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22화 (301/341)

예나-아우어슈테트 (4)

1814년 4월 2일.

다부가 호젠하우젠을 함락시키고 하루 이후.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아군이다! 아군!”

“소속과 이름을 말해라!”

“총사령부 연락 장교! 소령 르죈느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친우!”

“아 발자크 병참 장교님하고 아는 사이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슴까?”

“총사령관님의 명령서다! 다부 장군께 안내해주게!”

프로이센군이 퇴각을 개시한 이 날, 다부와 란은 나란히 명령서를 받아들었다.

***

빛이 어슴푸레하게 비춰지는 어두운 방.

양탄자처럼 바닥에 깔린 군사용 지도 위에서 세 군인이 마주 보고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다들.”

“저번 주에 뵌 거 같은데 별로 오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거참, 인사치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게 다부.”

나폴레옹, 다부, 란.

프로이센 전역을 맡아 일군을 이끄는 세 장군.

개중 제일 먼저 운을 띄운 건 당연히 총사령관인 나폴레옹이었다.

“모두 잘 해줬네. 자네들 덕에 프로이센 놈들이 어맛 뜨거라-하며 도망가기 위해 수작질을 벌이고 있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수봉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나움부르크에 가득했던 막사와 탄약고가 철거됐고 어깨에 블링블링한 계급장을 단 이들이 자기들이 탈 군마를 점검하고 있다지.”

“아마 만스펠트(Mansfeld)나 메르제부르크(Merseburg)를 통과해 마그데부르크로 돌아가는 게 목표겠군요.”

“그렇지. 마그데부르크는 베를린과 지척이니 베를린에서 올 증원군과 합세해 양동을 노리겠다는 의도야.”

프랑스군이 라이프치히를 사정권에 둔 지금. 프로이센군이 안전히 퇴각할 경로는 마그데부르크로 향하는 북쪽 길뿐.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우리 1군단은 훌륭히 호젠하우젠을 함락시키며 그 전투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번엔 프로이센 놈들을 싸그리 잡아다 탕플 탑에 있는 오를레앙의 옆방으로 보내겠습니다.”

“아닙니다. 다부 중장의 부대는 한 차례 전투를 펼쳤으니 무척 피로에 시달리고 있을 터. 총사령관님. 이 장 란에게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단숨에 내달려 저놈들을 가로막고 뚝배기를 깨버리겠습니다!”

“둘 다 안돼.”

마법의 나보고둥이 단호하게 말하자 두 군인의 얼굴에 ‘어째섯? 도시떼?’ 하고 당혹감이 감돌았다.

“다부. 호젠하우젠을 함락시키면서 얼마나 손실했지?”

“···별로 안 됩니다.”

“3천이었지 아마? 최소 1개 연대는 전투 불능이 됐을 거 같은데 아닌가?”

“······.”

“얌전히 재보급 받으면서 병사들 피로나 풀어주게. 그리고, 란.”

“예. 총사령관님.”

“자네 부대가 이번 일주일 동안 얼마나 내달렸더라?”

“···별로 안 됩니다.”

“150km지 아마? 이런데 전투까지 하겠다고? 병사들이 과로로 다 죽어 나자빠지겠군.”

“······.”

나보고둥의 마음을 돌려놓고자 했던 두 군인은 장렬하게 격침당했다.

“이번 주공은 내가 이끈다. 다부, 란, 두 사람은 조공을 맡게.”

“알겠습니다.”

나폴레옹은 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로 걸어 들어가 바닥에 깔린 지도를 짚었다.

“프로이센군의 증원군은 두 방향에서 오고 있다. 하나는 스웨덴과 덴마크군. 두 번째는 브라운슈바이크와 블뤼허가 이끄는 동프로이센군.”

북유럽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스웨덴군과 덴마크군은 킬(Kiel)과 함부르크를 찍고 현재 프랑스군이 위치한 라이프치히 11시 방향에서 달려오는 중.

동프로이센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동프로이센군은 슈제친과 포즈난을 찍고 라이프치히 기준 1시 방향에서 달려오는 중.

포위당하기 싫어 세간살이 다 내버리고 몸만 살려 도망가는 호엔로에의 프로이센군의 예상 목적지 마그데부르크는 라이프치히 기준 12시 방향.

“제군들. 난 저놈들을 마그데부르크까지 멀쩡하게 살려보내고픈 마음은 없다.”

저놈들의 계략대로 퇴각한 호엔로에가 마그데부르크에 북유럽에서 온 지원부대와 동프로이센군이 올 때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뻐기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무조건 놈들이 합체해서 강해지기 전에 조각조각 요절을 내자고.”

게르만-합체-로봇이 완성되기 전에 토막토막 잘라버린다.

그것이 나폴레옹의 머리에 있는 대전략이었다.

나폴레옹이 원수봉으로 땅을 툭툭 두드리자 20만 프랑스군 본대가 10개 부대로 쪼개지며 진격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대는 산을 건너고, 어떤 부대는 강을 도하하고, 어떤 부대는 대로를 따라 질주한다.

10개로 나누어진 부대가 마치 RTS게임에서 마린 메딕 컨트롤하듯 유려하게 움직인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일 텐데.

나폴레옹은 항상 수첩을 들고 다녔다.

매일 휘하 부대를 시찰했고, 매일 모든 부대가 평균적으로 얼마나 뛸 수 있는지,

험지를 주파할 시에는 어떤 장애물에 얼마만큼 시간이 걸리는지,

행군 속도와 휴식 시간은 얼마를 배정해야 할지,

보병, 포병, 기병을 어떻게 잘 쓰까야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적을 맞이할 수 있을지.

그 모든 내용을 항상 분석하고, 수첩에 적고, 또다시 계산해내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취사 시간이 너무 길다. 밥솥 깔고 불 지피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설거지까지 하니, 한번 야전 취사를 진행하면 기본 2시간이 걸려. 이건 뭐 취사 끝내고 행군 시작하면 배가 다 꺼지겠군.’

그러니 대충 불에다가 익히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병조림을 대량 주문해 취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교범에 나오는 1일 적정 행군이 5km라는 소리는 어디까지나 산악 같은 험지를 고려한 내용이다.’

즉, 멀쩡한 평지와 도로를 이용하면 같은 시간에 그 몇 배는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각 부대 별로. 아니, 아예 대대 단위로 체력과 행군 속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진격루트를 짠다.

엥? 수십 개 대대에게 일일이 진격로를 설정하다니, 그걸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되던데. 그걸 왜 못하지? 바보인가 아니면 무능한 건가.

‘보병, 기병, 포병은 모두 이동 속도가 다르다. 따라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전장에서 원하는 적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사단’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 모두 쓰까 국밥을 만든 뒤 언제 어디서든 단일 부대로 유연한 전투가 가능하게 만든다.

흠. 왜 여태까지 아무도 이 쉬운 걸 안 했을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생각하기에 참 이상한 일이다.

란이 지휘하는 군단을 그대로 북상시켜 뤼벡까지 진군시킨다.

뤼벡은 서프로이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공업 중심지.

이곳을 틀어막으면 스웨덴군과 덴마크군은 프로이센군과 합류하지 못한다.

“란.”

“말 안 하셔도 압니다. 충분히 병력을 쉬게 한 뒤 바로 박살내겠습니다.”

“아주 좋아.”

누가 뭐래도 란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2류 국가 스웨덴군과 덴마크군을 못 이길 순 없다.

“다부?”

“브란덴부르크에 강과 관목숲을 끼고 방어선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동프로이센군을 상대로 시간만 끌면 되겠지요?”

“얼마쯤 버틸 수 있겠나?”

“동프로이센군이 15만이라 했으니 지연전을 착착 수행하면 일주일은 끌 수 있습니다.”

“좋아.”

호엔로에, 동프로이센군 둘을 물리적으로 합류할 수 없게 1군단이 공간을 찢고 빼앗아버린다.

양 공간이 잘려 나간 호엔로에를 나폴레옹이 사냥해 마무리.

세 군인이 밟고 서 있는 지도에서 프랑스군의 진격을 알리는 북과 피리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측면에 프랑스 기병대다! 기병대애애액!!”

“전투 준비! 대기병 방진으로 바꾼다!!”

“돌격! 망할 넴치들을 죽일 기회다!!”

“바르샤바를 위해!”

- 챙!!

갑자기 쏟아져나온 폴란드 창기병대가 휘두른 창과 프로이센군 소속 헤센 기병대의 검이 공중에서 맞붙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지?”

“세 번째입니다 공작 각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놈은, 이놈은 대체 뭐지?

- 이거 먹고 떨어져라. 4만이면 충분히 줬다. 인정?

- 누구 마음대로 인정? 싫은데? 더 내놔.

- 너한텐 상도덕도 없냐?

- 처발려 놓고 튀는 주제에 상도덕은 무슨 상도덕? 정말로 상도덕 없는 건 구질구질한 느그들이지. 도박도 아니고 전쟁에서 졌으면 개평 먹을 생각 말고 다 내려놓고 꺼지라고.

프랑스군은 지독하게 추격했다.

그건 예상할 수 있었다. 전과확대를 달성할 절호의 기회인데 이걸 놓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추격대 규모가 몇이라고?”

“대군입니다. 적어도 10만은 되어 보입니다.”

“보나파르트! 이자는 정말 미친놈인가?!!”

상식적으로, 뒤에 적의 대군이 있으면 갑옷이나 투구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솜이불이라도 머리에 뒤집어써야 하는 거 아닌가?

나움부르크에 남은 4만이 제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는 것인데, 이놈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서늘한 지들 뒤통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딴 거 알빠임?’ 하면서 퇴각하는 호엔로에 군대의 옆구리를 찰지게 마사지해줬다.

그뿐인가. 매일 밤 피곤에 쩔어 호엔로에에게 정찰 결과를 보고하는 정찰대들의 말이 쌓여갈수록 호엔로에는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저희 엽병대가 정찰한 결과, 프랑스군은 군을 최소 7개로 나누어 우릴 쫓고 있는 거 같습니다.”

“말도 안 돼.”

“정말입니다. 저희 중대원 셋을 잃고 알아낸 정보란 말입니다!”

“놈이 전쟁의 신인 아테네야? 아니면 아레스야?! 그런 건 알렉산더 대왕도 못해!!”

상식적으로, 20만 대군을 십수 개로 쪼개 컨트롤하는 장수가 있겠나? 그런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그런다고 하면··· 그런 괴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호엔로에가 생각하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은, 적습이 끝난 거 같으니 잠시 병력을 쉬게-”

“비바 라 프랑스!”

“이런 씨발.”

저멀리서 다시 들려오는 피리소리에 호엔로에는 아찔해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

“전황은?”

“7사단이 잠시 붙들었습니다.”

“부스러기 좀 많이 떨어졌나?”

“최소 3개 중대는 잡아먹은 거 같습니다.”

“아주 좋아. 이제 바통은 12사단이 이어받아서 공격 개시한다.”

10개로 쪼개진 대군이 제파식으로 몰려들어가 도망치는 프로이센군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1개 사단이 기습을 걸고 타격을 준 뒤 빠지면, 다른 쪽에서 1개 기병대대가 옆구리를 긁고 지나간다.

숲에서는 적들이 정찰대를 쏘아죽이고, 지나는 여울마다 놈들이 쫓아와 물에 하반신을 담근 이들을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사살했다.

2개 소대, 3개 중대, 1개 대대.

프로이센군이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흘리는 부스러기도 점차 커진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손짓에 악단이 척척 음을 맞추고 장단을 바꾸듯, 프랑스군은 교묘하게 프로이센군을 자기들이 정한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이곳은...”

“다행입니다. 개구리 놈들이 아직 여기까진 못 온 거 같습니다.”

“이보게. 여긴 마그데부르크로 가는 길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만, 다른 도로는 이미 차단되어서-”

“···.”

“조금, 조금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공작 각하. 너무 그리 심려치 마시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원래 가기로 한 길과는 서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에 당도한 호엔로에는 피곤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고, 하급 장교들이 미리 징발해놓은 저택에서 눈을 붙였다.

그렇게 다음날.

“아- 아-. 프로이센군은 들어라-. 너희들은 지금 대프랑스 공화국 국민방위대에게 포위됐다. 당장 백기를 걸고 투항하라. 다시 한번 반복한다-”

밤사이 크베들린부르크라는 소도시를 겹겹이 포위한 프랑스군이 하늘 높이 흩날리는 삼색기를 본 공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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