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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세상은 오늘도 평화롭다? (7) (255/341)

세상은 오늘도 평화롭다? (7)

“착한 프랑스인! 오스만의 친구! 나중에 또 놀러 와라!”

“아이고 나리, 당연하죠.”

응 이딴 아편촌 다신 안 올 거야.

잠시 며칠간 스미르나에서 기항한 뒤, 우리는 원 예정대로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사장님! 사모님! 저기 저 협곡과 만이 보이십니까?”

“네.”

“저곳이 바로 옛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해군을 막기 위해 무쇠 사슬을 걸었던 곳입니다.”

지중해를 넘어 흑해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출구.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관문이자,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 뻗어나가는 무역로의 끝.

그 짧은 말로도 옛날 기독교 국가인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이며 이제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의 가치는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기 처음 산 땅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땅 보는 눈 하나는 끝내주네요.”

“하하, 그렇죠. 아주 기가 막힌 위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벌레도 많이 꼬이구요.”

눈 펑펑 북극의 퉁퉁이 러시아는 이 콘스탄티노플을 괜히 탐내는 게 아니다.

그렇게 염원하던 부동항과 지중해, 흑해를 한 번에 끌어안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러는 거다.

다만 여기가 나 같은 바보도 알 수 있을만큼 사기적인 곳이니, 타국들의 견제 때문에 못 먹는 거지.

“머리 아픈 일은 차치하고, 관광이나 하죠. 여긴 명물이 뭡니까?”

“음. 일단 옛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건설한 삼중 성벽이 유명하지요. 아! 중국에서 온 갖가지 비단이나 사치품들도 있답니다.”

“와, 역시 콘스탄티노플이네요!”

“폴린, 그렇게 좋아?”

“그러엄. 이렇게 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겠어요? 대부분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만 살지.”

폴린의 얼굴이 기쁨과 흥분 때문에 발갛게 상기됐다.

하기야 21세기나 돼야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거지. 이 시대에는 보통 사람이면 꿈도 못 꿀 일이긴 하다.

누구한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인 경험인데 내가 좀 소홀했구나.

신혼인데도 벌써부터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다니, 머리를 뭘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네.

“선장님.”

“예, 사장님?”

“돈은 넉넉하게 드릴 테니 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이드 하나만 구해주십쇼.”

“아이, 당연합죠!”

항구에 내린 후, 우리는 선장이 섭외해온 오스만인 가이드와 함께 수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오빠, 오빠 이거 봐요!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이야, 이건 진짜 신기한데?”

“오빠 이 모자 좀 봐요! 너무 예쁘다! 이거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캬, 역시 아름다우신 만큼 사모님이 보시는 눈이 있으시군요! 사장님, 어떠십니까. 지금 사시면 단돈 금화 두 닢에 드립니다!”

“뭐? 모자가 무슨 금화 두 닢이야? 아무리 봐도 관광지 바가ㅈ···, 알겠습니다. 하나 주십쇼.”

그래. 바가지도 좀 써보고, 돈도 좀 쓰니까 이제 여행하는 것 같고 그러네.

그렇게 오스만식으로 저녁 식사까지 마친 우리는 숙소로 향했고, 온종일 도시를 쏘다닌 탓에 피곤으로 하품하는 폴린을 먼저 객실로 올려보낸 나는 진시황제가 말한 식후연초 불로초를 착실히 수행하기 위해 담배를 하나 꼬나물었다.

후우.

“공기가 달라서 그런가 담배도 맛이 다른 거 같기도 하고.”

내가 타 들어간 궐련 끝, 담뱃재를 툭툭 허공에 털 무렵.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터번을 쓴 오스만인 몇몇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으음. 내 육감이 잘 맞는 편은 아닌데, 이건 좀 분위기가 이상한걸.

“그 뭐냐, 앗살람 알라이쿰?”

“기욤 보나파르트 맞소?”

이야, 본토 사람만큼 능숙한 프랑스어라. 분위기가 존나게 이상한걸?

나는 밖에 보이지 않도록 허리춤 안에 호신용으로 찬 권총 손잡이를 손으로 지긋이 쥐었다.

내가 답하지 않자, 오스만인이 다시 말했다.

“당신이 기욤 보나파르트가 맞소?”

“예에. 맞습니다만.”

“코르시카에서 신혼여행 온?”

“예.”

“그렇군. 그런 설정인 건가.”

그렇게 말한 오스만인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와 불빛이 환하게 빛나는 내 앞까지 다가왔다.

어두운데다가 수염까지 길러 나이를 정확하게 짐작하긴 어렵지만 대강 중년 즈음.

“그만. 더 다가오면 피차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 친구들이 알려주길 당신에게 무기는 없다고 했었는데.”

“짜잔. 안타깝게도 있네요. 자, 뒤로 물러나시지.”

“암. 암. 그래야지.”

오스만인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인영 몇 개가 일렁거린다.

하나, 둘, 셋···. 다 합치면 다섯 정도. 긴 그림자가 없는 걸 보니 소총은 없다. 기꺼해야 권총.

“뒤쪽에 있는 건 당신 부하요?”

“뭐, 그렇지.”

“20보 뒤로 물리시지.”

“그리하겠네.”

인영들이 저 뒤로 물러난다.

저 정도 거리면 권총을 꺼내도 맞추기 어렵다.

“당신. 혹시 누구에게 사주를 받아서 날 죽이러 온 건가?”

“내가 사주를 받았다고? 하하하! 상상력이 꽤 풍부하군.”

“그렇다면 출입국인가? 난 정상적으로 신분을 증명하고 통과했다.”

“그 신분이 거짓말이잖소. 기욤 드 툴롱.”

씨발. 씨발. 뭐지. 어떻게 알았지.

나는 권총 총신을 꺼내 보였다.

“당신. 정체가 뭐야.”

“그대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사람이지.”

그는 올리고 있던 두 손을 내려 뒷짐을 지곤 말했다.

“반갑소, 동맹국 대프랑스의 재상 기욤 드 툴롱. 나는 대오스만 제국 28대 파디샤이자, 메카의 보호자인 셀림이라고 하오.”

***

신이 있다면 인성파탄자 사이코패스 쓰레기거나, 아니면 뒤진 것이 분명하다.

날 굴리더라도 다른 때 굴리면 될 것을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 왔을 때 굴리는 게 말이 되나?

“차, 차, 차차차, 차는 마음에 드시나요?”

“음, 아주 좋소. 부인의 솜씨가 참으로 좋군.”

“감, 감, 감사합니다아.”

이런 자리에 면역력이 없어 달달 떠는 폴린을 보니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

“폐하. 제가 기욤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사실 반쯤은 때려 맞춘 거요.”

“때려 맞춰요?”

“분명히 파리에 있는 내 수족이 전하길, 스페인을 들렸다 온다고 해서 미리 마드리드에 사람을 보냈지. 그런데 도통 소식이 없는 거요. 그래서 추리를 해봤지.

귀하의 방문을 꺼리는 국가가 한둘이 아니니, 스페인에서 방문을 거절한다면 다음은 우리 오스만에 오겠구나. 그래서 항구에 밀정을 좀 뿌려놨소.”

“조금 불쾌하군요. 부인과 여행 중에도 이렇게 감시를 당하다니.”

“오, 오, 오빠! 미쳤어?!”

“허허. 내 사과하리다. 귀하를 만나고픈 마음에 그랬으니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시오.”

셀림은 잔에 남은 차를 마저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오스만의 동맹이여, 작금의 오스만은 불행히도 도탄에 빠져있소.”

온화했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국의 동쪽 강토에선 수백 년 동안 은혜를 베푼 선대 파디샤들을 저버린 세르비아인들이 독립을 쟁취하자며 난동을 부리고 있고, 제국의 남녘 강토인 이집트에선 불온한 세력이 준동하고 있소.”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북쪽 강역에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러시아 놈들이 호시탐탐 제국의 땅을 노리고 있소.

지금이야 유럽의 강대국들이 쌍심지를 켰으니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겠다만은, 본래 옷감에 염색물이 들 때도 조금씩 조금씩 물드는 법. 제국의 강토가 넘어가는 건 시간 문제요.”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제게 무슨 답을 듣고 싶으십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계책.”

계책은 무슨. 계책 좋아하네. 내가 제갈공명이야?

술탄 아저씨한텐 미안하지만 내가 딱 듣기만 했는데도 이건 답이 없다.

독립을 바라는 세르비아인? 뭐 군대로 밀어버리자는 답변이라도 기대한 건가?

1회차 인생 시절 어렸을 때부터 김구 선생,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 위인전을 읽으며 성장한 하프-김치맨에게 그런 답변을 기대했다면 오산이지.

이집트? 이집트는 피라미드랑 스핑크스 말고 모른다. 좆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만큼 병신 짓이 없으니 이것도 보류.

러시아 그쪽 동네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는 곳. 내가 아무리 아가리를 털어줘도 프랑스군이라도 파병하지 않는 이상 부동항 획득이라는 국가의 꿈을 저버리지는 않을 거다.

“죄송하지만 저도 달리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그렇소?”

셀림은 비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 지 않았다. 오히려...

“하하하! 속이 후련하구만! 고맙소. 재상.”

이 아저씨 뭐 잘못 먹었나?

폴린 너 혹시 찻잎에 이상한 거 넣었니?

“재상 같은 천하의 천재도 답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오. 선대에 비해 내 능력이 부족한 건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 이제는 확신이 드는군.”

“그렇, 습니까?”

“그래. 내 정적들이 그걸 빌미로 날 헐뜯으니 거기서 오는 정신적 피로가 보통이 아니었다오. 이제는 그걸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으니 모두 재상의 공이오.”

“정적이라니, 술탄은 감히 대들 수 없는 전지전능한 황제 아니었습니까?”

“이상한 소릴 하는구료.”

그는 이제 정말 비통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 나라는 이미 술탄의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금의 프랑스처럼 인민의 나라도 아니오. 강도 같은 예니체리 놈들의 나라지.”

“예니체리라면.”

“그렇소. 술탄의 친위대. 슐레이만 대제와 함께 전장을 누빈 전통 있는 부대지.”

그것도 다 옛날 옛적 역사책 속이지만.

“지금의 예니체리는 기득권 집단이오. 재상부터 말단 하급 장교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기득권 집단.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부패의 온상이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그래. 재상이 다 밀어버린 그 앙시앙 레짐이 아직 이 오스만에선 살아 숨 쉬고 있소.

젠장, 알라께서는 저런 벌레들을 잡아가지 않고 대체 뭘 하시는 건지.”

어, 음, 어. 아저씨 이슬람인데 그런 말 막 해도 돼요?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건지 모르겠군. 유럽인들은 가끔 착각하는 게 있소. 유럽의 지식인들이 지금 그렇게 물고 빠는 그리스 문화는 유럽인의 선조들이 다 조지고 부실 때 우리 이슬람인들이 보전한 거 아시오?

우린 광신도가 아니오. 충분히 이성적인 이슬람 ‘인’ 들이지.”

미안합니다. 아저씨. 내 머릿속 이슬람이란 기억에선 탈레반이라는 이름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거든요.

“여하튼 폐하께서 제게 원하는 건 그게 다입니까? 폐하의 능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

“아. 그건 아니오. 애당초 그건 조그마한 일에 불과하지.”

셀림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짐은 재상처럼 우리 오스만을 좀 먹는 쓰레기들을 한 번 쓸어내버리고 싶다오. 그러니 알려주시오.”

어떻게 하면 우리 오스만에서도 프랑스처럼 혁명을 일으킬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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