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26화 (326/341)

주사위 (3)

“오늘 재무부에서 중대 발표한다고 했었죠?”

“그렇지.”

“조금 늦네. 이러다 저, 할아버지 되는 거 아닙니까?”

“젊은 친구라 그런지 성질이 급하구먼. 옛날 왕정 땐 지들 마음 따라 바람도 맞히기 일쑤였다고. 지금은 조금 늦을지언정 퇴짜는 안 놓잖나.”

“그도 그렇네요. 아, 저기 나옵니다!”

“어, 어라.”

기자들은 재무부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나온 정부 대변인을 보고 잠시 입술에 침을 바르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십니까, 기욤 드 툴롱입니다.”

“통령이 나왔다는 건 안건이 좀 크다는 거 아닙니까?”

“쉬잇! 조용히 해. 안 들려.”

잠시 신변잡기를 입에 담은 통령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일 정오를 기점으로, 프랑스 공화국과 전쟁 상태거나, 비우호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국가에 관해 관세를 5% 인상하겠습니다.”

“각하! 비우호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나라라 하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자들은 신문사, 잡지사로 돌아가기 무섭게 정치면, 경제면 1면에 통령의 관세 인상 소식을 전했다.

“아무래도 영국 때문이겠죠?”

“그럼 또 뭐가 있겠나.”

“편집장님. 내일 아침 9시에 또 재무부에서 발표 스케쥴을 잡았답니다.”

“음? 뭐 또 할 말이 있나? 일단 알겠네.”

다음날, 다시 재무부 청사를 찾은 이들은 전날과 똑같이 밑창을 서너 번 기워 신은 구두 소리를 듣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기욤 드 툴롱입니다. ···내일 17시를 기점으로, 비우호적 관계에 있는 국가에 대해 관세를 7% 인상하겠습니다.”

“이틀 연속?”

“그러면 12%네. 상당한걸.”

다시 한번, 프랑스의 경제지와 정치지에서 [2연속 관세 인상, 적국 경제에 타격이 될 수 있을까?] 라고 1면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뭐? 또?”

“예. 또 발표한답니다.”

“이번엔 또 뭐지.”

3연속 발표라니. 기자들은 수첩과 펜을 챙겨 다시 한번 더 재무부 청사로 향했고.

“비우호국에 대한 관세를 3% 인상합니다.”

“어.”

그렇게 다음날.

“관세를 6% 인상합니다.”

또또 다음날.

“관세를 5% 인상합니다.”

“저기, 혹시 통령이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수출입 관세를 7% 인상합니다. 또한 네덜란드 국적이며 영국을 경유하는 무역회사에 대해서는 불법 차명회사로 간주하고 15%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습니다.”

“어, 어어...”

단 일주일만에. 프랑스 재무부는 관세를 33%까지 올렸다.

***

“우리 대영제국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항상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길 염원하는 선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요근래 들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은 우리 대영제국의 신민, 그리고 위대하신 국왕 폐하와 섭정 전하에 이르기까지 평화를 사랑하는 대영제국 전체의 슬픔과 고통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대영제국 상무부와 재무부, 무역청 및 의회는 더 이상 대륙에 피가 흐르지 않기를 기원하며 ‘전쟁 중인 호전적 국가’가 더 이상 세상에 어둠과 불행, 그리고 피를 뿌리고 다니지 못하게 무역법을 개정하는 바입니다.”

‘전쟁 중인 호전적 국가’ 에게 화약 판매 금지, 군복 원료인 염색약 판매 금지.

참고로 ‘전쟁 중인 호전적 국가’ 가 어떤 나라를 뜻하는 지는 지들 마음대로.

까놓고 말해서 지들 따까리 짓 하는 놈들한테만 팔아주고 자기 말 안 들으면 안 팔겠다는 배짱 장사다.

선공인 영국이 먼저 내지른 가벼운 잽.

화약은 말하면 입 아픈 핵심 군수물자, 염색약은 21세기라면 아니겠지만, 피아구별을 위해 군복을 알록달록 염색하는 이 시대에는 군수물자 취급이다.

화약이야 단가가 좀 높아질지언정 생산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프랑스군 특유의 푸른색 군복을 만드는 푸른 염색약은 아직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태.

막 ‘아이고 아이고 나 주거엇!’ 소리가 나게 아픈 건 아니지만 기분은 꽤 더럽다.

따라서 내가 영국 놈들의 성명 발표 직후 쌍중지를 치켜든 건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다.

“이 전쟁은 우리 프랑스 공화국이 일으킨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화합을 거부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이들에 의한 침략 전쟁이며, 우리 공화국은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력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몇 파렴치하고 덜떨어지는 인사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데 묶어 ‘호전적’이라 비방하는데, 과연 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전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그분들은 제 자식이 학교에서 양아치들에게 맞고 돌아와도 똑같이 말할까요? 굉장히 궁금하군요.”

뭐? 너무 말이 쎈 거 아니냐고? 에이 저기 사람들 안 보여? 다들 ‘캬 이게 사이다지!’ 하면서 웃고 있자너.

민주주의 국가의 통수권자로서 민의를 대변해야지 어딜 당리당략에 휘둘릴 수 있겠느뇨. 이것은 어디까지나 민의다 민의.

욕을 한 소쿠리 해준 다음에는 인류사 불후의 명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차례.

나 또한 영국과의 외교 테이블에 ‘식량 및 가죽 수출 금지’를 꺼내 맞불을 놓았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지상으로 내려오고서 농사를 짓게 하셨던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먹는 것이 인간의 가장 존중받아야 할 권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몰상식한 이들은 다른 것도 아닌 타인의 삶을 해칠 수 있는 무기로 식량을 택해 그 파렴치함을 휘두르고 있으니 얼마나 통탄스러울 노릇입니까···.”

어쩌구저쩌구 쏼라쏼라 얄라리얄라성.

영국은 ‘아무리 그래도 먹고 사는 걸 인질로 잡냐?’ 며 언론 플레이를 펼쳤으나, 내가 ‘어머나 그렇군요.’ 하고 뺄 이유 따위는 없었다.

누가 농사하지 말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개인의 선택을 왜 GM도 아닌 나한테 보상받으려고 하니.

지들이 양모 기른다고 농경지를 싹다 목초지로 바꿔서 그런 걸 왜 우리 탓인지 모르겠다. 해적한테 기사 작위를 내려주는 혐성국 아니랄까 봐 역시 정상인과 논리 회로 자체가 다르다.

여튼 가볍게 지른 잽에 내가 훅으로 턱을 날리니, 이놈들도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 비이성적인 국가 소속 상선 및 군함은 더 이상 대영제국과 대영제국령 식민지 항구를 이용하거나 기항하지 못한다.

당연히, 비이성적인 국가는 우리 프랑스를 일컫는다.

대영제국령 식민지 항구를 이용하지 못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없으니 희망봉을 돌아와야 한다. 이건 좀 아프구만.

이제부터는 강 대 강 싸움. 혈투다.

- 관세 인상.

- 너만 하냐? 나도 한다.

- 영국 회사에 관해 특별 관세를 신설해 세금을 부과한다.

- 프랑스 물품에 관해 타국의 합자회사를 경유하거나 영국 회사를 경유하지 않는 한 신규 수입 허가를 내지 않겠다.

- 영국 국적의 무역회사는 군수물자를 싣는 한 프랑스 공화국 및 그 부속 도서 기항을 금한다. 또한 일부 몰상식한 자가 이를 어길 우려가 있으므로, 프랑스 공화국 무역국 공무원들과 해군은 영국 국적의 배나 영국 국적의 선장이 지휘하는 배에 무작위 검문을 실시한다.

- 뭐?! 그건 자유무역 위반이야--!!

- 어쩌라고. 관세 500배.

- 크아아악!

내가 알빤가. 왜 치킨 게임 하는데 자꾸 쫄린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네.

애초에 지들이 먼저 때려놓고 말이지. 내가 유도하긴 했지만, 뭐 아무튼.

내가 관세를 디립다 올리자, 저쪽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는지 관세를 디립다 올려버렸다.

이제 나도, 저쪽도 손에 남은 패는 딱 하나.

국토 내 해당 국적의 사업체 및 개인의 재산 압류.

이건 관세 인상이나 ‘우리 항구에서 꺼져’ 수준의 카드가 아니다. 얘가 TOP면 나머지는 싸구려 자판기 커피란 말이지. 그야말로 꺼내는 순간 ‘다 함께 폭사하자’ 나 다름없는 아마겟돈의 카드다.

물론. 저쪽도 병신 머저리가 아닌 이상 손에 남은 게 이것 뿐이란 걸 알 테고, 나처럼 만지작거리고 있겠지.

“사장님. 우편입니다.”

“어디서 왔죠?”

“오늘 아침 특급, 런던 발입니다.”

“주세요.”

-팔락.

밀랍을 뜯고 우편을 펼치자, 아주 간단하게 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준비 끝. -네이선 로스차일드-]

나는 성냥과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성냥을 후후 불어 끄기 전에 편지에도 불을 붙여 태워버렸다.

“내일 아침 기자회견 한번 더 잡읍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

대영제국, 런던.

올해로 24세를 맞이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오늘도 힘찬 발걸음을 구르며 출근길에 올랐다.

1년 중 삼분지 일에 달하는 기간 동안 칙칙한 회색빛 구름과 비만 오는 런던에 실로 오랜만에 해가 중천에 떠 따듯한 빛을 뿌리고, 요새 유럽대륙에서 막대한 돈이 흘러들어 온 나라가 물건을 찍으면 팔려나가는 어마어마한 호황기를 맞은 덕에 팔자 나아진 사람들의 얼굴에도 꽃이 피니 이 어찌 좋은 날이 아니겠느뇨.

물론 요새 신문에선 영-불관계가 악화된다느니, 관세전쟁을 한다느니 난리지만, 그 말이 나온 지 거의 2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체감되는 건 없으니 아마 펜대 굴리는 이들의 엄살이었으리라.

패러데이는 자신이 조수로 일하고 있는 연구실 근방 청과물 가게에서 사과를 하나 사, 아삭아삭 씹으며 직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마이클. 출근했나.”

“···어,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얼굴에 이중삼중으로 그늘을 친 연구소장은 착잡하다는 듯 패러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왕립과학협회에서 우리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삭감한다는군.”

“예??”

“말해 무엇하겠나. 직접 읽어보게.”

연구소장은 방금 막 뜯은 편지를 내밀었고, 패러데이는 그걸 받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협회 내 회계 및 재무 담당자들의 의견에 따라, 향후 재정 상태의 악화가 예상되어 일부 연구자들에게 배정된 예산을 철회하겠음’... 세상에 대관절 갑자기 무슨 헛소리랍니까?”

“후우 그러게 말일세.”

두 사람, 아니. 연구소에 있는 모두가 한숨을 내쉬며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보게 마이클.”

“예, 소장님.”

“이 사람 생각엔 말이지? ······아무래도 위쪽에 계신 분들께선 자네 연구가 돈만 먹는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예?”

“그러니까. 후우.”

소장은 길게 장탄식을 한 뒤 패러데이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연구가, 돈이 되느냐. 이 말이지.”

“소장님. 이건 미래의 먹거립니다. 지금은 결과를 바라기보다 아낌없이 가꿔줘야 할 될성부른 떡잎이란 말입니다!”

“마이클. 나한테 그러지 말게. 난 힘 없으이.”

소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패러데이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왜?

이 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은 왕립과학협회가 겨우 한 사람 몫 연구비를 삥땅쳐서 대관절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겠다고?!

···아니면 정말 한 사람 연구비까지 뜯어 갈 정도로 그 왕립과학협회의 사정이 안 좋아진 건가?

에이 그건 아니지. 명색이 ‘왕립(Royal)’이 붙은 곳 아닌가. 그곳이 무너지면 왕가의 명예에 먹칠 되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럴 일은 없지.

“···빌어먹을.”

결국 패러데이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한심하고도 근시안적인 관료제를 속으로 헐뜯으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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