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79화 (279/341)

솎아내기 (2)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두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젊은 장군을 바라보는 시선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보나파르트 장군은 천재입니다! 신속한 기동부터 우리 프랑스군의 특기인 포병 운용까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우리 프랑스가 결코 지방 출신이나 해외 영토 출신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프랑스는 오직 능력과 인품만을 보는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보나파르트가 기욤 총감의 불알친구인 건 알지? 저 인간 바짓가랑이만 잡고 다니면 군생활 쫙 피는 거야.”

순수하게 그의 능력에 대한 찬탄이나, 어려운 성장배경에 대해 감탄하는 이들, 아니면 그의 명성에 기대 떡고물 하나 떨어질 걸 기대하는 이들.

속이 얼마나 시커먼지에 대해 차이는 있으나, 이들은 모두 나폴레옹에게 호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빠가 있으면 까도 있다고 하던가.

특히나 지방 출신 아웃사이더에겐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으리라.

“뭐, 능력 있는 자인 건 맞지만... 회전 두 번 이겨 먹었다고 불세출의 명장인 것처럼 떠받드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총감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전공이란 전공은 다 독식하는 이기적인 놈.”

“홀홀홀,,, 젊은 친구가,,, 똘똘해서,,, 좋긴 한데,,, 혈기가 너무,,, 앞설 때가 있어,,,!”

순수하게 그가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 그가 이루어낸 건 모두 친구 하나 잘 뒀기 때문이라 취급하는 이들.

다들 어느 정도 차이점은 있으나, 이들은 모두 나폴레옹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세상에는 남이 잘되는 것보다 잘 안되길 기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고.

라파예트 사령관도 그걸 어느 정도는 눈치챘으리라. 전공을 쌓아 남들의 질투를 받을 수 있는 실전부대 대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발령 났던 것도 그런 까닭일 터.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지.”

나폴레옹은 자신 앞으로 배달된 새 ‘근무 명령서’를 만족스럽게 들어 올렸다.

<총사령부 인사부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소장>

프랑스군 내에 10명이 채 안 되는 상급자를 제외한다면 나폴레옹은 이제 전군의 인사계획을 조율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오오. 세상에.

행정부 수반의 권능을 그저 조금 빌려왔을 뿐인데 몸에 힘이 넘친다!

모조리 쓸어버릴까?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도륙을 내버릴 수도-

“아니. 아니지. 그렇게 망나니처럼 굴어서야 기욤 그 녀석 볼 낯이 없지.”

흐물흐물거리는 녀석이지만 뭔가 공적인 일을 할 때는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원칙은 원칙인데요’, ‘적법한 절차를 밟으시지요’, 하고 말하는 녀석 아닌가.

그 녀석이 이렇게 잘 드는 도끼를 줬다는 건 필시 나폴레옹 자신이 적법하고도 흠잡을 수 없는 절차를 통해 암 덩어리를 도려낼 걸 믿는다는 소리겠지.

더럽고 추악하게 감정을 담아 산간벽지로 세금 도둑 새끼들을 처넣는 걸 상상하면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 쓰레기들을 합법적으로 무저갱에 처박을 건덕지는 충분했다.

어차피 실력은 좆도 없으면서 남 헐뜯는 건 도에 튼 새끼들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인사부장님! 전 부관을 맡은 중위-”

“인사는 나중에 하지. 영관급 이상 모든 장교 프로필 오늘 19시까지 내 책상에 올려놓게.”

“예?”

“자네가 멀뚱멀뚱 서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초침은 틱틱하면서 가고 있다네. ···이제 11시간 59분 남았군. 중위.”

파리에서 베르사유 총사령부로 온 나폴레옹은 첫날부터 인사계를 쪼기 시작했다.

***

“장군님! 이게 올해 보르도에서 제일 잘나온 포도주라고 합니다!”

“이번엔 제가 한잔 따라보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들이 참.”

나폴레옹이 방첩사령부를 떠난 이후, 파리 어딘가에 있는 고급 클럽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과 아직 별로 진화하지 못한 먼지구름 같은 존재, 영관들이 모여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보나파르트 그자가 이제 인사부장이라지?”

“총감이 제 친구를 아끼는 거야 이해가 갑니다만, 이번 일은 좀 과하지 않을는지요.”

총사령부 인사부장은 본래 가장 연로한 장성이 맡는다.

중소기업 승진 시즌에도 온갖 말이 오고 가는데 하물며 군, 그것도 영관과 장성이라면 말해 뭐하겠나.

인사에는 반드시 이러쿵저러쿵 구설수가 붙기 마련이고, 때문에 가장 연로하고 뒷말 없는 장성이 인사부장을 맡아 그나마 말이 덜 나오게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제 마흔을 갓 넘은 보나파르트가 인사부장?

“친구 입에 맛난 걸 넣어주고픈 마음이야 이해가 갑니다만, 이번 건 도를 넘었습니다.”

“라파예트 사령관께선 뭐라 말이 없으십니까?”

“원래도 보나파르트를 비호 해주신 분 아닙니까.”

그러나 이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한들 이미 행정부 수반이 도장을 찍은 게 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 터.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요. 최대한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태업하는 것.”

“태업이요?”

“제깟 놈이 인사권 좀 잡았다고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 있겠소? 총감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하지만 보나파르트는 총감의 친구 아닙니까. 조금 월권하더라도-”

“아니지. 총감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잖소. 우리가 명분을 주지 않으면 총감도 뭐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요.”

그러니까 선만 넘지 않는 정도에서 ‘은따’를 시키자.

오십 넘게 먹고, 머리가 벗겨지고, 새치가 돋은 아저씨들이 고안해낸 비장의 수치고는 매우 유치찬란했지만 그만큼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가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칼날은 쥔 건 보나파르트지 자신들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그렇게 그들이 다짐하고 파한 지 며칠 후.

“오늘 날씨가 참 좋구만. ···음? 이게 뭐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에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모닝커피를 홀짝이던 고급 장교들은 새벽 사이 누군가 우편함에 꽂아둔 편지를 받아, 봉인을 뜯고 쭉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귀하의 적성과 관심사를 고려했을 때, 귀하에게 알맞은 직책은 보병연대 연대장이 아니라 해안포대로 생각됩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보직 이동 신청 바랍니다. - 라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 미친 새끼가!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이건 선전포고야! 선전포고!!”

눈에서 실핏줄을 터트리며 분노에 찬 군홧발을 베르사유로 옮긴 그들은 말리는 당번병들도 밀쳐낸 뒤 인사부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 오셨습니까?”

“보나파르트 장군! 신사로서의 예의를 지키긴커녕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너 일 존나 못함. 내가 강제로 좌천시키기 전에 니들이 알아서 빠지는 게 보기 좋지 않겠냐?’ - 라고 해석되는 선전포고문을 보낸 나폴레옹은 쿨하게 입을 열었다.

“전 인사부장이고, 인사업무는 제 일이자 권한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 그저 맡은 바 임무를 했습니다만.”

“이 인간이 정말!”

“당신 지금 한판 해보자는 거요!?!”

나폴레옹은 옅게 탄 포도주를 홀짝이곤 천천히 말했다.

“···보아하니 제 판단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 보이는군요.”

“흥. 당연히 그렇소.”

“지금이라도 실책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우리가 선배 된 도리로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

“아.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그는 손을 허공에 휘휘 젓다가 턱을 괬다.

“여러분들이 제 생각과 달리 실력이 출중하시다면, 당연히 저와 워게임을 벌여 이기실 수 있겠지요?”

나폴레옹 자신이 내리는 인사고과가 꼬우면 나폴레옹과 워게임을 진행해 이기면 된다!

마치 무슨 원시 부족이 부족장 자리를 걸고 벌이는 결투 같지만, 때로는 이런 정공법이 군더더기 없는 답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제 놈들이 정말 자기보다 실력이 있으면 이길 거 아닌가.

대신 진다면 인사부장이 권유한 ‘자진 보직 이동’을 씹고 항명한 죄를 추가해, 그래도 장군님 소리 들을 수 있는 어디 시골 요새 사령관 대신 쥐구멍만 한 노역소 소장 같은 곳으로 보내질 테지만 나폴레옹은 굳이 그런 말까진 주워섬기지 않았다.

“하, 좋소! 어디 한 번 붙어봅시다!”

“좋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다 합쳐서 40명 좀 넘어가시니 한 일주일 정도면 되겠군요.”

“뭐? 일주일? 지금 하루에 우릴 여섯 명씩 상대하겠단 거요?”

“안 될 거 있습니까? 대강 한 분당 한 시간 잡고 하면 될 거 같습니다만.”

졸지에 벽지로 쫓겨날 위기에서 오는 위기감, 거기에 자신들을 좆으로 본다는 데서 오는 분노가 40여 명의 고급 장교들을 휘감았지만.

썩어도 준치는 준치. 군대 짬밥이 30년 이상 되는 이들의 머리도 냉철한 생각이란 걸 할 수는 있었다.

‘코르시카 촌놈이 드디어 미쳐버렸다!’

세상에 모의전 40번을 해서 이기겠다고? 미친놈. 자기가 무슨 아레스야?

게다가 하루에 6명씩 잡겠다잖은가. 처음 한둘은 잡힐 수도 있을망정 사람이라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상대를 맞이할 때쯤엔 체력이 고갈되었을 터.

군사적으로 결코 지는 싸움이 아니었다.

“좋아.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 어떻소. 보나파르트 장군.”

“원하시는 대로.”

빌어먹을 코르시카 놈은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포도주잔을 다시 기울였다.

저 짜증 나는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

***

그렇게 ‘해안포대로 별과 먼지, 가스구름 수십 개가 날아갈지 말지’를 건 희대의 내기가 진행된 지 4일째.

그 당사자들 중 별과 먼지, 가스구름에 해당 되는 수십 명은 뭔가,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 날.

“내가 그놈 조지고 오겠소!”

- 하고 자신 있게 말한 뒤 모의전 준비가 끝난 인사부장실로 갔던 사람들은 조져지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모두 4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멸 딱지는 덤이고.

둘째 날.

“뭐어, 보나파르트 그자가 능력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소. 그러나 처음 보나파르트를 상대했던 분들이 그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알려주었으니 이제 난 질래야 질 수가 없소! 하하하!”

- 하고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어디 기병연대 연대장은 전멸을 넘어 궤멸 판정을 받고, ‘무능함. 그것도 존나게’ -라는 딱지를 붙인 채 어디 교도소장이니 뭐니 하는 곳으로 좌천당해버렸다.

셋째 날.

“보, 보나파르트 장군! 아니, 보나파르트 소장! 나, 나 알잖소! 나도 귀하처럼 소장이오! 소장! 소장이 어떻게 시골 경비대장 노릇이나 하란 말이오!?”

“정 소장직이 걸리시면 소장 계급을 반납하고 내려가시면 되겠군요.”

어설프게 타협을 시도하던 하늘 같은 별 두 개는 파팍-! 하더니 어디 이름 모를 지역방위대 치안대장으로 날아갔다.

넷째 날, 오늘.

“누구, 지원자 있소?”

“···큼, 크흠.”

“으으음.”

다들 낮은 신음소리만 내는 가운데.

“저어, 인사부장님께서 어서 다음 분 오시랍니다.”

“어? 어! 아, 당번병인가? 알겠네.”

“그으... 5분 안에 정해달라고 하십니다.”

“그, 그래? 잘, 알겠네. 우리가··· 조속히 올려, 보내겠네.”

“예. 감사합니다.”

“···혹시 누구, 보나파르트 장군... 아니, 보나파르트 인사부장께 도전할 지원자 없소?”

“······.”

더 이상 사형대에 걸리고픈 자원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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