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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도 사업입니다-266화 (266/341)

어둠을 대비하라 (4)

내가 전 유럽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뿌린 1807년을 기준으로, 전 유럽 국가들이 표준 화기로 채택한 건 플린트 락 머스킷 소총이었다.

개중에서 우리 프랑스 육군 장병들이 훈련소에서 받아 자대까지 들고 가는 소총의 이름은 샤를르빌 소총.

아무래도 처음 이름을 정한 사람의 작명 센스가 영 아니었는지, 이 소총의 이름은 샤를르빌이란 마을에 있는 화기 조병창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대충 이름이 샤를르빌이 되어버렸고.

그런 이름에 섞인 비화를 따라가고 싶었는지, 이 소총은 성능도 무난함 그 자체였다.

땡기면 잘 나가고, 좀 험하게 다뤄도 잘 안 부서지고.

음. 뭐랄까, 보고 있자면 DMZ에서 함께 군생활을 보냈던 내 K2의 향이 진하게 난단 말이지.

정말 딱 더도 덜도 말고 ‘군용’이란 이름에 충실한, 명품은 아니지만 나름 쓸만한 무기.

하지만 앞으로 전 유럽이 한데 모여 퍼플과 블루로 나뉜 뒤 영혼의 한타를 벌이리란 확신이 선 지금.

앞으로 미래에 우리 프랑스인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전투력을 올리려면 나름 쓸만한 무기가 아니라 ‘좋은 무기’가 필요했다.

‘좋은 무기’라 함은 기존 무기보다 성능은 좋아야 함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기존 무기보다 가격이 ‘적당히’ 높아야 한다는 점 등 굉장히 까다로운 도입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존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거나 신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연구개발력.

그리고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였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공장제 기계공업보다도 아직 중세길드 식 장인제도와 공장제 수공업이 같이 남아있는 이 시대 아닌가.

특히나 군수 산업은 나라가 만든 조병창에서도 노련한 대장장이들이 직접 철을 두들겨 패서 소총을 만드는 일이 기본값이었다.

제자가 20년 넘게 스승의 수발을 들고 기어이 1대1 맞춤코칭을 받아 한 명의 기술자가 되는 장인제도.

- 기술을 알려달라고?

- 예. 돈은 맞춰드리겠습니다.

- 돈이야 죽는 날까지 끼니 안 거를 정도는 있으니 됐소. 대신-

- 대신?

- 내 밑에서 20년 정도만 고생하면 알려드리리다. 겔겔겔.

사람이란 본디 내가 뺑이친 만큼 남도 뺑이치길 바라는 동물.

후임 없는 이등병 생활을 20년 동안 한 대부분의 장인,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걸 남과 공유하길 꺼리기 일쑤였다.

이는 곧 새로 사업에 뛰어드는 우리 회사로선 굉장한 디스 어드벤티지.

“그래도 뭐어... 사장님께서 정 하고 싶으시다면 기술팀이 머리 좀 박아볼까요? 세부 전공이야 다르지만 다들 이과긴 하잖습니까.”

“아뇨.”

“예? 하지만 기관차 땐 일단 머리부터 박지 않았습니까?”

“그때완 다르죠. 기관차나 자동차는 없었던 개념을 우리가 만드는 거였고, 이건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잖습니까.

충분히 몸을 비틀어 보면 아낄 수 있을 거 같은데 무턱대고 돈을 낭비할 수는 없죠.”

세상만사 중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없다. 해결이 안 된다고? 그건 충분한 돈과 시간을 바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앞으로 험난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나가는 쩐을 최소화하고, 시간도 절약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닥치고 돈과 시간을 처바를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기술팀 팀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면서 연구는 하지 말라니요. 아니면 혹시··· 뾰족한 수라도 있으십니까?”

“그래서 이번에 통 크게 대회를 열었잖습니까.”

“예? 아, 그 사격대회 말씀이십니까?”

“옙.”

조정간 연사로 놓고 K2도 쏴 본 내가 지금 있는 총기에서 불편함과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내가 K2를 뚝딱 만들어내라! 하고 말을 해도 K2가 나올 리 없잖은가.

까놓고 말해서 지금 기술력으로 그 조까튼 가스조절기라도 만들 수 있긴 한가?

애초에 기술이란 건 이미 존재하는 다른 기술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법.

내가 K2 나와라 뚝딱, 탄피 나와라 뚝딱해도 만들어지는 건 본 물건과 한 2억 광년쯤 떨어진 무언가겠지.

안전하지도 않을 거고. 쏘다가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 아닐까?

“이번 대회에 참가자가 꽤 몰린다죠?”

“예. 유럽 각지에서 참가신청서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나는 스크루지처럼 손을 비볐다.

“팀장님. 처음으로 시장에 들어가는 기업이 기술력을 축적하기 위한 가장 쉬운 법이 뭔지 아십니까?”

“그으으을쎄요?”

“바로 타사 제품을 존나게 뜯어보는 겁니다.”

내가 기술자들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고 했지?

아침밥 먹고 출근해서 저녁밥 먹고 퇴근할 때까지 총만 만드는 일을 20년간 한 사람을 우리가 정직하게 따라가 봤자 황새 따라하는 뱁새 꼴이다.

“팀장님. 내가 뭐 하나 물어봅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들 말입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요?”

“뭐어. 돈 많고 시간 많은 한량들 아닐까요?”

“그렇죠. 지금 여객선 잡아타고 파리로 달려오는 분들은 시간 빌게이츠들입니다.”

“···빌게이츠가 누굽니까?”

어, 음. 그런 게 있어.

“여튼 그 한량, 아니 참가자분들은 돈 깨나 있으신 분들이겠죠. 그러면 여기서 문제 하나 더. 이번 수렵대회에서 그 돈 깨나 있으신 분들이 들고 있는 총은 어떤 물건일까요?”

“아마-”

“각국 최고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최신 기술이 들어간 최고오오급 소총. 아니겠습니까?”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아무도 모르게 뜯었다가 다시 돌려놓읍시다.”

안 들키면 무죄. 안 들키면 없었던 일. 게다가 공짜.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우리 기술팀 팀장도 나처럼 비열, 아니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

내가 예전에도 많이 말했지마는, 이 19세기 초라는 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21세기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점보다 이상한 점이 두 배는 많았다.

일단 비슷한 점 첫째. 사람이 산다.

겨우 200년 만에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자, 이제 이상한 점 첫째. 남자고 여자고 노인이고 애고 간에 죄다 씹상남자 마초 마인드를 탑재하고 있다.

- 어머나. 알메리아 부인. 오늘따라 얼굴이 참 아리따워 보이세요.

- 오호호. 감사해요. 엘핀스톤 부인.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어떤 점이 아리따운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그럼요. 나이에 비해 너무 젊어 보이시는 게 참 부럽네요.

- 나이...요?

- 네. 나이요! 햐, 시간을 40년만 앞으로 돌렸으면 온 동네 젊은이들이 다 홀렸겠는데요.

- 이 씨발련이!

40년 젊었으면 미녀였을 거란 소릴 들은 30살의 알메리아 부인.

그녀는 권총을 빼 들어 자신을 모욕한 썅년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두 여자는 10보 떨어진 거리에서 권총탄을 서로 쏴재낀 뒤 검까지 빼 들고 일기토를 붙었다.

프랑스 어디에서는 불륜녀와 정실부인이 만나 ‘이 불여시년이 내 남편을 꼬셔? 뒤져라!’를 외치면서 서로 권총을 꺼내 들었고, 무려 가까운 옆집 이웃 부부가 심판으로 참관하는 아래 엄숙한 결투를 벌였다.

결투 결과는 5보 내에서 불륜녀가 쏜 총알을 피한 정실부인이 불륜녀의 어깨에 총상을 입히면서 승리했고, 정실부인은 피가 줄줄 흐르는 불륜녀의 어깨를 손으로 찍어누르며 당당히 승리를 선언했다.

도대체 5보 앞에서 쏜 총알을 어떻게 피한 거지? 이게 영웅소설이나 군담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아 너무 무섭다...!

뭐? 거짓말 아니냐고? 에이 진짜라니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었는데 뭘.

이제 이상한 점 둘째.

이렇게나 상남자와 상여자들이 즐비한 19세기. 당연히도 상남ㅈ, 됐다. 상-인간이라고 하자.

21세기 현대인이 ‘명예? 됐고 월급이나 올려주고 유급휴가나 하루 더 줘.’하고 시니컬하게 말할 때, 이 상-인간들은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대모험과 거기에 겸사겸사 딸려오는 명예에 환장했다.

그 누구냐. 뮈라였나? 그 아메리카 탐사할 때 데려갔던 그 기병 장교만 봐도 자기를 ‘프랑스인 최초로 아메리카 미개척지를 밟은 모험가’-라고 포장한 채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상-인간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뮈라처럼 번쩍거리는 명패를 쥘 기회가 마땅찮았다.

2022년에 사람들이 자조하길, 세상을 탐험하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우주를 탐험하기엔 너무 일찍 태어났다고 말하듯.

이 1807년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탐험하기엔 너무 일찍 태어났다.

열대지방.

해독제도, 항생제도, 살충제도 없으니 쬐끄만 벌레한테 쏘이면 그대로 황천길.

극지방.

빙하를 가르고 나갈 쇄빙선도 없고, 최신식 방한 장비는 하다못해 코오롱도 아닌 사슴털가죽 옷. 정말 말 그대로 얼어 죽는다.

아프리카.

유럽 대륙보다도 큰 사막, 유럽 대륙보다도 큰 초원, GPS도 없고 그 흔한 약도도 없다. 자다가 하이에나한테 안 물려가면 다행이지.

적당히 위험하면서, 이름값을 드높일 기회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었다.

모두가 낭만에 미쳤으나 기회가 없었단 말이다.

나는 그런 우리 상-인간들의 가려운 곳을 팍팍 긁어줬고.

내 행동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

1807년 말.

프랑스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인 르 아브르, 칼레, 툴롱과 마르세유에 이르기까지. 항구란 항구는 모두 시끌벅적했다.

“러시아어! 러시아어 할 줄 아는 통역사 필요하신 분!? 싼값에 프랑스 최고의 통역사가 붙어드립니다!”

“아이고 선생님, 신수가 참 훤해 보이시고 미남이신데 혹시 저희 호텔에서 투숙하지 않으실는지?”

“어디까지? 아, 파리? 20 리브르요. 싫다고? 그러면 다른 마차 알아보시던가.”

영업, 회유, 승차 거부.

웬만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알렉산더 존 포이스(Alexander John Forsyth), 대영제국 스코틀랜드에서 온 인상적인 콧수염의 사내 또한 배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안 주머니를 뒤져 돌돌 말린 잡지를 꺼내더니 쭉 읽어 내려갔다.

[FORBES, 영문판.]

“어디 보자. 프랑스에 오면 뭘 하라고 했지?”

증기기관차도 한 번 타보고, 버스도 한 번 타보고, 프랑스에 왔으니 스코틀랜드에서 못 해본 건 다 해봐야지 않겠나.

포이스는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잡지에 있는 약도 따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 땡, 땡, 땡.

-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우리 기차는 곧 르 아브르 항구를 떠나 파리로 향할 예정입니다.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매어주시고, 열차 운행 중에는 되도록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 띵 동 댕 동.

“오, 오오...! 진짜 가잖아?!”

포이스가 난생처음 타보는 신문물에 눈이 놀아갔을 무렵.

손에 든 종을 딸랑거리며 웬 승무원이 바퀴 달린 트레이를 끌고 객실을 지나다녔다.

“이삭의 민족 간편식사, 계란 있어요. 포도주, 럼주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 간식, 어른들 술안주 모두 있습니다.”

“럼주 하나 됩니까?”

“물론이죠. 10수에 한 잔 가득입니다.”

럼주까지 받아든 포이스는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여행의 시작이 참 좋다. 이제 가방 안에 든 이 특제 소총으로 우승컵만 따내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옆에 놓인 플린트 락이 아닌, 자신이 개발한 퍼커션 캡 소총이 든 가방을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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