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 폭탄 배달작전 (2)
오늘따라 칠흑처럼 드리워진 밤이 제 몸을 스르륵 흘러내려 바다에 눕자, 바다 또한 밤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두 액체가 서로 몸을 섞어 온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인 1814년 9월 1일.
항해 당직 3직.
영-불 해협.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땀이 주르륵 주르륵 흐르는 ‘노틸러스 급’ 잠수함에 탄 승조원들은 상부에서 정확한 작전 수행을 위해 배부해준 회중시계를 연신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재 시간 및 함정 상태 브리핑하게.”
“2315이며 잠항 수심은 5미터입니다.”
“슬슬 어디쯤 같나.”
“시계가 안 좋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방향이 맞다면 목표까지 1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병기장?”
“폭뢰 점검 결과 아무 문제 없습니다.”
“좋아. 모두 이상 없으니 파리에서 온 명령문을 개봉한다.”
함장은 두루마리의 밀랍 봉인을 뜯고 전 승조원 (그래봤자 6명이지만)을 한데 모은 뒤 쭉 읽어 내려갔다.
“3천만 프랑스인을, 더 나아가 온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권리를 내려놓고 전장으로 향한 영웅들에게.”
“······.”
“본인, 통령 기욤 드 툴롱은 당신들에게 은혜를 입은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해군부와 본인은 지난 수십 년간 오늘날을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우며 준비했고, 이제 세계 최고의 군인인 여러분들의 손에 우리가 만든 이 작전의 성패를 맡기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섬나라 영국의 힘은 그 압도적인 제해권에서 나옵니다.
그들의 군함이 오대양 육대주를 제집 안방처럼 뛰어다니며 영국의 힘을 투사시키는 이상, 우리 공화국의 상선과 군함은 항상 적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공화국의 본토는, 국민들은 항상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를 긴장에 몸서리치겠지요.
그러니 오늘. 나는 여러분들을 믿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껏 노력해온 나날을 믿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있는 애국심을 믿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게 입고 있는 공화국 해군 제복에 담긴 투쟁심을 믿고자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승리할 것이며, 승리자가 될 것이고, 먼 훗날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며 오늘의 승리를 추억할 것입니다.
판테온에 있는 수많은 순국선열과 신께서 부디 여러분을 가호하시길.]
“···추가로, 여러분들을 위해 소정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잠수함 조타실 두 번째 천장을 열어보세요, 라는데?”
“조타실 두 번째 천장? 여기 말씀이십니까? ···젠장! 이게 뭐야?!”
조타장은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찾아낸 ‘선물’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거 보르도 와인인데요?”
“다음 선거에 통령을 연임시켜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구만.”
영-불 해협.
코르시카ㆍ사르데냐 옆 몰타 앞바다.
지브롤터 해협.
목표 도착 45분 전.
모든 공화국 잠수함 안에서 짠-하고 술잔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
30분 후.
23시 45분.
대영제국 왕립 해군 군항, 포츠머스 앞바다.
“함장님. 우현 030도에 미상 선박입니다.”
“좌현 010도로 조용히 변침한다.”
“알겠습니다.”
또르륵.
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잠수함 바닥에 톡 떨어졌다.
후덥지근한 잠수함 내부 때문에 흐르는 땀이 아니다.
“함장님.”
“왜 그러나.”
“저, 불알이 쪼그라들다 못해 사라진 거 같습니다.”
“하아... 이보게 포술장.”
“예, 함장님.”
“사실. 나도 그래.”
긴장.
누가 지금 바늘로 콕 찌르면 몸이 빵!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긴장 때문에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눈에 실핏줄이 터진 이들도 부지기수, 손톱을 뜯다가 자기도 모르게 살까지 뜯는 이들까지.
6명의 승조원들은 저마다 성호를 그으며 준비했다.
“항해관. 우현 045도로 변침.”
“우현. 045도. 변침.”
잠망경으로 건선거 위치를 확인한 함장은 그대로 잠수함을 항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둠을 벗 삼아 천천히,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하게.
“병기장.”
“예, 함장님.”
“저기 저 이쁜이 보이나?”
“···인정해야겠습니다. 영국 놈들이 배 하난 새끈하게 뽑는군요.”
이제 막 포장을 벗겨내고 재생시킨 대형 군함.
이 어둠 속에서 저게 전열함인지, 아니면 호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주면 영국 놈들이 행복의 나라로 떠나리란 건 확실하다.
“병기장, 폭뢰 장대 준비.”
“폭뢰 장대 준비.”
“폭발 시한 2시간.”
“폭발 시한 2시간. ···조정 완료했습니다.”
“좋아. 이제 장대 올려.”
“장대, 올려.”
긴장으로 손이 덜덜 떨린다. 만일 여기서 발각된다면? 영국 놈들이 횃불을 치켜들고 우릴 찾아낸다면 우릴 얼마나 고통스럽게 대할까?
상념은 계속해서 피어났으나 몸은 수백, 수천 번 연습하고 훈련한 대로 착착 움직인다.
방수처리 막대에 폭뢰를 부착해 잠수함 선체 밖으로 밀어냈다.
폭뢰가 혹여라도 자극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막대를 조금씩 조금씩 적함까지 민다.
- 철컥.
“부착 완료.”
“좋아. 신속히 이탈한다.”
누구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들어왔듯, 그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누구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2시간 뒤.
104문 1급 전열함, HMS 빅토리의 우현이 날아가는 걸 시작으로 온 세상이 화끈해졌다.
*
1814년 9월 2일.
밤 12시 17분.
대영제국, 대서양 함대 모항 포츠머스.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총원 전투배치! 총원 전투배치!”
“소방대 뛰어나와!”
“이런 씨팔. 경계를 얼마나 병신같이 섰으면 불이나?!”
“개새끼. 누군지 몰라도 죽여버린다.”
단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비상 종소리에 깨어난 수병들은 욕을 한바탕 쏟아낸 뒤, 소화용 물동이를 가지고 막사 밖으로 달려 나갔다.
“거기 이등병! 이게 뭔 일이야!?”
“잘, 잘 모르겠슴다! 갑자기 빅토리에서 폭음이 들리더니-”
“젠장. 폭음이면 화약고가 터졌나?”
뻔하다. 어떤 빡대가리 병신 새끼가 뭣도 모르고 경계 중에 담배를 빨았다가 불씨가 튀었겠지.
“야야. 가서 애들이랑 모래포대 가져와라.”
“모래, 포대 말씀이십니까?”
“그래. 모래가 있어야 화재를 더 쉽게 잡는-”
병장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폭음이 인간의 연약한 목소리를 묻어버렸기에.
- 쿠콰콰쾅!!!
“어, 어어, 어어어?”
“HMS 아프리카다! HMS 아프리카에 화재 발생!”
그러나 두 번째 폭음에 아연할 새도 없이.
- 콰쾅!!
“컨월리스! 컨월리스가 가라앉는다!”
“이게 대체, 대체 무슨 일이야!!”
“긴급 방수! 긴급 방수! 뭐든 가져다 저 망할 구멍을 좀 막아!”
“데미지 컨트롤이 안됩니다! 척추인 용골이 나간 거 같습니다!”
“흐아아--! 뛰, 뛰어내려! 휘말린다!!”
최대 500명을 태울 수 있는 74문 3급 전열함 HMS 컨월리스가 20분 만에 균형을 잃고 수면 밑으로 꼬르륵 사라졌다.
“살려, 살려줘!”
“밧줄! 쟤들한테 밧줄 던져줘!”
HMS 컨월리스에서 당직 근무를 서던 수병들은 갑작스러운 폭발과 더불어 집이 사라졌다는 충격에 빠졌으나
그들은 30문 6급 호위함에 탄 수병들보다 명백히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했다.
- 콰쾅!
“이번엔 또 어디-”
- 삐이이이이---!!
컨월리스에서 빠져나온 수병들을 구하기 위해 부두 가까이 나온 구조대는 고막이 터져버려, 소리 대신 이명만이 그들의 청신경을 찔렀다.
“흐, 흐아아악!!”
“의무장! 의무장 데려와!”
“뭐, 뭐라구요? 나, 나 귀가 안 들려-”
일순간 태양이 뜬 것처럼 포츠머스 군항 일대가 환하게 밝아졌다.
안타깝게도 빛을 뿜어낸 건 만물의 생명줄인 태양이 아니라, 한 척의 군함이었다.
HMS 키아네. 전열함보다 훨씬 작은 6등급 호위함.
운이 없게도 키아네에 부착된 폭뢰의 위치는 하부 탄약고 인근이었고, 격발된 폭뢰 파편은 컨월리스보다 약한 장갑을 가진 키아네의 내부를 찢어버리고 탄약고의 포탄마저 찢어버렸다.
30개 포가 다 함께 수십 번 쏘아댈 양의 화약이 점화되자, 그대로 키아네는 자신 위에 타고 있던 수병 30명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폭발, 폭발, 폭발.
달궈진 폭뢰 파편이 24파운드 포탄을 점화시키고, 점화된 24파운드 포탄이 파편을 비산하고, 비산된 파편이 장약을 점화시키며 마치 뚜껑 덮지 않은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온 사방으로 치명적인 살인병기를 쏘아냈다.
거친 북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 세계 최고의 단단함을 자랑하고, 그 덕에 영국 해군이 군함의 선체 재료로 사용하는 북해 참나무는 제 대단한 명성을 보여주겠다는 듯 먼지처럼 바스라지는 대신 새끼손가락 크기만 한 크기로 쪼개져 불운한 이들의 사지를 찢어버렸다.
무거운 대함전용 철제 대포와 돛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폭심지 근처에 닻을 내린 슬루프 함으로 떨어져 갑판을 뚫고 안에 있던 모든 것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불똥이 배란 배의 돛에 크고 작은 구멍을 냈다.
“의무대! 당장 의무대 투입해!”
“안 됩니다! 유폭이 아직 다 안 끝났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자칫하다 의무대까지 휩쓸리면 정말 대재앙입니다!”
“씨바아아알!!”
화를 참지 못한 어느 장교가 군모를 집어 던지고 군홧발로 밟아도,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18문 1급 초계함 HMS 개리.
44문 2급 호위함 HMS 푸스.
30문 6급 호위함 HMS 레반트.
수많은 보조함들과 수병들이 칠흑 같은 바다 속에 가라앉고 자랑스러운 왕립 해군 최대의 군함, 104문 HMS 빅토리마저 선체가 우로 기울기 시작했다.
“빅토리! 빅토리는 무조건 살려야 한다!”
“빅토리를 견인할 견인선으로 쓸 게 없습니다!”
“지금 안 되는 게 어딨나! 사람 힘이라도 가져다가 쓰라고! 안 되면 되게 하란 말이다!!”
단 한 시간 만에.
영국 대서양 함대의 모항(母港)이자 유럽 최대의 군항인 포츠머스가 비명 소리와 타는 냄새로 가득 찼다.
영국 지중해 함대의 모항이자 기항지인 몰타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해군학교가 있는 노퍽은 1개 건선거가 통째로 폭발해버렸다.
지중해-대서양-북해를 잇는 중심, 지브롤터 요새 또한 공격받아 1척의 전열함이 반파되고 4척의 호위함을 잃었다.
단 한 시간 만에.
대영제국은 해군력의 20퍼센트를 상실했다.
***
프랑스 공화국 대서양 함대 군항.
브레스트.
“이야아아아--!!!”
“대승입니다! 대승!!”
“전열함 1척 격침에 2척 대파! 2척 중파! 피해를 입은 호위함은 다 셀 수가 없습니다!”
“후우우.”
루카스 제독은 초조함에 물고 있던 담배 연기를 입으로 토해내듯 뱉었다.
“너무 들뜨지들 말지. 이제 시작이다.”
“““예!”””
“말로는 예-라고 하면서 입은 아주 찢어지는군. ···우리 측 전사자는?”
“몰타 인근에서 1척, 지브롤터에서 2척, 도버에서 3척. 총 6척에 36명입니다.”
“36명이라.”
그는 탁자 위에 올렸던 두 다리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군들. 이제 우리 차례다. 전우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루카스 제독은 주위를 슥 스캔했다.
“누구 두려운 사람 있나?”
“““없습니다!”””
“좋다. 그러면. 값있게 죽자.”
“““값있게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