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91화 (291/341)

잠자는 사자의 사지를 쳐라 (10)

대영제국.

런던, 외무부.

외무장관은 퍼석퍼석한 머리칼을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불과 1년 만에. 대영제국이 수백 년간 애써 일궈놓은 유럽의 질서가 망가지고 있었다.

독일이 두 쪽으로 갈라져 활활 타오른다.

남부 독일의 상징인 뮌헨은 양측이 피로 칠갑을 한 끝에 근황군의 손에 떨어졌다.

연맹군은 뉘른베르크에서 전열을 재정비한답시고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군대에 넣고 있고.

동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선 저명한 학자, 에마누엘 칸트가 괴테라는 자와 함께 계몽주의 단체를 창설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하지? 아니, 애초에 손을 쓸 수는 있나?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능사는 일단 저리 치워놓고 할 수 있는 문제부터 생각하는 것.

외무장관은 독일 문제는 머릿속 어딘가로 치워놓고 주제를 바꿨다.

“주스페인 공사는 뭐라 하던가?”

“반란군이 안달루시아의 반 이상을 점령했고, 발렌시아에서도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합니다.”

“그놈들의 목적은 뭐라던가?”

그는 시가 커터로 시가 끝을 찰칵 잘라내며 말했다.

“‘사람으로서 누릴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겠다.’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마드리드에 있는 푸른 피를 전부 쳐죽이겠다는 거 아닌가.

“···하늘이 무섭지도 않다던가?”

“자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저항권’을 발효했으니 죄가 아니랍니다.”

“제대로 미친놈들이군.”

시가를 한 모금 입에서 굴리다, 불현듯 떠오른 누군가의 초상에 그는 눈을 찌푸렸다.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예? 아, 조지 바이런 경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가 또 <타임즈>에 대고 뭐라고 지껄이겠군.”

오 사람들이여, 고통받는 스페인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오. 어쩌고저쩌고 쏼라쏼라.

뻔하지. 기사 주제에 방직공 나부랭이들과 어울려 술이나 퍼먹고 다니는 그놈이라면 내일 <타임즈> 문학란에 펜을 끄적거릴 거다.

“스페인 왕국에 원조를 보내주자고. 우매한 대중이 그놈 세 치 혀에 놀아나기 전에 서둘러 일을 해치워야 해.”

“재무부가-”

“그놈들도 천치가 아닌 이상, 지금 막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 10배를 부어야 한다는 걸 알걸. 아니면 내가 재무장관의 멱살을 잡는 한이 있어도 통과시키지.”

장관이 직접 호언장담하자 다들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스페인에 뭐가 제일 급한가? 탄약? 화기? 대포?”

“아닙니다. 제일 시급한 건 식량입니다.”

“식량?”

장관이 고개를 갸웃하자 차관보 하나가 빠르게 설명했다.

“반란군이 점거한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핵심 곡창지대입니다. 게다가 반란군이 곳곳에서 호송대를 습격해 물자를 빼앗고 있습니다.”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지?”

“주스페인 공사관에서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이번 겨울을 나기가 힘들다고 봤습니다.”

“허, 돈뿐만 아니라 이젠 밥까지 챙겨 줘야 하는 판이라니.”

“장관님. 한 나라가 소모하는 식량을 대주려면 우리 영국의 식량 생산력으로는 무립니다.”

그는 텁텁한 시가를 다시 한 모금 머금으며 말했다.

“그러면?”

“프랑스, 아니면 러시아에서 사 와야 합니다.”

“이런 씨발!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두 나라한테 대영제국의 혈세를 주는 꼴은 못 봐!”

“그렇지 않으면 미국산 곡물을-”

“집 나간 호로새끼한테 돈을 주자고? 자네 미쳤나?”

시가를 다시 한 모금. 두 모금.

“···우리 영국의 식량 생산량이 그렇게 개차반인가?”

“그걸 이제 아셨습- 읍읍!”

“하, 하하. 그놈의 양모가 돈이 된다고 농지를 죄 갈아엎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음...”

프랑스와 러시아.

둘 다 영국의 외교관으로서 봤을 땐 개새끼와 씹새끼. 배추도사와 무도사, 패트와 매트다.

“둘 중 어느 쪽 비용이 덜 드나.”

“프랑스입니다.”

“즉답이군.”

“우리 땅에서 25마일짜리 해협 하나만 건너면 프랑스 본토입니다. 게다가 스페인과 국경이 접해 있으니 육로로 식량을 실어다 나르기도 훨씬 편하지요.”

러시아? 흑토 지대에서 곡식을 생산해 스페인으로 보내려면 얼마나 걸리지? 한 여섯 달 걸리려나.

이런! 심지어 가면서 운반인들이 먹을 식량도 필요하잖아? 도착하면 식량이 없겠는데?

게다가 부패한 러시아 놈들이 중간에 슈킹해 먹을 게 뻔하니 100을 사면 대충 60정도를 보내주지 않을까.

“그러니 프랑스다?”

“그렇습니다.”

“어렵구만.”

잠재적 적국 중에 하나를 굳이 택해야하는 순간이라니.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와 이걸 짬때리네.”

“응? 거기 뭐라고 했나? 내가 잘 안 들려서.”

“와 이거 참 골때리네, 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숙덕이길 한참.

“장관님. 저희가 봤을 땐 프랑스가 낫다고 봅니다.”

“왜지.”

“어차피 큰 호수 아닙니까. 물 몇 바가지 부었다고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어지럽구만. 잠재적 적국에게 돈을 주고 식량을 사 남을 원조해야하다니.”

장관은 펜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초안 뽑아보게. 바로 서명하지.”

프랑스, 파리.

“이게 뭔 돈이래?”

“영국인들이 우리 밀을 대량으로 사간답니다.”

“···왜?”

“아마 스페인에 넘기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총감님 말 때문에 혁명군이 스페인 곡창지대를 점령했으니까요.”

“아아. 맞네.”

나는 턱을 괴고 읊조렸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요.”

“그을쎄요...?”

“···아.”

“뭐 떠오르는 거 있으십니까?”

“로버트 풀턴 씨에게 잠수함 발주를 더 넣읍시다.”

영국 프렌즈들아. 이 돈은 내가 나중에 잘 돌려줄게!

***

신성로마제국.

뮌헨 외곽, 근황군 진지.

“대공 전하.”

“···음.”

“전하.”

“듣고 있소. 재무 차관.”

군사 지도를 들여다보던 카를 대공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계속하라는 듯 손을 올려 제스처를 취했다.

“군자금이 떨어졌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군.”

“뮌헨을 함락시키는 데에 사용한 포탄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채권 가격이 떨어진 건 나도 알고 있소. 난 경제에 문외한이라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심하오?”

“예, 전하. 이대로면 전쟁을 이겨도 빚더미에 앉는 꼴입니다.”

카를 대공은 그제서야 지도에서 눈을 떼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바라보았다.

“뮌헨이 우리 수중에 들어왔소. 뉘른베르크와 슈투트가르트까지는 지척이지. 제국의 서쪽 강역을 모두 수복하면, 남는 건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에 있는 한 줌의 반역도당뿐.”

제국을 한데 묶는 데만 성공하면 경제든 군사든 문화든 외교력이든 현재 포텐의 배로 상승할 게 분명하다.

아무리 많은 열강들이 땅을 떼어가고, 두들겨 팼어도 제국의 강역은 유럽 제일이고 인구 또한 유럽 제이 아닌가.

러시아? 러시아가 아시아지 언제부터 유럽이었지?

“하오나 전하. 프로이센은-”

“그 북독일 촌놈들은 결코 우릴 치지 못하오.”

“···그럴만한 연유가 있습니까?”

“간단하오. 그놈들의 쩐주인 영국인들은 하나 된 독일 따위 원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스페인에서 민란이 일어났으니, 영국으로서는 지중해 패권의 핵심인 지브롤터의 안위에 관심이 더 쏠렸을 터. 중유럽은 일시적으로 그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차관은 모쪼록 자금을 임시로 융통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 해보시오. 제국이 하나가 된다면 경제야 금세 복구할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전하.”

차관은 꾸벅 인사를 한 후 막사를 떠났고 홀로 남은 카를 대공은 허리에 찬 단도를 검집에서 빼냈다.

그리고.

- 콱!

지도가 놓인 탁자에 온 힘을 다해 꽂아 넣은 단도가 부르르 떨었다.

“아프구만. ···굉장히 아파.”

누구냐. 누가 감히 제국에게 장난질을 쳤단 말인가. 어떤 개새낀지는 몰라도 네놈을 찾고 말 테다.

찾아서 도륙을 내주마.

조금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인내하면 그놈을 찢어 죽일 수 있으리라.

***

“요새 귀가 참 많이 간지럽단 말이지.”

“그러면 잘 좀 씻으십쇼.”

“아니 더러워서 가려운 게 아니라, 누가 내 얘기를 하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예예. 그러시겠지요.”

아니 플로리앙 양반. 사람이 결혼하니까 더 괴팍해진 거 같어.

역시 노총각 생활을 오래 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누군 내가 일만 시켜서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애초에 사람이 저리 괴팍하면 시간이 있다 해도 못 한다고.

“거 이상한 공상은 그만 좀 하시죠.”

“흐미 무셔벼.”

나는 녹은 밀랍에 내 도장을 쿵-하고 찍은 뒤, 플로리앙에게 넘겼다.

“콘스탄티노플로.”

“시작하는 겁니까?”

“기왕 세상을 불태우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태워봐야지 않겠습니까?”

“사장님은··· 참. 여러모로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음. 맞지맞지. 내가 좀 쩔긴 해.

“아. 나폴레옹에게 온 서한은 없습니까?”

“따로 빼놨지요. 여기 있습니다.”

“오케이. 어디 한 번 봅시다.”

밀랍을 뜯고 편지를 열었다.

[프랑스 국민방위대 대육군 군제 개편안]

“제가 같이 봐도 되는 겁니까?”

“헉. 플로리앙 씨, 설마 간첩이었습니까? 네 이노오옴 몇 파운드 받고 정보를 팔아 넘기느냐!”

“봐도 괜찮다는 뜻이군요.”

[대육군의 기본 작전수행 편제는 1개 사단으로 정한다.

1개 사단은 8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대대, 1개 포병대대로 구성되며 사단 직할 공병 중대를 합해 총원 9500명을 구성한다.

1개 군단은 5개 사단을 합해 구성하며 군단은 1개 전역을 담당하여 원활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여야 한다.

현 국민방위대 인원 총 74320명을 기간장병으로 삼아 준전시 상황에 18개 군단과 3개 기병여단을 구성한다.

여기서 3개 기병여단은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기병만으로 구성된다.

제 1군단 군단장, 루이 니콜라 다부 소장.

제 2군단 군단장, 앙드레 마세나 소장.

제 3군단 군단장, 장 란 준장.

제 4군단 군단장, 프랑수아 마티유 준장.

제 5군단 군단장, 피에르 오주로 중장.

제 6군단 군단장, 자크 마크도날 준장

···

제 1기병여단 여단장, 조아킴 뮈라 대령.

제 2기병여단 여단장, 에마뉘엘 드 그루시 소장.

제 3기병여단 여단장, 미셸 네 대령.

보급사령부 사령관, 니콜라 장 드듀 술트 소장.

수도방어사령부 사령관, 라파예트 질베르 뒤 모티에, 원수.

총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준장.]

“···? 뭐야. 자기 이름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답니까?”

“사장님이 직접 써주길 원하던 눈치였습니다.”

“하하, 뭔 애도 아니고 참.”

연병장에서 구르던 생도 때랑 달라진 게 없어 이 인간.

나는 펜에 잉크를 묻혀 밑에 있는 공란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대육군 총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원수(진)]

[1811년 9월 24일.

프랑스 공화국 국민방위대 최고사령관. 제 1대 통령, 기욤 드 툴롱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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