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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지속 가능한 발전 (4) (243/341)

지속 가능한 발전 (4)

15년 전, 이 프랑스라는 썩은 연못을 통째로 갈아버리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이 쓰였던가.

그런데 이 바꾼 연못마저 또다시 썩어들어간다면 그때는 얼마나 많은 피를 더 지불해야 할까.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갔고, 또 얼마나 죽을까.

바스티유에서, 발미에서, 코르시카에서 쓰러진 사람들이 그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아니. 그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 어차피 그들을 분노케한다면 아마 그들이 있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졌을테니 듣고 싶어도 못 들을 터.

젊은, 아니. 이제 젊다고는 못할 삼십 줄의 사내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전자를 고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러하고요.”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기욤 드 툴롱 씨는 미리 그런 참람한 일이 생기지 않게 대비를 하자, 이런 뜻으로 이번 법안을 발의하신 겁니까?”

“맞습니다.”

“뜻은 알겠지만, 전 아직까지 그 ‘반독점법’이라는 게 어떤 예방효과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군요. 오히려 자유로운 기업들의 활동을 해치지 않겠습니까?”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해친다라. 의원님, 혹시 인수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그러면 이 인수라는 단어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뭐,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사들이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잘 말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인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시장에서 기업과 기업 간에 일어나는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욤은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먼 미래를 한 번 머릿속으로 생각해봅시다. 과연 인수를 여러 번 한 회사는 규모 면에서, 자본력 면에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커지겠지요.”

“그러면 더 나중의 미래를 내다봅시다. 그 회사가 더 많은 소규모 회사를 흡수한 이후엔, 과연 시장에서 그 회사와 경쟁을 할 만한 기업이 남아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기욤은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쥔 두툼한 서류뭉치를 펄럭거렸다.

“그러면, 만약에, 여러분이 그 회사의 총수라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지 않겠소?”

“왜요? 왜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지요?”

“왜냐니, 당연히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해야 소비자들이 구매해주지 않겠소?”

“어차피 시장엔 내 경쟁상대조차 남아있지 않은데, 돈을 발라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한다 한들 판매량은 거기서 거기일 텐데요?”

“······.”

기욤은 손바닥을 활짝 펴고 손가락을 하나 씩 접어 내렸다.

“더 이상 경쟁자가 없죠. 그러면 이제 원가를 절감합니다. 당연히 제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싸구려로 변합니다.”

엄지.

“경쟁 회사가 없으니 이제 생산량을 쓸데없이 늘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인원을 감축하겠군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거리에 쏟아져나옵니다.”

검지.

“비싼 임금을 받던 숙련공이 빠지고, 값싼 일용직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동시에 원가를 절감하자, 당연히 소비자들은 덜떨어진 제품을 그 배는 되는 값으로 사게 됩니다.”

중지.

“생각해보니, 어차피 시장에는 자기 회사뿐이니 내친김에 값도 올립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익을 극대화해야지요. 이제 제품값은 배가 아니라 제곱으로 뛰겠네요.”

약지.

“이제 시장엔 괴물 기업이 탄생해버렸습니다.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려는 중소기업이 생기면 인수해버리고, 인수를 거부하면 자금력으로 말려 죽여버리고, 시민들은 대체재가 없으니 아무리 비싼 값에 물건을 팔아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군요.”

기욤은 이제 주먹을 쥐고서 말했다.

“하나의 시장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이 괴물 기업들은 이제 자신만의 왕국을 견고히 하기 위해 행동할 겁니다. 소위 사다리 걷어차기죠.”

“총, 총감. 아, 아니. 기욤 씨! 그건 너무 확대해석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짐승도 아니고 같은 사람끼린데···.”

뭐라 항변하려 일어섰던 의원은 기욤의 눈을 보고 다시 제자리에 착석했다.

저 눈.

활활 타오르는 저 푸른 눈.

15년 전 테니스코트부터 숱하게 본 적 있다.

“···저거 저거 총감 말이야... 딱 삼부회 시절 상대한테 꼬라박기 직전에 뜨던 눈인데.”

“쉬이잇. 괜시리 벌집 쑤시지 말고, 조용히 하시게.”

초선, 2선 의원들이야 기욤 드 툴롱이 칼춤 추는 걸 신문이면 몰라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으니 살짝 긴장하는 정도에서 끝났다면, 제헌의회와 국민의회 초기를 겪었던 의원들은 저 눈이 어떨 때 빛나는 눈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의원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그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 겁니다.

아니라구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모질지 않을 거 라구요? 천만에.

그렇게 사람이 이상적인 동물이었다면 대체 혁명은 왜 일어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렇게 사람이 착하고, 유하고, 도덕적인 동물이라면 인간의 역사는 어째서 서로 싸우고 전쟁했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그러니 지금 우리가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먼 훗날, 악인이 나타나 우리의 후손을 비탄에 빠트리기 전에 우리가 미리 감히 악인 따위가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손대지 못하게 지금 대비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기욤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 담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우리 프랑스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왕국이니, 공화국이니하는 걸 넘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어떤 가치로 프랑스라는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감싸 안을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원 몇몇을 지목했다.

“의원님. 의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저 말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한 의원은 헛기침을 몇 차례 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커흠. 전 우리 프랑스가 보다 위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해져야 한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프랑스. 이 세상 어느 나라도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는 위대한 나라말입니다.”

위대한 프랑스.

얼마나 쉬운 캐치프레이즈인가.

위풍당당한 모습의 의원이 내뱉은 말에, 의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사람 빼고.

“그건 외부에서 우릴 보는 시선이지, 프랑스 내부와는 관련이 없는 슬로건 아닙니까.”

“예, 예?”

“저는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슬로건을 제시하고 싶으신지 물었습니다.”

“그러는 기욤 드 툴롱 씨는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기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가락이 하나씩 치켜올라갔다.

“저는 프랑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남을 침략하고, 남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음으로써 부유한 나라가 아닌. 우리 스스로 새로운 부를 창조해내 부유해지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

“저는 프랑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입맛대로 국경선을 긋고, 전날까지 이웃이고 가족이었던 이들을 강제로 쪼개놓는 천박한 나라가 아닌. 천부인권의 원칙에 따라 하늘에 우러러 한 치 부끄럼 없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둘.

“저는 이 프랑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활기찬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파리에서 태어나든, 코르시카에서 태어나든, 그것도 아니라면 저 멀리 생도맹그에서 태어나든 피땀 흘려 노력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셋.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 허공에 흔들었다.

“공정한 발전! 신사적인 발전! 그리고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발전!

모두가 시장이라는 콜로세움에서 그 어떤 혜택도, 그 어떤 부조리도 없이 정정당당히 싸워나가는 것. 후대를 위해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남에게서 강탈한 값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창조하고 경쟁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태도.

모든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담론이며, 그 모든 것이 합쳐진 지속 가능한 발전이야말로 제가 이 프랑스와 프랑스인의 미래에 건네는 궁극적인 가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프랑스가 아니라면. 저에게 있어서 프랑스는 별로 위대한 프랑스가 아닙니다.”

***

모든 일에는 밑밥이 중요하다. 괜히 알 거 다 아는 21세기에도 휠체어 타고 법원에 출석하는 회장님이 있던 게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폭군이나 독재자라는 새끼들도 ‘명분작(作)’이라는 걸 하고 나서 전쟁을 일으키든 후궁을 들이든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내가 이렇게 이빨을 털어대는 이 길은 솔직히 말해서 가기 어려운 길이다.

‘우리 서로서로 법 잘 지키면서 양심적으로 거래합시다. 상도덕 지킵시다. 어때요 쉽죠?’

이렇게 늘어놓으면 별 어렵지도 않은 일 같지만 이 시대가 무슨 시대인가.

돈 없으면 총이나 군함 가지고 남의 나라 털어 재끼는 게 일상다반사인 시대다.

‘아니, 따서 갚으면 되는데 왜 귀찮게 도덕 같은 걸 지킴?’ - 이딴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인간들이 있는 시대니까.

프랑스도 거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생도맹그, 루이지애나, 그리고 대서양에 있는 수많은 섬들에 이르기까지 삼색기가 꽂혀 있는 땅만 몇 개인가.

예수님이 죄 없는 자만 자신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을 때 아무도 못 던진 이유가 있단 말이야.

그래도.

예수님도 회개하고 참회하고 다시 죄악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아 이미 손 더럽혀졌으니 계속 더럽혀야지’-같은 생각만 고집하는 게 과연 올바른가?

나도 시발 개초딩 저글링시절에 문방구에서 따닥이 가지고 메탈슬러그 몇 판 공짜로 했어.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따닥이 가지고 메탈슬러그 뚫는 놈은 없잖아.

하.

위대한 프랑스.

존나 개쩌는 프랑스.

그래 참 매력적이네. 대충 굵직굵직한 국뽕tv 썸네일까지 박아주면 아주 금상첨화가 다름없겠어.

근데 뭐 어쩌라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개살구지. 프랑스 대혁명이 뭐 때문에 터졌는데.

바로 그 존나 개쩌는 프랑스라는 슬로건을 지킨답시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 바로 잡아야 한다. 누가 바로 잡지 않는다면 내가.

비록 내가 지금은 누군가에게 개새끼로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공상가, 망상론자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뻔히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데 행하지 않는 거야말로 진짜 개새끼지.

“······따라서 저, 기욤 드 툴롱은 ‘반독점법’을 국민의회 본회의에 상정하겠습니다.”

[1804년 5월 30일 국민의회 의결록.

반독점법 : 발안자, 기욤 드 툴롱.

의결 결과 :

찬 231 / 반 87

본 법안의 효력은 1805년 5월 1일부터 발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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