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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도 사업입니다-307화 (319/341)

마시멜로우 앞의 어린이 (4)

대공은 소매를 들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닦아냈다.

전투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제국군은 착착 전진해 프랑스군의 우익을 밀어내고 있으며, 이대로 우익을 파고들면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딘가 찝찝하단 말인가.

적장은 왜 저렇게... 침착하단 말인가.

“···예전에 말이지.”

적장이 입을 열자, 대공은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여느 때처럼 시답잖은 날이었고, 여느 때처럼 친구끼리 시답잖은 얘기를 심심풀이 땅콩 깐답시고 꺼내는 날이었소.”

“···?”

“지금 통령하는 놈은 항상 그랬는데, 뭔가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평범한 사람은 생각도 안 할 괴상하거나 이상한 주제를 꺼내곤 했지.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그마한 기계라던지, 뭐 그런 허무맹랑한 거.”

그는 지휘봉으로 바닥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그러더군. ‘마시멜로우 앞의 어린이 이야기’를 아냐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길래, 그게 뭐냐고 했소.”

- 애 앞에 마시멜로우를 가져다 놓고 2시간 후에 먹으면 마시멜로우 두 개를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어디어디 대학교가 이 실험을 받은 아이들을 추적해보니, 마시멜로우를 인내심 없이 홀라당 집어먹은 애들보다 2시간 동안 기다린 애들이 커서 보니 훨씬 잘 살더라!

“출처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아 왜 사람을 못 믿냐고, 맨날 속고만 살았냐고 되려 쏘아붙이더군. 역시 아가리로 성공한 놈은 달라-”

“···요점이 뭐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프랑스군은 마시멜로우를 홀라당 먹어버렸지. 누구 때문에? 바로 대공 당신 때문에.”

본래라면 충원된 9만 명의 병력은 여기로 오는 대신 신설사단의 척추가 되어, 프랑스군의 급격한 벌크업의 첫 단추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카를 대공의 지휘 하에 제국군은 빠르게 국경으로 밀려왔고, 프랑스는 원 동원 계획을 미루고 병력을 전선으로 급파해야 했다.

동원과 훈련 계획을 새로 짜고 있을 누군가는 지금쯤 머리를 쥐어뜯고 있겠지.

“그러니까 대공 나리. 난 이제 댁 앞에 마시멜로우를 두겠소.”

“···?”

“댁도 인내심 테스트 한번 해보자고.”

···머릿속을 흩트리려는 요설이다.

대공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대신 우익에 팻말을 더했다.

중앙을 구성하던 9보병연대와 뵈즐러 백작의 15엽병연대를 보낸다.

중앙 종심이 얇아지지만 감수해야 한다. 지금 뚫지 못하면 기회는 없다.

···기회가 없다?

“···우익이 마시멜로우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아니다. 우익은 마시멜로우가 아니다.

마시멜로우는.

“···총사령부.”

대공의 말에 나폴레옹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이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우익 깊숙이 전진한 엽병들이 소리를 지르고, 파발이 군모를 손으로 누른 채 달린다.

파발에게 소식을 전해 받은 참모들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우익을 더 밀어내면!

이젠 프랑스군 장군마저 직접 검과 총을 빼 들고 뛰쳐나온 저 우익을 밀어낸다면!

단 한 번만 저 공간을 찢을 수만 있다면!

우익과 중앙을 잇는 저 연결고리. 프랑스군의 오른팔과 몸통을 잇는 저 겨드랑이를 찢을 수만 있다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적 총사령부를 참수할 수 있다!

대공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공격, 공격해야 한다! 몰아쳐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대공이 지휘봉을 든 그 순간.

“전하!”

대공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급보입니다! 놈들이 모젤강 하류에 부교를 놓고 있습니다!”

“놈들이 강을 건너면 우린 포위됩니다!”

“···보나파르트!”

대공의 눈에, 저 멀리서 입꼬리를 씨익 들어 올리는 적장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

“마세나. 32사단 전진시켜.”

나폴레옹은 회중시계로 시간을 재며, 지도를 톡톡 두들겼다.

숲에서 전열을 갖춘 보병대가 척척 걸어나와 수목한계선을 넘어 적을 밀어냈다.

“다부. 마세나에게 포병을 밀어주게.”

중앙에서 포병들이 차출돼, 전진하는 좌익에게 포를 쏘는 제국군 포병대를 향해 대(對)포병 사격을 실시했다.

32사단이 전진한다. 중앙을 돌아다니며 프랑스군을 경계하던 헝가리 경기병대가 들이닥쳤다.

근접에서 권총사격을 받은 불운한 이들이 전장에 쓰러졌다.

“뮈라. 포니아토프스키.”

숲에서 프랑스 기병대와 폴란드 창기병대가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폴란드 기병의 기병창이 미처 말머리를 돌리지 못한 헝가리 경기병을 말과 함께 꿰어버렸다.

나폴레옹은 고개를 돌려 우익을 바라보았다.

란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어떻게서든 적을 막아서고 있다.

“그루시.”

타이밍을 재며 끝까지 쓰지 않고 쟁여둔 용기병들이 우익으로 향해 힘을 더한다.

밀리던 전선이 다시 안정을 찾는다. 물론, 곧 다시 밀려나겠지만.

나폴레옹은 뚜벅뚜벅 걸어 나가 부교를 타고 모젤강 너머로 이동하는 ‘트리어 자유 시민 사단’을 북상(北上)시켰다.

트리어 자유 시민 사단.

독일인 피난민들을 모아 창설한 의용군.

저들의 전투력은 형편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공의 시선을 끄는 것.

블러핑을 에이스로 하던 킹으로 하던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하트 7로 하던 상관이 있나.

나폴레옹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중앙에 있는 팻말을 앞으로 쭉 밀었다.

다부가 전진한다. 약해진 적의 종심을 향해 2개 사단이 진격했다.

대공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익에 있는 6연대를 둘로 쪼개 다부를 요격한다.

그러나 사단급 병력에 연대, 그것도 반쪽짜리 연대가 상대가 될 리 없다. 기껏해야 시간 벌이.

다부의 병력이 제국군 6연대를 갉아먹으며 천천히 전진한다.

나폴레옹은 회중시계를 다시 딸깍-하고 열며 읊조렸다.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안 그렇소?”

“······.”

대공의 두 눈이 흔들린다.

“남쪽에서 도하하는 병력들. 블러핑인가?”

“하하. 이 인간아. 그걸 내가 왜 말해줘?”

“······.”

대공은 슬그머니 좌익에 투입한 병력을 빼, 후방으로 보내기 위해 지휘봉을 움직였으나...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나폴레옹의 지휘봉이 대공의 지휘봉을 막아섰다.

“어딜 가시려고. 왼쪽에서 조금 더 놀아봅시다. 대공 나리.”

“이, 개, 새끼가!”

“이야. 황족도 욕을 하긴 하는구만.”

마세나의 32사단과 포니아토프스키의 폴란드 망명 기병대가 좌익을 단단히 붙잡는다.

약해진 중앙으로, 나폴레옹의 창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한다.

후방에서 신원미상, 규모미상의 부대가 천천히 목을 조여온다.

우익은 뚫릴 것 같으면서도 뚫리지 않는다. 아주 교묘하게, 프랑스군이 아슬아슬하게 증원된다.

사방에서 대공의 인내심이 시험받았다.

조금만 더 배에 힘주고 버티면, 조금만 더 뚫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입술을 잘근 씹으니, 혀에 피 맛이 감돈다.

적장이 무심하게 툭툭 날려대는 모든 행동이 전술적 선택지를 소거해버린다.

적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술이라는 이름의 시험지에 문제를 추가한다.

어렵다. 아니. 할 수 있다. 못할 거 없다. 해야만 한다.

제국의 운명이 자신에게 달렸으니.

대공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을 뒤편으로 치웠다.

“우익을 뚫는다.”

전진하는 좌익을 막아도, 중앙을 막아도, 후방을 막아도, 결국 바뀌는 건 없다.

보나파르트의 창 끝은 결국 닿는다.

그렇다면 제국군이 나아간다. 내 몸에 창이 닿기 전에 적의 몸에 창을 꽂아 넣으면 된다.

쥐고 있던 마지막 팻감을 우익에 밀어줬다. 중앙과 좌익은 지연전을 펼친다.

탈진한 황실 기병대를 다독여 다시 전장에 밀어 넣었다.

첫 번째 돌격보다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탓에, 사상자가 수없이 나왔다.

···간절히 바라면 하늘이 들어준다고 했던가.

제국군의 흰색 군복이 피로 수없이 물든 가운데, 드디어 길이 열렸다.

“아.”

해냈다. 적장이 있는 총사령부가 보인다.

나폴레옹은 군모를 벗어 머리를 긁적였다.

“끝났군.”

“···힘든 싸움이었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하지만 이 전쟁은 나, 카를 루트비히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의 승리요. 아, 걱정하지 마시오. 난 귀하를 포로랍시고 함부로 대할 생각은 없-”

“무슨 개소리를 하시는 거지?”

나폴레옹은 군모를 다시 머리에 쓰며 입을 열었다.

“끝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오 대공.”

시간을 너무 끄셨잖소.

***

프랑스군의 정확한 규모는 11만 3400명이다.

마세나 3개 사단.

다부 2개 사단.

란 2개 사단.

포니아토프스키 1개 기병연대.

그루시 1개 용기병연대.

뮈라 1개 기병여단.

거기에 차근차근 란이 밀릴 때마다 증원해준 1개 사단.

모두 합치면 8개 정규사단에 2개 기병연대, 1개 기병여단.

즉, 10만이다.

나폴레옹의 손에는 아직, 1만이 넘는 병력이 쥐어져 있었다.

만약 제국군이, 마시멜로우 대신 라인강에 누워 대불동맹이라는 든든한 빽을 업고 싸웠더라면.

만일 모젤강에 앉아 튼튼한 요새를 구축했더라면.

맛깔나게 프랑스를 한 대 후리겠다는 그 욕심을 버렸더라면.

여러 가지 배경이 있긴 하지만 결국 카를 대공은 그러지 않았고, 이제는 그 오만함을 치러야 할 때가 다가왔다.

란이 찰지게 지연전을 펼치며 적을 우측 깊숙이 유도했고, 제국군은 마시멜로우를 따먹을 수 있다는 집념을 불태우며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진격했다.

마세나와 다부는 착실하게 좌익과 중앙을 차츰차츰 수복하며 적에게 다가가는 중.

한 명이라도 무능하다면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작전이건만, 군사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휘관들은 해냈다.

나폴레옹은 망원경을 집어넣고 말에 올랐다.

우익에 길게 형성된 적 주력의 허리를 끊어버리면, 제국군은 포위망에 갇히는 꼴.

“제군들! 오늘 전투는 우리가 마무리한다.”

“““공화국 만세!”””

삼색기와 사단기가 높이 올라가고, 단단하게 대대별로 사각방진을 펼친 프랑스군이 비탈길을 내려갔다.

“대공 전하! 우익이 위험합니다!”

“······나도 보고 있네.”

“지금 당장 구원병을-”

쏟아지는 말에도, 대공은 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무엇이 잘못됐는가.

···지금 누굴 보내야 하는가.

어디서, 누굴 차출해야 저 2개 사단을 막아볼 수 있겠는가.

혹시 모른다. 여기서 결정적인 수를 통해 대국을 뒤집을 수도...

아니. 막을 수 없다.

쌩쌩한 저들을 상대로, 하루 종일 전투로 피로가 쌓인 병력이 이길 수 있겠는가.

“···퇴각한다.”

“전, 전하!”

“우리 후방에 규모미상의 적도 있지 않나. 지금이라도 빼지 않으면 저놈들이 다리를 점령하는 순간 우린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야!”

미칠 거 같다.

명줄이 시시각각 줄어드는 기분이다.

우익을 버리거나, 좌익을 버리거나.

선택해야 한다.

“···우익의 뷔즐러에게 병력을 최대한 온존하며 퇴각하라고 해!”

“좌익의 보헤미아 연대는 어찌-”

“······.”

버려야 한다.

우익과 중앙이 퇴출할 때까지, 좌익은 샌드백처럼 버텨줘야 한다.

“보헤미아, 연대장이 누구지?”

“코도보비치 백작입니다.”

“···내 그 이름을 절대 잊지 않겠네.”

“저, 전하! 저기-”

카를 대공은 반사적으로 망원경을 들고 전장을 눈에 담았다.

“···안돼.”

잘려 나간다. 마치 외과의사의 예리한 칼날이 환자를 수술하듯.

“안돼! 안돼! 안된다고!”

울부짖는 대공의 망원경 너머로, 나폴레옹의 척탄병들이 제국군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제국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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