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우 앞의 어린이 (3)
“사령관님. 제국군이 자신들 뒤에 있는 다리를 제외한 모젤 강의 모든 다리를 폭파시켰습니다.”
“하하! 우리 오스트리아 왕자님은 정말 신중하시군!”
나폴레옹은 손에 올려둔 코담배를 킁킁 피우며 웃었다.
“적 전초부대는?”
“2개 보병연대와 2개 헝가리 경기병 연대입니다.”
“반으로 잡아. 나누기 2 하라고. 겨우 전초부대에 귀한 병력을 그 정도로 투입할 리 없어. 연막이다.”
“전투서열은? 어떻게 되지?”
“할러 남작입니다. 카를 대공이 신뢰하는 장군이라고 합니다.”
“그 할러라는 놈. 포병도 가지고 있나?”
“정찰대 말로는 3백 문 정도로 보인답니다.”
“백 문으로 잡아.”
“예, 사령관님.”
“좋아, 이제 르죈느 소령을 불러와 주게.”
“예.”
나폴레옹은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연락장교를 호출해 명령서를 내밀었다.
“부르셨습니까 사령관님?”
“명령서일세. 란에게 적 전초부대를 살짝 찔러보라고 해.”
“어느 정도로 찔러보라고 할까요.”
“쓸만한 정보를 얻으면 좋고, 아님말고.”
-라고만 하면 욕을 대차게 얻어먹겠지.
“대신 포병은 가져다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해. 포탄값도 생각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좋아. 이제 가보도록.”
다시 한번 코담배를 빨아드린 그는 사령관실을 나와 총참모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베르티에! 여기 있나?”
“깜짝이야! 무슨 일이십니까 사령관님?”
“오스트리아 놈들이 다리를 다 폭파했다더군.”
“공병대가 필요하시겠군요.”
“맞아. 모젤 강에 부교를 설치하려면 자원이 얼마나 필요하지?”
“나무보트 10척, 널빤지 900개, 들보 400개, 밧줄 900미터 정도가 필요합니다.”
“···견적이 바로 나오나?”
“하하, 저 공병감입니다.”
“역시 베르티에야!”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총참모장은 지도를 톡톡 두들기며 이어 말했다.
“유속이 그리 빠르지 않으니 닻을 굳이 달아서 고정시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어떻게, 안전히 조치할까요?”
“무조건 안전하게. 이번 작전에 병사들 목숨 거는 도박은 없다.”
이번엔 나폴레옹이 지휘봉으로 총참모부 한가운데 놓인 지도를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오스트리아 친구들에게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 걸 알려주자고. 이봐, 다부?”
“예, 사령관.”
나폴레옹은 고개를 돌려 제 동기를 쳐다봤다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 음...”
“한 번만 더 제 머릴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결투 신청하겠습니다.”
다부는 벗겨진 머리 때문에 요새 마음이 심란한지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왔다.
“커험. 컴.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나폴레옹은 헛기침으로 화제를 돌리곤, 지휘봉으로 지도를 탁탁 짚었다.
이 전역은 야트막한 언덕과 강줄기, 그리고 농지로 사용하는 평원이 어우러져 참으로 다채롭게 지휘관을 괴롭히는 엿같은 동네였다.
나중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사관학교 교장으로 영전하면 꼬꼬마들 시험교재로 써먹어야지.
“베르티에.”
“예, 사령관님.”
“자네가 대공 나리면 이제 어떻게 할 거 같나.”
“도하에 성공했으니, 이제 인근을 감제할 수 있는 고지대를 노리겠지요.”
“바로 그거야.”
그는 지휘봉으로 트리어 동쪽 방면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을 가리켰다.
“펠(Fell), 이 쬐끄만 시골 동네는 꼴에 이 전역에서 가장 높은 고지를 끼고 있는 요충지다. 대공은 무조건 여기로 와.”
트리어 – 농지 – 펠 - 모젤 강.
트리어 앞에는 농민들이 갈아 먹던 농지와 평원, 동산들이, 그 앞에는 펠이라는 마을과 산, 그 앞은 강.
펠을 먹으면 트리어와 그 앞의 평원까지 감제할 수 있고, 고지의 이점을 활용해 군을 먼저 기동시킬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펠을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결코 트리어를 마음 편하게 찌를 수 없다!
“다부. 2개 사단을 이끌고 펠(Fell)을 점령하게.”
“버팁니까?”
“기왕 슬쩍슬쩍 찔러보면 더 좋고.”
“놈들 엉덩이에 피딱지가 마르지 않게 해드리죠.”
“아주 좋아!”
1군단장, 니콜라 다부가 펠을 맡아 주 방어선을 구축한다.
“마세나.”
“예.”
“좌익을 맡게. 놈들에게 절대 수목한계선을 내주면 안 돼.”
젠장. 왜 다부 저자는 마을에 짱 박고 난 숲에 처박습니까?
-라고 마세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장성들과 영관들이 바글바글한 이곳에서 그렇게 말하면 정말 권총을 빼들고 결투를 해야 할 터.
앙드레 마세나는 입을 여는 대신 팔자주름을 깊게 팠고, 나폴레옹은 그를 잠깐 쳐다보곤 옆구리를 콕 찔렀다.
“왜 대답이 없나?”
“알겠습니다.”
“좋아. 3개 사단을 데리고 가게.”
“그러면 우익은 란 그 새ㄲ···, 아니. 그자가 맡습니까?”
“그래.”
“사령관님. 그러면 나머지 병력은 어떻게, 예비대로 돌릴까요?”
베르티에가 끼어들었고, 나폴레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머지 3만은 내가 직접 지휘한다.”
***
- 콰쾅!
“끼에에엑!”
저 멀리서 번쩍! 하고 섬광이 보이고, 펑! 하는 폭음이 뒤늦게 귓가에 들어올 때쯤, 동시에 땅이 치솟으며 불운한 병사들을 쪼개버렸다.
“···개판이군.”
망원경을 통해 전장을 살피던 대공은 혀를 끌끌 차며 부관에게 망원경을 넘겼다.
“전초전이라기엔 프랑스 놈들이 너무 화끈하게 퍼붓는데.”
“6연대에 배속한 포병들이 가라인걸 알아차린 걸까요?”
“···글쎄.”
쫄으라고 떡하니 보여준 수백 문의 대포 중 반이 사실 인근 숲을 베어내 뚝딱뚝딱 만든 모형 대포인걸 눈치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선발대에 너무 많은 포병전력이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해 역으로 그게 사실인지 찔러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6보병연대의 위로 연대급 병력이 맞아야 할 수준보다 많은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6연대 또한 포를 쐈지만 그때마다 프랑스군은 ‘오오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딱 대라 씹새꺄.’ 하면서 그 배를 쏟아부었다.
“헝가리 경기병대로 엄호하면서 6연대를 퇴각시키게. 애꿎은 병사들을 대포 사료로 줄 순 없지.”
“예, 전하.”
트리어 공방전의 첫 번째 날은 프랑스군과 제국군의 포격전 끝에, 프랑스군의 전초전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
트리어, 자크브뤼겐, 모렐 강, 카이저슬라우테른.
이 네 지역이 그려진 군사용 지도가 바닥처럼 그려진 어두운 방에서 두 지휘관이 마주했다.
“무슨 생각인가. 보나파르트?”
흰색 바탕에 주황색 실이 더해져, 고급스러워 보이는 군복을 입은 지휘관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맞은 편에서 뒷짐을 진 채 지휘봉을 까닥거리던 짙은 청색 군복의 지휘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공 나리. 그걸 말해주면 김새지 않겠소?”
“보나파르트. 당신은 대포 80문 정도는 반으로 접어버릴 수 있는 화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에 유리한 강변을 포기했지.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에헤이. 그걸 말해주면 김샌다니까.”
청색 군복의 지휘관은 싱글벙글 웃으며 지도를 짚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지휘소로 삼은 건 꽤 좋은 노림수였소. 거길 콱 틀어막고 있으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칭찬인가?”
“그럼 칭찬이지. 덕분에 골머리 꽤 썩혔소.”
그래서 말이지.
“내가 생각 좀 해봤는데, 대공 나리께선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앉아 내가 모젤 강을 건너기만을 기다릴 사람은 아닌 거 같더군.”
“하, 그렇게 생각할 근거라도 있나?”
나폴레옹은 뒷짐을 진 채, 저벅저벅 군화 소릴 내며 방 안을 서성였다.
“참나. 우릴 막겠다고 어필할 거면 참호라도 파셨어야지. 연막 치는 게 영 어설퍼.”
“뭐?”
“게다가 당신. 도르트문트에서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잖소. 모젤강은 어디까지나 라인강의 지류고, 방어에는 강폭 15미터짜리 지류보다 거대한 라인강 본류가 훨씬 유리하지.”
부정할 수 없다.
대공은 침묵했고, 나폴레옹은 이어 말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아마도 대공께서 우리 프랑스군이 약할 거라 예상했고, 빠르게 우릴 본토 밖으로 밀어내고 싶어하신 것 같더군.”
대공의 판단은 통찰력 있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프랑스군은 오를레앙에서 병력이 충원되기 전엔 2만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파리에 있는 누군가가 드러누워 떼를 쓴 덕에 충원은 끝났고, 발에 땀나도록 달려온 제국군을 맞이한 건 11만의 프랑스군이었다.
“여기서, 내가 대공 나리였다면 두 가지 전술적 선택지가 있었소.”
첫 번째.
강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후속부대과 추가지원을 기다린다.
두 번째.
강을 넘어 프랑스군을 맛깔나게 한 대 후리고 부산물을 주워 먹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째겠더군.”
“왜지?”
“왜긴. 당신네 지금 쪼들리잖소.”
타국과의 전쟁이 아니다. ‘내전’이다.
적을 죽이면 조국의 국민이 죽는 것, 적의 재산을 불사르면 조국의 국고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여기서 문제. 제국군은 넝마주이가 된 제국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법 튼실한 군사물자를 보급하고 있었다.
“그건 곧, 타국에 국채를 팔아 조달한 군자금과 물자일 테고, 그 대금은 제국군의 목숨 아니겠소?”
“······.”
“방어선을 깔고 눕는다면, 당연히 쩐주들은 댁이 대금을 치르지 않는다면서 화를 내시겠지. 숨만 쉬어도 이자가 팍팍 차오를 테고.”
결국. 제국군은 대불동맹이 정식으로 결성되기 전에 한 건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빚쟁이들 사이에서 채무자가 발언권을 챙길 수 있다.
“당신... 군인, 맞나?”
“칭찬으로 듣지.”
“좋아, 내친김에 내 생각을 훤히 들여다봤으니 참 대단하다고 박수라도 쳐줘야하나?”
“무슨 소리?”
나폴레옹은 고개를 갸웃하곤 지휘봉으로 바닥을, 그러니까 지도를 툭툭 두드렸다.
그가 지휘봉으로 두드릴 때마다 지도에서 군대가 솟아났다.
보병들이 모래주머니를 쌓고, 포병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기병들이 숲에 숨어 튀어나갈 준비를 한다.
그가 지휘봉으로 두드릴 때마다 길이 막힌다.
고지를 감제하고, 넓게 퍼진 정찰대가 말초신경처럼 제국군이 가는 곳마다 정보를 실어 나른다.
카를 대공 또한 지휘봉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흰색 군복을 입은 제국군이 검독수리 깃발을 들고 전진한다.
마자르인 특유의 복장을 입은 헝가리 기병대가 평원을 가로질러 전장을 살핀다.
“···펠에서 막을 건가?”
“그러면 여기로 안 올 건가?”
“아니. 가야지.”
대공이 한 발자국 전진한다.
9만에 이르는 대군이 서진(西晉)한다.
“중앙인 펠에 최소 2만은 있겠고, 좌우익을 한 번씩 찔러봐야겠군.”
대공이 지휘봉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의 좌익을 건드렸다.
벌집에서 벌이 나오듯 프랑스군은 온갖 무기를 다 쏘아내며 방어했다.
“저항이 거세군.”
“왜. 못 뚫겠소?”
“뚫을 순 있겠는데, 수지가 안 맞아. 보나파르트 당신 아주 도둑놈 심보로군.”
우익을 찔렀다.
이번엔 늪에 빠지듯 제국군을 프랑스군이 끈적하게 휘감았다. 백병전이 벌어진다.
“···포병을 더 투입하지.”
카를 대공이 자기 발밑에 놓인 팻말을 툭 차 우익에 보탠다.
제국군의 포 백여 문이 불을 뿜자, 프랑스군 후방 진지 곳곳에 포탄이 떨어진다.
포화에 노출된 프랑스군이 스멀스멀 수목한계선으로 물러난다.
전과 확대의 시간. 가장 아끼는 황실 기병대를 밀어 넣는다.
휘황찬란한 기병 정복을 입은 황실 기병이 휘두른 사브르가 후퇴하는 프랑스 장교의 목을 베었다.
프랑스군의 우익이 밀려난다.
대공이 판돈을 더 붓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병력을 차출해 투입하고, 전초전 이후 물러나 있던 6연대를 추가 투입해 기병이 밟고 지나간 곳을 보병으로 평탄화한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기고 있나? 이기고 있다. 승리할 수 있다.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맞은 편에 선 나폴레옹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대공의 뺨에 다시 식은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뭐해? 다음 수 안 두고.”
“아주, 초연하군... 보나파르트...”
“···아. 설마 다 끝났소?”
나폴레옹이 피식 웃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대공의 빰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퐁-하고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