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10화 (322/341)

대불동맹 (3)

21세기 한국인 중 주식하는 이에겐 방산주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떡상의 주역으로, 축구팬에겐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나라로 친숙한 이 나라.

폴란드.

동시에 이 나라는 유럽 역사상 최강의 기병대로 명성 높은 윙드 후사르의 나라였고.

동유럽 최대의 평야로 막대한 양식을 생산하는 곡창지대를 보유한 농업 강국이자,

동유럽에서 제일 먼저 관세를 도입하고 공업을 장려했으며, 자유주의에 입각한 성문(成文) 헌법을 제정한 중진국이기도 했다.

밥도 있고 적지만 공장도 돌아가고 이 틀니딱딱 봉건 탈레반의 시대에 나름 괜찮은 법도 있다.

이야 듣기만 했을 땐 정말 괜찮은 국가 아닌가?

응 아니야.

안타깝게도 폴란드는 적이 많았다. 그것도 좀 많이.

폴란드의 인접 국가로는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제국이 있었는데... 딱 이름 듣자마자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아, 폴란드 따먹고 싶다.’

‘야 러시아!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그런데 솔직히 폴란드 맛있을 거 같긴 함.’

‘이상한 나라의 프로이센아? 그게 무슨 소리니...?’

‘솔직히 말해서 신성로마제국 너도 폴란드 좋아하잖아.’

‘그, 그렇긴 해.’

‘그럼 됐네. 혼자 먹으면 눈치 보이니까 우리 셋이 갈라먹자!’

‘콜?’

‘콜.’

‘폴끼야야아악!’

참으로 올바른 인성을 가진 세 강대국은, 혼자 먹으면 겐세이 받을 거, 다 같이 3등분해서 노나먹자는 기적의 해결책을 찾아냈고,

아무리 폴란드가 나름 튼튼하다 하더라도 열강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이 짜웅한 이상, 회귀자가 나타난들 이길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가 먼저 항복해야 불필요한 인명이 희생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국왕이 아직 재가도 안 했고, 군인들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아잇 거참! 우리가 질질 끌면 끌수록 지킬 수 있는 영지가 줄어든다니까?”

“그렇소. 지금 빨리 협력해야 우리들이 가진 재산과 영지를 새 지배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들의 사유재산이 박탈당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귀족들은 나라를 통째로 들어 새 주인님들에게 바치는 대가로 재산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폴란드인이냐!?”

“레이탄 의원! 조용히 하시오! 한 번만 더 입을 가벼이 놀리면 의원직을 박탈하겠소!”

“좆까! 이 씹새끼야! 그렇게 매국을 하고 싶다면 날 밟고 지나가라!”

물론 타데우시 레이탄(Tadeusz Rejtan)처럼 의회에 말 그대로 드러누워 조국을 지키려한 이들도 존재했으나.

“밟으라고? 그럼 밟지 뭐.”

불행히도 매국노들은 연단에 드러누운 레이탄 의원을 정말로 구두로 밟고 지나갔다.

“그럼 폴란드 세임(귀족의회)는 만장일치로 러시아,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 3개국의 폴란드 영토 분할령을 찬성하는 바입니다.”

“으아아아!! 이 매국노 새끼들아!!!”

“의원으로서 조국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으니 살 까닭이 있겠는가. 부끄러워 살 수가 없구나.”

구둣발에 머리가 짓밟히면서도 표결을 막기 위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던 애국자, 레이탄은 그날로 집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우리가 졌다.”

“예?”

“무슨 소리십니까. 아직 제대로 붙지도 않았는데...!”

“세임에서 항복안을 가결시켰다! 바르샤바엔 적들의 깃발이 걸렸고. ···우리 폴란드군은... 이 시간부터 무장해제다. 다들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나 하도록...”

폴란드군은 총 한번 제대로 쏴보지도 못한 채 조국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폴란드군은 긍지 높은 윙드 후사르의 후예.

“씨발! 귀족이랍시고 꺼드럭댈 땐 언제고 나라를 팔아넘겨!? 이 저주받을 놈들!”

“폴란드는 항복했으나 폴란드군은 항복하지 않았다!”

무장해제? 응 좆까.

마치... 동쪽에 있는 어떤 나라와 비슷하지 않은가?

역시 폴란드가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도입하는 건 역사의 순리였다. 원래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사람하고 끌린다지 않는가.

폴란드군은 옛 조국의 땅에선 게릴라전을 펼치고, 외국에선 외인부대에 가담해 프로이센, 신성로마제국, 러시아에게 빅엿을 선사하는 걸로 되갚았다.

예를 들어, 미국독립전쟁에서도 폴란드 외인연대가 영국군을 도우러 온 프로이센 의용군을 박살 냈으니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있는지 잘 알리라.

그리고 지금.

“세느강에서 비스와강으로 프랑스 친구들이 온다! 그전까지 바르샤바를 해방하고 친구들을 맞이하자!”

“이 넴치(Niemcy, 독일인) 새끼들 뒈져라!”

“루스끼 니들도 뒤져어엇!!”

음.

어, 음...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 민족자결주의를 내가 씨부린 이유로 저쪽 후방이 깽판 좀 났으면 싶은 마음이 있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 깽판이 날 줄은 몰랐다.

프랑스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었다고 생각한 폴란드인들은, 제국이 펠에서 패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바르샤바 인근에 살던 친러시아 폴란드 귀족들은 하루아침에 대가리가 이쁘게 커팅 되어 성문에 걸렸다.

추운 겨울, 곳곳에서 치안유지를 위해 주둔한 프로이센군에겐 따듯한 폴란드인들의 마음이 전달되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따듯한지 사람이 펑펑 터져나갔다더라.

나는, 나는 그냥 적당히 후방에서 소요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건데... 이 정도로 불이 활활 타오르면 어뜨카지...?

···.

시발 모르겠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또렷한 수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입니다, 장군. 커피? 아니면 차가 좋으십니까?”

나는 프랑스 공화국 국민방위대 소속, 폴란드 망명여단 여단장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에게 커피를 권하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커피로 주시지요.”

음 맛잘알이시군. 차보다는 뜨끈한 커피지.

나는 직접 커피콩을 도르륵도르륵 갈아 거름종이에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 두 잔을 내린 뒤 포니아토프스키의 앞에 하나, 내 앞에 하나 놓았다.

“향이 참 좋군요. 사령관님이 통령 집무실을 즐겨 찾으시는 이유가 있었습디다.”

“하하.”

“그래서 말인데. 폴란드 진격은 언제입니까?”

앗. 이렇게 돌직구를 꽂다니.

이래서 폴란드인이 화끈한 한국인하고 잘 맞는 건가.

“폴란드 진격이라.”

“예. 지금 바르샤바에서 동포들이 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 온 유럽에 파다합니다. 지금 우군이 적을 치면 손쉽게 비스와강에 다다를 수 있을 겁니다!”

포니아토프스키의 눈은··· 내게 많이 익숙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독립운동가들의 눈엔 항상 저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온 폴란드인이 지금 각하의 말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은 제 앞을 제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그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말인지!”

음음 맞지 맞지. 같은 민족끼리도 귀족이니 뭐니 하고 꺼드럭대면 총 맞아 뒈져야 하는 법이거늘, 어딜 식민지 삼아 꺼드럭대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포니아토프스키의 처지와 폴란드인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나 김치 향이 첨가된 프랑스인이었다.

그것도 매 순간 수많은 목숨을 짊어진.

그래서 나는 천천히 한 단어 한 단어 끊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예나,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프라하.”

내 말이 끝나자, 포니아토프스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장군.”

“예. 각하.”

“프랑스에서 바르샤바까지 직선거리로 달리면 저 도시들을 지나야 합니다.”

프랑스군은 지금까지 손실을 거의 보지 않았다. 왜냐, 다 방어전이었으니까.

공격자를 자기가 원하는 위치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고, 방어전의 어드밴티지를 통해 사상자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독일 땅으로 발을 내딛는 다면, 방어자의 어드밴티지는 이제 우리의 적이 된다. 사상자는 다대해지겠지.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난, 우리 프랑스군이 편하게 요새에 앉아 적을 격퇴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덜그럭-하고 커피잔이 땅에 엎어져 나뒹굴었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네.

나는 ‘그러면 당신 믿고 봉기한 우리 폴란드인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는 분노를 가득 담은 폴란드 군인의 눈초리를 받으며 잔을 다시 탁자에 올려놓았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장군. 나는 프랑스 시민의 투표로 선출되어 유권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보다도 우리 시민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집으로 멀쩡하게 돌아가길 원합니다.”

장군이 폴란드인을 생각하는 만큼이나.

나는 그렇게 덧붙였고, 포니아토프스키는 입술을 콱 물었다.

“그 말씀은, 결국 우리 폴란드를 버리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아니요. 우린 바르샤바로 갈 겁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뒤도, 옆도 안 돌아보고 일직선으로 달린다는 전제하에도 막대한 인명이 희생된다.

그걸 막기 위해선 작계를 짜야 하고, 작계 완성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바르샤바 해방은 늦어진다.

그러나 우린 무조건 바르샤바에 간다. 언젠간.

“그러니까, 그때까지 부디 살아만 있어 주십시오.”

“······.”

“지금. 바르샤바 총독부 청사에 폴란드 백독수리 깃발을 건다한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가만히 있으라.”

“···그렇습니다. 장군은 실질적인 폴란드의 통수권자 아닙니까.”

그는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하. 우리 폴란드에 저 간악한 놈들의 군홧발이 디뎌진 순간부터, 우리 폴란드인들은 계속 투쟁해왔습니다.”

“······.”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멈추어도, 저들은 계속 우릴 죽여댈 겁니다. 폴란드인은 결코 남에게 굴종하는 민족이 아니니.”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각하께서 염려하시는 바는 압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프랑스군이 바르샤바로 처들어가는 게 힘드니, 지금 죽어나가는 폴란드인들은 모두 개죽음일 게 뻔합니다.”

하지만.

“훗날, 우리 후손이 조상을 추억할 때. 압제자의 총칼이 무서워 숨죽이고 있는 조상보다는, 후손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 압제자와 맞서는 조상을 추억하길 원합니다.”

“···음.”

“각하께서 인명을 중하게 여기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항상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가시지 않습니까.”

그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바닥에 흐르는 커피를 닦아냈다.

“제 증조부께선 신성로마제국을 위해 오스만을 격퇴했지만, 저자들은 오히려 우리 폴란드를 쪼개 제 뱃속에 처넣었지요.

···그렇게 배신당한 기억이 있기에, 오늘 전 각하와 만나기 전 내심 두려워했습니다.”

프랑스가 폴란드를 단물만 빨고 버릴까 봐.

“하지만 지금 확신이 드는군요. 각하께선 우리 폴란드를 버릴 분은 아니란 걸.”

“이보세요, 장군-”

“우리 폴란드인은 마지막 남은 한 명까지 기꺼이 저 압제자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겁니다. 우리가 한 명의 병사를 잡고 있으면, 그만큼 프랑스군이 맞이할 병사가 줄겠지요. 그것만 하더라도 우리의 핏값은 충분합니다.”

그는 커피가 묻어 축축해진 스카프를, 다시 목에 동여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껏 준비해주신 커피를 함부로 엎어 죄송합니다, 각하.”

“···.”

왜일까. 나는 차마 집무실을 떠나는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 씨발.”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모르겠다.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으면 좋겠는데... 정작 자기들은 기꺼이 죽고자 한다.

“젠장, 거기 누구 있습니까?!”

“예, 각하.”

“보나파르트 사령관 당장 부르세요.”

뭐 어쩌겠나.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리려면, 일 잘하는 코르시카 소를 더 갈아보는 수밖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