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20화 (299/341)

예나-아우어슈테트 (2)

1814년 3월 30일.

프랑스군의 총공세 하루 전.

루이 니콜라 다부는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야전 막사에 놓인 간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장군님. 무얼 그리 고심 중이십니까.”

“총사령관님이 보내신 이 녀석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 중일세.”

프랑스군 원수의 상징인 금색 독수리 깃발.

눈에 핏발 세운 프로이센군에게 궁극의 어그로 몰이가 가능한 끝내주는 아이템.

마치 장난감 총을 생일 선물로 받은 꼬맹이처럼, 다부의 머릿속은 나폴레옹이 선물한 이 유사 사이오닉 방출기를 어떻게 써먹어야 알차게 뽕을 뽑을 수 있을지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부관.”

“예, 장군님.”

“내일 아침 일찍 가장 높은 깃대에 원수기를 달게.”

“알겠습니다.”

“기병대와 군마도 일부 차출하게. 그리고 꼬리에 빗자루나 얇은 나뭇가지를 매달지.”

***

1814년 3월 31일.

나움부르크 동북쪽, 호젠하우젠.

“한스, 너 정말 커피 못 탄다.”

“내가 니 입맛을 어떻게 아냐?”

“아니 입맛이고 나발이고 맛이란 거 자체가 없잖아.”

“꼬우면 니가 타 먹어.”

야트막한 동산 수준 높이지만 꼴에 성이랍시고 얼기설기 세운 성벽 위에서, 프로이센군 초병들은 수통에 물 대신 담아온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한스.”

“커피 얘기할 거면 닥쳐. 맛만 있고만 뭘.”

“우리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몰라 시발. 재수 옴 붙게 그런 말 좀 하지마.”

“참모부 지키는 헌병 중에 내 친구가 하나 있는데, 걔가 말하길 요새 장군님들 얼굴이 팍 죽어버렸다더라.”

“왜.”

“그거야 모르지. 높으신 융커 분들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아냐? 근데 우리한테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애.”

한스는 말없이 커피만 호로록하고 마셨고, 그걸 더 말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전우는 계속 입을 놀렸다.

“생각해봐. 저 인간들 면상이 죽을상이 된 거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뺑이를 칠 거란 말 아니냐?”

“음.”

“막말로, 융커 나리들이랑 달리 우린 개죽음이라고 개죽음.”

“음.”

“너 염소냐? 음, 음 말고 할 줄 몰라?”

“그런데 있잖어.”

“뭐.”

“저기 저게 뭐냐?”

한스는 저 멀리 어드메를 손으로 가리켰다.

“황사야? 무슨 흙먼지가 저리 뿌옇게 일어나냐?”

“어... 황사라기보다는 뭔가...”

“비켜! 비켜라!”

두 사람이 손바닥을 눈썹 언저리에 올리고 연신 눈을 찌푸릴 때, 손에 망원경을 든 장교 하나가 둘 사이를 우악스럽게 비집고 들어왔다.

“······.”

“저어... 대위님? 저게 뭡니까?”

“······.”

“대위님?”

“너희 둘. 당장 지휘부로 튀어가서 지금 당장 전투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해!!”

“알, 알겠습니다!”

성벽을 내려가기 위해 장구를 챙기던 한스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뿌옇게 인 흙먼지가 지평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

“다부 장군님. 이게 먹힐까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으으음...”

“하지만 적어도 저놈들 머리에 스팀은 제대로 올라간 거 같지 않나?”

다부는 함께 망원경으로 요새를 관측하는 부관에게 말했고,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어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성벽 너머에서 검을 뽑은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프로이센군 장교.

총탄을 장전하고 총을 총안구로 밀어 넣는 프로이센군 병사들.

성벽 밖으로 나와 망치 역할을 맡은 걸로 보이는 프로이센군 소속 작센 기병대.

무려 1개 기병 대대를 동원해, 말 꼬랑지에 빗자루 비스무리한 걸 달고 온종일 동네방네 뛰어다닌 보람이 있구만.

부관은 망원경을 내리고 물었다.

“이제 어쩌시렵니까?”

“1시간 후 공세를 개시한다.”

“하달하실 별도 명령은 없습니까?”

다부는 부관과 달리 망원경을 계속 눈에 댄 채로 답했다.

“보병대를 기존 3열에서 2열로 바꾼다.”

“그러면 화력이 떨어집니다만.”

“대신 우리 병력이 더 많아 보이지. 부관, 지평선을 우리 보병들로 가득 채우라고. 프로이센 놈들이 우리 병력 규모를 뻥튀기하게끔 속여.”

“알겠습니다.”

*

“온 세상이 프랑스군입니다! 지평선에 죄 다 파란 군복뿐입니다!”

“일어난 흙먼지 양으로 보면 최소 10만입니다.”

“나움부르크. 나움부르크에선 소식이 없는가?”

“지금 나움부르크도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젠장 양동인 건가?”

“지금으로는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미치겠군. 우리가 무너지면 라이프치히와 나움부르크 간의 연결고리가 끊겨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증원군도 기대하기가 어렵잖은가.”

“각하. 우리의 방어는 이미 굳건합니다! 어줍잖은 공격은 우리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음. 그렇지.”

나움부르크-라이프치히 방어선을 연결하는 이곳.

수비대 사령관은 충분히 능력 있는 자였고, 낡긴 했지만 엄연히 요새를 끼고 있었으며 주둔하고 있는 병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방 관측 장교가 원수기를 포착했습니다! 나폴레옹의 본대가 우릴 치는 게 분명합니다.”

“···정말 우리 앞에 있는 게 나폴레옹, 프랑스군 본대인가?”

눈앞에 홀연 듯 나타난 원수기. 그리고 자욱한 흙먼지.

최소 10만은 넘을 프랑스군 본대가 나타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자, 광인이 아닌 이상에야 섣불리 뻥카 취급을 할 수도 없었다.

“일단은, 일단은 나움부르크와 라이프치히에 파발을 보내지. 철저히 수세로 일관하다가 호엔로에 공작께서 명령을 내리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

“공격입니다! 총공격입니다!! 프랑스군이 군가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히! 햐!”

“프랑스군 등장!”

“포격이다아악! 포탄이 떨어진다!!”

“흐아아악! 엄마아아아!!!”

사람이 쏘아 올리고 하늘을 지난 죽음이 땅을 향해 그 몸을 던졌다.

“개구리들이 요새 동쪽에 화력을 퍼붓고 있습니다! 곡사포에 박격포, 평사포까지 있는 포란 포는 다 때려 박는 거 같습니다!”

“뭐? 우리 포병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본디. 프랑스군의 장기는 포병.

무려 3년을 월반해 졸업한 희대의 쏘가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학년 차석 기욤 드 툴롱 모두 포병 병과 출신.

후대에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리우는 수학 난제를 제시한 위대한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가르치는 프랑스 사관생도들은 명백히 세상에서 가장 숙련된 포병 장교이자 관측 장교들이었다.

“계산해보니까 4도 정도 높이면 맞겠네.”

“하나 포 쏴!”

“명중입니다!”

하나 더.

“역시 이삭의 민족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옛날에는 어떻게 그 쓰레기 대포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사용하는 청동제가 아니라, 강철제 대포.

당연히, 강철은 청동 따위보다 강하다.

포신의 내구성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많은 장약을 넣어 사거리를 늘릴 수 있고, 더 무거운 포탄을 넣어 파괴력을 늘릴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강철은 청동 따위보다 비싸다.

하지만 통령이 누군가. 바로 세계 최대의 철강 사업체를 가진 자 아닌가.

- 어차피 전쟁 지면 난 단두대 형인데 현금보단 그냥 상환 기한 없는 채권으로 대금 치릅시다.

- 히히 승전하면 현금보다 채권이 떡상이지롱!

그의 대국적인 결단 아래,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강철들은 그대로 프랑스 본토에 있는 제련소와 조병창을 거쳐 총포로 변신했고, 포병 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 수뇌부를 장악하며 기존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청동제 대포를 모두 대체한 상태였다.

“제기랄. 저 포병대를 처리 못하면 이대로 앉아 있다 죽게 생겼군. 기병대 준비시켜. 프랑스군 포대를 밀진 못해도 최소한 시선은 끌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부관. 15사단에게 우측이 돌출되어있으니 그쪽에 공격을 집중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하나 더. 밖에 나와 있는 프로이센군 경기병대를 개박살 내야겠어. 별동대를 차출해 인근 구릉지대로 적 기병대를 유인하자고.”

한 가지 더.

강철의 원수, 루이 니콜라 다부.

원 역사에서 나폴레옹이 가장 신임한 지휘관이며 자신의 4배 가까이 되는 적도 패퇴시킨 명장.

말했듯, 이곳을 지키는 프로이센군 수비대 사령관은 무능한 인사가 아니었다.

“전, 전멸? 기병대가 전멸했다고?”

“···구릉지대에 매복이 있었습니다. 놈들이 산탄포로 우군 기병대를 갈아버렸-”

“오. 신이시여. 프리드리히 대왕이시여.”

그저 상대가 너무 먼치킨이었을뿐.

“무, 무너진다! 포격에 성벽이 무너진다!”

“외벽에 프랑스군이 몰려옵니다!”

“백병전! 백병전을 준비하라!!”

“프로이센 놈들의 요새가 무너졌다! 소대 약진 앞으로!”

“““앞으로!”””

한 번 생긴 돌파구를, 찬스를 놓치지 않는다.

“척탄병 사단 준비하게.”

“예, 장군님.”

적절한 시기. 제일 아끼는 척탄병 사단이 감행한 총검 돌격에 외벽을 지키던 프로이센 보병대가 밀려났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수해야 한다!”

“이대로면 다 죽습니다!”

“그러면 그냥 죽어! 여길 개구리들한테 내주면 패배다 패배!!”

“비바 라 레볼루숑!!”

“혁명의 멋짐을 모르는 너희들이 불쌍하구나!”

“성문은 열렸나?”

“프로이센 놈들이 죽기살기로 저지하고 있어서 아직...”

“음... 그러면 곡사포와 박격포를 모두 모아다가 근거리에서 성벽을 맞춰보지.”

“예? 그러면 요새 안에 퍼부을 화력이 모자랄 텐데요.”

“어차피 아군이 들어간 이상 오사 때문에 막 쏴재낄 수도 없잖나. 그럴 바엔 성벽에 틈을 더 만드는 데 쓰자고.”

“알겠습니다. 포병대에 전달하겠습니다.”

- 콰콰쾅!!

“무너진다! 성벽이 무너진다!!”

“프랑스군이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아무리 거대한 댐이라도,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면 그대로 붕괴하듯.

마중물이 들어간 수도관이 물을 콸콸 쏟아내듯.

프랑스군이 호젠하우젠에 쏟아져 들어간다.

“사령관님! 빨리 후퇴해야 합니다!”

“아니, 아니야! 아직 버틸 수 있다!”

“프로이센의 장성으로서 후퇴 명령을 어떻게 내리나!!”

“이러다가 전열이 무너지면 후퇴도 못 합니다!”

방금 전까지 최전선에서 싸워, 얼굴 곳곳에 숯검댕이와 누군가가 흘린 피를 뒤집어쓴 부관의 말에, 수비대 사령관은 신음을 흘렸다.

“···후퇴한다. 최대한 전력을 온존하면서... 아니, 뭉쳐봤자 아군 기병도 없으니 적 기병대에게 썰리겠군. ···각자 흩어져서 나움부르크에서 모인다.”

“알겠습니다!”

“다부 장군님. 적들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적장은?”

“묘연합니다.”

“그러면 자잘한 잔병들은 내버려 두고 적당히 큰놈들만 추격하지. 규모가 있는데도 후퇴하면서 질서를 유지한다는 건 고급 장교가 지휘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군대의 팔다리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이지만, 그걸 움직이게끔 만드는 뇌세포는 명백히 영관급 이상의 고급 장교들이다.

“그놈들만 잡으면 우리와 맞서던 프로이센군 부대는 재편이 불가능해진다.”

팔다리가 남아있어도 뇌세포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 움직이겠나.

만 하루.

그렇게 만 하루.

강철의 원수는 라이프치히-나움부르크 방어선 중간을 깔끔하게 절단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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