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72화 (272/341)

미래를 위한 초석 (1)

1809년 초.

“으아아앙! 으아앙!”

“산모님! 수고하셨습니다! 아주 건강한 도련님이에요!”

“오 하느님 아내와 아이를 모두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련님 이름으로 생각하신 게 있으신가요?”

“이름이라... 부인, 아이 이름으로 찰스는 어떻소?”

“찰스... 좋은 이름인 것 같네요.”

“하하, 좋아! 내 아들아, 넌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다!”

“으아앙!!”

“다윈 가의 남자답게 울음소리도 아주 우렁차구나! 하하!!”

“으아아앙! 으아앙!”

“옳지! 옳지! 다 나왔어! 당신 괜찮아!?”

“난, 난 괜찮아요. 애는··· 애는 괜찮아요?”

“애가 이마가 좀 넓긴 한데, 그래도 건강해 보여. 가랑이에 물건도 제대로 달려있고.”

“아이 이름은, 뭘로 할 예정이에요?”

“으음... 그래! 신실하고 정직한 기독교인으로 자라란 의미에서, 성경에 나오는 에이브러햄으로 하자고! 어때?”

“좋아요. 자, 아이야. 네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란다.”

“응애! 응애!”

“크흠, 선생님. 우리 아들이 참 똘똘한데...”

“여기 오시는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그런 말을 하시지요.”

“아니, 정말 내가 보기에도 우리 아들은 궤가 다르다니까요? 자, 들어보시오···.”

“예에,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랑하시기 전에 입학원서부터 넘겨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어디보자... 이름이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올해로 7살이라... 성적이 동 나이대에 비해 상당히 우수하긴 하군요.”

“그렇다니까요! 자, 빅토르. 선생님이 네게 호감이 있으신가 보구나. 인사 한번 드리렴!”

“앙녕하세요, 썬생님!”

“인사성이 밝구나. 좋습니다. 우리 학교 신입생으로 빅토르 위고 군을 받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압빠, 나 학교가?”

“하하하! 그럼! 그것도 프랑스 최고의 학교에 가지!”

지구촌 어느 곳곳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났고.

‘해적 새끼들아 나이아가라에서 군대 빼라?’

‘즐.’

‘에이레(아일랜드의 원래 이름) 독립 만세! 에이레를 위하여!’

‘총독 각하, 모반을 꿈꾸는 아일랜드 폭도들의 은신처를 찾아냈습니다.’

‘아주 좋아! 당장 해병대 소집해! 싹 쓸어버려!!’

‘술탄이시여, 부르셨나이까?’

‘근위대장. 그대가 은밀히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명만 하시옵소서. 술탄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라데츠키 장군. 뷔르템베르크 공작은 뭐라 하던가?’

‘봉건영주의 권리는 오토 대제 시절부터 이어진 신성한 권리이니 감히 침노할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국을 좀먹는 기생충 같으니. ···좋아, 살생부에 그 작자 이름을 추가하지.’

‘영국을 말려 죽입시다. 황새도 다리가 찢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지.’

지구촌 어느 곳곳에서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인류애 떨어지는 장면은 일반인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까.

이렇게 가슴 따뜻해지는 광경과 정나미 떨어지는 광경이 함께 펼쳐지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참으로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으리라.

여하튼 일반인들이 보기에 세상은 30년 중에 가장 평화로웠다.

파리.

알렉산더 존 포사이스는 자기 눈앞에 놓인 감자샐러드를 포크로 요리조리 굴리고 있었다.

먹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먹은 나이가 몇 개인데 반찬 투정을 하겠는가.

게다가 이곳은 파리다.

프랑스의 수도.

어떻게 된 게 대충 아무 길거리 레스토랑 음식이라도 웬만한 런던 고급 레스토랑 뺨치는 거지.

포사이스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시기에 섬에 사는 영국인들에겐 능숙한 항해술을 주셨고, 대륙에 사는 프랑스인들에겐 오븐을 기깔나게 쓰는 요리실력을 주셨음이 분명하다.

포사이스는 포크로 감자 샐러드를 찍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분명히... 밥은 프랑스 밥이 맞는데...”

맛을 보니 분명히. 분명히 여긴 프랑스일 텐데.

그는 입에 넣은 감자를 우물거리며 옆을 슬쩍 쳐다보았다.

왜 이 회사 사람들은 독일인처럼 일에 미쳐 사는 건가.

식당에 있는 직원들은 죄다 옆에 일거리를 끼고는 빵 한입에 서류 한 장을 쭉 읽어 내려가기 일쑤였다.

저러면 사레 안 들리나?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시면 천벌 받습니다.”

꽤 친해진 프랑스인 직원이 포사이스에게 그리 말하자, 포사이스는 포크질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처음 듣는 소리인데, 가톨릭에선 그렇게 가르치시오? 국교회에선 그런 가르침은 없는데.”

“아니요. 종교가 아니라 삶이 가르쳐주더군요.”

“삶?”

“옛날엔 이 친구 집안이 못살았거든요.”

다른 프랑스인이 덧붙여주었다.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친구라, 여간 구두쇠가 아닙니다.”

“구두쇠라니.”

“한 달에 월급 200리브르 받는 놈이 구멍 뚫린 양말을 계속 기워 신는 거 보면 구두쇠 맞지 뭐.”

“기우면 신을 만해.”

“봐봐 얘가 이런다니까요.”

포사이스는 호기심이 동해 포크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런데 소작농 출신이 어쩌다 기술팀에까지 들어왔소?”

“뭐, 천지가 개벽했는데 농부 아들이 기계 만질 수도 있지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말했다.

“원래는 저도 고향에서 대를 이어 농사나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고혈을 빨던 영주 놈은 마을 입구에 목이 걸렸고, 그간 핍박받은 대가로 땅을 받았으니 농부도 할 만하겠다 싶었죠.”

“그런데 농부는 안 됐잖소.”

“땅에 괭이를 대기도 전에 전쟁이 났거든요.”

그는 미리 먹기 좋게 찢어놓은 빵을 수프에 적셔 한 입 먹은 뒤 이어 말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간 겨우 얻은 땅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거라 생각해서 군에 입대했고, 뭐. 어찌저찌 살았습니다.”

“호. 참전용사였구만.”

“살아서 파리로 돌아왔고, 파리에서 개선식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삽 들고 보도블록을 까 엎으라지 뭡니까.”

대충 석 달쯤 일했던가.

“까짓거, 괭이 대는 거랑 곡괭이로 땅 까는 거랑 그닥 다를 게 없더군요. 공병 장교도 일 잘한다고 차출해서 숙련공들 일하는 곳에 투입했었으니까.”

얼마나 땅을 잘 깠는지 함께 일하던 이삭의 민족 소속 노동자들은 제대 후에 일할 곳 없으면 자기들과 일해보자고 스카웃을 제시했다.

- 사장님, 사장님! 이 친구가 참 일을 잘합니다. 그런데 그 뭐냐. 글을 잘 몰라서...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글을 모르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는 법이죠. 흠... 페시옹 씨?

- 예 사장님.

- 지금 2층 끝방이 비어있는 걸로 아는데, 거기서 야학(夜學) 비스무리한 걸 우리 회사 문맹자 대상으로 해볼 수 있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 좋아. 거기 계신 분.

- 예!

- 앞으로 오후 4시까지는 작업 마무리하고, 2층 끝방으로 가서 오후 6시까지 공부하고 퇴근하도록 하세요.

-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나 같은 농부가 무슨 글을 읽는담-하면서 시시껄렁하게 있었지만, 점차 생각이 달라졌다.

영주 나리들만 알던 글자를 배우자, 책이라는 걸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자, 호기심이 생겨났다.

호기심은 난생 처음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갈증으로 이어졌다.

- 제게 이걸 물어보고 싶다구요? 흐음. ···벌써 이 부분까지 이해를 하신 겁니까?

- 예에, 그렇습니다만.

- 이거 사장님과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 할 듯 싶군요.

- 예? 설, 설마 절 해고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 해고? 하하하, 그럴 리가요! 이렇게 이해력 좋고 똑똑한 사람은 많지 않으니 사장님께 건의해서 대학교 청강을 시켜드리려고 합니다.

- 제가... 대학교요? 전 농부입니다만...

-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게 출신을 미주알고주알 따지자면 전 깜둥입니다만.

- 그, 그런 뜻이 아니옵고!

사장님은 비서실장의 의견을 듣자마자, ‘좋습니다. 고급인력은 언제나 필요하죠. 단, 대학교 수료 이후엔 우리 회사와 30년만 계약합시다.’ - 하고 자신을 대학으로 보내버렸다.

세상에 공부에 일자리까지 제공하다니, 사장님은 예수님 이후로 신이 보내주신 두 번째 선지자인가?

“뭐어, 그렇게 된 거지요. 공부를 다 했더니 학위가 생겼고, 시골 농사꾼이 이렇게 기계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무슨 기사모험소설을 보는 거 같구려.”

포사이스는 이제야 이 회사 직원들이 왜 저렇게 극성인지 알 것 같았다.

다는 아니더라도 이들 중 대부분은 그저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힌 채 이름 없는 촌부로, 이름 없는 노무자로 살다 갈 팔자였으리라.

그러나 어느 순간 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벽을 무너뜨린 자는 그들의 손을 잡고 약속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고. 자유롭게 자기 뜻 가는 대로 살라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고 헛소리로 치부하던 이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넘도록 그 약속이 지켜진 지금. 더 이상 그런 자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약속은 이제 벽을 무너뜨린 자들을 넘어, 여기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지켜질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오기에, 이들은 식사 시간마저도 아까운 것이다.

당장 조국이 버린 포사이스를, 외국인인 그가 건져내지 않았는가.

노력하면 보답받을 것이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여긴 다 미쳤어. 죄 다 미쳤다고!”

“어이 포사이스 씨. 그만하고 이거나 검토해주십쇼.”

“구아아아악!!”

파리에서 또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사장님.”

“······.”

“사장님. 다음 일정은-”

“제엔장. 왜 내 몸은 하나인 거지? 이건 뭔가 잘못됐어.”

“아, 예.”

“도의적으로 생각했을 때, 천국에서 지상으로 환생하러 내려오는 사람한테는 특전으로 몸뚱이 하나는 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예에.”

음. 나는 어디까지나 진실만을 말했건만.

날 바라보는 비서실 사람들의 눈동자가 점점 정신병자를 바라보는 그것과 같아진다고 하면 착각인가.

“사장님. 요즘 애들은 그런 이상한 농담 안 받아줍니다. 곧 아버지 되실 텐데 미리 자제하십쇼.”

“나 원 참. 이젠 농담도 못하겠구만.”

“에헤이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버지라...

결혼한 지 햇수로 2년째. 드디어 폴린의 배가 부풀어 올랐다.

딸인지, 아들인지는 상관없다. 이 열악한 19세기에 제발 건강하게만 나와주면 좋으련만.

내가 아무리 걱정해봐도, 이건 내가 어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나.

나는 그 문제는 저 멀리 일단 치워놓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아까 말했던 다음 일정 얘기나 합시다. 뭘 해야 합니까?”

“어디 보자. 장 에티엔 루카스 해군 중령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루카스 중령이라면 코르시카 때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함장하면서 뺑이쳤던 친구?

내가 자기 눈앞에서 자기 상관을 잘라버리는 걸 보고도 군대에 남아있다니. 여간 강심장이 아니구만.

루카스 중령을 만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뭐냐... 영국에게 어떤 식으로 다채롭게 엿을 먹일 수 있을지 상상을 하다보니까 해군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었거든.

- 우린 죽었다 깨어나도 영국 해군을 이길 수 없습니다.

- 왜죠?

- 수병들의 숙련도에서 차이가 너무 납니다. 그놈들의 기동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 ···조작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 존나게 큰 엔진을 붙여서 강제로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닌가?

입이 방정이지. 젠장.

해군은 눈이 돌아가서는 ‘그래서 되는 거지? 되는 거지? 된다고 말해줘!’ - 라고 내게 달라붙었고, 오늘의 미팅도 그걸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끊이질 않는구만.”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ㅇ···.

- 쾅!

“엄마 시벌 깜짝이야!”

“사장님! 사장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입니까?”

“사모님께서 양수가 터지셨답니다.”

난 담배는 재떨이에 그냥 쑤셔버리고, 외투를 대충 걸쳐 입고 일어났다.

“미팅 내일로 미뤄주세요.”

“예? 하지만 내일 일정은 이미 꽉 차 있는데···.”

“그러면 내 저녁시간 빼! 밥 안 먹을테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아빠라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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