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13화 (292/341)

대불동맹 (5)

프로이센, 러시아,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유럽을 주름잡고, 훗날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4개국의 공동 선전포고!

아 넘모 무섭따!

길바닥에 침 짝짝 뱉고 다니는 동네 달건이 깡패들이 시비 터는 것만 해도 일반인은 간장이 쫄깃쫄깃해지고 부랄이 쪼그라드는데, 하물며 국가 규모의 깡패는 어떠겠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을 펼쳐보니 떡하니 ‘널 죽이겠다.’ 는 협박 문자를 본 프랑스인들은 너 나 우리 할 것 없이 ‘호에에엥 넘모 무서운 거시에요오옷.’ 하면서 이불을 둘둘 뒤집어 쓴 채 두려움이 달달달 떨 수밖에 없었다...

-가 아니라.

“뭐? 이야 이 새끼들이 우릴 아주 좆으로 보네?”

“유럽의 군주들이 감히 우리에게 맞서겠단 말인가? 좋다! 그들의 발밑에 적들의 모가지를 던져주자!”

“마 함 해보입시다!”

곧 죽어도 가오.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프랑스인들은 모닝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다채로운 육두문자와 함께 적들을 씹어 돌렸다.

“입대하고 싶습니닷!”

“···입대? 나이가 좀 많이 어려 보이는데. 이봐 친구. 나이가 어떻게 되지?”

“열여ㅅ-”

“열여섯? 입대는 만 18세 이상부터다. 됐고 학교나 가.”

“아뇨, 아뇨! 열여섯이 아니라, 열여덟! 전 열여 ‘덟’ 이라구요.”

“어허 이 어린노무 쉐끼가. 학교나 졸업하고 와!”

“야 빠꾸 먹었는데 이제 어떡하지?”

“옆 도시 징병관은 빡세게 안 잡는다는데. 아침 일찍 첫 기차 타고 갔다 올까?”

“와 씨 너 천재냐?”

프랑스 전역에서 입대자원자들이 속출하고, 징병관들은 나이를 속이거나 지병이 없다고 구라치고 들어오려는 입대자원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퇴근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36사단 주목.”

“““주목!”””

“이제 우리는 장 란 장군이 지휘하는 제 5군단에 편성되어 현재 위치 라로셀(남부, 미디피레네)에서 5군단 주둔지인 메츠로 이동한다.”

“““와아아아!!!”””

그리고 몇 달 동안 땅을 구르며 흙만 퍼먹은 따끈따끈한 신병들.

그들의 눈에선 누구랄 것 없이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내 피 같은 청춘 돌려줘어어엇!’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

연애도 하고, 꿈을 위해 노력도 하고, 흥겨운 문화생활도 즐길 파릇파릇한 젊은이들.

그러나 어느 날 일어나보니 베개맡에 <입대영장>이라는 지옥으로의 초대권이 도착했고 이들은 어어 하다가 신병훈련소에서 흙먼지를 퍼마시게 되었다.

“죽... 여줘...”

“86번 훈련병. 힘듭니까?”

“네에엣... 힘...듭니다...”

“힘들면 군생활 끝나나!!”

“???”

21세기 선진병영(아님)에서도 부조리가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였거늘, 19세기 구식병영의 맛은 얼마나 일품이겠는가.

글자를 모른다고 맞고, 행군 속도가 늦다고 맞고, 대열이 몇 센티 틀어졌다고 맞고, 하얀 군복에 먼지가 탔다고 두들겨 맞고...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애초에 땅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는 판국에 흰 군복이 어떻게 먼지가 안 탄단 말인가.

“우리의 주적은?”

“···간부?”

“오.”

“그럴 듯 한데?”

“역시 중졸이라 그런가 생각하는 수준이 달라.”

이쯤 되니 취침 소등 이후로 당직사관 몰래 노가리를 까는 카롤링거 대제 이후 유구한 프랑스군의 전통 타임마다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 뭔 병신 같은 소리야? 간부들이 주적이라니?”

“오오. 우리 중대 최고의 지식인이 입을 열었다!”

“어이 고졸! 그러면 네가 생각하는 우리의 주적은 누구냐?”

초등 의무 교육은 실시되었지만, 아직 중고등학교는 의무가 아닌 이 시대.

대대에서 손에 꼽는 고등학교 졸업장 소유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누구긴. 통령님이 하는 말 못 들었어? 우리가 왜 고향에서 떠나 조뺑이를 까느냐?”

“독일 놈들?”

“러시아 놈들?”

“아냐 사실은 배후에서 모략을 펼치는 영국 놈들 때문이랬어.”

“다 아니야 이 새끼들아.”

왜 프랑스 전국에서 온 수만 명이 조국과 가족을 위해 뜻을 모으고 있는가.

동부 프랑슈콩테에서 온 녀석, 북부 노르망디에서 온 녀석, 남부 프로방스에서 온 녀석도 서부에서 온 자신, 저기 바다 건너 생도맹그에서 온 까만 녀석까지 모두?

모든 것은 국왕이랍시고, 귀족이랍시고 꺼드럭거리는 놈들 때문!

“러시아에선 사람들이 ‘농노’라고 불린다고 하더라. 무슨 뜻이냐면 농사짓는 노예래.”

“와 1814년에 노예?”

“그거 아주 개새끼들이구만!”

“즉, 그 새끼들을 족치면 된다. 그게 내 결론이다.”

“이야 역시 고졸이라 그런가 생각하는 수준이 달라.”

36사단에 오기 전엔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나이가 많고, 적고, 어디서 왔고, 피부색이 어떻든, 다 같이 똑같은 말 하고 똑같이 밥 먹고 이젠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는 전우들.

마치 칼라를 통해 뜻을 공유하는 프로토스처럼 이들은 몇 달 동안 흙바닥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쪼인트 까이며 서러움을 느낀 끝에, 다 함께 이를 북북 갈기 시작했다.

“차르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자!!”

“카이저 뚝배기를 터트리자!!”

“내 청춘을 돌려줘!!!”

그야말로 거국적인 분노!

민, 관, 군 할 것 없이 휘몰아치는 분노의 파도!

그 넘실거리는 파도는 프랑스는 물론이요, 바다 건너까지 미쳤으니.

*

북아메리카, 누벨 프랑스.

자유 러시아인 개척지.

본래 20년 전 황량한 벌판이었던 곳은 이제 4만여 명이 사는 소도시로 바뀌어있었다.

조그맣지만 기차역도 있고, 수운이 가능하게 부두도 있는 걸 보면 소도시보다는 좀 더 값을 쳐줄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소도시에서 가장 높은 – 그래봤자 5층짜리긴 하지만 – 건물에선 프랑스의 의회를 본따 만든 자치 의회, 그러니까 소비에트가 종종 열리곤 했다.

“다들. 소식은 들었으리라 생각하네.”

수염 희끗희끗한 노인의 말에, 이곳을 회의실 삼아 모인 이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 땅은 러시아보다 훨씬 따뜻하고 살기 좋지만 여름엔 간간이 허리케인이 몰아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이 땅을 향해, 자신들을 향해 몰아치는 폭풍은, 자연이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폭풍이었다.

노인은 손에 쥔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태까진 유럽이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에겐 딱히 문제가 없었지.”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가 붙은 건 러시아인들로서 어디까지나 남의 일.

하지만 이제 러시아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갈겨버린 이상,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어르신. 당국이... 우릴 어떻게 볼까요.”

“의심 반, 걱정 반이라고 생각하네.”

이 러시아인 개척지에 살고 있는 주민의 대다수는 지난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이다.

프랑스 당국에선 이들이 갑자기 ‘으아아 차르가 우릴 부르신다! 러시아 제국 만만세!’ 하면서 총 들고 봉기를 일으킬까 하는 의심이 있을 수밖에.

게다가 이곳이 도시가 된 이후로 이주한 프랑스 시민들도 꽤 되지 않나.

그들로서는 자국민의 안위에 혹여 불행한 일이 생길까 신경을 곤두세울 법했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 그럴 건덕지는 추호도 없었지만.

“젠장, 억울하군요. 우릴 버린 새끼들에게 납탄을 먹여줬으면 먹여줬지, 우리가 병신도 아니고 그놈들 엉덩이를 또 빨아줄 거라 생각한답니까?!”

“전··· 아직도 그 개새끼들 낯짝이 기억납니다. 탈출선에 오르려는 우리한테 총을 겨눴었죠 아마.”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갔건만 조국은 이들을 배에 자리가 없다며 유기해버리고 떠났다.

말이 러시아 제국군 포로지,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러시아 제국군도, 러시아 제국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옆집 클레망소 따라 프랑스군에 입대하면 당국도 우릴 보는 눈에서 의심을 거두지 않겠습니까?”

“입대, 라.”

“권리를 찾으려면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프랑스인들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지금 왜 이런 취급을 당하겠습니까? 바로 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돼지 새끼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놈 멱을 따버리면, 우리 소비에트를 더 이상 위험집단으로 볼 일도 없겠죠!”

노인은 젊은이들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 한 번, 총독을 알현해보지.”

***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프랑스 최고의 소방수.

방어의 달인.

피레네 산맥의 사자.

그리고 누벨 프랑스 총독.

이제 예순이 훨씬 넘어 머리칼이 하얗게 변한 이 노장군은 항상 그렇듯, 사람 좋게 웃으며 소비에트에서 온 러시아인을 응접실로 데려갔다.

“총독 각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위원장.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격식을 갖춥니까?”

자기 보신을 위해 왕당파의 통수를 기깔나게 때린 고고한 이기심과 인성의 소유자 뒤무리에 답지 않게 이 정도로 성심성의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욤! 기욤! 이 개 같은 새끼! 내가 목숨을 살려줬건만 날 이 산간벽지에 귀양을 보내!?’

‘···뭐어 살아 보니까 나름 괜찮구만. 날씨도 연중 온화하고, 오대호에 도시도 깔려서 도시민도 나날이 많아지고... 전원생활하기에 괜찮을지도...?’

‘뭐? 그게 정말이냐?! 금광이라고!? 어디! 어디!? ···잠깐만. 기욤이 이걸 알면, 날 잡아다가 이젠 어디 태평양 섬으로 보낼지 몰라!’

‘아니지, 아니야. 그놈이 날 여기 보낼 때 적당히 뽀찌 좀 뜯어먹으라고 했잖나? 그래. 놈도 뱉은 말이 있으니 광산 한두 개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 정도야...’

‘흐, 흐하하하!! 돈이다! 금이다! 금괴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샤를 뒤무리에, 네가 드디어 헌신에 대한 보답을 받는구나!! 기욤 드 툴롱! 사랑한다! 사랑해!!’

뒤무리에의 휘황찬란 금빛 은퇴 라이프!

하지만 광산업이 그렇듯 인부는 항상 모자랐고, 그 덕에 뒤무리에가 슈킹한 금광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이었다.

즉, 눈앞의 노인에게 함부로 대했다간 금광이 올 스톱 된다는 것.

물론 군대를 투입하면 해결될 수 있겠지만...

뒤무리에가 그런 사특한 마음을 품고 잠에 드는 날엔, 꿈에서 왕을 두 번이나 담궈버린 그놈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응. 그래. 과욕은 부리지 말자.

그렇게 해피해피한 생활을 살고 있는 뒤무리에는 허허로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헌데 누벨 오를레앙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대서양을 건너 들려오기에-”

“···아.”

뒤무리에는 번쩍거리는 금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뭐어 확실히 총독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긴 하지요. 시민들도 조금 두려워하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노인의 설명을 들은 뒤무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 프랑스군에 자원입대하면 여러분을 보는 시선이 많이 누그러지겠지요.”

“그렇습니다. 비록 저희 중 대부분이 시민권자는 아니지만... 모쪼록 상황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귀찮은데.

시민권자면 그냥 군대를 가든 말든 상관 없지만, 외국인이 프랑스군에 입대한다면 또 법률 어디 결격사유가 있는지 구석탱이까지 훑어야 하잖나.

뒤무리에는 짐짓 더 좋은 수가 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건 어떻습니까?”

***

1814년 2월.

얼마나 잘 닦았는지 보석만큼 햇빛이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총검.

칼 각 잡힌 푸른색 군복과 멋진 금색 독수리가 그려진 정모.

선선한 바람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나부끼는 사단기와 삼색기.

도로변에 모여 주머니와 군장에 뭔갈 자꾸 넣어주는 민간인들까지.

“다음은 앙드레 마세나 장군이 이끄는 제 3군단 소속의 32사단입니다! 국민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주십쇼!!”

“32사단! 32사단!!”

“군인 아저씨 멋있어요!”

“카리브해의 검은 용사들! 생도맹그에서 온 93사단입니다!”

“오랜만입니다, 파리!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감회가 새롭군요. 93사단을 맡게 된 투생 투베르튀르입니다. 프랑스 시민권자로서 의무를 다하러 왔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 만세!”

그야말로 국가적인 규모의 뽕 주입!

크어어 취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대육군 장병들은 누구 하나라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다음은 러시아 자유시민군입니다! 고향을 차르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고자 누벨 프랑스로부터 모인 이들에게 무운을 빌어주십쇼!!”

“거 씨바 우리도 해봤는데 별거 없수다! 댁들도 할 수 있소!”

“그럼 그럼! 왕 모가지도 한 번 잘라봐야지!”

“트리어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독일 자유시민군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주십쇼!!”

“마르크스! 마르크스!”

“어이 동지들! 가서 카이저를 으깨버려!!”

“필리포 부오나로티(Filippo Buonarroti) 전 산악파 의원이 이끄는 이탈리아 자유시민대대입니다!”

“와아아아!!”

위풍당당한 프랑스군, 그 뒤를 따라 왕가의 상징인 쌍두독수리와 검독수리를 뺀 자국기를 들고 행군하는 자유시민군.

“여러분. 보십쇼! 그 누가 이 전쟁에 우리에게 도덕이, 대의가 없다 말하겠습니까!”

“기욤! 기욤! 기욤!”

그렇게, 마 쉬바 우리가 뒤지면 뒤졌지 가오가 없냐? 의 나라 프랑스는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