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92화 (304/341)

잠자는 사자의 사지를 쳐라 (11)

프랑스 공화국 통령이라니.

내가 언제 자쿰이라도 때려잡았나? 아니면 검은 마법사?

날이 갈수록 칭호가 점점 블링블링해지는 거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날로 삐까번쩍해지는 테이블 명패에도 불구하고, 내 공식적인 직함. 그러니까 외국인한테 주는 명함에 직힌 직함은 아직 재무총감이었다.

그 머시냐. 외왕내제라고 들어봤나?

밖에선 왕인디 안에선 자기들끼리 황제 취급하는 거 있잖나.

우리 공화국도, 나도 마찬가지다.

공화국 선언으로 어그로를 풀로 댕기기엔 아직 세상이 덜 타고 있거든.

그래서 기름을 좀 더 부을 생각이다.

기왕 불장난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우디노 부장에게 전하세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적절하다 싶으면 작전을 시행할 것.”

“알겠습니다, 각하.”

더. 더. 더.

내가 깔아놓은 필드에서 싸우자고.

안 그러면 내가 수십 년간 그린 그림이 아깝잖아.

***

오스만, 콘스탄티노플.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중산층들이 살아갈 법한, 깨끗하고 말끔한 주택.

이 주택에는 이슬람교의 술탄과 가톨릭 틀딱의 나라 총감이 서로 결탁했다는 살아있는 증거들이 머물고 있었다.

“어이 굼벵이들. 다 일어나라!”

“아니 시발 또 지랄이네.”

“대위님. 하루종일 저 이교도들 굴리고 왔는데 저희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쉬는 건 뒈져서 쉬어라.”

“에라이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저 성격 파탄자 대위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군대에 있으면 박봉이라도 프랑스에 남아 있지, 저 인간 따라 들어간 민간경호기업인지 뭔지에선 프랑스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으로 자신을 파견했다.

죽어도 고향에서 죽어야지 왜 우리가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흙을 퍼먹어야 한단 말인가.

“꼬와? 꼬우면 돌아가라.”

“···그건 아니고.”

“주머니에 돈이 팍팍 꽂히니까 아주 배가 불렀지.”

우디노는 카악 하고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말했다.

“어이 레샤르.”

“예, 대위님.”

“그 망할 대위는 집어치우자고. 군에서 나온 지 어언 20년인데 무슨 대위야 대위는. 그것보다 더 간지나는 부장님이라고 부르란 말이다.”

“예, 부장님.”

“니가 헌병대한테 뭘로 끌려갔었지?”

“···민간인과 사소한 마찰이 있었지요.”

“사소한 마찰은 무슨! 술 처먹고 쌈박질하다가 쌈 말리는 가게 주인 턱주가리를 돌린 게 사소한 마찰이냐?”

성격 엿 같은 우리가 군에 그대로 붙어있었을 수 있을 거 같냐? 좆까 이 새끼들아.

“이 관대하신 니콜라 우디노 대위님이 괜히 니들 같이 술 처먹고 사람 팰 줄만 아는 새끼들을 스카웃한 줄 아나?”

“그러는 대위님도 술 먹고 포로 폭행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래서 씨발 전역했잖나! 성격 씹창난 니들 데리고!”

이놈 쉐끼들이 말이야. 지들 익사할 뻔 한 거 구해줬더니 성내는 거 보소.

“잘 들어라. 대자대비하신 사장님의 은혜 덕에 뒷골목에서 왈패 짓이나 할 우리가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이렇게 사는 거 아니냐.”

“그렇죠.”

“그러면 새끼들아 빠딱빠딱 일어나서 뺑이를 치란 말이다. 이 부장님이 하는 말에 토 달지 말고!”

“예에에.”

이삭의 민족 민간경호회사 소속 직원들은 배를 벅벅 긁으면서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부장님. 뭐 땜시롱 이렇게 난리를 치셨습니까?”

“뭐긴. 우리가 밥값 할 때가 됐으니까 그러지!”

그는 손에 둘둘 말아 잠을 깨우는 용도로 휘두르던 종이 뭉치를 팟-하고 펼쳐 벽에 걸었다.

“파리에서 비문(祕文)이 왔다.”

흐리멍텅하기 그지없던 직원들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깃들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우리 잘하는 거 하라고 하시는군.”

“꼴리는 대로 개판 내는 거요?”

“바로 그거야!”

우디노는 켈켈켈-하고 웃으면서 지도를 팡팡 두들겼다.

“술탄하고는 이미 짬짬이 얘기를 끝냈지. 명일 새벽 4시. 우린 콘스탄티노플 곳곳에 똬리를 튼 예니체리 놈들을 친다.”

“최우선 목표는 뭡니까?”

“예니체리 놈들의 통신을 끊어야지. 레샤르. 할 수 있겠나?”

“기병 서른만 주십쇼. 파발 한 놈도 못 빠져나가게 하겠습니다.”

“소싯적 프로이센 놈들 대가리 따던 솜씨 좀 보여주라고.”

우디노는 담배갑을 꺼내 톡톡 두드려 장초를 입에 물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술탄의 충성파 친위대는 예니체리보다 좆밥이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모루고 망치고 1인 2역을 해야 한다 이거지.”

“거, 뭐 그리 어려울 건 없어 보이는군요.”

“기습의 이점을 살려 대충 반쯤 박살 낸다 치면 할만합니다.”

“이 새끼들. 난 이래서 니놈들 같은 척탄병 새끼들이 좋아! 빼는 쫄보 새끼는 척탄병이 되기 전에 뒈지거든!”

5년 이상 전장에서 구르고 살아남은 자 중 신체조건에 대가리도 돌아가야 비로소 대프랑스의 척탄병이란 영예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목숨값은 얼맙니까?”

“최소 500은 줘야지 않겠슴까?”

물론 그 과정에서 인성이 좀 박살나는 경우도 있지만.

“목숨값?”

“예.”

“우리의 든든한 동맹, 오스만 술탄을 따라 예니체리 놈들 뒤통수를 맛깔나게 갈겨주고 그놈들 주머니에서 한 몫 두둑하게 챙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째끄만 보석 쪼가리 말고. 현찰, 리브르로 주십쇼.”

“썅. 좋다! 살면 500리브르 준다. 뒈지면 국물도 없어! 연금이나 타가.”

프랑스 최고, 최악의 문제아 병사들이 검을 뽑아 숯돌에 갈기 시작했다.

***

“오늘은 참 좋은 날이오. 제국의 충신들이 이렇게 짐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소?”

“하하, 과찬이십니다.”

“카이세리 롬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술탄 폐하 만세! 만세! 만세!”

“하하 다들 고맙소.”

“역겨운 버러지들.”

“술탄이시여. 여기 수건이옵니다.”

“고맙네. 손을 빨리 닦고 싶군.”

셀림 3세는 시종이 준 수건으로 손을 닦고는, 그 밑에 숨겨진 조그마한 종이조각을 빼 힐끔 쳐다보았다.

[0400 변함없음.]

됐다.

“시파히 대장을 불러오라.”

“하오나 폐하. 아직 예니체리들이 궁 안에 남아있사온데-”

“지금은 시간이 귀중하다.”

“알겠사옵니다.”

궁 안에 있는 예니체리의 눈과 귀가 술탄이 총신(寵臣)을 불러들였다는 걸 제 주인들에게 알리겠지만, 어차피 퍼즐의 마지막 피스만 남은 지금 그 작자들이 알든 말든 변하는 건 없을 터.

“폐하, 부르셨나이까?”

술탄이 가장 아끼는 총신, 그리고 유일하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무력집단.

황실 기병대라 할 수 있는 시파히의 대장은 술탄의 명이 떨어지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실라흐타흐 아아.”

“예, 폐하.”

“그대는 나에게 충성하는가?”

“어린 폐하께 병법을 가르쳤던 날부터 그러지 아니한 날이 없습니다.”

“그대와 장병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명령을 따르는가?”

“죽음을 각오하고 공을 쌓아 시파히가 된 자들입니다. 명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그래.”

셀림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충신에게 내밀었다.

“오늘 이 검으로 반적을 베시오.”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달빛에 반사된 검날이 빛났다.

***

콘스탄티노플 도성 내에는 예니체리의 주둔지가 여럿 있었다.

지금은 국력을 빨아먹는 모기나 다름없는 이들이지만, 100여 년 전에는 술탄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고 최전선에서 적과 총칼을 주고받는 최정예 친위부대였다.

당연히 도성 내에도 친위대가 상주하는 곳이 존재했고, 타락한 지금은 그곳을 거점으로 압력을 행사하며 정치에 영향을 미쳤으니.

수틀리면 도성 내에 있는 무력집단이 피바다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스만의 정치인들은 매번 언사와 행동을 조심스럽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술탄도!

“흐아아암.”

“야, 지금 경계 근무 중이다. 졸지 말라고.”

“참나. 누가 감히 여길 들어와? 뒈질려고. 안 그러냐?”

“···.”

“너 왜 대답이 없, 켁!”

달빛에 반사된 칼날이 번쩍이자 순식간에 한 사람의 혼백이 육신을 떠났다.

“초병 제압 완료.”

“무기고부터 노린다.”

“아무리 정치군인들이라 해도, 이 나라에서 정예 취급받는 놈들이다. 오만하게 굴지 말고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심지에 불을 붙인 수류탄이 허공을 날아 소중한 화약과 탄약이 가득 찬 무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 콰쾅!!

- 삐이이이익!

“뭐, 뭐, 뭐야!”

“···무슨 귀곡성같군.”

어마어마한 폭음 때문에 잠에서 일어난 예니체리들은 낯선 호루라기 소리에 직감적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이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양파가 좋다네, 기름에 튀긴 양파가-”

“부대 앞으로 가! 만나는 새끼 머리엔 다 총알 구멍을 내줘라!”

콘스탄티노플.

1500년 동안 세 제국의 심장이었던 도시.

그 도시가 폭음과 총성을 머금었다.

***

“미쳤군. 저게 최신식 서방군대의 힘인가?”

시파히의 지휘관, 실라흐타흐 아아는 망원경 너머 펼쳐진 진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급습에 야습이라지만 겨우 프랑스군 2개 척탄병 대대가 말 그대로 예니체리 2개 연대를 갈아버렸다.

2천 대 7천.

단순 환산으로도 3.5배나 되는 숫자를 프랑스군은 정육업자가 고기를 분쇄기에 넣듯 아주 태연하게 갈아버렸다.

대형을 채 못 갖춘 예니체리는 프랑스군이 한 걸음 한 걸음 사격하며 다가갈 때마다 낙엽처럼 픽픽 쓰러졌다.

예니체리가 대형을 갖추려 하면 매번 수류탄이 날아와 수십 명을 한 번에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어코 대형을 갖추면 총검을 들고 달려들어 대형째로 분쇄한다.

이게 프랑스의 척탄병인가? 이게 기욤이란 한 사람이 주머니에서 나이프 꺼내듯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력인가?

“거기 기병대 나리. 우린 할 만큼 한 거 같소만.”

“···물론이오 프랑크인. 이제 우리 시파히에게 맡기시게.”

실라흐타흐 아아는 튀르크 특유의 곡도(曲刀)를 뽑아 들었다.

“가자! 기병은 반역하지 않는다!!”

“““기병은 반역하지 않는다!”””

6개 기병대가 검을 뽑고 권총을 뽑아 곤죽이 된 적에게 들이닥쳤다.

얼굴 곳곳에 피가 튄 우디노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장초를 입에 물었다.

“기병은 반역하지 않는다라, 보병이 듣기엔 좀 껄끄러운 말이구만.”

“말박이들이 다 그렇죠 뭐.”

“몇 명 죽었나?”

“대강 한 열댓 명 죽었습니다.”

“씹새끼들. 죽지 말라니까. ···사장님이 또 침울해 하시겠구만.”

“사장님이요?”

우디노는 손가락을 대신해 삼분지 일쯤 타 들어간 장초로 멍청하게 묻는 부하를 가리켰다.

“사장님을 20년 동안 보필하면서 알게 된 게 뭔지 아냐?”

“뭡니까?”

“사장님은 사람 목숨에 굉장히 민감해. ···마치 동화책 읽는 꼬맹이들처럼 말이야. 오 누구누구가 죽었어, 너무 슬퍼. 왜 세상은 이렇게 살기 팍팍한 걸까.”

질병이든 폭력이든 아주 자잘한 이유로도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세상이다.

“직원 수만 명을 이끌고 더 나아가 프랑스를 이끄시는 분이 그런 사람이라니 좀 깹니다만. 전 좀 더 냉철하고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요.”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우리처럼 훼까닥 돈 미친놈이 아닌데 그걸 맨정신으로 다 감당하시잖냐.”

우디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열 명이 죽었다.

함께 전장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열 명이.

과연 이 열 명의 목숨은 가치 있게 희생된 것일까. 그냥 이역만리 타국에서 당한 개죽음은 아닐까.

“이런 썅! 뜨거워라.”

어느새 손가락으로 쥐고 있던 부분까지 담배가 타 들어간 탓에 손가락이 벌겋게 조금 익어 피가 조금씩 새나왔다.

우디노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사장님은 우리가 못 받은 핏값도 받아주실 분이시지.”

사업가는 결코 손해 보는 족속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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