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71화 (271/341)

어둠을 대비하라 (9)

쓰으읍... 하...

나는 잠자는 내 대뇌에게 일어나란 의미로 니코틴을 풀로 충전해준 후, 재떨이에 담배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재고 떨이는 제가 보기에 별문제 없어 보입니다.”

“묘안이 있으십니까?”

“빌어먹을 해적 놈들이 세상을 불태우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당연히 무기 팔 곳은 널려있기 마련이지요.”

나는 사령관실 탁자에 놓인 세계지도를 펼치고 쭉 짚어나갔다.

“본토인 유럽, 지중해까지는 그렇다 치고.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대륙에 동남아시아, 동아시아까지. 이 해적 놈들이 제 놈들 조상인 바이킹을 따라 하고 싶은 건지 온 세상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이 새끼들은 저그인가?

프랑스라는 맞수가 약 20년간 주저앉아 내홍을 다스리느라 그로기에 빠진 틈을 타,

지구라는 맵의 스타팅 포인트란 스타팅 포인트에 죄 군대를 꽂아두거나 침략을 일삼는 걸 보면 브리튼 제도가 아니라 차 행성에서 날아온 거 같다.

음. 일리가 있어. 사실 초월체와 케리건도 제국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께서는 해적 놈들에게 혐오스러운 인성은 주되, 머릿수를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지도에서 인도 대륙을 짚었다.

“영국 소식통이 말해주길, 영국인들이 인도에 2개 보병연대와 1개 기병연대를 배치했다고 하더군요.”

2개 보병연대에 1개 기병연대. 다 합치면 5천 남짓.

저 드넓은 인도 대륙에 5천이란 숫자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아마 물잔에 각설탕을 떨어트린 수준 아닐까.

인도인들의 무기가 현대적이지 못하니 당연히 영국군이 이기긴 할 테지. 하지만 아무리 청소기 성능이 좋다 해도 수만 평에 달하는 땅을 청소하기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영국이 괜히 인도 하나를 수십 년에 걸쳐서 집어삼키고, 백 년 동안 소화한 게 아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손을 옮겼다.

“북아메리카. 미국과 영국이 요새 몇 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지요?”

제퍼슨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물러났지만, 3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제퍼슨이 이끄는 여당인 민주공화당 소속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Jr.)이라는 사람이 계승했다.

다만 제퍼슨처럼 완전한 주의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고, 연방주의자였지만, 여하튼 친불로 유명한 민주공화당 출신답게 그 또한 친불파였다.

그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에 가로막힌 남부 대신, 아메리카 대륙 북서부에 탐험대를 보냈고 인디언들과 미군 간에 교전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또 만악의 근원 영국이 등장한다.

‘흰 얼굴의 사람이여. 여기는 쇼니 족의 영역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그대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

‘이보시오 인디언. 우린 위협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여기 무기를 팔기 위해 왔습니다.’

‘무기?’

‘미국 놈들과 요새 뜨겁다고 하던데... 우리가 무기를 팔아줄 테니 그걸로 미국 놈들 멱을 따버리시오.’

‘테쿰세다! 저기 인디언 두목 놈이다!’

‘멈춰! 딱 봐도 함정이잖-! 커어억!’

‘키아아악! 인디언 놈들의 공격이 너무 강력하다!’

‘대체 인디언 놈들이 쓰는 무기에 <대영제국 왕립해군조병창>이란 문구가 박혀있는 겁니까! 입이 뚫려 있으면 말해보시오!’

‘우우웅 대영제국은 그런 거 몰라잉.’

매디슨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육군을 나이아가라 폭포로 유명한 나이아가라로 보내 국경을 지키게 했는데, 그곳에는 영국군 요새가 있었다.

“그러니 여기에 보병연대 1개 정도는 주둔을 하고 있을 거고.”

나는 말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지도 위를 톡톡 찍었다.

“지브롤터에 보병연대 1개. 몰타에 해병대 1개 연대. 아일랜드에 보병연대 7개와 기병연대 4개···.”

어느 순간 라파예트의 부관 한 명이 다가와, 내가 짚는 곳마다 팻감 하나씩을 놔준다. 센스 있는 친구구만.

“대강 헤아린 해외주둔군만 3만에 근접하는군요.”

“3만이라.”

“현 국민방위대 총인원이 얼마였죠?”

“장교 및 부사관, 사병을 모두 포함해 6만입니다.”

“햐,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난 영국 놈들 주머니가 개털이 되는 소리가 들리는데.”

19세기 초 기술로 수천 킬로미터를 보급한다라, 내가 저런 일을 맡았다면 자살했다.

프랑스는 내 혹독한 채찍질과 다이어트로 인해 해외 식민지 주둔군 따윈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위아더 월드를 외치며 시민권을 펑펑 뿌려서 식민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없고,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그 지역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인 행정도 없으니 생도맹그 같은 곳은 그곳에서 나는 세금 중 일부를 각출해 지방 자치로 알아서 하라고 해놓은 상태.

우린 허리를 이미 조일대로 다 조였다. 저쪽은 아닌 거 같지만.

“사령관님.”

“듣고 있습니다, 총감.”

“비록 제가 군인은 아니지만 여기서 대전략을 하나 제시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장교들을 슥 돌아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국을 말려 죽입시다.”

“!”

“여러분은 아마도 저 도버 해협을 건너 레드코트를 으깨버리고 런던에 삼색기를 꽂고 싶어 하실 겁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준다면 영국이 굴복하리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예를 들어, 영국군이 어마어마한 무력으로 파리에 자기들 국기를 건 뒤, 전 프랑스군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다고 칩시다.”

나는 술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술트 중령은 얌전히 영국군의 말을 따를 겁니까?”

“아니오.”

“똑같습니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두 나라 모두 마지막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지 절대 상대에게 머릴 숙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자기들이 뱁새와 황새에 나오는 새들 중 황새에 속하는 놈들이라지만.

“영국 놈들과 싸우는 모든 무력집단에게 재고로 돌린 샤를르빌을 팔고, 그 자리를 신형 소총으로 메꿉시다.”

나는 그 황새조차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세게 잡아당길 의의가 충만했다.

내 말이 끝나고 잠시 커피와 함께 쉬는 다과타임.

나는 혀를 너무 휘두른 나머지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었고, 장교들은 장교들끼리 자리를 잡고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니... 망할 해적 놈들이 너무 나대는군요.”

“괜찮습니다. 이제 우리 프랑스도 안정되었으니 다시 해외식··· 민지를···.”

“······.”

내가 뭐 씹은 얼굴로 꼬고 있는 다리를 까닥거리자, 입을 놀리던 해군 군수참모가 입을 도로 콱 다물었다.

“그, 저,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군인이라면 응당 그런 호승심이 있어야지요.”

군인이라는 직업은 본래 빛나는 전공과 영광을 쫓기 마련. 나름 평화로웠던 21세기에도 별 하나 달아보겠다고 몸을 뒤틀던 영관들이 수두룩한데, 이 상남자 마초들의 시대엔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다.

역시 18세기~19세기 초의 시대정신이 제국주의인 이유가 있다.

미개척지를 정복하는 김에 달달한 돈을 뽑아낼 수 있다는 그 압도적인 뽕맛에 모두들 절여진 거지.

원 역사의 문제는 그걸 컨트롤 해줘야 할 행정부도 절여져 버리는 바람에 제국주의를 막긴커녕, 제국주의 코인을 탔다.

‘야만인들은 백인보다 진화가 덜 됐으니까 채찍을 맞으면서 중노동을 해도 됨.’

동화책 속에서 누군가 저지르는 악행에는 당연히 천벌이 내렸으나.

이 깝깝하고 냉정한 세상은 그런 나라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았으니, 결국 제국주의 코인을 탄 나라들은 모조리 21세기의 선진국이란 간판을 달고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

음. 정말 좆같구만.

말짱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하는 일반인인 내가 봤을 때, 그런 미래가 기다린다는 건 조금, 아주 초큼 좆같았다.

그러니까 좀 뒤틀어주마.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공감할걸? 대충 6개월에 한 번씩 옆나라 섬숭이들이 ‘초센은 다이닛뽄 제국이 근대화를 시켜줬다. 감사해라 조센징.’ 하고 지랄하는 꼴을 본 한국인이라면 제국주의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좆같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전 군인 출신입니다.”

“옙.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국에 헌신하고 싶어서 안달 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행복하게 살고있는 원주민들 땅에 쳐들어가 집에 불을 지르는 게 조국에 대한 명예로운 헌신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옙.”

그러니까 식민지니 뭐니 개소리 주워섬기지 말라고. 확 들이 박아버릴까 보다.

***

이 세상에 사랑과 정의, 그리고 어둠을 뿌리는... 아니지. 어둠은 어감이 좀 그러니 혁명으로 하자.

사랑과 정의, 그리고 혁명을 뿌리고 다니는 이 기욤이 보기에 창고에 쌓인 소총 재고 몇만 정 털어내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1808년 6월.

마르세유와 툴롱에서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향해 화물선 한 대가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출발했다.

“도선사님! 화물선 하나 들어왔습니다!”

“에잉. 시간 좀 제때 맞춰 오지 하필 밥 먹을 시간에 오는 거야. 이봐, 어디서 온 배인가?”

“프랑스 마르세유랍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뭘 싣고 왔나 보자고.”

“어어 아냐, 아냐. 내가 대신 볼 테니 자넨 먼저 밥 먹으러 가게.”

“엥? 자네가 웬일로 배려라는 걸 다 해주나?”

“싫나? 싫으면 말고.”

“에헤이 무슨 소리. 우린 역시 진정한 동료지. 잘 부탁하네.”

“크흠. 도선사 나리. 우리 배 화물칸엔 생활용품과 식료품 말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지. 걱정마시오. 난 고야 선생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올시다.”

“아하.”

“서류는 깔끔하게 마무리해놨으니 누가 화물을 들춰보지도 않을 거요.”

일부러 동료에게 맘에도 없는 양보까지 해가며 일을 떠맡은 도선사는 <이상없음>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힌 서류를 프랑스인 선장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그 ‘진짜 화물’의 정체는 뭐요?”

“툴롱 지역방위대 군수창고에 있던 소총 400정입니다. 적당한 장소를 알려주시면 오늘 밤 중에 그곳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

“젠장.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각하께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 좀 전해주시오.”

“하하. 물론입니다. 우리 프랑스 시민들은 스페인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포도주에 배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에 상하지 말라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밑에 깔아놓은 길쭉한 막대기들.

마피아들이 고개를 드는 밤이 되자, 그림자 몇 개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막대기를 죄 뽑아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보따리를 든 그림자들은 또다시 스멀스멀 배에서 기어 나와 인근 숲으로 향했으며, 인적이 드문 공터에 이르자 보따리를 바닥에 놓고 풀어헤쳤다.

“다들 모여! 서둘러!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옮겨야 한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목총에서 벗어나겠구만.”

흐뭇한 얼굴로 주섬주섬 ‘막대기’를 챙겨 드는 스페인인들.

그들은 야산 어드메에 있는 동굴에 방수포를 깔고 이 소중한 막대기들을 보관하기로 했다.

훗날 이 막대기들을 손에 쥐고 위풍당당하게 나갈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와 똑같은 일이, 지중해 건너 오스만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똑같은 일은 희망봉을 건너 인도 폰디체리(Pondichéry)에 있는 프랑스령 요새의 응접실에서도 일어났다.

그 요새에는 마이소르 왕국에서 찾아온 사자(使者)가 당도한 상태였다.

1808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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