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19화 (298/341)

예나-아우어슈테트 (1)

“프로이센군이 에르푸르트에 일부 잔존 병력만 남겨둔 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나.”

“살레 강을 따라 북상하고 있습니다.”

“포위당하는 건 죽어도 싫다 이거군.”

아쉽다. 에르푸르트에 그대로 처박혀 있었다면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략적 가치가 전무한 죽은 돌이었을 텐데.

“꼴에 프로이센군이라고 제법 날쌔군.”

“아무렴 우리만 하겠습니까?”

“그도 그렇지.”

달리는 자동차 안.

곳곳에서 수집되고 날아오는 정보와 첩보를 취합하며 연신 지도를 짚어나가던 나폴레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뻔히 보이는군. 에르푸르트-예나 라인을 버리고 살레 강과 라이프치히를 낀 새 방어선을 구축하겠다. 이거야.”

“그러면 다부 장군이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졸지에 도하전, 시가전까지 치르게 됐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놈들 머리끄댕이를 잡아채야지.”

나폴레옹이 손짓하자 자동차 옆에서 속도를 맞춰 말을 몰던 연락장교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란에게 에르푸르트를 포위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나움부르크 서쪽 방면을 향해 이동한 뒤, 도하전을 준비하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나폴레옹은 저 멀리 사라져가는 연락장교의 뒷모습을 쫓다가 다시 지도로 눈을 돌렸다.

양측을 모두 합해 50만 대군이 맞붙는 지금. 자신이 두는 수 하나 하나가 대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에르푸르트 방어를 위해 남겨놓은 군대는 많이 쳐줘도 약 1만. 그러면 다부를 쫓아 북상 중인 병력은 5만 정도.’

원래 작전처럼 놈들을 에르푸르트에 처박아놓고 ‘히히 봉쇄죠? 할 수 있는 건 아무고토 없죠? 통신도 못 하죠?’를 외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을 테지만 놈들이 야지로 나온 이상 얌전히 도시락이나 까 먹지는 않을 거다.

‘최악의 상황은 저놈들이 나움부르크에 무사히 도착하고, 그곳을 기점으로 수비를 굳힌 뒤 베를린에서 온 증원군과 합류해 우리의 수적 우세를 빼앗는 것.’

그렇게 되면 정말로 강 대 강. 무식한 정면 힘싸움 뿐.

귀한 프랑스의 아들들을 그따위 병신 같은 짓으로 잃을 순 없다.

최선의 상황은.

“란이 살레 강 지류를 넘어 서쪽을 막고, 내가 나움부르크를 함락시켜 중앙을 찢고, 다부가 라이프치히 쪽에서 예쁘게 턴 해 뚜껑을 덮어버리면.”

10만 프로이센군 모가지가 단숨에 슥삭.

호엔로에인가 호애앵인가 하는 놈은 그대로 프랑스군에게 사방이 포위되어 포격이나 하루 종일 얻어맞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그림을 위해서 두 가지 수를 쓸 수 있다.

“우리가 망치가 되거나, 다부가 망치가 되거나. 둘 중 아무거나 괜찮겠군.”

“란 장군은-”

“란은 어디까지나 모루. 도하전만 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공격까지 시키면 병사들이 다 탈진해 버릴 거야.”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이끄는 본대나 다부가 이끄는 1군단이 망치가 되어야 한다.

“적도 병신은 아닐 테니까 가장 경계하는 건 나겠지.”

“그렇겠지요.”

란 5만. 다부 5만.

그리고 나폴레옹 20만.

물론 중간중간 낙오한 병력을 제외하면 여기 튈링겔 관목에 있는 건 20만이 아니라 15만이었으나 그만해도 프로이센군의 주력보다 많다.

“베르티에.”

“예, 각하.”

“놈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지 않겠나?”

“물론이지요.”

나폴레옹이 또다시 손짓하자 이번에도 연락장교가 자동차 옆에 다가왔다.

“내 깃발 중 남는 거 있나?”

“예. 각하.”

“하나는 다부에게 보내도록. 다부라면 알아서 잘 쓸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베르티에?”

“예, 각하.”

“나움부르크를 2개 사단으로 한번 찔러보자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이동! 이동! 너무 느리다! 더 빠르게 발을 맞추란 말이야!”

“흐, 헤, 흐으헤엑!”

“이놈들! 다들 태도가 왜들 그 모양이냐!”

“대, 대위님. 저희는 이 정도 속도로 뛰는 행군은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싸우기도 전에 다 쓰러질 거 같단 말입니다.”

“속도를, 속도를 조금만 줄여주십시오 대위님!”

“니놈들이 입고 있는 군복, 군화, 먹고 마시는 어느 것 하나 국왕 폐하의 은덕이 아닌 것이 없다. 겨우 그 정도가 힘들어? 잘 생각해라! 여기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 자빠지면 개구리 놈들이 우릴 모두 도륙할 거라고!”

“공작 각하. 병사들이 지쳐있습니다.”

“으음. 밤잠 좀 설쳤다고 비실거리긴. 나약한 놈들 같으니.”

호엔로에는 짜증난다는 듯 코를 팽-하고 풀었다.

“속도는 얼마나 나오나?”

“하루에 10km는 나오는 거 같습니다.”

“그래. 개구리 놈들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이거야!”

“하지만 각하. 병사들, 특히나 징집병들이 피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교전이 일어날 시 전투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아. 걱정말게.”

호엔로에가 손을 휘휘 저었다.

“생각해보게. 프랑스 놈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여기까지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오지 않았나. 우리는 고작 하루 이틀을 그렇게 보낼 뿐이야. 피로감의 양으로 보면 개구리들이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단 말일세.

상식적으로 봤을 때, 지금 개구리들은 우릴 공격할 수 없어. 안 그렇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우린 딱 라이프치히에 축선을 구축할 수 있을 곳까지만 가면 돼. 그 뒤엔 전 부대에 자유로운 휴식을 허가하겠네.”

“···알겠습니다.”

샤른호르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홀로 참모부를 나갔고, 그가 나가자마자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다 괜찮다는데 왜 혼자 난리지.”

“왜긴. 집안이 한미하니 이런 곳에서라도 제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높으신 분들 눈에 띄기라도 하지.”

“아. 그러니까 트러블메이커다?”

그러나 수군수군이수근거리던 목소리들은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전령의 목소리에 사라져버렸다.

“공작님! 나움부르크에 적 6개 연대가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

“씨발. 씨발. 좆같은. 씨발.”

“1중대 사격!!”

중대장의 말에 수아송은 척수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 따앙!

귓전을 울리는 굵직한 소리, 손를 떨게 만드는 묵직한 반동.

하지만 거기 신경 쓸 틈은 없다. 서둘러 탄약포를 뜯고 총신에 밀어 넣은 후, 뇌홍을 갈아 끼운다.

“자율사격! 자율사격!”

프로이센군 엽병대가 산병전 대형으로 바꾸자 중대장이 새 명령을 내린다. 똑똑한 새끼.

“꼬맹이! 따라 와! 뒈지기 싫으면!”

“아, 아저씨! 괜찮아요!?”

“내가 여기서 뒈질 거 같냐?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려고 얼마나 쎄빠지게 살았는데. 씨발.”

저 멀리 움직이는 놈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명중.

검은 군복을 입은 프로이센군이 목을 잡고 쓰러졌다.

“캬. 맞기는 존나게 잘 맞네. 누가 방산비리래? 통령의 가호구만!”

“아저씨! 3시 방향!”

“개새꺄! 그건 니가 잡아야지!”

“빗맞았어요!”

“아 이 쓸모없는 새끼야!”

수아송은 아가리만 털 줄 아는 이 싸가지 없는 애새끼의 배때지를 뻥-하고 차 엄폐물 뒤로 보내버린 뒤 자신도 머리를 숙였다.

- 파바박!!

“흐미 뒤질뻔했네.”

“웨에엑! 웨엑!”

“괜찮냐?”

“우, 우... 덕분에 겉은 멀쩡, 해요. 아저씨는 괜찮아요?”

“내가 말했지? 난 악하고 깡 밖에 없는 새끼라 안 뒈져!”

그렇게 입으로는 질겅질겅 육두문자를 두두두 쏘고 손으로는 납탄을 두두두 쏘며 사격하길 한참.

“1중대 퇴각한다! 1중대 퇴각!”

“삐이이익! 삐이이익!”

익숙한 호루라기 소리.

“중댐! 벌써 퇴각합니까? 아직 우리 힘 짱짱합니다!”

“수아송! 위에서 내려온 지시다! 퇴각한다!”

별로, 별로 안 밀리는 거 같은데.

아니. 오히려 우리가 압도하고 있지 않나? 프로이센 놈들은 방아쇠를 당기기가 무섭게 픽픽 쓰러지고, 우린 아직 말짱한데.

“상부 명령이다! 퇴각한다!”

“니미. 야 꼬맹이! 대가리 제대로 숙이고 따라와!”

“알겠어요!”

프랑크푸르트를 정리하고 뒤늦게 합류한 36사단은 나움부르크 외곽 5km 지점에서 프로이센 엽병대와 총알을 주고받다가 물러났다.

“나움부르크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나?”

“나움부르크 수비대가 프랑스군 선봉을 패퇴시켰답니다!”

“하하하! 그래 그거지!”

“적은 나움부르크 진입을 시도했으나 우군 엽병대에게 산병전에서 밀려 퇴각했습니다.”

“역시 페르디난트 왕자께서 전사한 건 크나큰 불운이었을 뿐입니다.”

첫 전투에서 국왕의 조카가 칼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한여름 장마철마냥 분위기가 어두컴컴 찝찝했던 프로이센 총참모부엔 작은 승리가 가져다준 낙관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주 좋아. 예봉을 한차례 꺾었으니 놈들도 기세가 꽤 꺾였겠지.”

“보나파르트가 어떻게 나올까요?”

“떨어진 기세를 다시 올리려 들지 않겠나?”

“그 말씀은.”

“그래. 나였다면 본대로 단숨에 나움부르크를 함락하려 들 것이야. 그러면 떨어진 사기도 복구할 수 있고 지휘관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도 회복할 수 있지. 여러모로 남는 장사 아닌가.”

호엔로에는 잠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움부르크로 주력을 돌린다. 기존 나움부르크 수비군 4만에 추가로 3만을 더하지.”

***

“프로이센군이 나움부르크에 추가 증원되고 있습니다.”

“36사단이 적을 잘 꾀어냈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 마지막 한 놈까지 우리가 붙든다.”

“그러면 바로 총공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아, 그건 아니고.”

“예?”

나폴레옹은 코담배를 한 번 피운 후 말판을 옮겼다.

“나움부르크 공세에 나서는 건 6개 사단. 나머지 6개 사단과 뮈라의 기병여단은 예비로 둔다.”

“그러면... 우군이 취할 수적 우위가 사라집니다만.”

“아니지. 좀 대국적으로 보라고 베르티에. 저자들이 이 보나파르트에게 홀려 있잖나. 왜 나움부르크에 증원을 했겠나? 한 차례 우리가 물을 먹었으니 설욕을 준비하리라 예상한 게지.”

그러니까.

“놈들은 내가 나움부르크에 꼴아박길 원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거 보면 정말 꼴아박으실 생각 아닙니까?”

“베르티에. 혹시 후방에 있는 술트와 자리를 바꾸고 싶나?”

“아닙, 아닙니다.”

술트는 지금 오를레앙에서 신병을 낚는 어부가 되지 않았나. 살이 아주 쪽쪽 빠져서 재무부 직원처럼 변했다던데.

심지어 소문으로는 그 일중독자 통령이 직접 오를레앙까지 행차해 근엄히 꾸짖기까지 한다고 하지 않나.

“실언을, 했습니다.”

“뭘 그 정도까지 저자세로 나오나? 여하튼 저쪽이 원하는 게 확실하니, 우리는 그걸 줄 듯 말 듯 하며 낚으면 되겠지.”

놈들이 볼 수 있도록 내 깃발을 높게 올리게.

***

1814년 4월 10일.

“프랑스군 본대가 튈링겔 숲에서 나와 나움부르크 앞에 도달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프랑스군 원수의 상징인 황금색 독수리 깃발이 올라왔습니다.”

“예상대로군.”

거 봐라. 개구리가 아무리 재주를 피워봤자. 개구리지.

“공작 각하.”

“음? 왜 그러나?”

“라이프치히 앞에도... 독수리 깃발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복사가 된다고?

“나움부르크 앞에 있는 병력은 약 7만. 라이프치히 앞에 있는 병력도 약 5만 내지 6만으로 보입니다.”

“저 관목 숲 안에 적이 아직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라, 라이프치히에 보낸 병력이 본대는 아닐까요? 아니면 사라진 적 병력이 지금 라이프치히로 북상 중일 수도 있습니다.”

“적 본대가 둘 중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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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개시일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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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하는 프랑스군 진격 루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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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의 북상에 대처하는 프로이센군 이동 경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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