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87화 (287/341)

잠자는 사자의 사지를 쳐라 (6)

맥스웰 방정식을 모르는 문돌이조차도 최첨단기기를 통해 외국인과 실시간으로 키배를 뜰 수 있는 21세기와 달리, 대학교 공학 박사도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보내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정점을 찍는 시대인 1811년.

전화?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하다못해 모스부호로 뚜뚜뚜-하고 치는 전보(電報)도 없는 이 1800년대의 주식시장은 참으로 신비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선. 런던 증권거래소가 거래인으로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여의도의 그 모습과 비슷하게, 런던 증권거래소는 정부로부터 신임장과 권한을 보장받은 ‘정식 증권거래인’들이 직원으로 활동했는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정식 증권거래인’이라니? 그러면 야매 증권거래인도 있다는 소린가?

그렇다! 이 인외마경, 상식을 포기한 19세기에는 ‘야매 증권거래인’ 또한 존재한다!

런던 증권거래소 밖에는 수많은 ‘개인’ 증권거래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개인’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증권거래인들은 모두 ‘야매’고.

그런데 생각해보자. 당신이 투자자면, 국왕한테 신임장을 받은 정식 증권거래소를 이용하겠는가 아니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구인지 모를 인간이 차린 사설 증권거래소를 이용하겠는가?

반 쯤 머리가 돌았거나 자기파괴적 행위에 욕구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후자는 절대 안 쓰지.

따라서 우리 야매 증권거래인들은 고객님들을 사로잡기 위해 갖은 수를 쓰기 시작하였으니.

“아이고 사장님들!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자자, 여기 앉으시고. ···여기 팜플렛 받으시지요!”

“이게 뭐요?”

“하하, 오늘 새벽 네덜란드에서 온 따끈따끈한 정보 중에 알맹이만 걸러서 꾹꾹 담아놓은 시크릿 문섭니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한 만큼, 반대급부로 정보의 가치는 한없이 높다.

21세기였다면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알 수 있는 정보, 듣보잡 인터넷 신문에 나올법한 찌라시조차 금싸라기 취급.

야매 증권거래소들은 유럽 각국으로 ‘러너’, ‘투츠’, ‘하프 커미션 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정보원들을 보내고.

놀기 좋아하는 젊은 금수저들과 클럽에서 만나 인맥을 쌓아 고객들을 추천받는 동시에, 그곳에서 얻어낸 귀한 정보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고객들은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이 사설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으로 값을 대신했다.

한술 더 떠서, 이 사설 거래소들은 투기나 다름없는 수준의 투자를 종용하기도 했는데...

뭐어... 사실 투자자들이 망하든 말든 상관있나? 까놓고 말해서 정식 기관도 아닌데. 당연히 책임도 없지.

그리고 이렇게 책임감 없는 친구들은, 그날이 오자 누구보다 먼저 돈을 빼기 시작했다.

***

시작은 별거 없었다.

“제국 주식이 약 하락세라고?”

“예. 암스테르담에서 방금 도착한 소식입니다.”

“뭐, 알겠네. 곧 폐장이니 내일 개장 시간에 맞춰 조정하면 되겠지.”

중앙 증권거래소 직원들은 평소처럼 정시에 맞춰 퇴근했고, 주변 상가들도 하나둘 샤따를 닫고 내일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사설 거래소 소장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고, 오랜만에 런던 특유의 구름 낀 칙칙한 하늘 대신 보름달이 뜬 밤은 깊어만 갔다.

“소장님! 소장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한 사설 거래소장은 짜증 섞인 어투로 자길 깨운 비서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우리 정보원이 긴급 파발을 띄웠습니다.”

“긴급 파발? 젠장, 아주 돈이 썩어나지? 그거 한번 이용하는 데에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지들 돈 아니라고 막 쓰는구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제국 주식이 폭락했답니다.”

“···제국 주식이 폭락 중이라고!?”

거래소장은 서둘러 등에 불을 댕기고 안경을 코 위에 걸쳤다.

“얼마나?”

“예, 어제 저녁 폐장 직전 삼분지 일이 날아갔다고 합니다.”

“일단 개장하자마자 증권거래소에 있는 제국 주식은 다 빼자고. 나중에 하한가 치는 타이밍에 다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긴급 파발로 도착한 정보가 실제 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최소 이틀은 걸린다.

누구보다 정보에 앞선 이들은 손해를 보기 전 빠르게 손절하고 다음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보다 3% 하락이라?”

“왜지? 뭐 때문에 빠진 거지?”

“왜긴 이 멍청아! 지금 전쟁 중이잖아. 쫄아서 빼는 놈들 때문에 생긴 단순 변동이겠지.”

“그런가?”

“여기선 심리를 잘 읽어야 해. 3% 빠졌다고 빼면 3%를 잃는 거지만, 안 빼고 버티다 오르면 잃긴커녕 따는 거라고.”

“···그른가?”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에 밝지 않았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지 않으면 재산이 주는 소시민들이 어떻게 유럽 각지에 정보원을 꽂아 넣은 사람들처럼 정보력을 가질 수 있겠나.

즉, 세력은 팔았으며 개인은 버티거나 샀다는 것.

그리고 며칠 후, 빈에서 출발한 소식이 런던을 강타했다.

***

[신성로마제국 주가 18% 하락!! 전쟁 채권은 과연 안전한가?!]

[프랑크푸르트 백국 은행, 예금인출 중단 선언!!! 은행이 파산하나?!]

[모 은행가,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말아야-’ 발언]

- 철썩!

누가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을 향해 신문을 던졌고. 신문은 질척질척한 물웅덩이에 처박히며 물방울을 튀겼다.

“씨바아아알!”

“망할 크라우트 새끼들! 좆같은 독일 새끼들이 내 돈을 떼먹었어!”

“제국 대사관으로 가자! 내 돈을 돌려달라!!”

단잠을 깨고 기분 좋게 토스트와 홍차를 옴뇸뇸하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한 영국인들은 눈이 반쯤 돌아가서는 거품을 물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해산하라, 해산하라. 귀하들은 지금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 어서 해산하라.”

“기병대를 투입할까요?”

“자네 미쳤나? 저기 있는 사람들이 어중이떠중이 노동자들로 보여? 중산층들이야 중산층들. 투표권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라고. 저 사람들 몸에 곤봉 스치는 날엔 너도 나도 다 모가지야. 알아?”

“알, 알겠습니다.”

노동자들에겐 곤봉 든 기마경관들을 들이대던 경찰은, 한참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치안총감이 직접 나서 시민들을 진정시킨 끝에 질서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다 팔겠습니다.”

“내가 시발 다음부터 주식에 손을 대면 사람이 아니다.”

“80%라, 80%... 그래도 속옷도 못 입을 정도로 쫄딱 망한 건 아니니까 그나마 다행인가?”

사람들이 얼굴이 푸르죽죽해진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 베개에 얼굴을 묻을 때.

“21% 하락이면 더 이상 저점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런던 어딘가에 자리한 사교클럽에서는 사설 증권거래인들이 실크햇이나 값비싼 공작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부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뛰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백국 은행? 제국 은행하고는 일절 상관도 없는 조그마한 지방 은행이잖습니까. 잠깐 견디면 봄이 옵니다.”

“우리 증권거래소는 이번 사태를 3% 손실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21% 이득을 볼 차례지요. 지금 저희 거래소를 이용하신다면 적어도 10% 이득은 챙기실 수 있습니다!”

“뮌헨에서 카를 대공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즉, 지금 신용을 의심해 잠시 내려간 전쟁 채권 가격이 다시 뛴다는 얘기지요.”

의심과 불안을 세치 혀를 놀려 가능성과 믿음으로 뒤바꾼다.

그리고 가능성과 믿음은 확신이 된다.

[신성로마제국 증시 7퍼센트 상승, 일시적인 쇼크 때문에 생긴 하락장이었나?]

[네덜란드 은행, 제국 전쟁 채권 대량 매집! 근황군 승리를 점치나?]

세력은 다시 총알을 모아 저점을 매수했고, 떨어졌던 제국 증시지수가 다시 반등했다.

“핫핫핫! 어떠십니까, 제독님! 저만 딱 믿으라고 했지요!?”

“아, 나는 항상 소장님을 믿지요 허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씨바아아아아알! 이 병신아! 그걸 왜 팔아서!!”

“지, 지금이라도 타야 하나? 타, 말아? 타, 말아?”

“에라 모르겠다, 로마제국 파이팅!”

큰 폭의 하락이 있었지만 결국 올라올 자산은 올라온다! 대마가 죽을 리 없다!

세력이 다시 끌어올려 반등하기 시작한 그래프에, 개미는 다시 몸을 맡겼고.

“···그게 지금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롭니다. 제국 은행 유동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은행의 유동성이 위협받아? 지금 농담하나?”

“정말입니다! 어젯밤에 나간 돈만 300만 플로린입니다!”

“삼, 삼백만? 금화 삼백만 개를 인출해갔다고!? 그, 그 독일 놈들은 병신인가? 그걸 안 막았다고?”

“한 사람이 인출 한 게 아닙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이 달려들어 빼갔답니다!”

“···설마 대중이 공포에 휩쓸렸나? 그래서-”

“만약 제국 은행이 더 이상 지급보증이 불가하면-”

“그래.”

거래소장은 볼이 홀쭉해지도록 담배를 끝까지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좆 되는 거지. 니미럴, 지급보증 불가가 사실이라면 정말 원 가격대로 돌아갈 때까지 십 년은 걸리겠구만.”

“···뺄까요?”

“뭘 물어? 라인 강에 투신할 독일 놈들처럼 템즈 강에 투신하고 싶나? 아니면 10년 동안 거기 돈 묻어놔도 될 만큼 우리가 시드가 많나?”

“아, 아닙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받는 자들은 다시 짐을 싸 들고 몰래 도망쳤다. 비겁하다고?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

애초에 자신들은 정보력을 사기 위해 수많은 돈을 투자했고, 이제 돈을 잃을 자들은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서 끝.

지식은 곧 재산이다. 따라서 신문을 보면 지식이 쌓이므로 신문에 ‘지식재산세’라는 이름의 사치·부가세를 붙여 세금을 뜯어가는 시대답게 그 누구도 개미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두 번째 파도가 런던을 강타했다.

[제국 증시, 두 번째 대폭락!! 고점 대비 –48%, 과연 반등은 꿈이었나?]

“어. 어. 어어...?”

“반토막이라니 거짓말이야 반토막이라니 거짓말이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제국 증시는 반토막이 났고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같은 모든 도시에서 곡소리가 났다.

일확천금이라는 단어에 홀려 전 재산에 돈까지 빌려 넣은 사람들은 이번엔 옅게 폐수 냄새가 올라오는 템즈 강에 홀린 듯 하나 둘 강바닥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목돈을 뺐지만, 남는 건 원금의 절반도 채 안 되는 돈뿐.

이제 두려웠다. 손에 남은 이 반 푼어치까지 사라질까 봐.

하지만 물가보다 현저히 낮은 금리에 적금을 넣는 건 앉아서 돈을 까먹는 일.

사람들은 이제 ‘안전한 투자’를 원했다. 결코 정국이 혼란하지도 않고, 미래도 밝아 보이는 그런 곳.

“···이삭의 민족 어때?”

“미친 새끼, 또 주식에 꼬라박자고?”

“나도 이제 도박 같은 거 안 해! 생각해봐, 이삭의 민족은 준적금이라고 준적금. 20년 만에 주가가 80배가 됐는데, 앞으로 더 얼마나 커지겠어? 게다가 배당금도 따박따박 나오지, 먹거리도 많지-”

이 세상에 그런 곳은 딱 한군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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