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 폭탄 배달작전 (3)
프랑스.
이 자랑스러운 조국을 수호하는 프랑스 국민 방위대는 두 집단으로 나뉘어있었다.
불패의 상승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원수가 지휘하는, 그 이름도 찬란한 대육군, 그랑다르메.
군복부터 흰색과 푸른색을 조합해 그 자체로도 잘 어울리는데다가, 휘장과 장식은 금색 실과 자수로 수놓아져 간지가 뿜뿜 뿜어져 나오고, 혹여 훈장이라도 받은 뒤 시내를 걸으면 여자들이 아주 뻑이 가기 일쑤.
대육군 장병들은 아리따운 아가씨와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에서 착한 주인장이 제공해준 공짜 식사를 대접받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식사 후엔 군인 할인을 받으며 오페라 하우스에서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영웅다운 대접을 받을 만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영웅이었고,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영웅이었으니.
그러니, 질투는 나지 않-
“시발. 좆같네.”
“누군 엿 같은 쉽비스킷만 처먹으면서 좆뺑이치는데, 누군 양고기 커틀렛을 썰어 먹어.”
“아! 쎅쓰 하고 싶다!! 나도 땅개 새끼들처럼 쎅쓰 하고 싶다아아!!!”
···정정하자.
존나게, 존나게 질투난다.
아름다운 조국 프랑스의 다른 한 축을 떠받치고 수호하는 국민 방위대 해군 장병들은 육군 놈들을 보면 배알이 꼴리다 못해 맹장염이 걸릴 지경이었다.
프랑스 해군은 육군처럼 간지나는 별명도 없었고, 그나마 있는 정복과 정모도 출항 시엔 고이 접어두고 시큼털털한 땀냄새에 쩔은 근무복을 입어야 했다.
짬밥도 좆같았다.
전장에 나가 야전 취사하는 육군이 ‘으앵 나 이거 시러시러잉 이거 말고 다른 맛 병조림 주새오!’ 할 때, 해군 수병들은 벽돌보다 딱딱한 쉽비스킷을 물에 타서 말랑하게 만든 뒤 꾸역꾸역 씹어 먹었다.
가끔 비스킷에서 애벌레가 나올 때도 있지만 그걸 더러워하거나 혐오하는 수병들도 대충 몇 개월 정도 함상 생활을 겪으면 금세 적응되어선 훌륭한 단백질원이니 뭐니 하며 농담을 주워섬겼다.
육군이 비전투 상황 시 기름을 끓여 커틀렛을 대량으로 튀겨 먹을 때, 해군은 긴 항해를 위해 건조시킨 염장 고기를 해수에 담가 소금을 빼고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뭐? 고기를 해수에 담갔는데 왜 소금이 빠지냐고? 그야 바닷물보다 염장 고기가 짜니까!!
간혹 사람 먹는 밥을 먹고 싶어서 시내에 정복을 차려입고 나가노라면, 마주친 육군 놈들이 은근히 자기들을 밑에 놓고 깔보는 눈빛을 보내길 일쑤.
겨우 꼬신 아가씨들도 육군 기병대 장교들이 기병 특유의 광나는 부츠 소리를 내며 바 안으로 들어오면 ‘미안해요 물개 여러분’ 하면서 그 장교 옆으로 홀라당 넘어갔으매, 별 볼 일 없는 해군 수병들은 휑해진 주머니를 부여잡고 터덜터덜 군항으로 돌아오기 마련.
소집영장이 내려와 군대에 온 이래 처음 받는 외박증을 손에 들고 희희낙락하여 위병소를 나간 젊은 삐약이들은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받고 돌아와 눈물을 흘렸고, 고참들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주는 게 일상이었다.
“넌 전쟁 끝나면 뭐 할래?”
“···글쎄다. 그냥 부모님 도와서 장사나 하지 않을까.”
“난 말이지.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나한테 올 소집영장에 소집 부대를 해군으로 적은 병무청 공무원을 권총으로 쏴버릴 생각이야.”
“그거 좀 맘에 드네. 다 쓰면 권총 나도 빌려줘.”
수병의 주축, 초급 장교의 근간이 되는 20대, 30대 초 장병들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자기가 선택한 해군도 아니고 지들이 알아서 소집영장을 발부한 건데 왜 이런 수모와 서러움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내 생각엔 말이지. 우리도 육군처럼 한 번 적을 개박살 내봐야 해.”
“그른가?”
“왜 다들 우릴 뜨뜻미지근하게 보겠어? 육군 애들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워서 돌아왔는데, 우리 해군은 위험이라곤 좆도 없는 프로이센, 신성로마제국 해안 봉쇄나 하고 있으니 다들 우리가 목숨 걸 일 없이 꿀 빤다고 생각하는 거지.”
“일리가... 있어!”
프랑스인답게 바늘로 톡 건드리면 빵 터질 정도로 부푼 자존심과 에고를 가진 이들은 뱃사람 특유의 거친 기질까지 흡수하며 눈이 회까닥 돌아버렸다.
게다가.
“우리가 지면,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 지랄이 다시 시작되는 건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그랬는데, 1789년도 전에는 세상이 사람 살 곳이 아니었대.”
이들은 혁명 이후 태어나고 자란 첫 세대.
로베스피에르의 산악파와 시에예스의 평원파 모두의 압도적인 찬성에 의해 국민의회의 출범과 동시에 통과된 ‘초등교육법’에 의해 처음으로 초등학교를 이수하였으며.
헌법이 공헌한 ‘식량에 대한 인간의 기본 권리’ 및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마을에서조차 찾아볼 수 있는 ‘이삭의 민족’, 둘 덕에 최소한 매 끼니는 때울 수 있었고.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신기술이 태동하는 시기, ‘이삭의 민족’을 중심으로 조성된 알자스-로렌과 일드 프랑스의 제철소 및 산업단지는 이들을 쭈와아압 흡수했고, 이 세대는 금치산자가 아닌 이상 어디에서나 일자리를 잡고 정착할 수 있었다.
자라나며 어른들에게 ‘축복받은 세대’라고 불리고, 학교에선 소싯적 혁명의 붉은 기나 삼색기를 들고 압제에 항거했다던 계몽주의자 출신 선생님들이 <기욤 드 툴롱 평전>을 – 어느 잡지사나 신문사에서 정식 출판된 게 아니라 암암리에 그를 추종하는 대학생들이 지하에서 찍어낸 해적판이다 - 쥐어주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를 극도로 혐오했다.
아니.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삼아 부리고 의견이 조금만 다르다고, 피부색 좀 다르다고 총칼로 때려죽인단 말인가? 이런 야만인들 같으니.
그렇게 프랑스의 군항이란 군항에서 수병들의 공격정신이 펄펄 끓어오르는 지금.
“총원 전투배치! 총원 전투배치! 실전!!”
“뭐, 뭐야?”
“우리 잠수함대가 간밤에 영국 놈들 똥구멍을 쑤셔버렸대!!”
“···잠수함이 뭔데?”
“몰라! 아무튼 우리 해군이야!”
“브레스트 군항에게 알린다. 전 함대 발진한다. 이상, 전달 끝.”
드디어, 드디어!
해군 장병들의 얼굴에 흥분으로 홍조가 피어났다.
***
지중해, 공해상.
프랑스 공화국 해군 74문 전열함, 르두터블(Redoutable).
장 루카스 제독은 선실 밖에서 넘실거리는 지중해의 파도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부관을 불렀다.
“파도 고저가 어떻게 되나.”
“1미터입니다.”
“수병들은?”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금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전투력손실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잘했네.”
그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껴있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난 덕에 따듯한 태양 빛이 마치 지상에 강림하듯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너는 이 세상 모든 곳, 모든 일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입니까?”
“그중에서도 3장 6절이네. 부관.”
잠깐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부관이었다.
“제독님.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거야 모르지.”
루카스는 파이프 담뱃대에 담뱃잎을 쑤셔 넣으며 말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남은 건 하늘이 우리에게 미소 짓길 기도하는 것뿐이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해군 총사령관으로서 교리를 점검하고, 생도들을 양성하고, 군함을 보수하고, 신무기를 도입하고, 하루에도 수 차례 워게임을 펼치며 자신을 담금질했다.
지금 파리에서 초조하게 술잔을 비우고 있을 통령 또한 자신의 요청을 전폭적으로 들어줬으니...
- ···예? 해군 부식비를 줄이라구요?
- 그렇습니다, 각하.
- 아아아니. 좆같은 군생활에 밥도 제대로 안 주면 뭔 낙으로 삽니까?
- 꼭 필요한 일입니다. 수병들을 악바리로 만들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안돼. 못해줘. 돌아가. 아무리 그래도 밥에 손대는 건 아니지!
빵 장사로 사업을 시작한 것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을 챙기는 그의 말랑한 성정 때문일까.
유난히 병사들 부식거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통령을 설득하긴 참으로 어려웠으나, 결국 루카스 제독은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수병들은 악에 받쳐 뭐든지 들이박을 준비가 됐다.
물론 약간, 아주 약간 양심이 간질간질하긴 하다만, 조국을 패전시키는 것보다야 부식에 장난질 좀 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영국 놈들의 동태는 어떤가?”
“그쪽도 아주 악에 받쳤답니다. 우리가 비겁하게 신무기를 활용했다고, 우릴 죄다 자기네 전사자들 옆으로 보내버리겠답니다.”
“흠, 비겁이라. 자기들이 처음 잠수함을 썼으면 ‘뛰어난 책략’이니 뭐니로 포장했겠지.”
“안 봐도 <포브스>죠.”
“···그런 속담도 있나?”
“아, 그게, 요즘 젊은이들 간에 쓰는 은어입니다. 대충 안 봐도 그럴 것 같다는-”
“젠장. 나이 먹은 것 같아서 괴롭구만.”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었을까, 그는 문득 젊은 부관에게 물었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오늘.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까? 그 왕립 해군을 상대로?”
“음. 으음.”
부관은 볼을 몇 번 긁적이더니 대답했다.
“까짓거. 한번 계급장 떼고 박아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두렵지는 않나?”
“두렵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글쎄요. 고향 집에 있는 딸내미가 더 머릿속에 치이는 것 같습니다.”
“결혼했나?”
“사관생도 되자마자 했습니다. 애가 4살이지요.”
“자네가 몇 년 생이지?”
“1790년생입니다.”
“젊구만.”
저 멀리, 먹구름이 걷히고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시계가 좋겠군.”
“영국 놈들 배가 박살나는 걸 제대로 눈에 담아둘 수 있겠습니다.”
“사령관님! 지금 우현에 레굴러스가 합류했습니다!”
“깃발 전문은 뭐라고 하나.”
“마-르-세-유-함-대-지-금-합-류-함. 결원은 없음.”
“만나서 반갑다고 전하고, 육군 쪽 소식 알려달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
“약진 앞으로!!”
“와아아!!”
“돼지 새끼들을 고향에서 몰아내자!”
“발사! 발사!”
“적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차거어어엄!!! 저 반역도당에게 신성한 국토를 더 이상 내어줄 수 없다!”
스페인, 지브롤터 동쪽. 말라가에선 무역청을 두고 스페인 인민 공화군과 스페인 왕국군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엄마! 엄아아아!!”
“중대장님! 앞에 꼬마가 있습니다!”
“이런 씨발. 무슨 일이 있어도 민간인은 보호한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꼬맹아! 당장 나와!”
민간인 소개도 안 된 말라가는 그야말로 피ㆍ아ㆍ민간인이 뒤섞인 지옥.
일주일째 시가전이 계속되자, 삼자는 완전히 탈진했고 물자 또한 바닥을 보였다.
“스페인 친구들이여. 우리 프랑스군이 왔습니다!”
“오! 드디어 증원인가! ···뭐야. 전투병이 아니요? 당신들 무슨 부댑니까?”
“우린 보급부댑니다.”
“보, 보급부대? 전투병이 아니고?”
“말라가 시민들이 다 굶고 있을 텐데, 일단 식량부터 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그게 맞지. 우리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부상병 중 뽑아 내어드리리다.”
인민 공화국이 점거한 구역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으나.
“지금부터 여긴 우리 영국군이 지휘하겠소.”
“동맹군을 무슨 하청업체 취급하는 겁니까?”
“고작 민병대도 제압하지 못하는 주제에 말만 많군. 일단 부족한 보급품부터 해결하지.”
“민간인 공출을 시작하겠습니다.”
왕국군이 점거한 구역은 정말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리고.
“손 들어!”
“전령이다! 전령!”
“암구호는-”
“용기! 됐나?! 나폴레옹 사령관의 명령서요!”
[지금부터 자유연합군 지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원수 본인이 맡겠음.
전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