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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지속 가능한 발전 (3) (242/341)

지속 가능한 발전 (3)

1804년, 봄.

파리 어딘가 위치한 호화찬란한 클럽.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방, 아무에게나 개방되지 않는 ‘특별한 이’들을 위한 방.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고상함을 즐길 법한 그 방에서는 뜻밖에도 욕지거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젠장, 그 인간 정신이 나간 거 아뇨!?”

“자본가는 무슨! 이제보니 그놈 순 빨갱이새끼였소.”

“제 놈은 자본가가 아니랍디까? 같은 자본가끼리 돕고 살아야지, 웬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을 보듬어 감싸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랍디까!”

“하기야 소싯적에 로베스피에르, 당통 같은 공산주의자 놈들과 어울린 전적이 어디 갔겠습니까.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에요!”

“박쥐 같은 놈.”

“암. 그렇고 말고 박쥐지 박쥐!”

“자자, 그 박쥐 놈의 죽음을 위하여! 건배!”

“““건배!!!”””

짠-하는 소리와 함께 잔들이 부딪치고, 다들 고급 코냑을 목 너머로 꼴깍꼴깍 넘기기 시작했다.

달달한 마르세유 산 포도로 만든 코냑답게, 혀에 닿는 첫맛은 아주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잠깐의 달콤함이 사라지자, 그 자리는 술 특유의 씁쓸한 알콜 맛으로 채워졌다. 그래. 썼다.

“···이제 어쩌지?”

“······.”

모두들 고개를 슬며시 내리고 입술을 깨문다.

신나게 이빨도 털고 험담도 까 잡술 때는 까 잡술 때고, 이제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이빨을 얼마나 신명나게 털든 간에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제기랄, 안 봐도 뻔해. 이미 로베스피에르는 그놈 세 치 혀에 넘어갔을 거요. 안 넘어갔다 한들, 그 인간 성정(性情)상 찬성표를 던지고도 남지.”

“그러면 에마누엘 시에예스를...”

“시에예스는 무슨! 그 인간하고 기욤하고 끈끈한 사이인 거 모르오?”

“브릿소는 어떻소?”

“······글쎄.”

그들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 캬, 의장님 들어보십쇼! 저 인간들 논리가 이거 완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닙니까?

- 흐음. 확실히···.

- 평소에 제들이 노동자들 혹사시키고 임금 쥐꼬리만하게 주는 거 간섭하려고 하면 ‘이건 기업 탄압이다! 아이고 나 죽네! 우리 회사 망하는 꼴 보고 싶어?!’라고 씨부리면서, 노동자들이 좆같아서 죽창들려고 하면 ‘아이고, 국가님! 저 폭도들로부터 절 지켜주세요! 충성충성!’.

- 흐으으음.

- 하물며 세상 이치에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남이 자신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면 발끈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저 치들은 자기들 말곤 아예 다 좆으로 보이나 봐요. 안 그렇습니까?

- 일리가··· 없다고 볼 수는 없군요.

- 의, 의장님! 저흴 못 믿으시는 겝니까?!

- 못 믿는 건 아니지요. 그냥··· 일리가 있는 설이다, 그런 것이지...

틀렸다. 브릿소의 눈은 이미 저 툴롱 출신 사생아 놈에게 홀려있는 눈이었다.

“시에예스도 싫다, 브릿소도 안된다. ···그러면 누구한테 가자고? 시뻘갱이 과학자 라자르 카르노? 혹시 장래희망으로 과학실습용 카데바가 되고 싶은 겁니까?”

“법무부 장관 플라티에르는, 플라티에르는 어떻소?”

“그 양반도 시에예스 끄나풀이잖소!”

로비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간 꼼짝없이 툴롱 출신 촌뜨기의 손에 고환을 잡히게 되는 셈. 어느 때보다 고성이 오고가길 한참.

“제가 경찰부 쪽에 떡고물 좀 고인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요?”

“경찰부 차관 조제프 푸셰라고, 산악파 당원입니다.”

“이런 썅, 유사 빨갱이도 모자라서 이젠 산악파 출신 진짜배기 빨갱이 새끼와 대화를 하자고?”

“산악파이지만 충분히 말이 통하는 자입니다. 맡겨만 주십쇼. 최소한 의회에서 호의적인 말을 꺼내게 만들겠습니다.”

“제기랄. 좋소. 어차피 이대로면 다 말라죽을 거, 마음대로 하시오. 나도 나름 연 있는 자들에게 줄을 대볼 테니.”

***

사람은 태어날 때 밥 벌어먹고살 능력 하나씩은 하느님께 받아 태어난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하느님은 조제프 푸셰에게 개중에서 제일 좋은 편에 속하는 능력을 주셨음이 분명했다.

남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살이가 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것이었으니.

시골 동네에서 교사로 끝날 그가 격동하는 시류에 타올라 지방의원, 더 나아가 국회의원이 되고, 이젠 경찰부 차관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니, 세상살이가 쉽디 쉽지 어떻게 어려운 일이겠는가.

시민들 앞에서 입 좀 적당히 털어주고, 군 방첩대와 힘싸움하는 경찰부 장관에게 싸바싸바도 좀 하고. 출세하기 얼마나 쉬운 세상인가.

···물론 경찰부 장관 나리께 알랑방귀 뀌려면 조오오오금 번거롭게 방첩대 내부 도청도 좀 하고. 스파이도 좀 심고 그걸 토대로 방첩대는 일도 잘 못하냐며 좀 갈궜지만.

뭐, 자기가 그걸 받아다 독일이나 영국에 넘긴 것도 아니고 수사기관끼리 어디까지나 상부상조하자는 건데. 나쁜 건 아니지 않나.

“그래. 나쁜 건 지들끼리 돌려보는 방첩대 놈들이지. 우리가 아니야. 그렇지, 차관?”

“그럼요, 그럼요.”

푸셰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장관의 빈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이 시국이 보통 시국인가? 이 프랑스는 전후좌우로 봉건주의 꼰대국가로 포위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시국에, 응? 그런 귀중한 정보를, 응? 방첩대만 보겠다는 게 말이나 되겠냔 말이야.”

“암요. 장관님 말씀이 참 옳습니다.”

“그 보나파르트란 놈, 내가 자료 좀 달라 그럴 땐 규정이니 뭐니 하면서 그렇게 뻗대다가 제 상관한테 된통 당하니 아주 후련하더구만, 아주 후련해!

이게 다 차관 덕이야. 차관이 없었으면 난 벌써 저 방첩대 놈들 때문에 이가 다 갈렸을 걸세.”

“무슨 소리십니까, 다 장관님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지요. 핫핫.”

술 시중을 들기 한참, 장관이 완전히 곯아떨어지자 푸셰는 가정부에게 눈짓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상쾌한 밤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경사. 무슨 특이사항 없나?”

“모르헝 거리 쪽에 공장을 가진 사업가 하나가 차관님을 만나보고 싶답니다.”

미리 준비해둔 마차를 타자, 안에 타 있던 경관이 말했다.

“아, 그 양반. ···무슨 일로? 이번에는 사람이라도 담갔다고 그러나?”

“이번에 의회에 안건으로 법 하나가 올라갈 것 같은데, 그걸 막아달랍니다.”

“왜 하필 나한테? 다른 의원도 많잖나.”

“법을 제안한 게 기욤 드 툴롱이랍니다. 다른 의원들은 죄 그에게 반쯤 동조하는 분위기라...”

“허, 기욤 드 툴롱에 벌써 물밑작업이 돼 있다고? ···병신인가? 내가 그걸 어떻게 막아줘?”

“그러면 거절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지. 받아두게. 우린 그자들의 요구에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할 운명인 거야.”

“그래도 되겠습니까?”

“왜 안 되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오페라도 돈 받고 손님 받는데, 나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나저나 기욤이라.

“그르넬흐에 박혀서 정치는커녕 돈 벌 궁리만 하는 그 돈 귀신이 왜?”

이번에는 푸셰의 말에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

1804년, 5월 말.

베르사유. 국민의회.

“···그러면 이것으로 1804년 5월의 마지막 국민의회 개최를 시작하겠소. 부디 상호 간의 존중과 예의를 담아 오늘도 프랑스와 시민들을 위해 건실한 대화 이어가길 비오.”

이제는 왕관을 받고 즉위한 루이 18세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속속들이 안건들이 통과되기 시작했다.

“···에, 그러면 다음은···.”

“난 의견 없소. 누구 의견 다른 사람 있소?”

“없소. 통과, 통과.”

어차피 앞의 자질구레한 안건들은 이미 조율이 끝난 문제.

“그러면 이제 본 안건인 ‘반독점법’에 대해 관련인을 소환하겠습니다.”

기욤 드 툴롱.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의장, 브릿소가 그렇게 말하자. 객석에서 한 젊은이가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회의장에 있는 수백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총감도 나이를 꽤 먹었구만.”

“이제 서른 셋이던가.”

“그게 벌써 15년 전이라니.”

“정숙하십시오, 정숙.”

- 땅, 땅, 땅.

의장봉이 나무판을 때리자, 곳곳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소환인. 본인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기욤 드 툴롱. 툴롱 출신이고 현재 파리에서 여러 사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소환인과 본 안건, ‘반독점법’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제안한 법안입니다.”

“좋습니다. 소환인. 이제 토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손 수십 개가 한꺼번에 올라간다. 개중 의장의 간택을 받은 한 사람이 일어나 물었다.

“기욤 씨,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법안의 골자는 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기업의 부정적인 행보를 막는다는 것인데, 현재 프랑스에 그런 기업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직은요.

기욤은 덧붙였다.

“그렇다면 기욤 씨는 앞으로 그런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왜지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기욤은 이어 말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는 대혁명이라는 홍수를 거쳤습니다. 부패한 관리를 때려잡고, 부패한 성직자도 때려잡고, 억압받던 세상을 바꿔놓았지요.

이는 곧 썩었던 연못을 비우고, 이제 새 물을 담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을 한 번 훑고 이어 나갔다.

“그러나 여러분. 새 물을 담았다고, 그것이 끝끝내 썩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물이란 것은 계속 관리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예전과 같은 썩은 물로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다들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호응이 좋으니 말할 맛이 나는구만.

“이제 두 가지 해결책이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물이 썩지 않게 관리하는 것.

두 번째는 썩을 때까지 놔두고 통째로 갈아버리는 것.

전자는 귀찮을 겁니다. 물이 썩지 않게 수초도 넣어줘야 할 테고, 물고기도 넣어줘야 하겠지요. 하지만.”

“후자를 선택했을 때만큼 힘들진 않겠지요.”

무슈 단두대 지원사격 고마워요.

“그렇습니다. 전자는 귀찮고, 후자는 힘듭니다. 그러니 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이 마음에 드십니까?”

모두들 조용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젠장, 이러는데 이젠 긴장도 안 되네. 사람이 너무 큼지막한 일을 많이 겪었어.

“제가 조금 더 말을 이어가자면. 경영학에서는 한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경영학이란 학문이 있소?”

“어허. 조용히 하세요.”

어이! 그 앞은 심연이다! 너무 깊게 알려 하지 말라고. 다쳐.

“1:10:100. 무언가 사업을 할 때, 개발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1의 손해가, 양산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10의 손해가, 판매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100의 손해가 난다는 법칙입니다.”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프랑스라는 연못을 어떻게 관리하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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