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33화 (333/341)

지브롤터 공방전 (1)

“피레네 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나 다름없다.”

“사령관님. 아프리카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하지만 글로는 읽어본 적 있지. 연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 공기가 태양 빛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곳 아닌가.

수원지나 지하수를 끌어다 쓸 수 있는 일부 지역을 빼면 대체 스페인이 그런 아프리카와 다를 게 뭐지?”

모 프랑스군 장성이 사석에서 발언했듯, 이베리아 반도는 여름철 낮 평균 기온이 30도 후반에서 40도를 오고 가는 유사 아프리카.

북스페인과 해안가 지대를 제외한 스페인의 중부 일대는 회전초가 날아다니는 할리우드 서부극 영화 같은 모습.

괜히 점심 먹고 낮잠 때리는 시에스타라는 문화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40도 땡볕에 일을 하겠다고? 그랬다간 열사병으로 죽는다.

다행히 이제 태양이 힘을 잃기 시작한 9월이라 망정이지, 7월이었다면 병사들이 픽픽 열사병으로 쓰러져 나갔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때마침 말라가가 떨어졌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나폴레옹은 원수봉을 까닥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브롤터에 지그시 압박을 넣어 놈들을 묶는 동시에 수원지 위주로 기동전을 펼치면, 적은 탄약과 식량, 피복에 더해서 이제는 식수까지 직접 실어 나르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저어, 사령관님. 말라가가 함락되긴 했지만, 적 전투 병력은 아직 건재합니다. 아무래도 적을 한 번 더 회전으로 크게 박살내야 하지 않을까요?”

“하아. 귀관이 왜 그렇게 힘든 길로 가려고 하는지 난 잘 모르겠군.”

나폴레옹은 ‘일단 함 더 박죠? 우리 짱 쎄잖슴!’ 이라고 말한 참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예, 예?”

“나랑 잠깐 걷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머지는 잠깐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쉬고 있게. 그리 많이 걸리진 않을 거야.”

“““예. 각하.”””

싸해진 참모부를 예의 그 참모와 함께 나선 나폴레옹은 당번 장교인 페탱과 운전병까지도 물리고 자동차에 올라 직접 시동을 걸었다.

잠시 털털털하면서 석탄을 한 움큼 집어 삼킨 자동차가 엔진을 구동시켰고, 나폴레옹은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뭐하나? 타게.”

“예? 아, 예!”

참모가 차에 오르고 엑셀이 눌리자 자동차가 그대로 잘 닦인 길을 따라 달리길 한참.

“정지, 정ㅈ···.”

“야 이 미친새끼야!!”

“켁! 왜, 왜 그러십니까?”

“자동차 타고 다니면 싹 다 고위 장교라고 했잖아!!”

이등병를 쥐어박은 병장은 마음속으로 성호를 그은 후 이등병이 정차시킨 자동차로 다가갔다.

“충성!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덜그럭 덜그럭 거리면서 창문이 내려가고, 병장의 눈엔... 별이 많다 못해 더 이상 계급장에 뭔가 들어갈 공간조차 없는 블링블링한 견장이 비추어졌다.

“어, 어어.”

“날 아나 초병?”

“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총사령관 각하십니다!”

“하하. 알아봐 주니 고맙군.”

“가, 감히 차를 멈춰 세워 죄송합니다!”

“아니야. 경계 태세가 아주 좋군. 날 잡아 세운 그 친구 이름이 뭔가?”

“이봐! 이쪽으로 와봐!”

“예! 병장님!”

태연하게 운전석에 앉아 이등병의 경례를 받은 총사령관은 관등성명을 물었다.

“이, 이등병 한스 안데르센입니다!”

“음? 프랑스인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덴마크 출신입니다! 연합군의 이상에 이끌려서 북해를 건너왔습니다!”

“하하, 이거 참 멀리서 오신 귀한 분이었군. 만나서 영광일세.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데, 원래 직업이 뭐였소?”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가족은 있으시고?”

“예!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아들놈이 하나 있습니다!”

“아드님 이름은 어떻게 되오?”

“제 이름을 따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ristian Andersen)으로 지었습니다. 지 엄마를 닮아서 아주 똘똘합니다, 하하!”

“단란한 가족 같아서 내가 다 기분이 좋구려. 혹시라도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아드님이 파리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면 날 찾아오시오. 우리 공화국을 위해 헌신해준 사람에게 그 정도 도움은 드려야지.”

이래 봬도 내 아내가 소르본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거든.

이등병에게 제 주소를 적어준 총사령관은 그렇게 사람 좋게 웃으며 다시 차를 몰고 사라졌다.

스페인 말라가 인근의 한적한 마을을 지나, 임시로 지어진 주둔지에 도착한 그는 마침내 자동차에서 내려 병사들이 먹고 자고 쉬는 야전 막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우리 전우님들. 잘 지내고 있나?”

“···뭐여. 나보 이 아저씬 왜 여기 왔대?”

“자네들의 빌어처먹을 주둥아리가 그리워서 왔지. 어디 짬밥은 잘 나오나?”

“원수님이 다 횡령하시는 거 아녔소? 짬밥이야 원수님 꼬마 대령 시절 따라다녔을 때부터 항상 좆같았던 거 보면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총사령관이란 양반이 이렇게 쏘다녀도 되는 거요?”

곰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손질하는 공화국 고참 근위대. 그 옛날 나폴레옹이 처음 맡아 지휘했던 훈련연대 출신들.

나폴레옹의 첫 전투 이후 그를 따라 계속 종군한 이들과 나폴레옹의 관계는 상관과 하급자의 그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의 그것과 비슷했다.

독수리가 새겨진 플레이트와 붉은색을 더해 포인트를 준 푸른 군복을 입은 그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전우를 보며 실실 웃어댔다.

“옆에 그 참모님은 누구요? 우리 새 지휘관이신감?”

“아니. 혼자 오기 적적해서 데리고 왔지.”

“그럼 뭐 우리 알빤 아니구만.”

나폴레옹은 아예 사병들 옆에 털썩 주저앉아 캠프파이어 옆에 놓인 잔들 중 하나를 손에 쥐고 근위병들에게 내밀었다.

“한 잔 줘보게.”

“나보 이 양반아. 영내에선 술 먹으면 안 되는 거 몰라?”

“지랄. 내가 니 놈들과 아미앵에서, 빌레르-보카주에서 뒹굴 때부터 니들 막사에선 술냄새가 안 나는 날이 없었는데 무슨.”

“하! 기욤의 술 창골 디립다 털다가 이젠 하다하다 돈 없는 병사들 술까지 탐내는 거요?”

“하늘은 뭐하나 나보 저 쌍놈새끼 안 잡아가고.”

“그래서 안 줄 건가?”

“드릴 테니 한 잔만 마시고 냉큼 꺼지쇼. 간부들이 병사들 거 먹으면 부정 타.”

“알겠으니까 가득 따라주게.”

“거. 사투리 쓸 땐 사람이 되게 좋았는데, 표준어 쓰니까 사람이 영 능글맞아졌단 말이지.”

나폴레옹은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사담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피에르는 잘 지내나?”

“그 꿀빨러 새낀 우릴 버리고 육군 훈련소 조교가 됐소. 아마 지금쯤엔 죄 없는 삐약이들을 열심히 괴롭히고 있지 않을까.”

“정말?”

“뭐, 사실 우리가 강제로 그 새끼 이름을 전출요청서에 적어넣었지. 원수님도 아시다시피 그 친군 애가 다섯이잖소. 걔가 죽으면 그 애들이 다 애비 없이 크는 거니까... 뭐어... 우리끼리 작당모의해서 후방으로 보내버렸지.”

“자네 딸이 이제 일곱 살이던가?”

“그건 막내. 첫째는 올해 고등학교 입학했지.”

“학비는 부담 안 되나?”

“오, 통령님께 신의 가호 있으라! 통령이 이번에 월급이 올려줘서 그리 큰 부담은 안 돼.”

“나보 이 씨발새끼야! 내 훈장은 엿 바꿔 먹었냐?”

“왜 또 지랄인가 막시맹? 예전에 걸렸던 임질이 재발했나?”

“저번에 프로이센 감자 새끼들 줘팼던 날, 당신이 나한테 달아주기로 한 레지옹 도뇌르가 아직도 내 가슴팍에 안 달려있다 이 말이요! 설마 짬밥에 더해서 그것까지 횡령한 건 아니겠지!?”

“···참모?”

“예, 예?”

“이따 새 걸로 주겠네. 자네 것 좀 빌려도 되겠나?”

“아... 예에...”

나폴레옹은 동석한 참모의 가슴에서 레지옹 도뇌르를 떼어내 징징대는 병사의 가슴에 옮겨 달아주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군.”

“벌써? 좀 더 있다가지 그러쇼.”

“언젠 부정 탄다면서?”

“고약한 인간 같으니. 꺼지려면 얼른 꺼져.”

말로는 차갑게 굴면서 섭섭한 표정을 짓는 근위병들에게 이별의 의미로 악수를 해준 나폴레옹은 다시 참모와 함께 자동차에 타, 사령부로 가는 길에 올랐다.

“봤나?”

“예? 뭘 말이십니까?”

“병사들 말이야.”

“아... 각하와 매우... 친밀, 해 보였던 그자들 말입니까?”

“그래.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답을 원하고 물으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운전 중인 나폴레옹은 정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가족이 있나, 중령?”

“아. 예. 아내와 외아들이 있습니다.”

“아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빅토르. 빅토르 위고입니다.”

“좋아. 위고 중령. 자네가 전사했다고 한번 가정을 해보자고. 빅토르 군과 위고 부인은 어떤 마음일 거 같나?”

“···아.”

“우리가 지휘하는 병사들은 연금술로 만든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야. 그걸 항상 머리에 새겨놓으라고.

서류상의 숫자만큼, 인생이 있고. 그 인생에는 수 배에 달하는 이가 얽혀있지. 서류에서 한 사람이 죽는 순간, 수십 수백 명의 인생이 달라지는 거야.”

“······.”

“자네는 내 참모지. 고급 장교야. 자네가 충분히 노력하고 고민한다면 그만큼 인생 하나를, 인생 수십을, 수백을 구원할 수 있는 걸세.”

나폴레옹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단 한 사람이 수많은 이의 인생을 구원하는 걸 말이다.

돈 없는 촌 출신 장교후보생이, 만약 누군가의 선의와 도움 없이 그대로 컸다면 과연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신의 성정상 분명 어디 하나 맛이 간 인간이 됐을 거다.

아무리 실력 좋은 타짜라 해도 도박장을 떠나지 않는 한 결국 패배하기 마련.

실력은 있으나 끝없는 향상심과 승부욕에 잡아먹혀 결국 자신도 그런 꼴이 나지 않았을까.

“위고 중령. 나는 단 한 명도 허투루 쓰지 않을 걸세. 자네도 그랬으면 좋겠군.”

“잘 알겠습니다.”

“아주 좋네.”

나폴레옹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차를 멈춰 세웠다.

“들어가지. 다들 기다리고 있겠군.”

*

“쉬셰에게 전령을 보내. 더 이상 우리의 측면을 지킬 필요 없으니 당장 병력을 잘게 쪼개서 카스티야 남부를 휘저으라고.

제 1목표는 만사나레스 강이다. 그곳 상류를 우리 손에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마드리드엔 더 이상 물이 공급되지 않아.”

“알겠습니다!”

“지브롤터는 어차피 좁다. 해군의 지원이 없으면 함락시킬 수 없어. 2개 사단으로 지브롤터를 틀어막고 나머지는 얇게 쪼개 수원지와 담수지대를 따라 빠르게 진격한다.”

25만 대군이 그의 지휘에 따라 파도처럼 이베리아 곳곳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지브롤터, 수도 마드리드의 수원지인 만사나레스 강. 둘 중 하나를 막지 못한다면 이베리아 반도의 반불동맹군은 파멸이다.

그리고.

1814년 10월 8일.

프랑스 공화국 해군과 대영제국, 스페인 왕국 연합함대가 모인 이날.

지브롤터 공방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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