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04화 (316/341)

마시멜로우 앞의 어린이 (1)

[“···어디 맞설 테면 맞서 보자. 아예 뼈도 못 추리게 진짜 싸움 맛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통령 각하의 말마따나 우리의 적들은, 우리 공화국이 언제든지 멸적의 포문을 열고 불을 쏘아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필, 장 폴 마라. 1813.5.20.

탁월한 감각으로 세계 최고의 정론지, <인민의 벗>을 선택해주신 독자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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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 신청 보내는 주소 : 프랑스 공화국 파리 생탕투안 구 33번지 4층 <인민의 벗> 사무실.]

“천박한 놈들.”

이름의 길이부터 고상함이 묻어나는 카를 루트비히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외스터라이히 대공은 두 팔을 벌리고 연설하는 기욤의 초상화에 대고 혀를 찼다.

저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불쾌함과 짜증이 솟구친다.

온 세상이 어디 시골 벽지에서 굴러먹던 3류 귀족 서자의 혓바닥 아래서 놀아나고 있다.

“···차치하고 일 얘기나 하지. 욕 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대공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외무 차관에게 손짓했다.

“뭐라 하던가?”

“···유럽의 질서를 수호하는 귀국의 헌신에 무한한 감사와 무궁한 영광이 깃들길 빈답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우릴 대전사(對戰士)로 삼으면서 제들 피는 흘리기 싫다 이거군.”

헛웃음이 나온다.

프랑스인들이 틸지트 조약을 갈기갈기 찢고 찢은 것에도 모자라 동네 똥개들 입에 물려준 지금.

“영국 놈들은 세간살이를 뜯어가려고 하고, 프로이센 놈들은 슐레지엔을 넘어 군침을 흘리고, 러시아 놈들은 ···그래 원래 병신 같은 놈들이었지.”

신에게 권력을 받았다 떵떵거리는 왕이란 작자들은 모두 함께 모여 힘을 합치긴커녕 제 궁궐에 앉아 손익계산서나 뽑고 있었다.

오히려 스웨덴, 덴마크 같은 소왕국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군수물자와 철광석을 대주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과 왕국들은 패권을 위한 정치질에 신경 써야 했지만, 패권에 도전할 자격이 없는 이 소왕국들에겐 자신들의 생존이 1순위였기에.

“진절머리 나는군. 일단 알겠네.”

“예 전하.”

대공은 다음으로 재무부와 상무부 대신을 불렀다.

“재정은 어떤가.”

“반역도들의 영지와 재산을 몰수해 신규 국채를 발행하고 은행 지급준비금을 채워 넣었습니다.”

“황실 예산 덕에 당장은 여유가 있습니다.”

“후. 좋아. 온 세상이 내게 비보만 전해주는데 그대들만 낭보를 가져와주는구려.”

마지막으로, 대공은 최고전쟁의회 부의장과 장군들을 안으로 불렀다.

기실, 이들이 대공과 황실의 최측근이었다. 외무 재무 상무는 어디까지나 전쟁의 수행에 있어 필요한 업무일 뿐.

“부르셨습니까, 전하.”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제군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욤 그놈이 지껄이는 대로 프랑스군이 충분한 여력이 있다면, ···왜 지금 파고들지 않는 거지?”

카를 대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부관들이 각자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핫핫핫! 놈들도 우리 제국군의 위용에 지레 겁을 먹은 거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양동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트리에스테로 해병대를 상륙시켜서 오스트리아 본토를 공격하는 걸 수도-”

“트리어와 자크브뤼겐(독-프 국경도시) 두 군데를 요새화했으니, 아마 우리가 먼저 쳐주길 원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원래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습니까.”

병신과 머저리 같은 말도 있고, 나름 설득력 있는 말도 있다.

전자는 숙청 대상이었으나 눈치가 빨라 미리 근황군 코인을 탄 구태 봉건귀족들,

후자는 카를 대공과 황실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최고전쟁의회 출신 군부 인사들.

어차피 전자야 저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위해 이 야전 지휘소에 앉힌 자들이니 말을 들어주든 개소리 취급하든 상관은 없었다. 저들도 눈치가 있다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을 테고.

카를 대공은 전자의 말은 상큼하게 씹어버린 후, 후자의 말을 곱씹었다.

“요새에서 우리가 쳐들어오길 기다린다라.”

“가능성 있지 않습니까?”

“가능성이야 있지만... 이상하지.”

체스판에선 양측이 모두 똑같은 수의 기물과 똑같은 환경을 가지고 싸우지만, 실제 전장은 다르다.

병력의 질도 다르고, 병력의 수도 다르고, 고지대인지 저지대인지, 강을 끼고 있는지, 산이 있는지, 그런 모든 요소가 변수가 된다.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기동력이다.

적보다 빠르게 고지를 선점하고, 강을 유리하게, 산을 유리하게 끼는 순간.

그 모든 변수들은 이점이 되어 군대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그러면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나?”

바로 압도적인 수다.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쥐고 있으면 동수(同數)로 적을 붙잡는 동안 나머지 병력으로 막힘 없는 기동이 가능하다.

결국, 전쟁은 수로 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수가 많다 떠벌거리는 프랑스 놈들이 왜 뛰쳐나오긴커녕 저 소도시들에 처박혀 있을까.”

대공은 손을 뻗어 기욤의 삽화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신문을 톡톡 두드렸다.

“이놈의 조동아리에서 거짓말이 나오고 있다는 거지.”

***

“카아아악.”

퉷!

나는 목에 끓는 가래를 뱉어내고 입을 열었다.

“씨발.”

나아아아쁜 색기덜,,, 내가,,, 요따구로,,, 생지랄을 했는데,,, 고작,,, 3개월만,,, 속냐,,,!? 도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강호의 상도덕은,,, 어디 갔느뇨,,,!!

이건 공정거래법 위반이야 위반!!

“슬슬 약빨이 떨어질 때도 됐지요.”

“그런가요?”

“벌써 석 달째 아닙니까. 정상적인 치들이라면 통령의 말이 사실일 때, 반쯤 사실일 때, 새빨간 거짓말일 때 써먹을 플랜을 하나씩은 다 만들어놨을 테지요.”

외교부 장관 탈레랑은 커피를, 나는 담배를 꼬나물며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저놈이 진군을 시작했다 이건가요?”

“그거야 모르지요. 일단 찔러나 보자는 속셈일 수도 있고.”

아니면 크게 한 판 따내서 내세울 전공이 필요할 수도 있고.

“내세울 전공이라?”

“영-러-로-프-스 5자 군사동맹 말입니다.”

“거, 너무 긴데 그냥 대(對)프랑스 동맹이라고 하시죠.”

“대불동맹이라. 어감 괜찮군요! 마치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 같지 않습니까?!”

탈레랑은 켈켈켈 거리면서 웃었고, 나는 어떻게 저런 인간이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님 행세를 할 수 있었는지 교황청의 인적성검사에 심히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5자 군사동맹이 체결되지는 않았으나, 시간 문제 아니겠습니까.”

“왜요?”

“왜긴요? 동원 다 끝나면 그치들 현관문 앞에 살포시 선전포고문 올려놓고 초인종 누를 생각 아니셨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럼 당연히 지들끼리 편 먹고 우릴 조지지 않겠습니까.”

“그땔 위해서 전공이 필요하다?”

“한 놈 죽이자고 만든 모임인데, 이미 칼을 한 번 박아넣어 본 사람이 있다면 발언권이 동등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나는 다 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말했다.

“그 높은 코를 으깨줘야겠군요.”

***

프랑스 공화국, 오를레앙.

모두가 프랑스의 심장이라 말하는 곳은 일드-프랑스 지역의 파리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오장육부, 없으면 살기 껄끄러운 부위니 적당히 췌장 쯤? 되는 도시로는 이 오를레앙이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과 대전 정도?

마침 대전에는 원스타 장군이 또박또박 경례를 박고 다니는 계룡대가, 이 오를레앙에는 신설된 국민방위대 육군 훈련소가 있으니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대조할 점이 늘었구만.

이 오를레앙에 신설 육군 훈련소가 들어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논산처럼 국토의 정중앙 즈음이라 전국에서 입영하는 사람들이 오기가 편하거든.

“찍고 우로 가!”

“““찍고 우로 가!”””

“받들어, 총!”

“““받들어, 총!”””

쓰으읍 하아... 기차역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좆같은 짬냄새는 어떻게 된 게 200년 전이나 후나 똑같은 거지.

역시 군바리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은 건가.

나는 기차에서 내려 미리 준비한 마차를 타고 오를레앙 시 외곽에 위치한 호국요람을 향해 질주했다.

“충성, 혹시 신분이 어떻게 되십니까?”

“통령.”

“흐에엑?”

단 3초 만에 초병을 쉽게 제압해버렸다. 사실 난 사업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에단 헌트처럼 간첩질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19세기를 주름잡는 스파이, 기욤 드 툴롱이라...

“교육사령부 출입은 허가된 분만 가능합-”

“나, 통령.”

“에, 으?”

마지막으로 막아서던 헌병 장교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권력의 맛... 달다!

이쯤 되니 저 멀리서 날 향해 복도를 달려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헉, 허억. 각하! 오신다고 기별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술트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보급사령관 겸 훈련소장, 장 드듀 술트.

글을 아는 덕에 병이 아니라 부사관으로 군생활 시작. 그 뒤 전시임관으로 소위를 달고 최전선에서 구르고 구른 끝에 영롱한 별 두 개를 달은 전설적인 인물.

- 술트 이 사람은 왜 군단장 안 시켜?

- 술트? 아, 좋은 지휘관이지. 머리도 똘똘하이 잘 돌아가고.

- 그런데 왜?

- 전술안이 딱 사단장급이거든. 그리고 지휘관 시키기에는 행정 쪽에서 일을 너무 잘한다.

요컨대, 지휘력은 다른 장군들하고 비슷한데 행정능력이 넘사라는 거.

나도 예전 코르시카 때 술트 이 사람이랑 일해봐서 잘 안다. 잘하더라고.

이렇게 총사령관과 통령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한 덕에 술트는 전장이 아니라 후방에서 국민방위대를 서포트하는 노잼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덕과 사랑으로 충만한 기욤 드 툴롱 아닌가.

실로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술트를 위해, 나는 삶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려 만사를 제치고 오를레앙에 온 것이다.

“병력은 얼마나 준비됐습니까?”

“현재 15만은 편성이 완료됐고, 앞으로 두 달 뒤면 50만까지 늘어날 예정입니다.”

“편성된 15만은, 기존 병력까지 합한 수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시발 3개월 동안 8만밖에 못 뽑았다고?

내 마뜩찮은 눈길을 받은 술트는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훈련소 수료한 병사들을 대부분 각지에 있는 사단 훈련소에 교관으로 재투입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얼마 정도 됩니까?”

“대략 2만 정도 됩니다.”

“그 병력까지 다 합치면 10만?”

“그렇습니다.”

“호오.”

“······.”

“호오오.”

“각하, 잠시, 잠시만.”

술트는 나를 훈련소장실로 데리고 들어간 뒤, 대뜸 무릎을 꿇었다.

“어어 왜 이러신담.”

“각하! 안 됩니다! 기껏 훈련 시킨 조교들입니다! 쟤들을 전선으로 보내면 이제 막 숨돌리는 기존 훈련단 친구들이 다시 갈려 나가요!”

“갈려 나가는 건 훈련 계획 새로 짤 술트 장군님 말고 없지 않습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긴. 오면서 봤는데 훈련교관들이야 계속 굴리더만.

“아아아니 전선에서 병력이 부족하다고 나한테 투서가 얼마나 날아오는지 아세요?”

“각하! 각하도 아시잖습니까! 병사들은 등차수열이 아니라 등비수열로 늘어나는 거! 이제 막 시스템이 구축됐는데, 이러시면 또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술트는 숫제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드러누웠다.

“아, 해달라고! 아!”

“각, 각하?”

“해달라고오오!”

“각, 각하! 부디 체통을!”

“체통? 체토옹? 응애! 응애! 나 애기 기욤! 군대 줘어억!!”

“···오, 신이시여.”

***

1813년 6월 1일.

- 치이이익!

“하차! 전부 다 하차한다!”

병사들은 군장과 총, 그리고 열차 이동 카트에서 구매한 주전부리들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기차에서 하나둘 내렸다.

열차역 앞에서 평소 배웠던 것처럼 대열을 맞춰 대기하고 있자, 저 멀리서 30대쯤 되어 보이는 장교가 휘적거리며 다가와 입에 고깔을 대고 소리쳤다.

“반갑다, 병아리들! 난 총사령관 당번장교 페탱 대위다.”

전장에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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