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268화 (268/341)

어둠을 대비하라 (6)

[입수한 총기 864자루 모두 전수 조사 완료.

개중 87번을 포함하여 기술 실증이 가능한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103자루를 ‘특별 관찰 대상’으로 분류하였음.]

[금형팀에선 ‘특별 관찰 대상’으로 분류된 모든 대상을 복제하고 있으며, 2주일 안에 상세한 설계도까지 제작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음.]

[추신. 배고픈 이 친구들 입에 들어갈 커피와 야식, 주전부리 살 부식비가 더 필요함.]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으음. 오늘 아침 따라 커피 맛이 참으로 좋다. 쏘 굿 앤 테이스티.

“우리 연구팀 친구들이 상당히 잘해주고 있군요.”

“그럼요. 이 라부아지에가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과 아카데미를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뽑아온 친구들입니다.”

글쎄. 아저씬 파리 실험실에 박혀있었고 정작 뛴 건 듀퐁 아니었나?

이 간악한 전직 세금 징수관에게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럭무럭 올라왔으나,

- 아니. 라부아지에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 반갑소 교수. 다름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을 찾고 있는데, 혹시 교수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좋은 인물이 있으면 추천해주실 수 있겠소?

- 예? 하, 하지만 제 밑에서 수학하는 아이들은 모두 저와 박사학위까지 따기로 약조한 아이들이라...

- 안된다 이 말이시군.

- 하... 하하...

- 그러고 보니 교수는 이번에 국립아카데미에 연구비 지원을 넣으시지 않았소?

- 그렇, 습니다만.

- 음. 이사회에서 잘 검토하고 승인해줬으면 좋겠구려.

- ······.

국립아카데미 이사라는 직책을 무기 삼아 똘똘한 대학생들을 빨아온 건 사실이니 봐주기로 했다.

역시 왕년에 나 포함 파리 시민들에게 쌍욕을 얻어먹은 징수 실력은 죽지 않았구만.

“사장님? 왜 절 그런 눈으로 보시는지요?”

“···옛날 생각이 좀 나서 말이죠.”

어우 괜스레 빡치네.

나는 우리 라부아지에의 목에 걸린 고삐를 좀 더 세게 당기기로 했다. 절대 내가 쫌생이여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연구팀이 이렇게 빡세게 자료를 모아줬는데, 괜찮은 병기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전직 화약국장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그래도 시간이 꽤나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으음. 아저씨.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내가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자, 라부아지에는 헛기침을 큼큼-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저. 화약국장이란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현직 사기업 기술고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는 가정 아래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한 시간. 으음. 그렇군요.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면 ‘자,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하고, 누구 나랑 같이 테니스나 치러 갈 사람?’ - 하고 칼퇴를 찍는 바람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없는 공무원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든, 오전 6시를 가리키든 야근수당 1.5배와 식대를 꼬박꼬박 주고 굴리는 채찍 든 사기업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지. 아주 좋은 답변이에요. 오홍홍.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난, 어서 일이나 하러 가라고 라부아지에를 밖으로 떠밀었고 그는 이내 자기가 만든 부릉이를 타고 저 멀리 생 탕투안 구를 향해 사라졌다.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한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켈켈켈켈!”

“하하하하!”

“크헤헤헤!”

입고 있는 정장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응접실이 떠나가라 웃는 사람들.

“오! 오셨습니까, 각하!”

“다들 즐거운 대화 중이신 거 같은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염려스럽군요.”

“에이 무슨 말이십니까! 저희가 다 이렇게 희희낙락한 게 다 각하 덕인데요.”

파리 시장, 르 아브르 시장, 칼레 시장··· 기타 군수니 뭐니 등등까지.

“저 외국인들이 와서 돈을 펑펑 쓰니, 우리 자영업자들 입가에서 웃음이 떠날 일이 없습니다!”

“지역 경제가 나날이 우상향을 찍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번 대회... 기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을는지요···?”

“올해는 이미 공지를 해 버린 상태라 힘들고, 내년 대회부터 고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1807년 말.

겨울이 찾아왔으니 이제 농촌에선 일감이 줄었고, 항구도시 또한 매한가지.

쌀쌀한 날씨만큼 유권자들의 지갑도 쌀쌀해졌으니 이는 곧 내년 여름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겐 그리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곳간에서 인심 나온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나 유권자들이 회까닥 돌아서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뽑아주면 어떡한단 말인가.

하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왔다.

“손님 저희 칼레 시의 명물! 싱싱한 북해산 대구로 만든 요리 맛이 어떻습니까?”

“흠, 나쁘지 않군. 내 시중들에게도 한 접시씩 부탁하지.”

“스파시바! 스파시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하나씩 다 줘 보시게. 프랑스 포도주의 명성이 진짜인지 한번 시험해보자고.”

“당케! 당케!”

대회 참가자들만 따지면 약 800여 명. 하지만 이 콧대 높은 귀족, 부자들이 홀몸으로 왔겠는가?

시종만 십 수 명에, 기왕 온 김에 가족끼리 관광도 즐기고 가겠다는 사람이 대다수니 실제로 프랑스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약 1만 명에 달했다.

밥맛 없는 독일 놈, 러시아 놈, 영국 놈까지. 이게 다 무슨 일이야? - 라며 눈살을 찌푸리던 시민들도 1만 명이 뿌리는 금은보화의 세례가 있자 다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엿 같은 소리나 주워섬기는 놈들이긴 하지만...”

“돈에는 죄가 없잖아? 그렇고말고.”

“아들! 저번에 가지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거 있지 않아? 아빠 손 잡아, 오늘 사러 가자!”

과거 황금을 뿌리고 다니던 만사 무사의 고사(古事)가 되풀이되다니.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구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면 참 좋겠는데요. 시민들의 주머니도 넉넉해지고-”

“덩달아 여러분 이름 적힌 투표함도 넉넉해지고?”

“핫핫핫. 겸사겸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역시 선거와 당선의 맛,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4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건 어마무시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 옛날 붉은 깃발을 꼬나쥐고 바스티유를 별 모양으로 잘라 폭☆발 시키던 혁명가들은, 20년이 지나자 우리가 잘 아는 훌륭한 민주주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폴리틱... 폴리틱 네버 체인지...

“여러분들은 계속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까?”

“그럼요. 말해 무엇할까요!”

“까짓거, 안 될 거 없지요.”

“그게 참말이십니까?”

“역시 총감! 믿고 있었습니다!”

날 향해 ‘즈엔장! 믿고 있었다구!’ - 하는 표정을 짓는 저 친구들을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우리 프랑스는 참 운이 좋게도, 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하고, 또 본받을만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요.”

“코딱지만 했던 프로이센 놈들도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같은 프랑스인을 스승 삼아 훌륭한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여 저렇게 큰 거 아닙니까.”

“그럼요.”

“전 유럽에 있는 친구들이 우리 프랑스라면 질색해도, ‘프랑스식 문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지금. 우리는 이걸 활용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냐니. 유치원생들인가? 내가 이렇게까지 힌트를 줬는데 모른다고?

“보르도 시장님.”

“옙?”

“보르도에서 우리 프랑스 문화로 꿀을 빨고 싶으시면 뭘 해야 되겠습니까?”

“···큼, 크흠.”

웬 헛기침이래.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지.

“시장님. 보르도의 특산품, 그리고 프랑스 문화의 정수하면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거... 아! 와인 말씀이십니까?”

“어느 나라 술이 제일 맛있을까, 보르도 산 최고급 와인이냐 아니면 스코틀랜드 산 스카치 위스키냐. 아니면 제 3자냐. 어디 한번 프랑스 와인의 성지인 보르도에서 겨뤄보자.”

“젠장할, 역시 각하는 천재십니다! 내가 법대를 가는 게 아니라 상경대를 갔어야 하는 건데.”

“각하, 우리 툴루즈 시는 뭘 해야-!”

“워워. 전 어디까지나 예시를 하나 제시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해야지.

뭐가 됐든 외화 좀 팍팍 긁어모아 봐.

***

===

본 대회는 우호 증진이라는 취지에 맞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심판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

1. 채점 종목은 속사, 정밀 사격, 승마 사격 세 종목으로 한다.

2. 심판의 판정에 의구심이 들 경우, 참가자는 언제든지 주최 측에 항의할 수 있다.

2-1. 단, 악의적이고 빈번한 재심 요구 및 항의가 계속될 경우, 주최 측은 해당 참가자를 대회에서 배제한다.

3. 그밖에 어쩌고저쩌고 쏼라쏼라···.

===

- 타앙!

한 머스킷 소총에서 불꽃과 함께 매캐한 화약 내음을 쏟아냈다.

“흠.”

“심판 양반. 어떻소? 명중이지?”

“기다려보세요.”

저 멀리 과녁으로 뛰어가 표적지를 확인한 심판 하나가 여러 색 깃발 중 한 깃발을 찾아 높이 들어 올렸다.

“빨간색이군. 7점.”

“뭐? 명중이 아니라고!? 그럴 리 없어!”

“어이! 바보 이반! 뒤에 줄 안 보여? 다 쐈으면 꺼져!”

“뭐 이 새끼야?”

“그만. 그만. 더 싸우시면 둘 다 퇴장입니다.”

“이봐, 당신 여태까지 몇 점이요?”

“5번 사격해서 33점.”

“33점? 어차피 떨어질 거 뻔한데 지금 그냥 짐 싸서 집에 가는 게 더 좋겠구려.”

“뭐?”

“그마아아안!! 악의적인 비방 행위는 경고입니다!”

“이건 뭐, 아주 개판이군.”

듀퐁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면서 말했다.

“비아냥과 조롱이 언제부터 기사도에 속했었지.”

“규정을 빡빡하게 잡아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 치들은 지들끼리 쌈박질을 하든 뭘 하든 냅두고 87번이나 보러 갑시다. 팀장님.”

“옙.”

듀퐁과 몇몇 연구원들은 자리를 피해 한참 속사 종목이 진행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7번 알렉산더 존 포사이스. 준비되면 신호 후 발포하십시오.”

“준비됐습니다.”

“5, 4, 3-”

- 타앙!

“플린트 락은 방아쇠 격발부터 발사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저건 바로바로 발사가 되는군요.”

“화약접시를 때리는 단계가 없으니 그만큼 발사 과정이 단축된 거 같습니다.”

“주머니에서 뭘 빼는데? 저게 뭐죠?”

“일단 지켜보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총신 안에 화약과 납탄을 넣고 꼬질대로 넣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그러나 포사이스라는 남자는 주머니에서 땅콩만 한 크기의 쇳쪼가리를 꺼내더니 총몸에 끼워 넣었다.

그리곤 격발.

- 타앙!

듀퐁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허- 하고 벌렸고. 그 덕에 문 담배를 땅에 떨어뜨렸다.

“···지금 장전이 몇 초 걸렸지?”

“14초, 15초 정도...”

“통상적인 장전보다 두 배는 빠릅니다.”

“저기 저 친구. 오늘 무조건 회사로 끌고 오십쇼.”

이거. 잭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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