켜만 보고 있었다.

“포도탄을 쏘면 갑판에 올라온 개구리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암! 그럼! 당연하지! 우리 아군 수병들도 같이 육편이 돼서 나뒹굴겠고!”

74문 3급 전열함 HMS 블랙우드의 함장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병기장!”

“예! 함장님!”

“당장 무기고 개방하고 수병들에게 소병기 지급해! HMS 콘커러를 지원한다!”

“아이아이 써!”

ㅁ자 포위의 우측을 맡은 블랙우드가 그 거대한 선체를 움직여 기욤 텔의 측면을 들이박았다.

“널빤지 놔! 콘커러를 구원한다!”

“왕립 해군의 저력을 보여줘라!”

수병들은 대포보다 익숙지 않은 머스킷에 총알을 먹이고 널빤지 위로 올라 기욤 텔을 거쳐 한창 백병전이 벌어지는 콘커러에 올랐다.

“이 빠게뜨 새끼들아! 우리 전우를 놔, 놔, 히, 히이이익!”

“···너넨 뭐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기를 들고 뺨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는 프랑스 수병들은 동화책과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들처럼 눈을 희번덕거렸다.

“오오오냐 잘왔다 이 씹새끼들아.”

“쏴, 쏴버려!!”

“총알이나 먹어라, 이 괴물아!!”

- 탕!!

한 수병이 쏘아낸 탄환이 한 프랑스 수병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 깡!

“어윽 씨발!!”

“뭐, 뭐야.”

“흉갑이다! 개구리들이 흉갑을 입고 있다!”

어떤 미친놈이 해전에서 흉갑을 입는단 말인가.

자칫 잘못해서 바다에 떨어지면 수영도 못하고 꼬르륵 죽어버릴 텐데!

“그건 맨날 이기는 느그들 생각이구요.”

“우린 지는 게 디폴트값이거든?”

“지면 어차피 뒈질 건데 익사든 뭐든 상관있나?”

총알이 흉갑을 관통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각도가 틀어진 탄환을 튕겨내고, 냉병기에 배때기가 썰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저 새끼들도 족쳐!”

“으, 으아아!!”

동료를 구하겠다며 위풍당당하게 소총을 꼬나쥐고 온 왕립 해군 수병들은, 눈이 반쯤 돌아간 프랑스군을 보곤 바지를 흥건히 적시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

반불동맹군 연합함대 기함, HMS 로열 소버린.

“하하하! 저놈들 보십쇼!”

“병신새끼들 같으니. 해전의 ㅎ조차 모르는군.”

연합합대 사령관 찰스 코튼 중장은 망원경으로 HMS 블랙우드와 HMS 콘커러, 기욤 텔이 섞여 한참 전투가 벌어지고는 저 멀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함 능력이 아주 구데기군. 나였다면 블랙우드와 콘커러를 지나며 1급 전열함의 화력으로 둘을 반파했을 텐데... 저놈들은 숫제 배를 1회 용 뗏목처럼 가져다 박아버리지 않나. 저럴 거면 포는 군함에 왜 박아놨는지 모르겠군.”

“저놈들 손에 있는 군함이 아깝군요.”

저 멀리 떨어진 블랙우드와 콘커러에서는 거의 대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 시대의 한계 상, 그리고 제한적인 정보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오히려 블랙우드와 콘커러가 기욤 텔을 가둬놓고 두들겨 패는 구도처럼 보였지.

코튼 중장은 기욤 텔에서 관심을 떼고 이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전방 HMS 미노타우르스에서 입전입니다! 적 2번 함과 교전 중! 적이 백병전을 시도합니다!”

“HMS 스프링필드에 연락해! 당장 미노타우르스 우현으로 꺾어서 상대를 ㄴ자로 가둔 후 두들겨 팬다!”

“안 됩니다! 다른 전열함이 포화를 견디고 스프링필드에 달라붙었습니다!”

“어쩔 수 없군. 미노타우르스와 스프링필드 두 척에는 백병전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는 고속기동하면서 놈들의 측면을 깎는다.”

찰스 코튼 중장의 말에 왕립 해군 함대가 전열을 바꾸고 고속으로 돌면서 아군에 달라붙은 적함의 측면에 포격을 먹여줬다.

“적 2번 함 중파! 격침되고 있습니다!”

“제길, 격침되면 나포 포상금을 못 받는데... 어쩔 수 없지. 일단 승리부터 생각한다!”

적 1급 전열함이 미친 듯이 쇄도해 블랙우드와 콘커러를 덮친 건 예상외였고, 때문에 대형이 조금 찌그러졌지만, 아직 함대는 건재하다.

“미노타우르스에게 적 2번 함 함장에게 항복을 권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저어, 제, 제독님?”

“뭔가.”

“적이, 항복을 거부하고, 미노타우르스에 올라타 격전을 벌이고 있답니다.”

“···미친 건가? 아니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건가?”

코튼 중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순간, 마스트 위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제독님! 우현에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입니다! 저 괴물이 우리 함대를 좌우로 찢으려 듭니다!”

“2열 우익에서 두 대를 차출시켜 저놈 양현을 포위하고 속사 갈기라고 해. 저렇게 크면 무게중심이 위태로워서 양측에서 오는 공격에 취약해진다.”

그는 결코 무능한 장성이 아니었다. 기사작위를 수여 받아 이름에 ‘경(Sir Charles Cotton)’이 붙는 것만 해도 손에 꼽히는 인재라는 뜻.

“제독! 적 3열이 대형으로 들어옵니다!”

적의 제 3파.

좌우익으로 갈라진 적 함선 두 척은 그대로 또다시 몸을 가져다 박았다.

“···이놈들 뭐지?”

벌써 6척째 아군에게 들이박고 백병전을 시도하는 중.

한두 대가 꼬라박았다면 그건 배꼽을 잡고 비웃어야 할 병신 짓이다.

하지만 그게 세 대, 네 대, 다섯 대, 여섯 대라면...

합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건 더 이상 병신 짓이 아니라 적 지휘관의 의도로 봐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왜.

왜 적은 현대문명의 이기가 바다를 지배하는 19세기에, 기원전 그리스-스파르타인들처럼 구는가.

찰스 코튼 중장은 제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현실에 의문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의 지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함대를 나눈다. 모두들 백병전에 대비하고 우리 HMS 로열 소버린과 기동력에 능한 3급 전열함 두 척으로 별동대를 조직한 뒤, 놈들이 우리 함대에 달라붙어 조함이 불가 해지면 별동대가 적의 측면으로 기동해 적 전열함의 후미를 노린다.”

““알겠습니다!””

무슨 꿍꿍이냐.

풍랑도 때려 맞추는 영국 뱃사람 특유의 감이... 별로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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